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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화 (2/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화>

“저, 손님. 잔액이 부족하다는데···”

“참. 그랬었지.”

강태한은 머쓱하게 카드를 받아들고 지갑을 뒤적였다.

다행히 현금이 좀 있었기에,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계산대 앞으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밖으로 나온 강태한.

그가 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손바닥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운 500ml 콜라 한 병이었다.

“크흐으! 좋구나, 좋아!”

곧바로 한 모금 들이키자, 짜릿한 감각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마치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현대의 삶을 일깨워주는 듯한 감각이었다.

“다행히 생각보다 낯설진 않군.”

무림의 세계에서 살았던 세월이 어언 육십 년.

그동안 원래 세상에 관한 기억은 사실상 잊고 지냈다고 해도 무방했지만, 그래도 막상 밖으로 나와 보니 대부분의 기억들은 금방 다시 떠올랐다.

‘괜히 걱정했어.’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행여 적응을 못하진 않을까, 길도 못 찾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기우였다.

그리운 기시감은 느껴져도 어색하거나 낯선 느낌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하긴, 6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여긴 조금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조금 긴 꿈을 꾸고 깨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지하철로 가는 게 빠르긴 하겠지만···’

강태한은 시간을 확인했다.

최성현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진 꽤 여유가 있었지만, 오랜만에 길거리라도 둘러볼 겸 일찍 밖으로 나온 참이다.

강태한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니.’

강태한은 적응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그는 최성현이 카톡으로 보낸 위치를 확인하며 길을 더듬었다.

최성현이 찍어준 찜질방은 대충 검색만 해도 첫 페이지에 나올 정도로 나름 규모가 큰 곳이었다.

안에 꽤 규모가 있는 안마샵이 있다는데, 거기서 일손을 구하는 것이리라.

물론 자신과 최성현은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었지만, 자격증만 있으면 자격은 충분하다는 모양이었다.

‘자격증은 뭐든 따두면 언젠가 도움이 된다고 했지.’

그 말대로인 상황이었다.

막말로 60년 전 따둔 자격증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정말로 약한 몸이군.’

강태한은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 겨우 칠천 보쯤 걸었을 뿐인데, 종아리가 살살 아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단전의 내공은 커녕 신체의 단련도 어설프게 되어있는 탓이다.

경공술 같은 건 어림도 없고, 어지간한 삼류보법조차 제대로 쓸 수 없어 기본원리를 조금씩 활용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수십 개의 비급을 꿰뚫고 있다한들 무용하구나.’

한때 천마라 불렸던 만큼 무림에 존재하는 심법의 대부분을 익히고 터득했다.

허나 심법은 기를 받아들이고 내공으로 갈무리하는 방법.

당장 없는 내공을 어디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그마저도 근간이 되는 몸과 내공이 있어야 다룰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현대.

거리를 걸으며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역시나 무림에 비해 대기 중에 떠도는 기의 농도가 턱없이 옅고 탁하다.

애당초 심법의 효율이 극단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원래는 이 정도가 평균이겠지만···’

물론 이곳은 무림이 아니었으니 육체의 힘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

무림에 있었던 시절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허나 그래도 남자라면 제 한 몸 지킬 힘 정도는 있어야 당당히 걸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트럭 한 대 정도는 막아 세울 정도는 되어야 안심이 되리라.

“어디 터 좋은 산이라도 알아봐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나마 제대로 된 내공이라도 갖추는 데에 최소 20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릴 지도 모른다.

“어, 태한아! 왔냐!”

그때 앞쪽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다름 아닌 최성현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옛 기억 속 친우의 얼굴에, 강태한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실로 오랜만일세.”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포권···을 올렸다가, 뒤늦게 풀고 손을 흔들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림의 버릇이 튀어나갈 뻔했다.

“···실로 오랜만일세? 내가 무협 소설 좀 적당히 보랬지. 그놈의 컨셉은 언제쯤 빠지냐?”

“···그렇군.”

강태한의 눈꼬리가 씰룩였다.

지금 그의 몸에 밴 말투와 습관은 무림의 것.

현대로 돌아온 이상 다시 원래대로 고치는 것이 좋겠지만, 아무래도 영 어색한 느낌이었다.

‘우스운 상황이지.’

처음 무림의 세계에선 현대식 말투와 예법으로 이상한 놈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은 또 그 반대가 되었으니.

뭐, 천천히 고쳐 가면 되겠지.

강태한은 히죽 웃으며 다시 포권을 올렸다.

“본좌가 어제 무협 영화 한 편을 때렸느니라.”

“···컨셉 확고하네. 됐다. 네가 그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나마 말투만 따라하면 다행이지.”

최성현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고등학생 때부터 무협 좋아하기로 소문난 놈이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기적으로 저런 짓거리를 할 때가 있었다.

“근데 거기 가서도 그 지랄하면 안 된다?”

“장난이지. 근데, 오늘 가서 뭐하면 되는 거냐?”

강태한이 비교적 자연스러워진 말투로 물었다.

