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2. 미궁의 사건(4)
한수는 비를 피한 나무 아래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머리 위로 갑자기 쏟아진 물 때문에 잠을 번쩍 깼다.
- 어이 차거워...
한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를 쳐다보았다. 나무 위쪽에 커다란 잎사귀가 있어 비를 피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잎사귀에 고인 물이 바람에 흔들려 한수 머리 위로 쏟아진 것이었다.
- 이런 우라질... 재수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앞쪽을 쳐다보았다. 지난 밤 산사태로 인해 어마어마한 흙더미가 자신의 차를 덮쳐버려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이 들자 한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젠장... 여기가 어디야?
한수는 비에 젖을까봐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간당간당하긴 했지만, 아직 켜져 있었다. 한수는 얼른 철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철구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 이런 염병... 전화도 안 되는 곳이야?
한수는 지난밤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올라왔을 법한 길 쪽으로 발길을 잡았다. 그러나 지난밤에 비로 인해 온통 흙길이었고, 자신이 어디로 올라왔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 앉아 있는다고 해서 딱히 수가 없었기에 한수는 어디로든지 자리를 옮겨야 된다는 생각에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 뭔 놈의 산에 사람 한 명이 없어?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와 아직 습기를 머금은 바람만이 한수 주위를 채웠다. 인적은커녕 들짐승의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수는 그 흙길을 걷고 또 걸었다. 걷다보면 '문명의 물건'과 마주칠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가도 가도 흙길과 들풀, 나무뿐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한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젠장. 배도 고프고, 발도 아프고... 뭐 이렇게 지지리 복도 없냐?
한수는 자리에 주저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까 봤던 풍경과 같은 풍경이 반복해서 보였다.
- 여기가 거기 같고... 젠장...
한수는 푸념을 하면서 신발을 벗었다. 축축한 습기가 가득했던 발이 햇살 아래로 나오자 희미하게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수증기가 한수의 코에 닿자 한수는 인상을 썼다.
- 크.. 발냄새... 이거 미치겠구만.
한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이거야 원... 완전 거지 꼴이구만.
한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멀리서 산새 소리도 들렸고, 희미하게 물소리도 들렸다. 한수는 물소리가 나는 곳이 어디인지 알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다.
- 저 쪽인가?
한수는 물소리가 나는 듯한 곳으로 가기 위해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우거진 산길을 헤치고 길을 걸었다. 30분 쯤 걷자 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고, 한수는 더욱 발에 힘을 주어 물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갔다.
얼마 후 우거진 수풀 사이로 커다란 돌이 하나 보였고, 그 너머로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계곡이 있었다.
- 에라 모르겠다. 온 김에 멱이나 감고 가자.
한수는 계곡 아래까지 조금 가파른 길을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계곡 물 앞에 다가가가 찬 기운이 한수의 뺨에 느껴졌고, 한수는 신발을 신은 채 물로 뛰어 들었다.
- 어이 차가워... 어허허...
한수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잊은 채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는 기분이 좋아서 소리쳤다.
- 이래서 여름엔 계곡이라니까...
그러다가 문득 손이 자신의 주머니로 향했다.
- 아! 핸드폰...
한수는 부랴부랴 밖으로 나와 주머니를 뒤졌다. 엄청나게 쏟아 붓는 빗속에서도 어떻게든 핸드폰만은 살리려고 품 안에 품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핸드폰을 적신 것이었다.
- 이런... 우라질..
한수는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핸드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염병할.. 난 왜 이러냐...
한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분해해서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놔두었다. 물기가 마르면 혹시 전원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 이러고 있으면 뭐하냐. 물에 들어가서 열기나 식히자.
한수는 윗옷을 벗고, 바지마저 벗으려다가 혹시 누군가가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바지는 그냥 입은 채로 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흥분을 해서인지 물로 들어가자 아까보다 조금 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 어.. 시원하다.
한수는 그렇게 물에 있다가 물속을 쳐다보았다. 그 안에는 크진 않지만 손바닥만한 물고기들이 몇 마리 보였다. 그리고는 어젯밤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에 물고기를 잡아보려고 했다.
- 라이터도 마르겠지. 뭐. 아무튼 물고기나 먼저 잡아봐야겠군.
한수는 물 안에 손을 넣어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물고기들도 장님이 아닌지 한수의 손을 이리저리 피해갔다. 한수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마음을 잡으며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다.
