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안녕하십니까.”
“오셨습니까.”
신입 사원 두 명과 한태준은 출근하는 나를 보며 허리를 접었다.
“좋은 아침! 태준이는 얼굴이 왜 그러냐?”
나를 보며 인사하는 한태준의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는 듯 보였다.
“월요병이지 말입니다.”
“대체 주말에 뭐 했길래 그래?”
“저 열심히 일하려고, 주말 내내 영업 공부했습니다.”
눈을 이글이글 태우며 말하는 한태준의 표정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영업 공부?”
“영업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주말도 없이 공부했습니다. 곧 영업의 신이 될 겁니다!”
“그래. 열심히 하자, 태준아.”
그때 우리의 뒤로 출근하는 손지혁 차장.
그는 한태준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태준아. 무슨 주말까지 영업 공부를 하냐. 앞에 교과서 있잖냐, 평일에 민 과장 영업하는 거나 배워, 인마.”
한태준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손 차장을 내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한 손짓을 보냈다.
손 차장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나는 그의 옆에 섰다.
“차장님. 오늘 퇴근 후 바로 만나실 거죠?”
“응, 그래야지.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넵. 약속 장소 정해 두겠습니다.”
“알겠어. 병원에 매출은 어느 정도 파악됐어?”
“넵. 잠시만요.”
나는 그의 말에 곧장 자리로 돌아가 준비한 파일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파일을 손 차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들 물건 발주는 확실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광주 권역외상센터 유재필 교수가…….”
나는 유 교수와 지난주 나눴던 이야기를 손 차장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손 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차피 오늘 그 김 대표 만나는 거니까, 물어보지 뭐. 안 그래도 나도 물어볼 것도 많고 말이야.”
“예. 그럼 시간 잡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와 나, 그리고 손 차장 셋이서 저녁에 자리를 가지기로 했다.
김 대표는 내게 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고, 손 차장은 자신도 함께 자리하고 싶다며 약속 날짜를 오늘로 잡아두었었다.
거래처 직원과 술자리는 종종 있는 편이다.
비즈니스 관계로 맺어졌지만, 딱딱하고 어색하게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보다는 술 한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편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 * *
기나긴 월요일 근무 시간을 끝내고 도착한 약속 장소.
손 차장과 술집 앞에서 만나, 서둘러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과장님.”
먼저 들어오는 나를 보며 반기는 김 대표.
그는 내 뒤에 따라 들어오는 손 차장을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차장님. 라운드 바이오 김만호라고 합니다.”
그는 손 차장에게 명함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예, 안녕하십니까. 저는 광주 메디컬 손지혁 차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들은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고, 곧바로 우리는 테이블에 세팅이 되어 있는 자리에 착석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대표님?”
나는 그를 향해 물었고, 김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요. 저도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항상 그렇듯 거래처 직원과의 첫 술자리는 어색한 편이다.
서로 일 이야기 말고는 할 말이 없기 때문이지.
나는 서둘러 술을 주문했고, 나는 빈 잔 3개를 들고 와 소맥을 제조했다.
“자, 한 잔씩 올리겠습니다.”
보통 이런 모임에서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 그러니까 을의 입장인 메디컬 회사가 자연스레 술을 따른다.
내가 잔을 내 앞으로 가져오자, 김 대표는 서둘러 손을 뻗었다.
“아! 제가 하겠습니다, 과장님.”
하지만 나이로 보나, 직책으로 보나 가장 어린 나는 그런 대접이 불편했다.
나이가 많아도 꼭 을의 입장인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요. 제가 또 소맥은 기가 막히게 탑니다. 첫 잔은 제가 말아보겠습니다. 하하.”
나는 재빨리 술을 따른 후, 김 대표와 손 차장에게 한 잔씩을 건넸다.
그리고 우리는 술잔을 곧바로 들어 올렸다.
“반갑습니다!”
빈속에 마신 술이라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크으.
우리는 잔을 내려놓았고,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과 맥주병이 줄을 이뤘고, 안주도 중간중간 빈 접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점차 깊어졌고, 어색한 공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하지만 비즈니스 관계에서 어색한 기운이 빠져봤자, 대화의 내용은 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럼 계약금은, 그러니까 그 선입 금액은 이번 주 중으로 보내는 거죠?”
손 차장의 질문에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답했다.
“예. 전부 이번 주 목요일로 결정했습니다.”
“전부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과장님께 제가 순천 메디컬에도 납품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거기도 함께 목요일로 하려고 합니다. 목요일 계약 후에 금요일부터 물건 보내드리려면요.”
“물건은 바로 금요일에 납품받는 거죠?”
“예. 그래서 선입금을 같은 날 받으려고 합니다. 지역이 광주, 순천이다 보니까 전주에서 물건을 한 차에 실어서 하루에 다 돌며 납품하려고요. 혼자 일하는 거라,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거래처에 물건을 넣는 것, 그게 같은 지역이라면 당연히 같은 날 납품해야 하는 게 합리적이니까 말이다.
동종 업계끼리 그런 건 이해랄 것도 없었다. 당연했으니까.
“그럼요. 당연한 거죠.”
손 차장은 이 자리에 온 이유가 분명했다.
NA 바이오 줄기세포에 대해 궁금한 점. 그리고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 차장은 쉬지 않고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NA 바이오 제품은 지금 사무실에 가지고 계신 건가요?”
“그럼요. 이미 물건은 다 받아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게 수입이라 한꺼번에 많은 양을 받아야 해서, 사무실 큰 곳을 구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손 차장은 그의 말에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 서울에서 전주로 오셨다고 하셨죠? 곧장 사무실 구하는 게 힘드셨겠네요.”
