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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102화 (102/286)

< 천마님 안마하신다 102화 >

“끄흐으으음!”

방 번호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선 고드윈.

입구 근처에 캐리어를 대충 세워둔 그는, 거울 앞에 서서 크게 기지개를 한 번 펴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온 탓일까, 왠지 몸이 굳어있는 기분이었다.

“음. 방도 나쁘지 않네.”

밖에서 봤을 때도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의 티가 나더니, 호텔 내부에서도 그런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에다 설비들이 최신식이라는 뜻이었다.

한 바퀴 방을 둘러본 그는 천천히 창가로 향했다.

고층이니만큼 아래로 살짝만 열리게 되어있는 창문. 잠금장치를 풀고 슥 올리자, 차가운 고층의 공기가 방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경치도 괜찮고.”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니 창문 너머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한강과 강 건너편 도시의 풍경.

종종 느끼는 거지만, 역시 강을 끼고 있는 수도의 풍경은 어디서든 기본 이상은 한다는 느낌이다. 번잡한 도심 사이로 느긋하게 흐르는 강줄기의 모습이 꽤나 운치가 있다고 할까.

게다가 호텔의 위치도 좋고 고층이라 그런지, 어딘가 전망대에서 보는 것처럼 탁 트인 경치였다. 이걸 개인적인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객실의 가치는 높이 평가할 수 있으리라.

“이 정도면 대만족!”

하루 묵을 숙소의 품평을 마친 그는 침대 위에 대자를 그리며 몸을 뉘였다. 푹신하면서도 매트리스 안쪽에서 몸을 받쳐주는 듯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어디보자···’

그가 한국에서 머무르는 기간은 딱 이틀.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서 다음 날 저녁에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야하는, 어찌 보면 가혹할 정도로 촉박한 일정이었다. 괜히 다른 선수들이 시간낭비라고 꺼려한 것이 아닌 것이다.

거기에 불만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오겠다고 한 건 자신이고, 시즌 중에 외국을, 그것도 유라시아 대륙 끝에서 끝까지 다녀오겠다는 것 자체가 촉박할 수밖에 없는 일정이다. 게다가 애당초 휴가를 나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딱 용건만 보고 돌아갈 생각도 없다. 기간이 짧고 다음 날 바로 돌아간다고 해서 알차게 보내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겸사겸사 오랜만에 여행 기분도 내고 싶어, 일부러 가이드를 비롯한 다른 일행 없이 혼자서 찾아온 고드윈이다. 그는 싱글거리는 얼굴로 스마트폰에 적어놓은 메모창을 띄웠다.

“삼겹살은 이따 저녁에 먹을 거고··· 부대찌개는 야식으로. 아침에는 국밥도 나쁘지 않다 했었나?”

거기에 적혀있는 것은 나름의 체크리스트.

어디 관광명소를 돌아다닐 시간은 없겠지만, 그래도 평소 관심 있던 타국의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은 충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이거지.”

고드윈이 메모 창을 슬쩍 아래로 내리자, 무슨 레시피처럼 순서대로 적혀있는 문장들이 나타났다. 다른 게 아니라 전날 강주완이 따로 말해준 팁이었다.

[일부러 살짝 허기가 진 상태로 출발해서.]

[먼저 사우나에 들러 몸 좀 노곤하게 풀어놓고.]

[천마안마로 내려가서 안마를 쫙! 받고 나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들 텐데.]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신기할 정도로 개운해져있는 동시에, 배가 텅 비어있는 것 같은 공복 상태가 될 거야.]

[그때 아무 고기집이나 들어가서 삼겹살 구워먹으면 그냥 미친 듯이 맛있을 거다. 진심으로.]

이상이 강주완이 적어준 내용의 전문(全文).

아직 체험을 안 해봤으니 감이 잘 안 잡히긴 하지만, 대충 읽어보기만 해도 왠지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그런 팁이었다.

‘슬슬 출발하면 되려나.’

비행 중에 먹었던 기내식도 이젠 다 내려갔고, 적당한 허기가 위장을 간지럽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방문을 나서는 고드윈.

일단은 계획의 첫 단추를 꿰기 위해, 그는 꼭대기 층에 있다는 사우나로 향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문제가 있었으니.

