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나의 단호한 말에 말문이 막힌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
그는 몇 초의 정적 끝에 입을 열었다.
- 민지훈 과장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물건… 없잖아.”
내가 이렇게까지 확신하는 이유.
바로 김 대표의 말실수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실수가 아니라 몰라서 내뱉은 말이겠지.
HS 코드.
HS는 국제 협약으로 채택된 국제 통일 상품 분류 체계의 약칭이다.
대외 무역 거래 상품을 숫자 코드로 분류하여, 국제 무역을 원활하게 하고 관세율 적용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
관세나 무역 통계, 운송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하는 코드이다.
내가 이 무역 관련된 코드를 아는 이유.
나는 대학교 시절 교양 과목으로 무역학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친구들과 함께 흥미가 있는 수업이 아닌, 그저 점수가 잘 나오는 수업을 듣기 위해 찾고 다니던 시절이지.
무역학 수업이 오픈북 테스트라는 것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신청해 무역학 수업을 들었었다.
그때 알게 되었던 게 바로 ‘HS 코드’.
그 시절에는 짧게 듣고 잊어버리게 되었지만, 메디컬 업계에 들어오면서 수입 품목에는 HS 코드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 한 번 배워두면 쓸모없는 일은 없다더니.
이렇게 내가 이 지식을 이용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는 줄기세포의 HS 코드가 잘못되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서 다시 코드 확인 작업 때문에 통관 서류 심사 후 판매가 가능하다는 말이었지.
그 시간이 이틀 정도 딜레이되니, 다음 주에나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뜻.
하지만 그의 대답은 말이 되지 않았다.
왜냐, HS 코드가 제품과 다를 시, 애초에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는 통관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 말에 말을 버벅거리며 답했다.
- 과장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HS 코드가 다른 건, 제 실수가 아니라 NA 바이오 측의 실수고요. 다시 통관 서류랑 코드만 하면 다음 주에 물건을 드릴 수…….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사무실에 물건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 물건의 HS 코드가 틀렸다면 애초에 사무실로 오지도 못했겠죠. 코드가 잘못되었다면, 통관에서 걸렸을 테니까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는 내 말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거친 숨소리만 내뱉을 뿐.
그리고 나는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상대 잘못 골랐어. 사기꾼 새끼야.”
내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김 대표가, 아니 사기꾼인 김만호가 자신의 사기 행각이 걸리자 전화를 끊은 것.
나는 서둘러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는 몇 번 울리지 않아 곧장 끊어졌다.
그는 내 전화를 거절했고, 나는 몇 차례 더 그에게 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김만호는 휴대전화를 꺼둔 채로 잠적했다.
나는 곧장 장홍석 사장에게 달려갔다.
내 얼굴은 김만호 때문에 붉으락푸르락해져 있었고, 장 사장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민 과장. 뭐야, 무슨 일이야?”
“하… 사장님.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 아니 김만호 물건 없는 거 맞습니다.”
“뭐?”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알아듣게 설명해 봐.”
나는 그에게 전화 내용과 김만호가 물건이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할수록 장 사장의 얼굴을 점점 일그러졌다.
내용을 모두 들은 장 사장은 고개를 천천히 한 바퀴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사장님. 우선 순천 호남 골드 메디컬에 입금하지 말라고 연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 병원도요.”
김만호를 신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급한 것.
바로 입금을 막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히도 입금 날짜는 내일.
극적으로 하루 전날인 오늘, 내가 김만호의 사기 행각을 알아냈기에 돈을 날리지 않았다.
무려 1억을 말이다.
우리 광주 메디컬은 1억을 날리지 않았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일을 알리려는 것.
장 사장은 내 말에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들며 내게 말했다.
“순천의 호남 골드 메디컬 사장한테는 내가 연락할게. 민 과장은 광주에 병원 두 군데에 좀 알려줘.”
“예, 알겠습니다. 경남권은 어쩌죠?”
“경남에도 연락 주면 되지.”
“경남 쪽에는 제가 아는 정보가 없어서…….”
