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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43화 (43/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43화>

‘뭐 얼추 잘하긴 하네···’

그렇게 이십 분 정도를 달렸을까.

강호연의 걱정과 달리, 강태한의 운전솜씨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단순히 속도와 핸들링 감각만 놓고 말하는 게 아니라, 주변 자동차들이 지금 어디에 있고 뭘 하려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차선 변경도 스무스하게 알아서 잘 하고, 무엇보다 무리한 시도가 없다.

차폭감은 또 얼마나 귀신같은지, 좀처럼 한 쪽으로 쏠리는 일이 없다.

괜한 걱정이 앞섰던 건지, 아니면 그새 인정을 하게 된 건지.

강호연은 아까보다 비교적 편안해진 얼굴로 주위 풍경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생소하게 느껴지는 풍경.

저번에 골프장에 갔을 때도 느꼈던 내용이지만, 동네를 벗어나 이렇게 멀리 나와 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달렸을까.

“아버지, 혹시 시장하진 않으세요?”

휴게소까지 1km가 남았다는 간판을 슬쩍 보고는, 강태한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음··· 출출하긴 하네. 휴게소 좀 들렀다 갈까?”

“좋죠.”

강태한은 살짝 속도를 줄이고는 곧바로 휴게소로 빠져나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사이에 두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아버지.”

강태한이 주문한 음식은 유부우동.

크게 한 젓가락을 집어 올리자, 도톰한 우동 면과 함께 유부조각들이 함께 올라왔다.

강태한은 면이 식도록 살짝 뜸을 들였다가, 집어든 면발 그대로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후루룩, 하는 소리와 함께 단숨에 들어가는 면발.

굵직한 우동 면발들이 부드럽게 씹히고, 그 사이사이로 유부조각들이 씹히는데···

유부가 머금고 있던 기름기와 우동국물이 입 안에 배어나오면서 꽤나 절묘한 맛의 균형을 잡아낸다.

물론 그래봤자 휴게소 우동하면 딱 떠오르는 전형적인 그 맛 자체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구미를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강태한은 금방 한 그릇을 비우고, 국물까지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얼추 식사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문득 얼마 전에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오른 강호연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너 그때 그 아가씨랑은 어떻게 됐냐?”

“네? 아가씨요?”

누굴 말씀하시는 걸까.

그 말에 순간 강태한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유세아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녀를 본 적은 없었으니, 그녀를 언급한 것일 리는 없을 듯했다.

“그 왜, 있잖아. 골프 연습장에서 너랑 같이 있었던 아가씨. 채, 채··· 이름이 뭐였더라?”

“아, 은비요?”

“그래, 맞아. 채은비 씨랑은 어떻게 됐어?”

기억을 더듬고 있던 강호연이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을 보채듯 한 번 더 물었다.

“어떻게 되긴요. 안마 받으러 오라고 한 다음에 불편한 곳 좀 한 번 봐줬죠.”

“···그리고?”

“뭐 더 있나? 같이 밥 먹고 헤어졌는데요.”

강태한의 목소리는 친구와 밥 한 끼 먹고 헤어졌다고 말하는 정도로 무덤덤했다.

그 반응에 강호연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앉았다.

“···왜. 잘해보지.”

“제가요? 은비랑요?”

“그래.”

강태한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 그게 왜 그렇게 되나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면 제가 골프연습장에서 은비랑 어떻게 해보려고 말 건 것처럼 보이잖아요.”

···아니었나?

그 당시 제3자가 보기에는 누가 봐도 그런 그림이었지만, 강태한의 표정이 꽤나 억울해보였기에 강호연은 굳이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은비는··· 여러모로 도와주고 싶은 동생이죠. 귀엽기도 하고, 이번에 많이 친해지기도 했고.”

“음. 그러냐.”

보아하니 뭔가 인연이 맺어진 것 같긴 한데, 본인이 기대했던 그런 방향은 아닌 모양이다.

뭐 사람 관계라는 게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느낌.

강호연은 흥이 떨어졌는지 괜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어, 아버지. 잠시 카톡 좀 볼게요.”

“편한 대로 해라.”