‘···왜 다 벗고 있는 거야?’

남탕으로 들어가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알몸으로 서서 노란색 음료를 들이키고 있는 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가 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당당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문화충격!

고드윈은 벙 찐 얼굴로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영국에는 목욕탕 같은 것이 없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서 스파 시설을 이용해본 경험 정도는 있다. 허나 거기선 모두 수영복을 입거나 타월을 걸치고 있었다.

‘어디선가 한국 사람들은 개방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던 거 같은데···’

이제 보니 다 거짓말이지 않은가?

선풍기 앞에서 팬티도 없이 시원하게 음료를 들이키고 있는 저 모습. 적어도 고드윈이 생각했을 때 인간이 저것보다 개방적인 모습이 될 수는 없었다.

···오케이.

이것이 이곳의 문화고, 이것이 이국의 맛이다.

이런 낯선 요소들이야말로 해외에 나와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니겠는가?

고드윈은 애써 납득한 듯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이고는··· 다시 객실로 돌아가, 방의 욕조에 온수를 받고 그곳에서 목욕을 했다.

* * *

“후우.”

객실에서 목욕을 마친 뒤, 고드윈은 다시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목욕을 하긴 했으니, 이젠 안마를 받으러 갈 차례였다.

‘혹시 첫 단추를 잘못 꿴 게 아닐까?’

허나 목욕을 하는 내내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고드윈이다. 간혹 멋대로 바꾼 작은 부분 하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때도 있으니까.

어쩌면 목욕탕에서의 그 개방감과 배덕감이 의외로 핵심적인 부분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허들이 높아···’

그래. 적어도 오늘은 이것이 최선이다.

고드윈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장 천마안마를 향해 걸었다.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카운터의 직원.

허나 고드윈과 눈을 마주치자, 그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옆에 있던 황 실장을 팔꿈치로 톡톡 건드렸다. 고드윈을 알아본 게 아니라, 단지 외국인의 등장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아휴.”

황 실장은 한참 서류정리에 집중하고 있던 중이었지만, 앞에서 걸어오는 외국인만 봐도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 직원을 뽑을 때는 영어회화 능력도 봐야하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황 실장은 직원을 슬쩍 옆으로 밀어내고서 대신 손님을 맞이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오, 안마를 받으러 왔는데요.”

“예약을 하셨다면 이름 좀 물어봐도 될까요?”

“음··· 에버튼으로 예약이 되어있을 겁니다.”

“에버튼 씨. 확인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황 실장은 뒤에 있는 옷장에서 사이즈에 맞는 옷을 잡다가···

‘음? 에버튼?’

뒤늦게 그 단어를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고드윈 벨스터.

에버튼 FC의 선수이자 팀의 대표 스트라이커.

평소 축구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고, 에버튼이라는 팀도 강주완 선수가 입단하고 나서 처음 알았을 정도지만··· 그래도 그의 이름과 얼굴 정도는 황 실장도 알고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갑자기 손님의 폭이 너무 넓어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황 실장은, 고드윈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저쪽에 보이는 탈의실로 가서,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시면 됩니다.”

“저쪽··· 아, 오케이.”

그러면서 고드윈에게 옷을 건네는 황 실장.

고드윈은 그에게 받은 옷을 받고 좀 걸어가다가··· 뭔가 의문이 생겼는지, 다시 되돌아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다 벗은 상태에서 입어야 합니까?”

“예? ···아뇨?”

방금 전 목욕탕에서 봤던 모습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던 고드윈. 그런 그의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황 실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거야?”

휴게실의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있던 강태한.

그런 그에게 최성현이 다가오더니, 그렇게 묻고는 책의 제목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영어단어책.”

“···엑, 진짜네.”

강태한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제목을 보여주자, 최성현이 질색을 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까놓고 말해 영어는 학창시절에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갑자기 왜 그런 건 읽고 있어?”

“나도 공부는 해야지.”

그 말에 강태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대략 2주 정도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이렇게 틈틈이 단어를 외우고 집에 돌아가서도 회화 관련 강의를 듣고 있는 강태한이다.

“앞으로 필요해질 것 같아서.”

계기는 그때쯤 찾아왔었던 외국 손님이었다.

