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3화>
“야, 성현아! 잠깐 좀 도와줄 수 있냐?”
“무슨 일인데요?”
“빨래가 너무 쌓이기 전에 좀 처리하려고.”
바구니를 나르던 아저씨가 최성현에게 말했다.
오늘따라 찜질방에 손님이 많다더니 빨랫감도 밀리는 모양.
최성현은 군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들 모아서 세탁기 돌리고, 건조기 돌린 것들도 정리해야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나?”
“물론이죠, 아저씨. 뭐 별거라고.”
나이차가 꽤 있는데도 최성현은 붙임성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미 양손에 세탁바구니를 들고 세탁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오기로 했던 놈이 빵꾸를 내가지고.”
“에이, 괜찮다니까요.”
최성현은 일단 안마사로서 일하고 있었지만, 아르바이트인만큼 그의 순서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때문에 이런 일이 비는 시간에는 자잘한 일거리들을 돕고는 했다.
원칙대로라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도 상관없지만··· 일터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었으니까.
“읏차. 빨래 돌릴 건 이게 마지막이에요?”
“그런가보다. 확실히 손 하나가 느니 편하구나.”
게다가 최성현은 붙임성뿐만 아니라 일하는 요령까지 좋았다.
순식간에 세탁물을 정리한 둘은 이제 다음 일거리를 위해 건조기로 향했다.
“잉? 비어있는데요?”
“누가 비웠지?”
그런데 건조기가 텅 비어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니, 이미 누가 내용물을 꺼내 옷과 수건들을 개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 하니 최성현의 소개로 오게 된 강태한.
딱히 불린 건 아니었지만, 눈치껏 최성현의 뒤를 따라와 일을 돕는 중이었다.
‘받는 삯만큼은 일해야겠지.’
안 그래도 가만히만 있는 건 성미에 안 맞았다.
그게 누군가의 추천으로 맡게 된 일이라면 더더욱.
강태한은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헌데,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탁.
옷을 살짝 터니 다리미로 다린 듯 반듯해지고.
툭.
중심을 손날로 가볍게 치니 곱게 반으로 접힌다.
끝으로 박수를 치듯 양손으로 접으니, 방금 건조되어 잔뜩 구겨졌던 옷과 수건들이 마치 새 옷처럼 개어지는 것이 아닌가.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략 2초.
얼핏 무심하게까지 보이는 가벼운 손놀림인데, 잔뜩 쌓여있던 빨랫감들이 차곡차곡 정리되고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아직 천마라는 이름표가 달리기 전, 예전의 인연을 통해 한 문파에 잠시 몸을 숨겼을 때의 일이었다.
‘2년 동안 주구장창 잡일만 했었지.’
그땐 무공도 나름 경지에 올랐고 명성도 좀 퍼졌을 때였지만, 몸을 숨길 때의 신분은 입문 희망자에 불과했기에 대접은 말 그대로 막내 중의 막내였다.
바닥 쓸기, 마루 닦기, 밥하기, 빨래하기.
수행이라는 명분으로 백여 명의 뒷바라지를 시키는 꼴이었는데, 덕분에 그곳에 머물렀던 2년 동안 온갖 집안일들을 숙달하게 되었다.
지금의 손놀림 또한 그 때 익힌 것.
빨래개기의 묘리에 닿은, 일종의 초식이라고 할까.
허드렛일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몸으로 깨닫게 된 생활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성현아··· 네 친구가 일머리가 좀 있다고 했었지?”
“···그랬죠?”
“좀 있는 수준이 아닌데?”
그걸 지켜보는 두 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줍지않게 거들면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났을까.
“뭐야, 언제 왔냐?”
쌓여있던 빨랫감들은 전부 말끔하게 개어져 있었고, 강태한은 마지막 수건 한 장을 개어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바빠 보여서 좀 거들었는데··· 괜한 오지랖이 아니었으면 하네요. 이렇게 하는 거 맞죠?”
“오, 오지랖은 무슨! 아냐, 아냐.”
“야 태한아. 너 뭐야 임마! 군대에서 뭐 빨래병이라도 하다가 왔냐?”
그제야 두 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확실히 호들갑을 떨만한 광경이긴 했다.
“미안해 학생. 좀 거들었어야 하는데, 일을 하도 잘해서 멍하니 보고 있었지 뭐야. 생활의 달인이라도 나가야겠는데?”
“무얼. 과찬이구··· 아니, 과찬이세요.”
강태한은 습관처럼 튀어나갈 뻔한 반말을 삼켰다.
* * *
셋은 정리된 옷과 수건들을 밀차에 실었다.
얼마나 잘 개놨는지 옮겨 실어도 각이 살아 있을 정도였다.
“난 이것들 좀 옮기고 마무리하러 갈게.”
“고생하셨어요, 아저씨.”
“뭘, 너희가 고생했지. 이따가 마실 거라도 사마!”
