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회사원이 선넘으면 생기는일-165화 (146/263)

명장면이 나올 순간은 어디인가.

“도착지팀,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사회자의 말에 <도착지>팀 중 몇 명이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도착지>의 감독입니다.”

우감독.

“<도착지>의 주인공 이연옥입니다.”

이연옥.

“<도착지>팀은 이렇게 두 분이...”

우감독. 이연옥. 무대에 올라온 둘을 바라보던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사람을 보고 기분좋게 말했다.

“오, 한 분이 더 올라오시는군요. 다들 아시는 분이죠?”

<도착지>의 무대를 채울 오늘의 마지막 사람. 바로-

“이한록 과장입니다.”

한록이었다.

*

일주일 전. <도착지>의 마지막 GV를 계획하던 한록. 한록이 유선에게 말했다.

‘우감독님. 이연옥 선생님. 이걸로는 부족해요.’

‘어...그런가요? 이연옥 선생님도 그렇고, 우감독님도 그렇고. 다들 인기 많으시잖아요.’

‘인기만으로는 부족해요. GV는 현장투표 잖아요. 최대리님은 분명 충격적인 장면을 가져올 거고, 현장 분위기를 바꿔버릴 거예요. 우리도 무대 위에서 제대로 된 임팩트를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

‘태우는 어때요?’

‘아뇨. 태우는 무대에 오르는 것도 아주 큰 용기를 내준 겁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엄청난 임팩트.

충격적인 장면.

단 한 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아주, 아주 매력적인 사람.

그 말에 유선이 한록을 보고 말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유선의 머리에 떠오른 한 사람.

‘과장님. 그게 누군지 아시잖아요.’

바로 한록이었다.

*

[이연옥 선생님 유튜브 진행자네요]

[인터뷰 잘 봤어요~]

[이 분 배우 맞죠??]

[ㄴㄴ CK직원]

[CK 채널 가보세요 이분 영상 많음!]

[아 ㅠㅠ우감독님 비하인드 스토리 정말 울면서 봤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은 한록의 등장을 꽤 반겨주었다. 한록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여러번 얼굴도장을 찍어둔 덕분이었다.

한록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윙크를 하는 송PD.

‘아무 문제 없다’ 라는 뜻이었다.

‘전부 준비됐다.’

무대에 올라 객석을 바라보는 한록. 객석은 아직도 <수면>의 파란 불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 <수면>과 서감독. 그 차례가 끝나고 <도착지>팀이 등장하자 관객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긴장이 사라져있었다.

너무나 강한 상대. 낯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판을 뒤집어야 한다.

이건, 바로...

‘시작이다.’

한록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우감독과 이연옥의 대화가 끝나고, 한록이 마이크를 들며 생각했다.

‘봐라.’

‘이게 내가 준비한 거다.’

‘나는 이한록이다.’

자신이 왜 이한록인지 보여주겠다고.

*

“사실 <도착지>면 챌린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오늘 이 자리에서 홍보모델을 발표한다면서요?”

“네. 가장 많은 댓글을 받은 게시글을 홍보모델로 선정하려 합니다.”

한록의 말에 객석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긴장감이 사라졌던 사람들에게 다시 흥미가 생긴 것이다.

“아, 역시. 다들 필살기를 준비해오셨군요. 어서 모델을 공개해주세요.”

“지금 바로 공개할 순 없죠. 5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새 사람들 앞에 나서는게 익숙해진 한록이 넉살좋게 말을 이었다. 한록이 신호를 보내자, 무대 뒤의 스크린에 인스타그램 화면이 띄워졌다.

“5위. <도착지>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올린 윤감독님의 글입니다. <삼일의 삶>의 감독이시죠.”

한록의 말에 하대리가 추억에 잠긴듯한 미소를 지었다.

“4위. 청각장애가 있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올린 한기백 학생입니다. CK에서 수술비를 전액 후원했습니다.”

이번엔 하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3위. 사업 실패로 인한 빚을 모두 갚고, 아들의 소원인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신 박정숙 선생님입니다. 이 글이 올라간 후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초대가 왔다고 하십니다.”

그 말에 고개를 숙이는 현차장. 부모로서 크게 공감이 된 것이었다.

