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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38화 (238/339)

238화

【 냉탕과 온탕 】

역시 제국 정형외과는 임 과장의 실력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왠지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제국 정형외과 정도 되는 병원 레벨이라면 백 이사 정도의 짬이라야 따올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경력이 오래됐더라도 쉽게 가져올 수 있는 병원은 아니다.

그 역시 오랫동안 공을 들였을 거라 생각한다.

다 된 밥을 고스란히 임 과장에게 넘겼다니.

임 사장이 백 이사에게 지시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 굳이 백 이사가 임 과장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을 했을 리는 없으니까.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저 임 사장이 자신의 조카를 위해 백 이사에게 거래처를 양보해 달라 지시를 했을 것이다.

* * *

어느덧 추위가 살을 에는 계절, 겨울.

그리고 훌쩍 다가온 연말.

거리에는 이제 하나둘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와.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

“그러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뭐 하십니까, 조 차장님?”

조 차장과 나는 출근하자마자 탕비실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글쎄다. 어디 가도 사람 구경만 할 텐데, 집에서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놓고 쉬어야지. 민 과장은?”

나는 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약속 있습니다. 하하.”

“부럽네. 청춘이야, 청춘. 크리스마스 지나면 바로 연말이고, 또 연초. 그러면 또 한 살 먹어야 하냐? 지겹다, 지겨워.”

조 차장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니까요, 차장님. 1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겁니까?”

“나이 먹어봐라. 1년 가는 속도가 더 빨라. 우리 해외 학회 다녀온 것도 벌써 몇 달이나 지났잖아. 진짜 시간 순식간이야.”

“맞네요. 해외 학회 다녀왔을 때는 얇은 외투 챙겨 입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 과장은 올해 지나면 나이가 몇이지?”

“저 올해 서른두 살, 이제 곧 서른세 살 됩니다. 이제 어엿한 삼십 대 중반입니다. 하.”

“뭐? 민 과장 이제 서른세 살 되는 건가? 와, 아직 어리네, 어려. 서른셋이면 삼십 대 초반이지.”

“아닙니다, 차장님. 서른셋. 서른 하나둘과는 다르게 셋, 넷, 다섯, 여섯 이렇게 받침이 ‘시옷’으로 끝나면 중반이라 하더라고요.”

그는 내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에이, 그럼 후반은?”

“후반은 일곱, 여덟, 아홉. 이렇게 받침이 ‘비읍’으로 끝나면 후반이랍니다. 저는 이제 빼박 중반이에요. 하. 제가 벌써 서른 중반이라니.”

조 차장은 나이 이야기에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 나는 보자, 올해가 아홉이었으니까. 하하하. 나 이제 진짜 불혹 되는 거냐?”

그는 자신의 나이를 손가락으로 세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훈아. 나는 이제 삼십의 삼도 벗어나게 생겼다.”

“에이. 차장님은 그래도 사 자에서 이제 초반 시작이신데요?”

능글맞은 표정으로 그에게 눈을 찡긋거리자, 그는 아래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자식이! 누구 놀리나!”

몇 달 새 많이 가까워진 조 차장과 나.

이제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힘든 일과 고민도 이야기할 정도로 조 차장과 친분이 많이 쌓였다.

항상 밀고 당겨주면서 회사에서의 파트너십을 뽐내고 있지.

“그래도 오랜만에 가만히 앉아서 수다 떠니까 좋네. 얼마 만이냐.”

조 차장은 따뜻한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며 말했다.

겨울은 정형외과 메디컬에서는 성수기 계절이다.

특히나 지금 12월은 극성수기라고 할 수 있지.

온도가 낮고, 바람이 불어 뼈까지 얼어붙는 추위.

이때 사람들의 뼈가 많이 부러지고, 다치기 쉬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즘 모든 직원이 정신이 없다.

서로 마주칠 틈이 없을 정도로 출근은 병원으로 직출, 퇴근은 고사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기도 하지.

그러다 이렇게 사무실에 잠깐 들어왔을 때, 다른 직원들을 만나면 잠시의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띠리리.

그때 조 차장의 전화벨이 세차게 울렸다.

“아… 병원이다. 여유는 개뿔. 나 먼저 간다!”

“예. 다녀오십시오, 차장님.”

하지만 그 여유도 아주 잠시.

곧장 이렇게 우리는 다시 일터로 향한다.