“예. 그래도 생각보다 금방 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사무실 구하는 것보다 물건이 먼저 도착해 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거든요. 사무실에 재고를 꽉꽉 채워놓은 상태라 거의 제 자리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창고에 제가 얹혀사는 느낌이거든요. 하하.”
그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에 전주 가면 한번 봬요. 저희도 전주에 담당 병원 많아서 자주 가거든요. 민 과장도 전주 자주 가잖아?”
손 차장은 나를 보며 물었고,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예. 저는 그래도 2주에 한 번씩은 전주 가는 것 같습니다.”
“네, 오시면 연락 주세요. 저도 항상 전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건들 틈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시면 물건들 밀어내고 자리 마련해 두겠습니다. 그럼 한잔하실까요?”
김 대표는 활짝 웃으며 우리의 잔을 채웠다.
우리 모두 그 술을 곧장 들이켰다.
손 차장은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는지, 후련한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일 이야기를 안주 삼아 월요일 저녁을 마무리했다.
* * *
“월요일부터 너무 달렸더니, 죽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제는 무사히 들어가셨습니까?”
손 차장과 나는 탕비실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휴식을 취했다.
어제저녁 김 대표와 생각보다 많이 마신 덕에 아직 몸에 술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어. 나 점심에 원장님 만나기로 했는데, 하……. 너무 가기 싫다.”
그는 술 냄새가 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손 차장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차장님! 오늘 점심에 약속 있으셨습니까?”
“응? 아… 어. 나 병원 원장님이랑 점심 약속 있는데, 왜?”
“오늘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랑 같이 해장하자고 하셨잖습니까.”
“내가?”
그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고, 전날 자신이 내뱉은 말이 생각났는지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맞다! 아… 어제 술 마시면서 신나서 약속을 정해 버렸네. 민 과장이라도 가서 같이 해장해 줘. 약속해 뒀는데 급하게 병원에 일 생겼다고 말 좀 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손 차장은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그리고 우리 물건은 차질 없이 금요일에 들어오는 거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해 봐. 어제는 우리 다 술 많이 마셨으니까 말이야.”
“예. 어제 서류를 안 받아서, 오늘 라운드 바이오 관련 서류도 받아야 합니다. 거기에 기재해 준다고 했으니 확인해 보겠습니다.”
* * *
회사 앞 국밥집.
나와 라운드 바이오 김 대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국물을 계속 들이켰다.
나오는 소리라고는 해장이 되어 가는 우리의 숨소리뿐.
한참을 대화 없이 밥을 먹던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제야 술이 좀 깨네요.”
“저도 이제야 살겠습니다. 손 차장님은 해장하셨으려나…….”
“아마 지금쯤 드시고 있으실 겁니다. 대표님은 어제 근처에서 주무셨습니까?”
“네. 술집 근처에 모텔 있어서 바로 들어갔습니다.”
김 대표와 나는 느리게 숟가락질을 하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럼 이제 바로 전주 넘어가시는 겁니까?”
“예. 이제 슬슬 사무실로 넘어가려고요. 서류 작업도 할 게 많아서요.”
“아, 맞다. 서류!”
전날 술자리에서 관련 서류를 가져왔던 김 대표.
하지만 술자리가 무르익으며 김 대표는 내게 서류를 건네주는 것을 잊었었다.
계약서라든지 중요한 서류가 아닌, 회사의 사업자등록증과 통장 사본이었기에 다음 날 받기로 하고는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었다.
내 말에 그 서류가 떠오른 듯한 김 대표.
“맞아요. 제가 어제 서류를 챙겨 왔다가 안 드렸더라고요. 여기 사업자등록증과 통장 사본입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대로 목요일까지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물건은 금요일에 보내주시는 거 맞죠?”
“예. 입금 확인 후, 다음 날인 금요일에 바로 말씀해 주시는 수량대로 납품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수저를 그릇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정말 며칠 안 남았네요.”
“그러게요. 회사 차린 후 첫 계약입니다. 하하. 빨리 납품 시작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도 내게 답을 하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때, 들려오는 그의 속마음 소리.
[이제 진짜 며칠만 버티면 된다. 조금만 더.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그는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대체 이제 무슨 말이지?
계약과 납품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그 이야기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에게 무슨 말인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거래처가 계약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뜻인가, 그걸 조심하자는 건가?
하지만 NA 바이오 제품을 원치 않아 중간에 계약을 포기할 업체는 없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을 했고,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과장님. 이제 NA 바이오 제품 납품 시작하시면, 광주 메디컬도 곧 돈방석에 앉으실 겁니다. 제가 확신합니다!”
그의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열의에 불타오르는 듯했다.
김 대표는 내게 NA 바이오 제품에 대한 부연 설명을 늘어놓으며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김 대표와 헤어진 뒤 복귀한 사무실.
나는 박수진 주임에게 전달하기 위해 라운드 메디컬 김 대표에게서 받은 서류를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가방 속에는 다른 서류들과 카탈로그가 뒤섞여 있었고, 나는 서류를 모조리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과 손은 서류를 보고 정리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한 가지 생각만을 되뇌고 있었다.
대체 점심때 들었던 김 대표의 속마음은 뭐였을까?
뭘 조심해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대체 왜 버틴다는 말을 했을까?
아무래도 그의 속마음이 찜찜했다.
“찾았다.”
나는 라운드 메디컬 사업자등록증을 찾은 후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서류를 살펴보던 중 눈에 띄는 글자.
바로 회사 주소였다.
라운드 메디컬의 주소는 전북 전주시 행봉동…….
나 역시 전주에 병원 영업 때문에 돌아다녔기에 들어보았던 주소 명.
행봉동 근처라면 대학교 앞에 있는 곳인데?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사무실을 급히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