그러던 도중 주머니 속에서 울린 카톡 알림.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유세아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태한 씨, 혹시 어제 무슨 일 없으셨나요?]

갑자기 뭔 이야기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강태한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저녁 먹고 평소처럼 집에 가서 잤죠. 왜요?]

[다른 게 아니고 어제 사고가 크게 났다고 하던데, 그게 태한 씨 일하는 곳이랑 동네가 같아서 혹시 별 일은 없나 해서요.]

약간 긴 텀을 두고 돌아온 답장.

딱히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걱정해줬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다.

강태한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알아서 잘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을 조금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하던 녀석이었다.

카톡을 보내는 강태한의 모습을 보며, 강호연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였다.

* * *

개강(開講).

단어 자체는 말 그대로 강의가 시작된다는 뜻이지만, 대학생들에게는 휴식의 종말과 학업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방학이 끝났다는 아쉬움도 짙게 남아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학기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고 있는, 그런 묘한 분위기.

덕분에 개강 후 한동안은 캠퍼스 전체가 조금 뒤숭숭한 듯 하면서도 활기찬, 그런 모순된 분위기를 띄기 마련이지만···

이미 캠퍼스 생활에서 닳고 닳은 4학년들만큼은 그런 흐름에서 분리되어 독보적으로 칙칙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 최성현이 앉아있는 강의실은 그런 분위기의  정수를 담아낸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4학년들만 잔뜩 모여 있었으니까.

“···뭐야, 휴학 연장한다더니. 너도 복학했어?”

“그렇지 뭐. 졸업은 해야 되니까···”

“계약직한다고 했던 건 어때?”

“이력서 한 줄 건지고 끝났지 뭐.”

가끔 가다 오가는 대화조차도 지극히 현실적!

이곳에서 캠퍼스의 낭만 같은 건 개풀 뜯어먹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 광경을 흘깃 지켜보고 있던 최성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한이가 부럽다.’

본래는 같이 듣기로 했던 수업.

원래대로라면 최성현의 옆자리에는 강태한이 앉아있어야 했지만, 그는 지금 다른 곳에 가있었다.

끼이익.

그때 조용히 열리는 강의실 앞문.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교수님이 들어오자, 그나마 이야기가 오가던 학생들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출석하겠습니다. 강나연.”

“네.”

“강민수.”

“네.”

“강태한. ···강태한? 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교수는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뭔가를 떠올린 듯 다시 출석을 마저 부르기 시작했다.

“여러분, 방학 잘 보내셨습니까?”

강의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교수는 힘없이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4학년이니까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방학이었나 보네요. 제가 그래서 자격증 같은 건 미리미리 따두라고, 1학년 때부터 누누이 말씀을 드리는 건데.”

교수는 출석부를 덮고 강단의 탁상에 몸을 기댔다.

“얼마 전에 한하 호크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여기 학생 중에 한 명이 꼭 좀 필요한데, 출결 문제를 걱정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오오···”

“누구야?”

한하 호크스라고 하면 누구나 알고 있는 프로야구구단이다.

물론 연패를 잘하는 걸로도 유명하지만···

어쨌거나, 자기가 들어본 스포츠팀의 이름이 나오니 학생들의 관심이 단숨에 쏠렸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런 거 걱정하지 말라고. 현장에서 직접 하는 게 강의실에서 강의 듣는 것보다 배울 게 더 많은 법이니까요.”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맞장구를 쳤다.

왠지 흐름상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첫날이기도 하니 강의는 다음 주부터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려면 일단 이론부터 익혀야겠죠?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찌 마음대로 되겠는가?

교수가 마우스를 딸칵거리고 버튼을 누르자, 빔 프로젝터가 켜지며 하얀 스크린이 내려왔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입을 쩍 벌리거나 얼굴을 감싸 쥐는 등,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본인의 처참한 심정을 무음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첫 날부터 수업이라니 실화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그 소소한 비극 속에서, 최성현은 진심으로 강태한이 부럽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조수로라도 간다고 할 걸.’

강태한이라면 해줬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

최성현은 군소리 없이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기 시작했다.

* * *

“아이고, 코치님. 무슨 일로 부르셨답니까.”

