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세요.
“이한록.”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정부장이 한록을 자신의 자리로 불렀다.
한록이 올린 <러빙 고흐> 광고 기획안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러빙 고흐> 광고 예산 두 배로 늘었다. 기간 다시 짜고 옥외광고 걸 곳 재배치 해.”
“네, 알겠습니다. 2차로 나눠서 한 번 더 진행하겠습니다.”
한록이 정부장의 말을 듣고 별 말 없이 알겠다고 답했다. 최경준이 이미 예산이 늘었다는 얘기를 해줬기 때문이었다.
“2차도 수정 없이 이대로 진행 하냐?”
“네. 똑같이 진행할 생각입니다.”
한록이 넘긴 광고 파일을 바라보는 정부장.
한록의 광고는 <부산열차>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아니, <부산 열차> 그 이상이었다.
<러빙 고흐>의 광고에는 영화의 제목도, 포스터도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 이 한 문장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
기획안을 빤히 바라보던 정부장이 한록에게 물었다.
“이걸로 대체 뭘하겠단 거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겁니다. 사람들이 알아서 광고를 찾아보고, 이슈를 만들도록요.”
한록이 <부산 열차>의 광고를 공개하고 느낀 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광고’를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그게 광고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면, 호기심을 가지고 정보를 인식하려 한다.
그래서 결정한 <러빙 고흐>의 광고방식.
바로 영화에 대한 정보는커녕, 이게 영화 광고라는 것도 알기 어려운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었다.
“...”
정부장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미 결재는 내렸고, 광고 송출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광고에 아무런 내용도 넣지 않겠다.
-사람들은 알아서 이 광고가 어떤 광고인지 찾아볼 것이다.
-그래서 광고는 더욱 이슈가 될 것이다.
제품의 이름도, 이미지도 없는 광고.
그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50대 중년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지금이라도 광고를 취소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의 불안함.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감정이 있었다.
“알았어. 그대로 가.”
한록에 대한 믿음. 그리고-
“CK에서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방식이야.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반응 나오면 바로 보고해.”
대체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정부장의 말에 한록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록이 자리로 돌아간 후에야 정부장은 방금 전 한록이 웃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될까?’
그런 호기심에 광고를 허락한 정부장.
-그리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용해서 광고가 이슈가 되게 만들겠다고 한 한록.
‘...내가 저 놈 예상대로 행동하고 있잖아?’
정부장이 한록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
그리고 일주일 후. <러빙고흐>의 광고 송출날.
차를 타고 인터뷰 장소로 향하던 작곡가 최슬아.
신호를 기다리던 그녀의 눈에 문득 빌딩 외벽의 커다란 전광판이 보였다.
전광판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까만 화면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고장 났나?’
그런 생각이 들 때 쯤, 전광판에 글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해바라기는___]
글자는 누가 직접 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글자한글자 천천히 적히고 있었다.
‘해바라기는?’
‘예쁘다?’
‘시들었다?’
‘비싸다?’
저도 모르게 해바라기에 대해 생각하는 최슬아. 그리고 이어진 글은 그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해바라기는 생각하지마세요.]
‘어?’
그걸 보는 순간, 최슬아는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광판 바로 옆에 걸린 패션 광고. 버스 정류장에 걸린 어플 광고. 오늘자 신문에 걸린 책 광고.
그 속에 배경처럼 들어가 있는 해바라기.
‘왜 이렇게 해바라기가 많지?’
오늘 하루 종일 느끼지 못했던 사실이 전광판의 글자를 보니 문득 떠오른다.
평소와 다르게 계속 시야에 들어오는 해바라기. 그리고 전광판의 글자.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빵!
그때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렸고, 최슬아는 얼른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 해바라기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세요.]
어느 날 도시에 나타난 글자. 그리고...
‘왜 해바라기를 생각하지 말란 거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떠오르는 생각들.
*
한록의 두 번째 타겟인 추리소설 작가 유권호.
그는 백화점 안의 카페에서 고흐 전의 *도록을 보는 중이었다.
*도록: 사진이나 그림을 엮어서 낸 책.
