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243화 (205/263)

거장 감독. 막장 드라마의 제왕. 천재 마케터.

“...나? 내가 제작을 맡으라고?”

“응. 너.”

놀라서 되묻는 한록과, 한록과는 다르게 아주 침착한 얼굴의 임감독. 임감독은 결코 장난을 치는 게 아니었다.

“형. 나 제작쪽 아냐. 영화 만들어 본 적도 없어. 내가 무슨 제작이야.”

“아니야. 있어. <마지막 공연>때 편집에도 참여하고 <식물> 동시 제작도 결정했잖아. <오징어 서바이벌> 대본 보고 영화로 만들자고 한 것도 너고. 이름만 안 들어간 거지, 제작자 역할 다 하고 있었어.”

임감독의 답에 한록은 말문이 막혔다. 임감독의 말처럼, 확실히 최근 한록은 제작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몇 가지 결정적 조언을 하는 것과 영화를 감독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나가는 것은 아예 다른 문제였다.

“나도 네가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 제작 맡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래도 납득이 안 가면 서감독님이랑 직접 전화 한 번 해봐.”

“그래. 그럴게.”

그렇게 한록은 서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지훈입니다.]

임감독은 잠깐 밖으로 나갔고, 몇 번의 신호음이 흐른 후 서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한록은 간단한 안부인사 후 서감독과 통화를 시작했다.

“감독님. 저는 영화 제작에 직접적으로 참여해본 적이 없습니다. 절대 감독님보다 좋은 제작자가 될 수 없어요.”

[당연히 그렇겠죠.]

한록의 말에 서감독이 시니컬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대단한 감독이고, 마찬가지로 대단한 제작자입니다. 한국에서 최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죠.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무덤덤한 목소리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말하는 서감독.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이팀장님이 저보다 좋은 제작자가 되실 겁니다.]

그러나 용건은 결국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에 필요한 건 한록이라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그 반대죠. 그래서 제대로 된 담당자를 찾아주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서감독은 일주일 전 쯤 전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에 여주인공 캐스팅 때문에 길게 회의한 것 기억하시죠.]

“네. 기억합니다.”

정확히 6일 전.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은 캐스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임감독이 생각하는 여주인공 이미지와 서감독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달랐고, 좀처럼 의견이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로 의견 생각해오고, 내일 다시 얘기합시다. 그럼 대화가 좀 되겠죠.’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서감독은 그 말을 하면서도 이 일이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서감독과 임감독의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캐스팅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한록아, 아니, 이팀장님. 이게 뭔가요?’

‘여주인공 후보 배우들입니다.’

한록이 바로 그 다음날 해결책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이 중 두분 다 동의하실만한 배우들이 몇 명 있습니다. 7페이지. 21페이지. 23페이지. 42페이지요. 나머지는 참고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거의 70페이지에 달하는 캐스팅 후보 파일들. 그 파일을 보고 서감독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록에게 물었다.

‘...이걸 하루만에 다 만든 겁니까?’

그리고 한록은 태연하게 답했다.

‘아뇨. 10년 동안 생각이 날 때마다 모아온 겁니다.’

그게 서감독이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10년동안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런 사람은 이한록 팀장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것 때문에 저한테 제작자를 맡기시는 겁니까?”

[정확히는 그 다음 때문이죠.]

-서감독은 한록이 말한 후보들을 살폈고, 그들은 놀랍게도 서감독과 임감독의 요구를 둘다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한록의 캐릭터 해석이 서감독과 임감독을 모두 납득시켰다는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열정.

‘이 사람으로 갑시다. 23페이지요.’

‘좋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날카로운 감각.

[제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죠.]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서감독의 말에 한록이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할 부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팀장님은 이 영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두고 누가 제작자를 하겠다는 겁니까.]

서감독의 말처럼, 정말 자신보다 이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해봐야죠.”

마침내 이어진 한록의 답. 그러나 한록의 큰 결심에도 서감독은 여전히 시니컬한 답을 돌려줄 뿐이었다.

[네. 잘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거기에는 작은 첨언이 하나 덧붙었다.

[이번 일로 제작에 익숙해지신다면, 다른 영화도 한번 맡아보시는게 좋겠군요.]

그러니까....

[다른 영화 말고, 제 영화 말입니다.]

‘나중엔 내 영화를 맡아줘야 한다’는 작은 욕심.

‘정말 영화밖에 모르시네.’

언제나 최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는 것 같은 남자, 서지훈. 그런 서감독의 귀여운 청탁에 한록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서감독에게 답했다.

“네,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정말로,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

감독. 임성우.

제작. 이한록.

<영화관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오프닝 맨 앞에 들어갈 자막. 그렇게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크레딧이 결정되었고 제작이 시작되었다.

“형. 영화관 말고 다른 장소는 최대한 줄이는 걸로 가자. 이건 영화에 대한 영화니까.”