* * *

차에 히터를 켜지 않으면, 앉아 있을 수 없는 이 추위.

병원에 물건을 납품 후 차에 올라타 히터부터 틀었다.

가만히 앉아 다음 목적지를 생각하며 있던 그때.

지이잉.

휴대전화에 알람이 울렸다.

[금요일 전체 회의. 전 직원 일찍 마무리하고, 4시까지 회의실로 집결. 끝나고 간단한 저녁 식사 있음.]

회사에서 온 단체 톡이었다.

평소 회식이 잦은 메디컬 영업 회사지만, 겨울에는 그 전체 회식이 뜸한 편이다.

그렇다고 고된 일을 끝낸 후 집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맞는 직원들끼리는 평소보다 더 자주 퇴근 후 술자리를 가지고는 한다.

성수기라 일이 많기 때문에, 야근이 잦아 끝나고 보상심리처럼 술을 한 잔씩하고 들어가는 것이지.

이번 주 금요일에 있는 회식은 회의가 끝났기에 하는 짧은 회식일 것이다.

바쁜 이 시기, 근무 시간에 하는 회의.

즉, 굉장히 의미 있는 회의다.

1년에 몇 번 없는 대회의.

연말 대회의는 그토록 기다려온 연말 직원들의 성과 발표가 있는 날이다.

1년 동안 자신의 성과, 작년 대비 매출이 얼마나 올랐는지, 그리고 내년 추후 계획까지.

이 모든 걸 각자 PPT로 만들어 온 직원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료와 실매출을 토대로 1년 성과의 등급을 매기는 것.

즉, 매우 중요한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코리아 메디컬은 큰 회사이기에 연초와 연말에 할 일이 더욱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꼭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거의 직전에 대회의를 하는 것이다.

* * *

직원들이 하나둘 사무실로 복귀했다.

나 역시 오늘은 병원 업무를 최대한 빨리 마친 후,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에게는 첫 PPT 발표였기에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다.

더불어 직원들의 펌프질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 부장과 조 차장의 펌프질이지.

그들은 계속해서 올해 최고 영업 직원은 내가 될 거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기대를 하면 실망하는 법이라지만, 그들의 펌프질에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한 줌 정도는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PPT를 만들며, 내가 코리아 메디컬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성과를 확인했다.

그 기간의 내 성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코리아 메디컬에서 열심히 영업하며 따온 크고 작은 병원들과 큰 총판들.

모든 것을 기재하다 보니, PPT의 페이지 수도 꽤 여러 장이었다.

회의실에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한 명 한 명 발표하는 것이다 보니, 온 직원들은 야근까지 하며 PPT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회의가 시작하기 1시간 전.

사무실에 있는 온 직원은 자신들의 PPT를 점검하며, 발표 준비로 긴장하고 있었다.

3시 50분.

회의실에는 임 사장을 제외한 전 직원이 착석했다.

대회의 준비는 아래 직원들이 이미 세팅을 완료해 두었다.

이번 회의는 여태 회의들과 달리, 자리마다 다과와 병 음료수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긴장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설레어 떨리는 마음이 더 맞는 것 같다.

잠시 후 시작된 회의.

임 사장은 아직 회의실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회의는 아래 직원부터 차근차근 이어졌다.

직원이 여러 명인 탓에 발표는 짧게 끝나는 편이다.

한 명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이어지는 상사들의 표정.

잘한 직원과 못한 직원의 발표가 끝날 때의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짧은 한마디를 던지는데, 그 한마디의 평가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말이었다.

“…이렇게 올해 마무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찬호 사원의 발표가 끝이 났다.

사원이기에 올해 매출액은 상당히 적은 금액이었다.

또 반대로 보면, 사원이기에 저 정도 매출이라면 사원 중에서 상위권이기도 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가 들자 백 이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찬호가 올해 고생이 많았네. 올해를 기반으로 내년에는 저 예상 매출 충분히 달성하겠어.”

“감사합니다, 이사님.”

“그래. 이런 식으로 간다면 대리 다는 건 시간 문제겠다. 고생했다. 다음.”

이 정도의 말이라면 극찬이었다.

곧장 시작된 또 다른 사원.

“…올 상반기에 부진했던 매출은, 내년에 더 열심히 해서 채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가 봐도 이 직원의 PPT를 보면 좋은 말이 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어지는 백 이사의 혹평.

