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94화 (175/263)

이제는 이겨볼 때가 됐다는 말입니다.

다짜고짜 ‘제안을 하나 하겠다’라는 말을 듣게 된 제롬. 제롬이 수화기 너머의 최대리에게 말했다.

[어떤 제안입니까?]

그에 대한 최대리의 답.

-[이번 일에 제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같은 질문을 받은 건 최경준 역시 마찬가지였고, 최경준 역시 비슷한 답을 했다.

-[AM씨어터에서 <수면>의 상영관을 늘리고 싶습니다.]

*

[...제안이요?]

[네. ]

그리고, 한록과 뉴욕 영화협동조합 제인의 통화.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제안을 하겠다고?’

한록의 말에 뉴욕 영화협동조합의 제인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영화인들을 대표하는 뉴욕 영화협동조합.

세계적인 감독, 배우, 제작자들이 속한 뉴욕 영화협동조합은 CK처럼 소규모 영화사들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뉴욕 영화협동조합은 사실상 미국의 소규모, 예술 영화들을 대표하는 조직이었다.

특히 지역별로 자체 영화관을 보유해서 불공정 계약을 당하거나, 아예 상영관을 잡지 못한 영화에 상영의 기회를 주고는 했다.

그리고 최근 CK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때문에 영화상영을 취소당하고 있었다.

‘빅터. CK에게 연락해볼까요?’

‘아니. 거긴 외국 회사잖아.’

‘조합 규정에 외국 회사는 안 된단 말은 없었는데요.’

‘그런 말은 없지. 하지만 우리가 외국 회사까지 신경써야겠어?’

‘그래도 <수면>은 너무 아까운-’

‘그만. 미팅이나 다녀와.’

제인은 상사와 CK에 대해 이미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한록이 할 말을 예상했다.

대규모 체인 영화관을 제외하면, 뉴욕 영화협동조합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영화관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록은 분명 뉴욕 영화협동조합에게 ‘상영관을 빌려달라’고 얘기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외국 영화에 내줄 자리는 없어.’

자신은 그 부탁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

[UP 씨어터에서 <수면>의 상영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때문에요. 그리고 이런 경우 뉴욕 영화협동조합에서 영화관을 대여해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 한록은 제인의 생각과 똑같은 말을 했다.

[네, CK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영화관 대여를 신청하시는 건가요? 그건 절차를 거쳐서...]

[아뇨.]

그리고-

[뉴욕 협동조합에게 좋은 기회를 주겠다는 겁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

미국과의 전화통화 전 진행된 CK의 회의.

“대체 어떤 방법이 있길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적으로 돌리자는 건가?”

최경준의 말에 한록이 자신이 생각한 마케팅을 말하기 시작했다.

영화관이 없는 상황에서 전례없는 흥행을 만들어야 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화관이 부족하다는 걸 마케팅 전략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지금의 환경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수면>을 개봉할 영화관이 단 하나도 없는 건 아닙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영화관들이 몇 있을 겁니다. 뉴욕 영화협동조합처럼 비영리 단체거나, AM씨어터처럼 유니버설 스튜디오 정도의 체급을 가진 회사들이요.”

“하지만 그런 곳을 다 모아도 200개도 안 될 거야. 200개 상영관에서 영화를 건다. 그건 거의 상영을 포기한단 수준이지.”

“아뇨. 200개도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한록은 최경준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수면>은 50개의 극장에서만 개봉할 겁니다. 그냥 아무 곳에서나 개봉하는 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최고의 극장들만 선별해서 개봉하는 걸로요. 극장의 컨디션이 어떤지, 이 극장이 얼마나 영화계에서 중요한 곳인지, 소규모 영화들을 개봉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지 등을 모두 고려할 겁니다. 그렇게 주 별로 하나의 극장에서만 개봉하는 겁니다.”

한록이 내놓은 방법은, 그러니까...

“영화관들은 영화를 선별해서 상영하죠. 영화관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아예 개봉이 불가능하기도 하고요.”

CK가 미국에서 겪은 일.

“그럼 우리도 영화관을 선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걸 그대로 돌려주자는 것이었다.

*

[...그러니까, CK에서 우리 AM씨어터의 영화관들을 평가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수면>의 수준에 맞는 영화관들에서만 상영을 하겠다.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묻는 AM씨어터의 플래닝 매니저, 루카스.

[이렇게 파격적인 제안이라. 이번에도 한의 마케팅입니까?]

그리고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제롬.

[우리가 CK에게 평가받아야할 이유가 뭐죠?]

[이 마케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거라 생각합니까.]

제롬과 루카스는 모두 CK의 제안에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 그들의 흥미는 끌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각자의 능력을 보여줄 때였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수면>은 최고의 상영관에서만 상영할 겁니다. 만약 AM씨어터의 영화관들이 선정되면 그 영화관은 해당 주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관이라는게 증명되는 것이죠.]

[그건 선정되었을 때의 얘기지 않습니까.]

[CK는 AM씨어터와 <시험>에서 좋은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제안에 응해주신다면, AM씨어터의 친절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은...]

[최소 10개 이상의 주에서 AM씨어터의 영화관을 선정하겠다는 겁니다.]

은밀한 계약을 제시하는 최경준.

[제롬. 영화관을 선정하는데 합류해 주세요. 우리는 제롬의 권위를 얻을 수 있고, 제롬의 회사는 소규모 영화사를 대표한다는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의 얘기입니다.]

[저와 한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당신이 노리던 최고의 직원들이요.]

제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최대리.

그리고...

[뉴욕 협동조합이 보유하고 있는 영화관들을 대여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영화관을 선발하는데 도움을 주실 것도 요청합니다.]