“그래. 영화관 밖에서 진행되는 씬은 되도록 줄이자. 장소도 10곳 아래로 줄이고. 음, 그리고 영화 속 캐릭터가 정말 영화 속 인물이란게 느껴지면 좋겠는데...”

“후시 녹음 때 사운드를 입모양보다 약간 느리게 미는건 어때? 위화감이 들게.”

캐스팅. 장소 섭외. 편집 방향에 대한 논의. 한록은 임감독과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모든 부분을 논의하며 영화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전반작업이 모두 완료되었으며.

“팀장님. 벌써 퇴근하시는거예요?”

“아뇨.”

“그럼 가방은 왜...”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 촬영장으로 갑니다.”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장에 모인 수많은 스탭들과 배우들. 한록은 임감독의 곁에 서서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드디어 시작이었다. 그 오랜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설렘과 기쁨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록아.”

그리고,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옆을 돌아보니 임감독이 역시나 떨림을 감출수 없는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인 두 사람. 그 두 사람의 꿈이 현실이 되는 지금 이 순간.

“가자, 형.”

한록이 말했고, 임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레디...”

“액션!”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첫 시작이었다.

**

“...컷! 잠시 쉬었다 갑니다.”

저녁 7시. 오늘 촬영의 절반 정도가 진행된 시점. 그때 임독이 사람들에게 휴식을 알렸다. 그리고 모두가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간 사이 자신은 혼자 남아 촬영 콘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연기. 좋았다.’

‘캐스팅. 완벽했어. 모든 배우가 캐릭터에 딱 어울린다.’

‘시나리오랑 장면도 문제 없어. 수십 번이나 점검한 거니까.’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기록적인 첫 촬영. 촬영은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임감독의 머릿 속에 계속 파고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정말 이게 맞나?’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실수하고 있는게 아닌가?’

바로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었다.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무언가 잘못 된 것 같다. 무언가 바꿔야 할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다. 이 영화의 감독은 나니까. 오로지 나만이 답을 알고 있으니까.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생각으로 임감독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 그때 누군가가 임감독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형. 이대로 가자.”

한록이었다.

“배우. 연기. 촬영. 장면. 전부 우리가 생각한대로 나왔어. 이대로 계속 가면 돼.”

내가 감독이다.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 없다.

-그 생각은 틀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자신이 정말 아끼는 동생이자, 이 영화에 대한 비전을 함께 만들어온 사람. 이 영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제작자, 한록. 감독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의 등장에 임감독이 한록에게 물었다.

“맞아. 아무 문제 없어. 그런데 아무 이유도 없이 불안한 느낌이 들어. 연기가 문제인가? 디렉팅을 바꿔야 하나?”

한록에게 묻는 것만으로 걱정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게 아니야. 있어.”

한록이 임감독의 불안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바람소리가 너무 심해서 전체적으로 소리가 잘 안 들려. 그러니까 씬이 흐릿하게 느껴지는거야. 나도 느꼈어.”

‘씬이 흐릿하다.’ 한 마디로, 몰입도가 떨어진다. 한록은 임감독이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한록이 임감독에게 자신이 끼고 있던 헤드셋을 넘기며 말했다.

“형, 이걸로 다시 들어봐. 배경 사운드 빼고 배우들 대사만 딴 거야.”

한록에게 헤드셋을 넘겨받은 임감독. 한록이 넘겨준 헤드셋으로 다시 한번 씬을 확인하니 흐릿하던 씬에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몰입감이 생겨있었다.

“...이거야. 내가 생각하던 거.”

“그렇지. 사운드 보정 제대로 들어가면 되는 문제야. 디렉팅 바꾸지 마. 촬영 이대로 진행해야해.”

한록이 임감독의 불안에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임감독에게 지금 이 순간 해결책보다 더 필요한 말을 건넸다.

“잘하고 있어, 형.”

감독이 촬영이라는 바다에서 헤맬 때 그를 끌어올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제작자. 그리고 한록이 제작자로서 하는 말.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놀랍게도...

“응. 그런 것 같다.”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정말 이게 맞나?’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실수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 고민은 이제 필요없다.

왜냐면, 이 영화의 제작자가 ‘맞다’고 말해줬으니까.

임감독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촬영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외쳤다.

“촬영 다시 시작합니다!”

이제는 정말 아무 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

제작자로서 임감독이 길을 헤매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 한록.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 최경준. 최경준은 하정엽의 지시로 오늘 현장에 참여했다.

[이한록 팀장도 제작은 처음일테니까요. 본부장님이 가셔서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한록은 마케팅 전문가지, 제작자는 아니다.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할 거야.’

최경준 역시 한때는 하정엽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방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니 그 생각은 금새 바뀌었다.

“장비서. 돌아가지.”

“하지만 사장님이 계속 지켜보라고 말씀하셨-”

“그럴 필요 없네.”

최경준이 장비서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등을 돌렸다.