“2위. 정장을 입는 멋진 직장에 취직하고 싶다고 하신 이순례 선생님입니다.”

작게 미소를 짓는 유선. 바로 이 게시물의 주인공이 유선의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위.”

이제 마지막 1위만 남은 상황.

“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사회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높은 댓글을 받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1위. 좋아요 30만개, 댓글 4천개.”

챌린지 기간동안 내내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자, 계속 뉴스로 언급이 나왔던 사람.

“<도착지>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이연옥 선생님입니다.”

그 말에 객석에 흐뭇한 미소가 번져갔다.

챌린지를 시작한 사람이자, <도착지>의 주인공. 그녀가 홍보모델을 한다.

모두가 바라던 완벽한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기대하던 아름다운 결말에 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시. 예상했던 결과지만, 그만큼 감동적이네요. 그럼 이연옥 선생님이 도착지 장학재단의 홍모모델이...”

“질문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객석에서 서감독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서감독의 갑작스러운 발언. 송PD가 그렇게 안 된다고 말하던 돌발상황이었다.

“그 결과. 언제까지 집계한 겁니까?”

서감독의 말을 듣는순간 송PD는 생각했다.

‘서감독이 무언가를 준비했다.’

‘<도착지>팀이 준비한 것들이 전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감독님!”

그리고 송PD가 외친 순간, 한록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한록은, 어쩐지...

“어제 저녁 12시까지입니다.”

웃고 있었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이.

*

“집계가 오늘까지라고 올라왔던 것 같은데요. 일찍 마감하셨군요.”

“2위와 1위의 격차가 너무 커서 일찍 마감했습니다. 오늘까지 포함해도 순위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게 문제가 됩니까?”

“문제가 되죠. 지금 1등은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 말에 사회자가 송PD를 바라보았다.

송PD는 엄청나게 갈등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최대리와, 칼을 갈고 있는 듯한 얼굴의 서감독.

그들이 준비한 마지막 한 방이 한록의 모든 걸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이대로 모든 게 망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록의 표정이 너무 태연했다.

한록을 바라보는 송PD. 그때 한록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진행해요.]

지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

과연 이한록이 이 모든 걸 예상했을 것인가.

과연 이한록이 이걸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한록은 대체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인가.

관객들. 하정엽, 하태준. 그리고 송PD에게 생긴 궁금증.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송PD가 사회자에게 말했다.

“계속 진행하세요.”

자신은,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최대한 자극적으로.”

이한록이란 사람의 승리를 믿고 있었다.

*

송PD의 허락에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1위가 바뀌었다구요? 누구로 바뀌었죠?”

그 말에 서감독이 스텝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서감독의 핸드폰에 떠있는 화면. 그건 바로...

“접니다.”

서감독이 오늘 아침에 올린 챌린지 게시글이었다.

*

[5시간 전]

[@DIRECTORSEO]

[#도착지챌린지]

[안녕하세요. <수면>의 서감독입니다.]

[오늘 도착지를 이기고 오겠습니다.]

오늘 아침, 서감독이 올린 도착지 챌린지.

자극적인 내용. 예선전의 인기. 그리고, 생방송이라는 최고의 환경까지.

[싸워라!싸워라!]

[대박 흥미진진하네요~]

[오늘 너무 멋있었어요!!!]

[‘당신 인정 같은 건 필요없는데.’ ‘당신 인정 같은 건 필요없는데.’ ‘당신 인정 같은 건 필요없는데.’]

[어 지금 이거 방송에 나오는 중??]

[브이]

[엄마 나 방송탔어]

[<수면>이겨라!]

[<도착지>도 좋지만 역시 대상은 수면이~]

[어차피 우승은 <수면> 어차피 우승은 <수면>]

게다가 게시글이 방송에 나가자, 댓글 수는 실시간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좋아요 40만개. 댓글 4700개입니다.”

서감독의 핸드폰을 본 스텝이 말했다.

<도착지>의 핵심마케팅이자, 한록이 가장 공을 들인 챌린지. 그 챌린지의 주인공이...

“이제 모델은 접니까?”

서감독이 되기 직전인 상황.