그는 밀차를 밀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일도 끝났으니 강태한과 최성현 또한 다시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윽, 갑자기 배가 아프네.”
“왜 그래?”
“몰라. 배가 좀··· 안 되겠다. 먼저 들어가.”
최성현은 배를 붙잡고 발걸음을 돌렸다.
화장실이 있는 방향이었다.
‘예전부터 배가 약하더니 한결 같구만··· 아니, 원래 그대로인 게 정상인가.’
육십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물론 안마사가 허용된 걸로 보아 뭔가 달라지긴 한 것 같지만··· 적어도 시간은 그 때 그대로였다.
‘나도 젊어져야 한다는 뜻이지.’
지금 자신의 나이는 기껏해야 이십대 중반.
천마였던 팔십대의 정신은, 시대에 맞지 않을 뿐더러 이 육체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말투는 얼추 되돌아온 것 같은데··· 음?”
“어! 왔구나! 그··· 이름이 뭐였지?”
대기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황 실장이 그를 반겼다.
뭔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태한입니다.”
“그래! 태한 씨. 맞아, 태한 씨였지.”
황 실장은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혹시 성현이는 못봤어?”
“성현이는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에 갔는데요.”
“아, 자식. 타이밍 참···”
황 실장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 한동안 강태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혹시··· 전에 안마일 해본 적 있어요?”
“으음···”
범주를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굳이 따져보면 없지는 않다.
운기조식을 도와줬다거나, 기혈이 뒤틀리는 걸 잡아줬다거나··· 그런 일들이 드문드문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해봤습니다.”
“어느 정도라···”
그 대답에 황 실장은 입가를 쓸었다.
애매한 답이긴 했지만, 오히려 잘할 수 있다, 경험도 많다는 식으로 말했다면 도리어 불안했을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신입만큼 불안한 것도 없으니까.
‘성현이가 자기만 믿으라고 하긴 했었는데···’
이번 손님은 완전히 처음 찾아온 사람.
어느 가게가 안 그러겠냐만, 안마원은 특히 첫인상이 중요하다.
적지 않은 금액에 시간까지 들기에 어중간한 곳은 아예 발길이 끊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실력이 보장된 사람을 내보내고 싶은 것이 실장의 마음이었지만···
‘뭐 자격증도 있으니 나름 실력이 있겠지.’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을 내보내는 게 영 불안하긴 했지만, 어차피 뽑아놓은 이상 일을 시키지 않으면 손해다.
황 실장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태한 씨가 손님 좀 받아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처음에 설명 들었었지? 그대로 준비하고 나오면 돼. 밖에도 그렇게 전달해둘 테니까.”
황 실장은 마지막으로 강태한의 얼굴을 슬쩍 살피고는 밖으로 나섰다.
“어디 그럼···”
혼자 남은 강태한은 가볍게 복장을 살폈다.
준비를 하라고 하긴 했지만,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냥 최소한의 복장정리 정도만 필요할 뿐.
“가볼까.”
처음 맡게 된 일이다.
친우의 추천으로 들어온 것이기도 하고, 애당초 돈이 필요하기도 했으니 되도록 성과는 보여야할 터.
강태한은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밖으로 나섰다.
‘사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긴 한데···’
자격증을 딸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은 있다.
해부학도 익히고, 원론도 배우고, 이곳저곳 실습도 다니고··· 허나 예전에 그랬었다는 것만 추억처럼 기억이 날뿐,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기억이 마모되어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여차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강태한이 도착한 곳은 5번방.
방이라고 해도 안마용 침대들을 쭈욱 놓고 칸막이를 세워놓은 게 전부였지만, 간격이 넉넉하고 나름 꾸며놓은 게 꽤 봐줄만한 외관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선 강태한이 인사를 건네자, 이미 침대에 고개를 박고 누워있던 남우현 대리가 얼굴을 들고 마주 인사를 건넸다.
“어느 쪽이 불편하신지···”
“음··· 굳이 뽑자면 허리 쪽이랑, 그리고···”
가볍게 남우현의 몸을 훑어보던 강태한.
그의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허리의 균형이 무너졌군. 허리가 무너지니 척추에도 문제가 생겼고, 혈류도 순활하지 않은 것이··· 맑은 정신으로 있어본 게 꽤 오래전 일이겠구나.”
“예? 어··· 예. 그렇네요.”
순간 바뀐 강태한의 말투에 당황했지만, 하나같이 맞는 말이었다.
남우현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대답했다.
“보아하니 술이 안 받는 체질인데 자주 마시고··· 이건 겉에만 멀쩡하지 속은 성하질 않군. 몸은 피곤한데 숙면도 취할 수도 없겠고. 그렇지 않은가?”
“예··· 예. 맞습니다.”
···내가 점집을 왔었나?
저도 모르게 기억을 돌이켜보는 남우현 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