유권호는 ‘더 서울’측에 협업 문의를 보냈고, 며칠 전 ‘더 서울’ 측에서 답변이 도착했다.
[해당 부분은 CK ENM과 협조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지금 당장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CK ENM? 거기는 왜?’
하지만 메일로 더 질문을 해봤자 내부 일이라 얘기를 해줄 수 없단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대신, 마지막 메일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작가님의 협업 요청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의미에서 전시 도록과 영화표, 그리고 전시회 초대권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협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저희 역시 노력하겠습니다.]
‘또 영화표? 뭐 인수합병이라도 하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검색해 봐도 특별히 나오는 기사는 없었다.
그렇게 ‘더 서울’과 고흐전은 잠시 잊고 지내는 사이, 오늘 더서울 측에서 말한 도록이 도착했다.
이번 고흐 전에서 전시되는 그림이 나와있는 도록을 넘겨보던 유권호.
‘아, 여기. 고흐 투어 때 갔던 곳이다.’
‘이건 네덜란드 고흐 미술관에서 봤던 거고.’
‘뭐야. 아몬드 나무도 들어왔어? 이건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렇게 한 장 한 장 그림을 음미하는 사이 유권호는 어느새 도록의 마지막 장에 도달했다.
‘어. 종이?’
도록의 마지막장에는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고, 종이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있었다.
검은색 종이에 노란색으로 적힌 글자.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세요.]
‘어?’
분명 이 글을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그런 생각에 번쩍 고개를 든 유권호. 유권호의 눈에 쇼핑몰 벽면에 걸린 전광판이 보인다.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세요.]
종이와 똑같은 글자. 그리고 전광판 바로 옆에 걸린, 여자모델이 해바라기를 든 광고.
유권호는 문득 오늘 쇼핑몰까지 걸어오던 길을 떠올렸다.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 붙은 책 광고. 책 표지의 해바라기 그림.
유튜브 영상의 게임 광고. 배경에 있던 해바라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은 어플 광고. 어플의 해바라기 로고.
‘그, 게임 이름이...슈팅샷...’
기억을 더듬어 해바라기 광고 중 하나를 검색해 본 유권호. 그러나 검색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책 이름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체가 없는 광고야. 해바라기를 보여주려고 그냥 만든 광고들이라고.’
해바라기를 보여주기 위한 허상의 광고. 그리고 자신에게 도착한 해바라기를 생각하지 말라는 편지까지.
분명 이 모든 게 누군가 깔아놓은 판이란 생각이 들었고-
‘미친. 누가 이런 수상한 짓을 하는 거야?’
호기심과 흥분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그날 오후 3시. 현차장이 놀란 얼굴로 한록을 찾았다.
“이과장. 유권호 인스타그램에 광고 얘기 올라왔는데?”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이거 뭔지 아는 분?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세요.]
유권호는 전광판에 나온 글자를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좋아요는 6천개가 넘게 찍혀있었다. 과연 연예인급의 인기를 구사하는 스타작가다웠다.
그리고 그 밑의 댓글들 역시 광고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오 선배 저도 저거 궁금했어요 ㅋㅋㅋ뭐지?]
[이거 검색해도 암 것도 안 나오고 궁금해 하는 사람만 있음 ㅋ]
[대구에서도 봤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감도 안 잡히던 ㅡㅡ;;]
[작가님 책 바이럴 아니죠?ㅋㅋ]
‘좋아. 이 정도면 괜찮군.’
댓글들은 <러빙 고흐>의 광고에 꽤나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몇몇은 유권호가 올린 해시태그를 사용해 자신이 본 해바라기 광고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과장, 봐봐. 우린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하고 있어.”
“그게 팬덤 마케팅입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기프티콘 쏘면서 해시태그 만들어 달라, 인스타 팔로우 해달라 해도 아무도 말 안 듣는데. 근데 이건 영화 제목도 안 썼는데 알아서 해시태그가 생겼어.”
“사람들은 광고에 거부감을 느끼니까요. 이게 광고란 자각이 없으니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겁니다.”
“허...”
여전히 놀란 얼굴의 현차장.
제목 하나 없는 광고가 이렇게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했다.