한하의 3루수를 맡고 있는 김태평.

코치의 호출을 받고 실내로 들어온 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김태평이. 별 일은 아니고. 여기서 땀 좀 식히다가 안마 좀 받고 컨디션 관리하라고.”

“···벌써요? 저 한참 파트훈련하던 중이었는데요.”

김태평이 의아한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물론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컨디션 관리하는 시간은 항상 주어지지만, 그건 기본훈련과 파트훈련이 끝나고 난 뒤에 하는 것이다.

“혹시 제 컨디션이 안 좋아보였다던가?”

“에이. 그런 일이었으면 아까 미팅 때 내가 말하거나 네가 먼저 나한테 말했겠지. 그런 건 아니고.”

장 코치가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이번에 감독님이 따로 부르신 안마사 선생님이 계셔서, 감독님이 지명한 인원들은 차례대로 안마 받고 푹 쉰 다음에 오늘 경기 들여보내라고 하셨어.”

“그래요? 음··· 안마사 선생님이라.”

뭔가 관련된 기억이 날듯 말듯한 느낌이다.

김태평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머리를 만지다, 손가락을 튕겼다.

“아, 혹시 태준이 어깨 고쳐주셨다는 분?”

“맞아. 감독님이 뭐 직접 가서 모셔왔다나.”

“하이고, 참. 우리 오 감독님은 귀가 참 얇으시다니까. 그거 척 봐도 태준이가 과장을 좀 세게 쳐놓은 거 같던데.”

최태준의 환상적인 안마경험담은 아마 구단의 모든 선수들과 코치진이 다 들어봤을 것이다.

그 정도로 기회만 닿으면 그 얘기를 꺼내놨던 것이다.

하지만 최태준의 경험담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1할도 채 되지 않았다.

말이 되는가?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이 찌릿해지고, 쾌감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과장을 하더라도 좀 적당히 해야지,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주변에서는 단지 태준이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왔던 게 결실을 맺었고, 슬럼프를 벗어난 시기가 마침 저 때랑 겹쳐 그렇게 생각을 했나보구나, 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징크스가 생기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 날 청포도맛 사탕을 먹고 시합에 나갔더니 홈런을 쳤는데, 다음 날도 청포도맛 사탕을 먹으니 또 홈런이 쳐지더라.

약간 이런 느낌인 것이다.

“우리 감독님이 귀가 얇긴 하지···”

그 부분은 부정을 하기 힘들었는지 장 코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른 거 같다? 일단 감독님이 직접 가서 받아보신 다음 결정한 거고, 그리고··· 광호가 가장 먼저 받았는데, 반응이 다르더라고.”

“···광호 형이요?”

“응. 막 끙끙 앓다가, 탄성을 터트리고, 다시 비명을 지르고 하던데?”

이광호.

그는 한하의 포수이자 현재 선수들 사이에서 큰형 뻘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

김태평으로서는 그런 그가 끙끙 앓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어쨌거나, 감독님 지시니까 가서 받아보라고.”

“일단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너희 휴게실로 가면 된다. 거기 침대 많잖아.”

김태평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그리 믿음은 가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마 정도는 그 전에도 받아본 적이 꽤 있었던 것이다.

받을 땐 시원하지만 눈에 띄는 효과를 본 적은 딱히 없었고, 그 중 한 번은 날개 뼈 쪽에 지압을 너무 세게 받았는지 계속 아려서, 결국 다음 날 경기에서 빠져야 했던 적도 있었다.

“뭐 직접 받아보시고 데려왔다니··· 음?”

이제 휴게실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안쪽에서 문이 열리더니, 한 중년의 선수가 밖으로 나왔다.

아까 코치와의 대화에서 언급됐었던 이광호 선수였다.

“아, 태평이구나. 너도 안마 받으러 왔어?”

“예? 예. 근데···”

김태평은 가만히 선 채로 이광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곧이어 이상하다는 듯 그의 고개가 왼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형은 그새 회춘이라도 했습니까?”

윤기가 흐르는 얼굴피부에 왠지 더 넓어진 듯한 어깨,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랑 달리 뭔가 상냥해진 목소리···

이광호를 쳐다보던 김태평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비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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