“더 지켜볼 필요 없어. 오히려 우려해야할 건 다른 쪽일지도 모르겠군.”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제작자로서의 첫 데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한록. 그리고 한록의 얼굴에 보이는 순수하고, 애정이 담긴 미소.

‘...정말 기쁜가 보군. 저렇게 웃을 줄도 알다니.’

그걸 보면서 느껴지는 생각은-

“이러다가 제작자로 전향할지도 모르겠어.”

이 멋진 제작자가 있는 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이었다.

**

<오징어 서바이벌>. 그리고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 CK ENM의 야심작인 두 영화가 제작되는 사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CK ENM 최경준본부장입니다. 재팬 프로덕션 PR 책임자와 미팅을 요청합니다.]

그간 최경준은 한록에게 모종의 부탁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네. CK ENM 김유선 주임입니다. 우리가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50%이상 점거하면 문제가 생긴다고요? 분명 파라마운트에서 그 이상으로 전광판을 가져간 걸 봤는데요?>

[어...미스킴. 확실한가요?]

<네. 여기...16년 9월이요. 협의회 쪽이야말로 규정을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닌가요? 다시 확인하시고 연락 부탁드립니다.>

유선은 빅6와 열심히 싸우며 광고 전광판을 사수했다.

[미스터 현. 지금 4개월 뒤 지면 광고를 미리 예약한 것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렇게 빨리는 안 돼요. 2달 후 정규 입찰에 응모하시기 바랍니다.]

<1면을 확정적으로 받고 싶어서요. 그간 저희가 ‘선데이타임즈’와 함께 해 온 인연이 있지 않습니까. 이 인연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하고요..>

[흠...긍정적으로 검토해보죠. 회의 후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거기에 언론들과 밀고당기기를 하는 현차장.

“유선씨. 뉴욕시 허가는 아직 기한 남았으니까 협의회랑 회의 먼저 끝내주세요. 현차장님은 미팅 나가셨으니까 오늘은 하대리님이 현차장님 대신 타임지랑 연락 진행해주시고요. 그리고 현차장님 돌아오시면 저한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을 제작하면서 그 모든 것을 관리하는 한록까지.

CK ENM의 모두가 열심히 뛰어다니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걸 알려줄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이한록 팀장님.]

“네, 감독님.”

[<오징어 서바이벌> 가편집본 완성되었습니다. 내려오시면 됩니다.]

바로 <오징어 서바이벌>의 제작이 거의 종료되었다는 것이었다.

한록은 서감독의 전화에 곧장 지하 1층 시사회실로 향했다. 그 곳에선 서감독이 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가편집본입니다. 편집 방향성 얘기해주시면 다시 다듬어보겠습니다.”

한록에게 가편집본을 보여주고 영화의 전반적인 검수를 맡기겠다는 서감독. <오징어 서바이벌>은 서감독의 ‘조언은 필요없다’라는 스탠스 때문에 제작자가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록에게 가편집본을 검수받는다. 사실상 서감독이 한록을 이 영화의 제작자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아직 끝도 아닌데요.”

서감독은 여전히 시니컬한 말투로 답하며 영화를 재생시켰다. 그렇게 한록은 최초의 관객이 되어 <오징어 서바이벌>을 관람하게 되었다.

-형!

-살려줘!

1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에 원래의 드라마보다 훨씬 압축된 스토리. 거기에 영화관이 줄 수 있는 위압감과, 스크린 속에 꽉 찬 여자아이 인형.

‘누구도 이 영화를 보고 재미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거다. 그 누구도. 심지어 그렇게 형을 무시하던 정감독도.’

한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속으로 감탄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오징어 서바이벌>의 시사회가 종료되었다.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는 한록과 그 옆에 앉은 서감독. 한록이 서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이번 <오징어 서바이벌>의 목표는 어떤 것이셨습니까.”

“관객 수요죠. 제 미장센. 시나리오. 연출은 이미 <수면>과 <마지막 공연>으로 모두 증명했습니다. 이제는 흥행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최고가 되겠다. 그건 서감독이 그간 만들어오던 영화가 아니라 <오징어 서바이벌>을 택한 이유를 잘 보여주는 말이었다.

“예술성이 좀 떨어져도, 스토리의 깊이가 없어도 좋습니다. 그저 모든 미국인이 내 영화를 보러왔으면 합니다. 너무 재밌어서 욕을 하더라도 볼 수 밖에 없는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감독의 그 계획은....

“그렇다면 성공하셨습니다. 감독님.”

아주 완벽하게 성공했다.

“감독님은 감독님이 하셔야 할 일을 다 끝내셨습니다.”

거장 감독이 막장 드라마 작가의 대본을 받아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음은 한록의 차례.

거장 감독. 막장 드라마의 제왕. 그리고 천재 마케터. 그들이 모인 영화,

“이제 제가 이 영화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오징어 서바이벌>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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