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2. 미궁의 사건(5)
- 아... 씨발...
한수는 계곡 물이 흐르는 개울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욕을 해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씌지 않았으면 이럴 수는 없었다.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숲가로 갔다. 자신이 떠내려 온 길이야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왠지 힘이 빠져 거기로 올라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 에라 모르겠다.
한수는 풀 무더기가 있는 곳에 누웠다. 햇빛이 가려져 그늘이 진 곳은 적당하게 선선했다. 한수는 잠시 눈이라도 붙일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그만 깊이 잠이 들고 말았다.
- 어... 미스 최...
한수는 서울에 있어야 할 장미 다방 미스 최가 눈앞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미스 최는 고개를 돌려 한수를 쳐다보며 씽끗 웃었다. 한수는 미스 최의 매력적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미스 최는 아무 말도 없이 한수 앞으로 다가왔다. 한수는 놀라서 미스 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미스 최는 한수의 젖은 바지에 걸린 허리띠를 풀기 위해 버클을 끌렀다. 한수는 미스 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여... 여기선..
하지만 미스 최는 한수의 손을 치우며 버클을 풀어버렸다. 그리고는 한수의 젖은 바지를 끌어내렸다. 미스 최에게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느끼고 그녀와 함께 하던 한수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 이.. 이러면 아..
그런데 그 순간 미스 최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일그러진다기 보다 마치 햇빛이 녹아버리는 것처럼 얼굴이 녹고 있었다.
- 히힉.. 이.. 이게...
미스 최의 얼굴이 녹으면서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드러났다. 마치 노폐물이 켜켜이 쌓은 것 같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애벌레가 꿈틀대듯 그 끈적끈적한 것이 꿈틀대었다.
처음엔 얼굴만 드러났던 것이 점점 아래로 퍼지면서 한수의 배 아래, 그리고 한수를 감싸고 있던 다리까지 번져갔다.
- 으.. 윽.. 이게 뭐...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끈적한 것들이 서서히 다시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수의 몸에 서서히 들러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짙은 갈색이었던 것이 한수의 몸에 붙으면서 점점 녹색의 기운을 띠고 있었다.
- 어.. 어...
한수의 몸이 그 녹색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려 할 때 한수는 자신도 모르게 사정을 했다. 짙고 뿌연 액체가 녹색의 무언가 위로 뿌려지자 녹색의 무언가는 한수를 놔두고 정액 쪽으로 모여들었다. 한수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 헉.. 헉.. 뭐.. 뭐야?
한수는 자신의 아랫도리가 벗겨진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의 물건 끝에 아직도 약간의 액체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 이... 이게.. 꿈... 꿈 아니었어?
한수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보여야 할 자신의 바지와 팬티가 보이지 않았다. 한수는 어쩔 수 없이 위에 걸친 러닝셔츠를 벗어 아랫도리에 둘렀다.
- 염병할... 희한한 꿈을 꾸니 바지랑 팬티가 없어지네. 아 씨발... 그거 실크로 만든 비싼 건데...
한수는 그렇게 푸념을 하며 아까 벗어놓은 윗도리라도 찾으려고 떠내려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산 속은 밤이 유독 일찍 찾아오는지 생각으론 아직 이른 오후 같았는데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 꼬르륵..
한수는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 젠장.. 밥도 못 먹은 놈이 빠구리 꿈은... 염병...
한수는 계곡 길을 따라 힘겹게 앞으로 걸었다.
- 바스락...
한수의 귀에 무언가 마른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산짐승이려니 생각을 했는데, 일정한 힘으로 일정한 속도로 무언가를 밟는 소리에 한수는 조금 긴장을 했다.
- 사... 사람인가?
한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무언가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한수는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멈추었다.
- 혹시 나쁜 놈들이면...
한수는 지금 자신이 가진 무기도 없고, 더더욱 헐벗고 있었기에 약간의 경계심이 더 들었다.
- 일단 어떤 놈들인지 확인해야겠군.
한수는 발소리를 죽이고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댔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렸다.
- ... 매장.. 땅이... 엄청... 죽이... 가...
한수는 귀를 세우고 열심히 들었지만,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무엇이랴 생각하고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 여... 여기 사람 있어요!
한수의 외침에 멀리서 들리던 말소리가 멈췄다. 한수는 순식간에 찾아온 적막에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 뭐지?
한수는 나무 등걸에 몸을 숨겼다. 발소리가 자기에게로 가까워지자 한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총을 들고 있는 두 남자였다.
'저... 저 녀석들 뭐야... 그러고 보니까 아까 매장... 죽이고... 혹시 살인범들?'
그런 생각이 들자 한수는 괜히 소리를 지른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발소리가 자기에게로 다가오자 한수는 피해야 된다는 생각에 얼른 계속 위로 후다닥 달렸다.
- 거기 서요!
뒤에서 누군가 한수를 향해 외쳤지만, 한수는 그것이 자신을 죽이려는 소리라고 생각하고는 힘차게 앞으로 달렸다.
- 위.. 위험 해....
거기까지 들은 한수는 좁은 길 틈에서 헛디뎌 또다시 계곡 물에 빠졌다. 한수가 계곡에서 허우적거리자 두 사내가 한수에게로 다가오며 소리쳤다.
- 조금만 내려가면 물살이 약해지니까 고개를 최대한 드세요. 네! 아셨죠?
한수는 계곡 물을 먹어가며 또다시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얼마간을 물에 떠밀려 내려갔다. 아까 한수의 엉덩이가 땅에 닿아 멈춘 곳에서 한수는 또다시 멈췄다. 이번에는 맨살에 돌이 닿아서인지 한수의 엉덩이가 몹시 따가웠다.
하지만 한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멀리서 두 남자가 한수에게 다가오며 외쳤다.
- 여긴 괜찮으니까 나오...
한 사내가 그렇게 말을 하다가 한수 허리춤에 걸린 러닝셔츠가 물에 펄렁거리며 그나마 감추고 있던 한수의 물건이 물 안에서 드러나자 미간을 찌푸렸다.
- 옷 다 벗고 뭐하시는 거예요? 여긴 입산 금지 구역이란 말입니다.
한수는 그런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 난 변태도 아니고, 입산 금지 구역인 것도 몰랐어요. 마을로 가다가 길을 잃었다구요.
한수는 두 사내, 산림 경비원들 손에 이끌려 산 아래 경비대로 갔고, 마치 야인(野人)처럼 산을 떠돈 사람 취급을 받으며 조서를 꾸몄다.
서울 집으로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하고, 경비대 옷을 빌려 입고 그날 저녁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집에 들어온 한수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알고 있는 약재상에 들러 산삼 값을 최대한 비싸게 후려쳐서 받은 후 착수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철구의 통장으로 고스란히 입금했다.
자신의 찻값, 핸드폰 값, 택시비, 벌금,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위로금 등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더 때려 했지만, 그랬다가는 왠지 서울에서도 또다시 고난을 당할 것 같아 한수는 눈물을 흘리며 입금을 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