[...미스터 한. 그건 둘 다 우리의 업무가 아닙니다.]

[제인. 뉴욕 협동조합은 영화사들을 대표해서 영화관들과 싸워오는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죠.]

[...그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뭐죠?]

[이제는 이겨볼 때가 됐다는 말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회사를 이겨보자고 말하는 한록.

*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사람들은 영화관들이 어떤 식으로 불공정 계약을 맺어왔는지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지금 뉴욕 영화협동조합이 국회에 요청 중인 영화배급공정계약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프로젝트가 지금 진행중인 법안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란 말.

[여태 영화관들이 맺어온 불공정 계약 사례를 제공해주십시오. 그럼 그걸 선정과정에 반영하겠습니다.]

뉴욕협동조합 소속의 영화들의 복수를 해줄 것이란 말.

한록의 제안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제인은 끝없는 갈등에 빠졌다.

‘빅터가 절대 안 된다고 말했어.’

‘빅터만이 아니라 다른 조합원들도 반대할 거야.’

‘왜 외국영화가 이런 프로젝트를 주도하냐고 하겠지.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정면으로 싸우는 것도 너무 위험이 크고.’

한록의 매력적인 제안과, 외국영화에 대해 보수적인 뉴욕협동조합의 분위기.

‘거절해야 한다. ’

그 사이에서 제인의 마음은 거절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이제는 영화계의 균형이 바뀔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뉴욕영화협동조합의 영화관 평가가 충분한 신뢰를 얻게 된다면...]

[그럼 앞으로는 모든 영화관이 뉴욕영화협동조합의 눈치를 보게 될 거란 말입니다.]

소규모 영화사와 영화관간의 갑을 관계. 그 전통을 바꿔주겠다는 한록의 말.

그 말만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

[한. 내부 논의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인이 한록에게 말했다.

*

[회의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윤일. 잠시 기다려줬으면 합니다.]

[최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AM씨어터, 제롬, 그리고 제인의 대답.

CK직원들은 각자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고,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최대리님. 제롬한테서 연락 왔습니까?”

“아직이요.”

기다림.

“AM씨어터측에서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하네요. 안건이 상부로 올라갔대요.”

기다림.

[한. 조합원 투표에 안건을 올렸습니다.]

기다림.

“팀장님. 제롬이에요.”

그 긴 기다림 이후 걸려온 제롬의 전화.

[닉이 이 프로젝트를 마음에 들어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닉이 직접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세계 최고의 영화마케터, 닉 해리스의 참여를 알리는 소식이었다.

“닉? 닉 해리스 말이에요?”

“닉 해리스가 우리 프로젝트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그럼 제롬이랑 닉이 합류하는 건가요? 알렉산드로 감독도 합류하겠죠?”

“와, 씨. 이거 일이 생각보다 커지겠는데?”

스튜디오 B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것도, 제롬과 닉이 직접.

모두 그 소식에 흥분하고 있을 때, 한록은 소란에 휩쓸리지 않고 빠르게 어디론가 메일을 보냈다.

[닉 해리스와 스튜디오 B가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바로 AM씨어터와 뉴욕협동조합에게 보내는 메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회의 끝났습니다. AM씨어터도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AM씨어터는 바로 합류소식을 전해왔다. 닉 해리스의 참여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그리고 두시간 후.

[한. 안건이 통과됐어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자, 소규모 영화사들을 상징하는 뉴욕영화협동조합.

[우리도 참여합니다.]

그 곳이 마지막으로 참여를 알려왔다.

*

“제롬이랑, 닉 해리스랑, 알렉산드로 감독이랑. 거기에 뉴욕 영화협동조합까지? 전부 참여하겠다고 말했다고?”

“네. 이대로 외신에 자료 보내주세요.”

“허...그래. 이 정도면 기사는 백퍼센트 나가겠다. 일이 엄청 커졌네.”

한록의 말에 현차장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현차장의 얼굴에 담긴 것은 두려움보다는 설렘에 가까웠다.

-소규모 영화사들이 한 프로젝트를 위해 집결한다.

-자신들에게 갑질을 해온 거대 영화관을 응징하려는 집단들.

-그리고, 그 곳의 중심에 선 CK.

“이거 오랜만에 재밌어지겠네.”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싸움과, 오랜만에 맡는 도전자의 위치. 그 조건들이 현차장을 불타오르게 한 것이다.

CK가 벌인 싸움에 흥미를 가진 것은 현차장뿐만이 아니었다.

“최대리님. 미국에서 취재요청 들어왔어요.”

미국 영화계가 이 사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번에 CK에서 개봉하는 <수면>에 대한 안건입니다. 우리 세인트 씨어터에서도 5곳 정도는 상영관 후보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관들 역시 자신들에 대한 평가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팀장님. 안소니 고든이 광고 나레이션을 맡아주겠대요.”

거기에 뉴욕협동조합의 소속이자, 미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중 하나인 안소니 고든의 합류까지.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 게임의 승리를 보장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팀장님!”

어느날. 한록의 사무실로 달려온 유선. 유선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닉 해리스가 메일을 보냈어요!”

세계 최고의 마케터. 그리고 한록이 목표로 하는 사람.

그가 이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

“어떤 메일입니까?”

“<수면>의 마케팅 아이디어에요. 영화관 프로젝트랑 함께 진행하면 좋을 아이디어가 있대요.”

영화 마케팅 업계의 전설이자, 모든 마케터가 뛰어넘고 싶어하는 사람. 한록이 미국 진출을 결정하며 마음 속으로 정한 라이벌 닉 해리스.

그런 닉 해리스가 수면에 대한 아이디어를 보내왔다.

“지금 당장 회의 잡아주세요. 사람들이랑 얘기해봅시다.”

한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