여의도 근처 회사로 장기 출장을 나왔다가 추천을 받고 찾아왔던 모양. 강태한은 원래 학창시절에 영어를 좀 하는 편이었지만··· 무림에 다녀온 이후로는 전부 다 잊어버린 상황이었다.

물론 딱히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서 파악할 수 있고, 안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실제로 그 손님도 가게를 나설 때는 상당히 만족한 반응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만족의 문제다.

직업정신을 떠나 손님이 하는 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강태한은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배워놨던 기억들이 남아있는지, 학습의 효율과 진도는 빠르게 나가는 편이었다.

“아··· 이러면 안 되지.”

한편, 그런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이마에 손을 얹으며 탄식을 터트렸다.

“뭐가?”

“사장이 이렇게 성실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의 억지스러운 투정에 강태한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직원들의 모범이 되는 거지, 뭐.”

“···그래. 그 말이 맞지.”

그 모범이라는 것이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효과임에는 틀림이 없었기에, 할 말이 없는 최성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일어나야겠네.”

그러던 중, 강태한은 단어 책을 구석에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미리 타이밍을 맞춰놓기라도 한 것처럼 황 실장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손님이 도착했음을 알려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매번 신기하단 말이지.’

딱히 시계를 보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앉아 있다가 손님이 도착할 때에 딱 맞춰서 일어난다.

‘엄청나게 촉이 좋은 건가.’

대충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목을 긁적이던 최성현은, 문득 시야에 들어온 영어단어 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에이, 꼴도 보기 싫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최성현은 단어 책을 집어 들고는 대충이라도 훑어보기 시작했다.

* * *

“흐음···”

한편, 방으로 들어간 강태한은 흥미로워 하는 표정으로 침음을 삼키고 있었다.

‘외국인이로군.’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고드윈 벨스터.

강태한은 황 실장보다도 축구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외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했다.

언제나 실전은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

그동안 연습한 영어회화를 활용해볼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아픈 곳은 있나?”

계기가 계기였던 만큼, 안마에서 사용할 법한 단어와 문장들을 중심으로 연습한 강태한이다. 그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 허리랑 다리. 이 두 곳이 항상 뻐근합니다.”

발음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알아듣기 힘든 정도는 아니다. 고드윈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허리와 양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볍게 겉모습을 살펴보는 강태한.

직접 내부에서부터 기감으로 살펴보는 것보단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적지만, 그래도 대강적인 내용은 파악할 수 있다.

“흐음.”

그의 몸 상태를 살피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기억을 더듬던 강태한은··· 이내 강주완의 신체와 꽤나 비슷한 느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혹시 축구선수인가?”

“오,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신기하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과장된 리액션을 보이는 고드윈. 그런 그에게 강태한은 옅은 미소를 흘리며, 침대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일단 엎드리게. 한 번 살펴보지.”

“오케이.”

고드윈은 군말 없이 등을 보이고 엎드렸다.

내심 기대가 되는 느낌. 허나 강태한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고드윈은 이미 기대를 하고 있었음에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와우, 이 느낌은··· 포스(Force)?’

그저 손을 슬쩍 올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주춧돌이라도 올려놓은 것처럼 고정감이 느껴진다.

거기에다 따스한 뭔가가 몸 안에서 살살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 그 느낌에, 고드윈은 자기도 모르게 어느 SF영화에서 봤던 신비로운 힘을 떠올렸다.

“오우···”

안락한 느낌과 함께 서서히 풀어지는 근육.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따뜻한 온기.

그 신비로우면서도 편안한 기분에, 고드윈은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흐음.”

한편, 그의 상태를 확인하던 강태한은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며 등에 올렸던 손을 떼어냈다.

“어, 벌써 끝입니까?”

내심 그 포스의 힘에 몰입하고 있었던 탓일까, 고드윈이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지.”

그 말에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는 강태한.

그러면서, 그는 방금 그의 몸에서 찾아낸 의문점 하나를 넌지시 입에 담았다.

“근데 혹시,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한 적이 있나?”

“···예?”

“높은 데서 떨어졌다든가, 차에 치였다든가··· 그런 물리적인 사고 말이야.”

그 말에 고드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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