김만호는 애초에 내게 경남의 정보를 준 적이 없었다.
경남 쪽은 우리가 영업하지 않는 먼 타 지역이었기에, 들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만호에게 애초에 물어본 적이 없었다.
“우선 아는 곳만 처리한 뒤에 신고하자. 그럼 바로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나는 급히 내 책상으로 다가가 정보가 적힌 종이를 찾기 위해 뒤적였다.
“민 과장.”
그때, 자리에서 나를 부르는 장 사장.
그의 부름에 나는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 그를 바라보았다.
“예, 사장님.”
“민 과장 아니었으면, 1억 날릴 뻔했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에게 답했다.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가져왔던 일입니다. 면목없습니다.”
“아니야. NA 바이오 일을 손 차장이나 나에게 가지고 왔어도 당연히 받았을 거야. 그리고 최종적으로 오케이 했던 것도 나니까 말이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초반에 조금 더 잘 알아봤어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김만호가 사기를 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저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너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어느 메디컬에 찾아와도 나처럼, 그리고 우리 회사 사람들, 병원 사람들처럼 흥분했을 것이다.
다들 늘 원하던 제품을 처음으로 손에 넣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겠지.
나는 장 사장의 말에 허리를 접었다.
“라운드 바이오……. 우선 병원에 빨리 알리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병원 목록을 체크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급한 불부터 끄고 하자. 다녀와.”
* * *
라운드 바이오에서 줄기세포 제품을 직납하겠다는 병원 두 곳.
그중 우리 회사와 가까운 병원부터 찾아왔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재빨리 만날 수 있는 의사를 찾았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광주 메디컬 민지훈이라고 합니다.”
처음 찾아오는 이 병원.
그리고 처음 만나는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의사.
그와의 통성명 후, 잡담과 사담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영업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입금을 막으러 급히 온 것이니까.
“예,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라운드 바이오 김만호 대표 아시죠?”
그에게 다짜고짜 김만호에 대해 묻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디컬 직원인 나를 보고 그는 당연히 내가 영업을 하러 온 줄 알았을 테니까.
그는 눈동자를 굴리며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요?”
“내일이 입금일 맞으시죠?”
내가 알기로는 모든 업체에 동일하게 입금일을 지정했다고 들었다.
모두 같은 날, 그러니까 목요일인 내일 입금을 받은 후, 금요일에 물건을 넣어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내 말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니, 광주 메디컬이라고 하셨죠? 무슨 일로 오셨는데 다짜고짜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한시가 급했고, 그에게 앞뒤 설명 없이 라운드 바이오와 입금을 묻자 원장은 내게 큰소리를 냈다.
그에게 최대한 정리한 멘트로 지금까지의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내가 말을 할수록 점점 표정이 굳어지는 원장.
“그게 정말입니까?”
“예, 확실합니다.”
그는 곧장 휴대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지, 끊었다가 전화를 다시 걸기를 몇 차례.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뒤 책상 위에 올려진 병원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우리 라운드 바이오에 입금은 어떻게 됐어? 중단이… 뭐? 벌써? 오후였잖아?”
심상치 않은 그의 목소리.
나는 그의 앞에 앉아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와 표정을 보며 나 역시 함께 식은땀을 흘렸다.
수화기를 세게 내려놓는 그.
그러고는 곧장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 우리는 이미 입금 끝났습니다.”
나는 순간 표정이 굳었고, 그에게 재빨리 되물었다.
“예? 내일이 입금 날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늘이었어요. 그리고 오후로 알고 있었는데……. 출근하고 연락이 와서 오전까지 입금을 마쳐야 한다고 해서, 총무과에서 병원장님 확인 후 바로 입금했다고 하는데. 김만호 이 새끼, 전화도 안 받는데.”
이럴 수가.
이미 병원은 입금을 마친 후였고, 그가 조금 전 수차례 전화를 걸었던 번호는 김만호의 것이었다.
내가 그의 사기 행각을 알아차린 순간, 그는 이미 온 거래처의 전화를 피하는 듯했다.