‘나도 다음에 이런 거 하나 만들어볼까?’
그렇게 생각하던 현차장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광고 같지 않은 광고. 사람들이 알아서 호기심을 가지게 만드는 광고.
그런 광고가 좋다는 건 모두 알지만,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이과장은 유권호가 이거 올릴 줄 알고 있던 거지?”
사람들이 이 광고에 관심을 가질 거란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지간한 배짱과 자신감으로는 시도할 수 없는 광고 방식이었다.
“네. 유권호에게 편지를 보냈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 줄은 몰랐네요.”
하지만 한록은 이 결과를 미리 예상한 듯한 태도였다.
“편지를 보내도 그렇지. 이게 예상이 가능하다고? 이 정도면 마케팅의 신 아니야? 미래가 막 보이고 그래?”
“뭐...그런 걸로 하죠.”
차마 ‘미래를 보고 왔다’고 말을 할 순 없던 한록이 낯 간지러운 칭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차장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물었다.
“마케팅의 신 이한록씨. 이 뒤엔 어떻게 될 거 같아?”
“글쎄요. 1인 관람은 최슬아 작곡가가 굉장히 좋아할 겁니다.”
“응. 최슬아도 타겟이라 그랬지.”
“그리고 내일부터 이 광고가 엄청난 이슈가 될 겁니다.”
“내일? 그렇게 빨리?!”
“정확히 저녁 7시부터요.”
“그렇게 정확히?!”
깜짝 놀란 현차장을 보니 웃음이 터진 한록. 현차장이 한록을 흘겨보며 말했다.
“지금 나 가지고 장난치는 거야?”
“아뇨, 정말입니다. 내일부터 TV 광고가 나가잖아요.”
“아, 그렇지. 내일 TV광고 보내기로 했지. 근데 바로 이슈가 되려나?”
“전 그렇게 예상합니다.”
“그걸 이과장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 있지. 이과장이라면 알겠지.”
한록의 말에 현차장이 완전히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다음날 오후 6시 50분. 한록이 말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한록.”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퇴근도 미루고 있는 한록에게 정부장이 다가왔다. 정부장은 어제부터 <러빙 고흐>에 대한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이 의심하던 <러빙 고흐>에 대한 좋은 반응.
정부장은 처음에는 한록의 팬덤 마케팅과 광고에 대해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유권호가 관심을 보이리란 것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러빙 고흐>에 대해 얘기하리란 것도 모두 사실이 된 상황.
“어떻게 될 거 같아?”
이쯤 되면 한록의 다음 ‘예언’이 궁금한 건 정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퇴근시간인 7시부터 광고에 대한 반응이 나올 거예요.”
“광고는 아침부터 나갔잖아. 근데 그때부터 반응이 온다고?”
“네. 기사도 그때 맞춰 내보낼 겁니다.”
한록의 말에 정부장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광고는 오늘 오전부터 이미 송출이 된 상황.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이게 뭐냐’는 반응이 꽤 올라오긴 했지만, 한록의 말처럼 엄청난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7시가 된다고 큰 변화가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일단 지켜보자.’
하지만 여태까지는 모두 한록이 말한 대로 상황이 진행되었다. 그러니 한록이 말한 7시까지는 지켜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 시간 됐으니 스피커로 듣겠습니다.”
그리고 7시가 다가오자, 한록이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컴퓨터 스피커를 켰다.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
[MBS 라디오에서 7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부장이 이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스피커에선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진하성의 저녁 산책’의 진하성입니다.]
라디오 진행자인 유명한 가수의 이름. 그리고-
[안녕하세요. 목요일의 남자, 작가 유권호입니다.]
유권호의 이름.
[여러분. 혹시 이거 아시나요? 여러분이랑 얘기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진하성의 저녁산책>의 목요일 게스트 유권호. 그가 라디오의 시작과 동시에 말했다.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
*
[해바라기는 생각하지 마.]
퇴근길 버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권호의 말. 그 말에 버스에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머릿 속에 든 똑같은 생각.
‘저거 어디서 들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에 사람들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여러분.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추리소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구요.]
유권호가 광고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