한록은 무대 위에서 최대리를 바라보았다. 최대리는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대리는 한록의 마케팅을 예상하고, 그걸 오히려 서감독을 부각하는 것으로 역이용해버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하태준이 하정엽에게 말했다.

“하정엽.”

“예, 회장님.”

“똑똑히 들어라. 이한록은 대단한 녀석이야.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 이한록 혼자인 건 아니야.”

하태준의 말처럼, 최대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저 녀석도 이한록한테 견줄만한 놈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유일하게 한록의 라이벌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 최대리.

그러나...

“아뇨, 아버지의 말은 틀렸습니다.”

“무슨 말이냐.”

“이한록 과장의 라이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최대리가 한록을 이길 수 있는건 아니었다.

하정엽의 말에 하태준이 놀란 얼굴로 한록을 바라보았다. 한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록이 마이크를 들었고, 서감독을 보며 말했다.

“감독님. 홍보모델은 감독님도, 이연옥 선생님도 아닙니다. 가장 댓글을 많이 받은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챌린지는 모두 확인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뇨. 감독님도 보셨습니다. 다만 모르셨을 뿐입니다.”

“무슨-”

서감독이 말을 이어가려 할 때, 한록이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올라와주세요.”

한록의 말에 누군가가 무대로 올라왔다. 바닥만 바라보는 시선과, 덜덜 떨고 있는 어깨의 학생.

태우였다.

‘저 사람이 홍보모델이라고? 그럴 리가 없을텐데?’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최대리와 서감독.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생각.

“너희 대체 무슨 짓을 꾸민 거냐?”

하태준의 질문,

“태우 학생.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한록이 태우에게 말했다.

태우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도착지의 홍보모델...”

최대리, 서감독.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들로 홍보영상을 만든 오태우라고 합니다.”

한록이 준비한 마지막 카드.

태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록이 말했다.

“영상 틀어주세요.”

드디어 <도착지>의 홍보영상이 시작되었다.

*

무대 뒤의 스크린에 도착지 챌린지의 게시글과 인터뷰가 차례로 지나갔다.

“저도 제 영화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윤감독.

“아, 죄송해요. 어제 연습하다가 밤을 새서요.”

한기백.

“여기 제주도예요. 주섭아. 인사해.”

박정숙.

“어때, 유선아. 할머니 이 옷 잘 어울려?”

이순례.

“사실, 제가 1등이 아니어서 기뻐요. 1등은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했거든요.”

그리고 이연옥.

“여러분. 도착지 챌린지의 1등은...”

화면 속 이연옥이 말했다.

“바로 이 사람이에요.”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고, 이 챌린지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좋아요 57만개]

[댓글 12,373개]

[@CKENM]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성과를 낸 게시글. 그건 한록이 CK의 계정으로 올린 게시글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믿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가장 응원해야 하는 사람. 그게 바로 이번 <도착지>의 홍보모델입니다.”

그리고, <도착지>의 홍보모델은...

[#도착지챌리지를마치며]

[이 게시글에 가장 응원하고 싶은 사람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자기 자신에게요.]

자신의 꿈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

[이승아: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승아야, 할 수 있다.]

[김현석: 회계사가 되고 싶습니다.]

[정우택: 파리에서 살고 싶어요.]

[정강호: 늦었지만 대학에 가고싶습니다.]

[구미자: 이번 식당은 망하지 않게 해주세요.]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도착지 챌린지의 참여자들.

그들의 너무나 평범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간절한 꿈.

[오태우: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태우가 서툰 솜씨로, 그러나 너무나 열심히 만들어준 영상.

“도착지의 홍보모델은, 챌린지에 참여한 모두입니다.”

한록의 말에 30개 이상의 패널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수면>의 파란색 불빛 속 군데군데 섞인 <도착지>의 빨간 불빛. 그 불빛을 보며 한록은 생각했다.

-<수면>은 기억도 나지 않을 명장면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신호하면, 다시 전체투표를 해주세요.

송PD에게 약속한 강렬한, 그리고 아주 압도적인 장면. <수면>을 잊게 해줄만한 명장면.

그 장면이 나올 순간은 어디인가.

지금인가.