“하……. 월급 받으면서 이 정도 매출만 가져오면 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적자야. 알지?”

“죄송합니다.”

“죄송이 문제가 아니고. 내년에, 아니 바로 다음 달에 연봉 협상 달인 거 알지? 그때, 자네 월급 인상을 높게 요구한다면 그건 양심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겠네. 다음.”

철저한 능력주의.

하긴 저렇게 능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이사직까지 올라가는 방법일 터.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는 듯했다.

한참 회의가 진행됐지만, 어느 직원 하나 지루하거나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분위기가 그러지 못하게 세팅이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하품이라도 나온다면 상사들의 눈총을 받을 테니까.

그저 입을 여는 사람이라고는 발표하는 사람, 그리고 그걸 평가하는 백 이사뿐.

그리고 이어지는 과장직의 발표 차례.

“…이렇게 해서 올해 매출표입니다. 그리고 내년 예상 매출액까지 정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빔프로젝터가 쏘고 있는 화면 앞에 서서 직원들을 향해 허리를 접었다.

내가 허리를 들어 바른 자세로 서기도 전에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야. 민 과장 올해 매출 엄청나네. 직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보여줬어.”

“감사합니다, 이사님.”

“감사는 내가 해야지. 올해 매출에 큰 도움이 됐겠는데? 회사에 1년도, 아니 반년도 안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정도 매출에 이 정도 성과라면 하… 위에 상사들이 앞으로 더 노력 좀 해야겠어. 정말 고생했다.”

크으.

극찬이었다.

물론 회의가 뒤로 갈수록 더 높은 직책의 발표가 이어지니, 매출도 높을 수밖에 없었지만, 백 이사가 이렇게까지 극찬하는 직원은 지금까지 나뿐이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친 조 차장.

그는 나를 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잘했다, 고생했다는 표정을 보내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눈인사를 보낸 뒤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지는 임 과장 차례.

그는 제국 정형외과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많은 병원 영업에 성공했다.

제국 정형외과는 백 이사가 내어주었던 병원.

그것처럼 다른 병원 또한 백 이사를 통한 영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크고 작은 병원들 목록이 꽤 많았다.

하지만 총 매출, 그리고 내게 너무나도 큰 실적인 NA 바이오 총판.

그것들을 넘을 수는 없을 거 같았다.

확신은 아니었지만, 조 차장과 서 부장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회의 시간에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내게 연신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그 눈짓은 ‘민 과장 네가 이겼어.’라는 사인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 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아직 발표가 끝난 건 아니니까.

이어 차장직, 부장직까지 성과 발표가 이어졌다.

그리고 서 부장의 마지막 발표로 모든 직원 발표가 끝이 났다.

백 이사는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직원은 일제히 자세를 고쳐 잡고 그에게 주목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회사에서 S등급은 항상 2명이야. 올해에는 성과가 좋은 직원이 여럿 있어서 뽑는 게 좀 어려웠어. 다들 고생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직원들은 소리쳤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치는 박수.

그 소리가 줄어들 때쯤.

백 이사는 입을 열었다.

“그럼 S등급 첫 번째는……. 바로 서정우 부장! 축하한다.”

“와! 서 부장님 축하드립니다!”

“서 부장님이 받으실 줄 알았습니다.”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했다.

옆에 앉은 유 부장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지만, 부딪치는 손뼉에서 분노가 가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다음!”

그리고 남은 한 명.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몇몇 직원들은 나를 바라보며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조 차장은 아예 몸을 틀어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구, 두구, 두구…….”

처음으로 풀어진 회의실 분위기.

누가 먼저 시작한 지 모르겠지만, 남자들로 가득한 회의실 안은 저음의 목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백 이사는 그 반응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다시 우리를 바라보며 외쳤다.

“올해 S등급은……! 축하한다, 임승재 과장!”

순간 회의실에는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는 목소리.

“와! 임 과장님, 축하드려요! 역시!”

바로 강 대리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 과장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보다 더 허탈한 얼굴의 조 차장.

그는 축하의 한마디를 던지기도 전에 백 이사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이사님. 이번 S등급에서 임 과장이 선정된 기준이 뭡니까?”

모두 물어보지 못했던 그 질문.

그래, 마땅한 이유가 있겠지.

모든 직원은 목을 가다듬고 있는 백 이사의 입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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