“혹시 금액은 1억인가요?”
“1억 조금 넘습니다. 1억5천…….”
병원의 피해 금액은 우리보다 5천만 원이 더 많았다.
병원에는 메디컬 중간 업체를 하나 걸치지 않고 들어온다는 이유를 대며 선입 금액을 더 요구했다고 한다.
내 앞에 앉은 원장과의 이야기를 짧게 끝마치고 나는 그 병원을 빠져나왔다.
또 다른 나머지 하나의 병원에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병원은 아직 입금 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출발하는 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 연결을 했지만, 그들은 내 신분에 대해 모르기에 쉽게 원장과의 통화가 어려웠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그 병원으로 출발했고, 다행히도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주차하자마자 뛰어 들어온 병원.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는 모두 메디컬 회사보다 하루 일찍 입금을 요구한 듯했고, 이 병원 역시 입금을 끝낸 후.
병원 관계자들은 분노했고, 나 또한 그 분노를 그대로 느끼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 * *
사무실에 도착하니 열린 문을 가장 먼저 바라보는 장홍석 사장.
“민 과장, 어떻게 됐어?”
그는 나를 애타게 기다렸는지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하기도 전에 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하……. 이미 병원은 모두 입금 끝낸 후였습니다.”
“뭐? 어떻게?”
“병원에는 오늘까지 입금하라고 했나 보더라고요. 금액도 전부 우리보다 높은 금액이었고요. 게다가 오전까지 입금으로 바꾸는 바람에 모두…….”
그는 내 말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사장님. 순천은요? 순천은 입금 전이었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 순천도 우리랑 금액은 똑같더라고. 입금 날짜도 그렇고. 그래서 아직 입금 전이었지.”
“그나마 다행이네요. 신고는…….”
장 사장은 내 말을 자르며 답했다.
“순천에 메디컬 사장님이랑 이야기해서 같이 신고했어. 그리고 아마 병원에서도 알아서 할 거야. 거기는 이미 입금까지 했으니까.”
“네. 그래도 저희랑 순천 쪽이 입금 전이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는 내 말에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은 채 코로 숨을 내쉬었다.
“민 과장 덕에 그래도 빨리 알아냈어.”
나는 그에게 허리를 접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애초에 조금 더 신중하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순천에 있는 메디컬도, 그리고 병원 두 곳도 마찬가지였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말이야. 그래도 민 과장이 알아차린 덕분에 금방 김만호, 아니 사기꾼 새끼 잡힐 수 있을 거야.”
“그래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응. 돈 보내고 며칠이 지났으면 이미 해외로 떴을 수도 있는데, 곧장 신고했으니 아직 도망도 못 갔을 거야.”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돈으로 피해는 안 봤지만, 그래도 우리를 상대로 사기 치려 했다는 건 벌 받게 해야지. 계약서도 다 있으니까.”
“네.”
나는 부가 서류로 제출할 것을 찾기 위해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김만호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서둘러 김만호와 주고받았던 문자, 통화 녹음, 그리고 계약서와 갖가지 서류들을 모두 정리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농락하고 사기 친다는 것.
그 죗값을 달게 받게 해줘야 한다.
* * *
그날 저녁.
장 사장, 손 차장과 함께 김만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늦은 시간에 회사를 벗어났다.
평소보다 길고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했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한 뒤, 소파에 널브러진 채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김만호, NA 바이오에 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NA 바이오 제품을 이토록 원하는 이유.
김만호가 나와 많은 사람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했던 이유.
대체 이렇게까지 사기를 치며 돈을 벌어야 했을까?
큰 본사에서 팀장까지 올라갔던 사람이 대체 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식탁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의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집이 조용했던 탓에 나는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로 다가갔다.
[발신인 : 모던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
나는 전화를 받기 전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시간은 저녁 9시를 향해 가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간이라면 같이 저녁을 먹자는 약속도, 술 한잔을 하자는 약속을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
대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 민… 과장님…….
김 원장에게서 처음 듣는 목소리.
그녀는 무슨 일인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