- 돌로 내려쳐 볼까?
앞에 있는 주먹만한 돌을 하나 주워 물고기를 내려치기로 마음먹었다. 물고기 한 마리가 한수 앞을 지나치자 한수는 그 물고기를 따라 계곡 중심으로 조금 움직였다. 그 물고기는 한수의 무릎 정도 물이 찬 곳에 가만히 있었다.
한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고기를 향해 돌을 내려쳤다. 그러다가 순간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물에 빠져버렸다.
- 어푸.. 어푸..
한수는 수심이 깊지 않은 곳이라 손을 뻗어 자리에서 일어나면 된다는 생각에 손을 뻗어 바닥을 짚으려 했다. 하지만 지난밤에 내린 비에 물이 불었는지 생각 외로 수심이 깊었고, 물살이 빨랐다.
중심을 잃은 한수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물살에 그대로 휩쓸렸다. 한수는 몸을 돌려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점점 빨라지는 유속(流速)에 그대로 물에 떠밀려 아래로 흘러갔다. 숨을 쉬기 위해 간신히 머리를 치켜들었지만, 빠른 물의 흐름 탓인지 그것이 쉽지 않았다.
물속에 잠겼다 떴다를 반복하다가 한수는 그보다 더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더 빠른 흐름에 몸이 흘러갔다.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찰나 앞에 커다란 돌이 계곡물을 가르고 있었다. 한수는 최대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 돌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빠른 물살로 인해 몸이 돌을 비껴갈 수도 있었기에 한수는 돌 근처에 다다랐을 때 재빨리 돌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몸은 그대로 돌에 부딪혔고, 빠른 물의 흐름을 온몸으로 그대로 받고 있었기에 한수의 몸에는 커다란 충격이 찾아왔다.
한수는 끊어질 듯 허리가 아팠지만, 그대로 물에 빠져 죽느니 이 돌에 의지해서 물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한수는 돌에 몸을 밀착한 채 몸을 돌렸다. 계곡물이 빠르게 돌로 달려와 두 갈래로 나뉘었고, 그 물들이 한수의 몸에 계속해서 충격을 주었다. 한수는 미끈거리는 돌을 손으로 더듬으며 잡을 만한 곳을 찾았다.
돌과 돌 사이에 작은 틈이 손끝에 만져지자 한수는 그곳을 힘껏 붙잡았다. 그리고 최대한 몸을 돌 쪽으로 끌어올렸다.
- 으... 으악..
한수는 돌 위로 몸을 조금 끌어올리고는 고개를 쳐들었다.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속이 몹시 더부룩했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수는 돌에 기댄 채 숨을 돌렸다.
- 헉.. 헉...
자신이 얼마나 떠내려 왔는지, 물속에서 얼마나 허우적거렸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 씨... 씨발... 여기서... 여기서 나가면... 교회라도... 절이라도... 가야겠다...
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좀 더 힘을 냈다. 그리고 바위 위로 몸을 끌어올렸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한수는 숨을 헐떡였다.
- 헉헉... 씨발... 엉뚱한 곳에서 뒈질 뻔 했네...
한수는 온몸에 물을 뚝뚝 흘리며 바위 위에 앉아서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얼마 안 가서 금방 해결되었다.
- 이런... 젠장할...
한수는 자신이 왜 그렇게 바위 위로 기어오르려고 애 썼나 푸념 섞인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은 한수가 떠내려 왔던 곳과는 달리 넓고 얕은 개울처럼 보였다.
계곡은 한수가 떠내려 온 곳을 기점으로 해서 계곡 폭이 좁아지며 유속도 빠르고 수심도 깊었지만 한수가 매달린 바위를 종점으로 해서 갑자기 계곡 폭이 넓어지며 유속도 느려졌고 수심도 낮아졌다. 한수는 욕을 퍼부으며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얼마 안 가서 낮은 바닥에 엉덩이가 닿아 멈췄다.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업데이트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글쟁이 구라도사입니다.
며칠 간 업데이트가 없었죠?
물론 제가 게을러서도 있지만 개인적인 일들이 있어서 업데이트가 늦어지고 있답니다.
오늘부터 업데이트를 시작할 예정이랍니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서요. ^^
그럼 곧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업데이트가 늦은 건 댓글이 없거나 추천이 적다거나 좋아요가 없어서는 절대 아니랍니다.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