‘아직이다.’

“홍보모델이 챌린지에 참여한 모두라구요?”

“네. 원래 홍보모델은 주인공이 해야하는거니까요.”

“그 말은...”

“도착지의 주인공은 관객 모두란 말입니다.”

사회자와 한록의 대화에 다시 10개 이상 바뀐 패널.

명장면이 나올 순간은 어디인가. 지금인가.

‘아직이다.’

“서감독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런 말이 없는 서감독에게 한록이 질문을 건넸다.

‘모든 꿈이 이뤄질거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런 말은 거짓말이라고 하던 서감독.

명장면이 나올 순간은 어디인가. 지금인가.

‘아직이다.’

서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저는 <도착지>와 이과장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항상 좋은 말씀하시죠.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시고요.”

“제가 생각하는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그래요?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그럼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도착지>가 상영되고,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죠. 챌린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게 됐고요.”

서감독이 한록에게 말했다.

“그래서 지금 대체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죠?”

한록과 도착지가 보내는 따뜻한 위로.

그게, 정말 사람들의 삶을 바꿔놨는지 묻는 서감독의 질문.

‘완벽하다.’

한록이 기다려오던 말이었다.

*

“정말로 영화가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까? 진짜 <도착지> 때문에 삶이 바뀐 사람이 있습니까?”

서감독이 한록을 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사람들을 가짜 위로를 하고 있는 거야. 난 그런 사람을 경멸해.”

그리고 서감독의 비난에도 한록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서감독이 이렇게 말할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한록은 서감독의 이런 반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 대답은 다른 사람이 해줄 겁니다.”

서감독의 질문에 한록이 답했다.

“<도착지>로 삶이 바뀐 사람.”

한록이 어딘가를 바라보았고, 누군가가 한록 대신 답했다.

“저요. 제가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됐어요.”

태우.

“나는 다음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우감독.

“나도 이 자리에 있죠.”

이연옥이었다.

<도착지> 그리고 한록이 만든 사람들.

영화로 인해 삶이 바뀐 사람들이었다.

우감독. 태우. 그리고 이연옥의 말에 곳곳에 켜지는 빨간 불빛.

한록은 그 불빛들을 보며 생각했다.

명장면이 나올 순간은 어디인가. 지금인가.

‘그래.’

지금이다.

“지금이에요, PD님.”

한록이 송PD에게 말했다.

*

“전체 투표 시작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송PD의 외침.

“아, 저 못 보겠어요.”

눈을 가리고 주저앉은 하대리.

“제발...”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현차장과...

“우리가 이겨요.”

객석을 바라보는 유선.

“버튼 눌러주세요!”

스텝의 외침과 함께 투표가 끝났고, 한록이 말한 명장면이 시작되었다.

“감독님. 영화가 삶을 바꾼다는 그 말,”

<수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던 파란 불빛들.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수면의 기세와, 한록에 대한 서감독의 맹렬한 비판. 한록의 말은, <도착지>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 모든 걸 대표하는 파란 불빛들이. 300명의 관객의 선택이.

“저는 지금 증명했습니다.”

모두 <도착지>의 빨간 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

온통 빨간 불빛으로 채워진 객석. 객석에서는 단 한 개의 파란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객석에 앉은 전원이 <도착지>를 선택한 것이다.

“이...미친 인간. 어떻게 이러지?”

송PD가 저도 모르게 한록에 대한 감탄을 내뱉었고, 그건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송출되었다.

그리고 한록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송PD만이 아니었다.

빨간 불빛 속에 앉아있던 하태준. 하태준이 곁에 앉은 하정엽에게 말했다.

“저 놈한테 개인적으로 해준 게 있냐.”

“차를 두 대 줬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오피스텔 한 채를 주려고 합니다.”

“멍청한 놈. 저 녀석, 방송 끝나면 당장 불러 와.”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

“이게 끝나면 다른 회사들이 눈이 뒤집혀서 저 녀석한테 달려들 거다.”

하태준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핸드폰에는 계약서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각별히 아끼는 임원들에게만 작성하는 계약서.

“그 전에 뭘 줘서라도 우리 회사에 묶어놔야 해.”

백지 계약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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