“카톡에서 말했던 게 전부인데? 우린 가서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안마쌤들 다 나가셨을 때만 손님 받으면 돼.”

전문 안마사들이 다 나가고, 일손이 없을 때 손님이 찾아오면 그 때 투입이 되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예비인력인 셈.

그냥 대기만 하고 있어도 최저시급이 나오는데, 일을 맡게 되면 수익의 일부가 성과금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그것도 꽤 짭짤하게.

“물론 대기하는 동안 눈치껏 잔심부름 좀 하긴 하는데, 그거 감안해도 개꿀이다. 원래 나만 꿀 빨려고 했는데, 실장님이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시더라고.”

최성현이 낄낄 웃으면서 앞장섰다.

어느 정도 걸으니 저 앞에 목적지가 나타났다.

주차장까지 포함되어있는 8층짜리 커다란 빌딩.

한참 멀리부터 보이는 큰 건물이 통째로 찜질방이었다.

“실장님! 저 왔어요!”

“오, 성현이냐? 일찍 왔네.”

뒤쪽의 직원 출입구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나름 친한 사이인 듯, 최성현이 먼저 손을 흔들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저 친구야?”

“예. 진짜 괜찮은 친구에요. 성실하고, 실력도 있고, 교수님 어깨도 주물러드린 녀석이라니까요?”

“그래···? 겉보기엔 조금 못 미더운데.”

실장이라 불린 남자가 곁눈질로 강태한을 살폈다.

눈치로 보아하니 첫 인상이 그리 마음에 들진 않은 모양이었다.

“에이. 진짜 잘한다니까요? 자격증도 한 번에 따고, 동기 중에 저만한 놈이 없어요.”

“성현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다른 놈들 제쳐두고 일단 써보기는 하겠는데···”

둘의 대화가 꽤 오래 이어진다.

이야기가 전부 들리진 않았지만, 대충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 거였나.’

일손이 모자라서 데려왔다고 하더니만, 사실은 최성현이 따로 부탁해서 마련한 자리인 모양이다.

강태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원래 저런 녀석이었지.’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잔정이 많고 남 걱정이 많은 놈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다.

아마 이것도 자기가 생활비가 떨어졌다는 말에 한 일일 것이다.

“야! 얘기 다 끝났다. 옷 갈아입고 일하러 가자.”

이야기를 마친 최성현이 싱글싱글 웃으며 돌아왔다.

“···알았다.”

“탕 가서 씻고 올까? 일찍 와서 시간 나는데.”

“좋네, 탕도 쓸 수 있고.”

강태한은 굳이 고맙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그저 언젠가 보답할 것을 다짐했을 뿐.

* * *

“으어어어···”

뻥.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자마자 식혜통의 뚜껑을 열더니, 바로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입 안에서 사각사각 씹히는 얼음.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는 동안, 그는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죽겠다, 죽겠어···”

남우현 대리.

대리라고는 하지만, 그냥 영업 나가서 무시 받지 말라고 달아준 직함일 뿐이지 대우는 일반 사원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면서 업무는 잔뜩 늘어나고···’

업무에 이어지는 업무와 또 다른 업무.

일 하나를 끝내면 일 두 개가 늘어있고, 업무 스케쥴을 확인하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다.

더군다나 그의 소속은 영업팀.

요새 술 문화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영업 쪽과는 아직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직장생활이 길어질수록 몸만 축나는 기분이다.

‘머리통만이라도 새로 갈아 끼우고 싶다.’

남대리는 피로에 찌들어 멍한 머리를 감싸 쥐며 생각했다.

옛날에는 이틀 밤을 새워도 쌩쌩했는데, 요샌 하루 종일 쉬어도 몸이 무겁다.

하루 종일 쉴 수 있냐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호빵맨처럼 대가리만 갈아 끼우면 얼마나 좋아.’

그나마 이렇게 출장 마치고 짬짬이 들리는 사우나가 삶의 낙이었건만··· 그것도 이젠 별 감흥이 없다.

탕에 몸 담글 때나 좀 좋지, 밖으로 나오면 금방 원상복귀다.

‘회사를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진짜··· 음?’

언제나의 결론에 도달하며 다시 식혜를 집어드는 순간, 문득 그의 눈에 입간판 하나가 보였다.

[ 스포츠 마사지 ]

[ A코스 : 피로회복집중 30분/60분 ]

[ B코스 : 피부탄력집중 20분/40분 ]

[ C코스······ ]

‘마사지라···’

그동안 사우나, 찜질방은 자주 다녔지만 거기서 마사지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뭔가 낯설기도 하고, 까놓고 말해 돈이 좀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피로에 찌들어있는 지금은 새로운 자극이 간절했다.

평소 관심도 주지 않았던 저런 간판에 눈길이 갈 정도로 말이다.

‘손님도 꽤 있나본데?’

보아하니 손님들이 꽤 들락거리는 모양.

그렇다면 실력이 아예 없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보자··· 삼십 분짜리 받고 회사로 가면 시간도 딱이겠네.’

남우현 대리는 조금 남아있던 식혜통을 마저 비우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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