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꽃 한 송이는 포장이 된 채로 차 보닛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곰 인형.
곰 인형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기억.
바로 어제 김사랑 원장이 내게 보여주었던 사진 속 곰 인형과 눈앞의 곰 인형은 서로 비슷했다.
자신의 집 문 앞에 누군가가 두고 갔던 곰 인형이라며 내게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떠올라 나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의 사진과 다른 점은 단지 인형의 크기만 작을 뿐.
나는 그 물건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김 원장도 이걸 알고 있을까?
알았다면 바로 버리거나, 치웠을 텐데 아직 보닛 위에 있다는 건 발견을 하지 못했다는 뜻.
곧장 알리자니 그녀가 무섭고 두려워할 것이 눈에 선했다.
새벽에 초인종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 선에서 물건을 버리자니 불안했다.
어쨌든 그녀도 이 일을 알고는 있어야 할 테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던 찰나.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바로 그녀의 차 안쪽을 살폈다.
블랙박스.
김 원장의 차 블랙박스로 물건을 누가 두고 갔는지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김 원장의 차를 살펴보니, 블랙박스의 불빛이 깜빡이지 않는다.
뭐지, 블랙박스가 안 되는 건가?
나는 뒤를 돌아 다른 차들을 살펴봤지만, 입구에 주차되어 있던 김 원장 차 근처에 다른 차는 없었다.
그때 내 어깨를 두드리는 누군가.
“어? 민 과장님. 여기서 뭐 해?”
바로 김 원장이었다.
나는 그녀의 차 앞에 서 있었기에,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답했다.
“원장님!”
그녀는 내 얼굴을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재빨리 물었다.
“원장님, 여기는 왜 나오셨어요?”
현재 그녀는 병원 안에 있어야 할 시간.
대부분 진료가 시작되면 굳이 주차장에는 나오지 않는다.
물건을 꺼내거나, 볼 일이 없는 한 말이지.
하지만 그녀가 병원 정문도 아닌, 병원 후문으로 나와 주차장까지 나온 것을 보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내 차에 볼일이 있어서 왔지. 그나저나, 민 과장님이 내 차 앞에 왜 있어?”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보닛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는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조금 전에 전화한 게 민 과장님이었어?”
“네? 전화요?”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오늘 그 누구와도 통화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라니…….
그녀에게 되묻자, 그녀는 그제야 내 시선 끝에 있는 꽃 한 송이와 곰 인형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민 과장님. 이거 때문에 나 여기까지 부른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고개를 휘저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나한테 모르는 번호로 전화 와서 차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나와보라고 했거든. 나는 누가 내 차 긁었을 줄 알고 급하게 나왔는데, 민 과장님이 여기에 딱 서 있잖아.”
“조금 전이요?”
“응. 얼마 안 됐어. 내가 전화 끊은 후에 일 마무리하고 바로 나온 거거든. 민 과장님이 부른 게 아니야?”
“그럼요. 제가 불렀으면 제 번호로 제가 전화했겠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뭐지? 이 꽃이랑 곰 인형은 대체…….”
김 원장은 자신의 양팔을 이용해 팔짱을 끼고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나는 그녀의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원장님. 어디서 전화가 온 거예요?”
내 물음에 그녀는 휴대전화를 열어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곧장 전화가 왔던 번호를 누르고 발신 버튼을 클릭했다.
- 지금 거신 전화는 수신이 불가한 번호입니다…….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수신음.
나와 함께 그 소리를 들은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수신이 불가한 번호? 이게 뭐야?”
수신이 불가한 번호라…….
그녀와 나는 서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
그때 떠오르는 생각.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그녀에게 외쳤다.
“공중전화!”
그녀는 내 말에 놀라 어깨를 움츠리며 물었다.
“공중전화라고?”
“네. 원장님께 전화는 걸 수 있지만, 우리는 걸지 못하는 전화요. 공중전화 아닐까요?”
그러자 그녀는 손뼉을 부딪치며 답했다.
“어머, 맞는 것 같아. 민 과장님 똑똑한데?”
그녀는 정답을 맞혔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다가, 금방 다시 표정을 풀고 집중했다.
“원장님.”
“응?”
“그럼 누군가가 이 물건을 올려놓고, 원장님이 보게 하려고 차로 부른 거잖아요. 어제 보여주셨던 곰 인형. 그 사람과 동일인인 것 같은데…….”
나는 그녀의 차 앞 유리창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원장님. 블랙박스는요?”
“아… 블랙박스 고장 났는데, 아직 수리를 못 했어.”
“네? 제일 중요한 걸… 얼른 수리하세요. 누가 두고 간 건지 확인 좀 해보려고 했는데…….”
“큰 불편함이 없어서 생각을 못 했어. 곧 수리 맡길게.”
“또 언제 무슨 일 생길지 모르니까, 꼭 오늘 수리 맡기세요. 꼭이요.”
“어휴. 알았어, 알겠다고. 민 과장님 잔소리는 정말.”
그녀는 내 잔소리를 듣기 싫지 않은지, 얼굴에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꽃과 곰 인형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 원장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그 꽃과 곰 인형을 대수롭지 않게 들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어? 원장님.”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김 원장을 불렀고, 그녀는 재빨리 쓰레기통에 투척한 뒤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얼른 버려야지. 괜히 찝찝하게.”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선물 아닌 선물들.
그녀는 겁도 없이 그것들을 툭 버린 후,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 후문을 향해 걸어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는 재빨리 그녀의 뒤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원장님. 저런 일 또 있으면 꼭…….”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또 저러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정말 마지막이야.”
“제가 지금 아는 게 전부죠?”
“응. 다른 일은 없었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떳떳하게 나서서 선물을 주든가. 이게 뭐야.”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누굴까?
대체 어떤 의도로 그녀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녀는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내게 물었다.
“민 과장님은 오늘 관절 로봇 때문에 병원 온 거지?”
“네, 맞아요.”
김 원장과 나는 진료실 쪽으로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안 그래도 어제 민 과장님이 와서 관절 로봇 이야기하고 간 이후에, 오늘 아침 회의 때 그 안건이 나왔었거든.”
내가 어제 병원에 와서 만났던 원장님들.
바로 옆에 있는 김 원장을 포함해 몇 명의 의사만 만나고 갔었다.
그때, 관절 로봇에 관한 말을 했고 그 로봇이 주제가 되어 오늘 병원 회의 때 이야기가 나온 모양.
“뭐라고들 하시던가요?”
그녀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반응이 꽤 좋아.”
“정말요? 와, 다행입니다.”
“응. 아직 광주에 한 군데도 없잖아. 그러니까 그 첫 번째가 우리 모던 정형외과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반응들이지, 뭐. 우리 병원 원장님들 그런 건 또 못 참으시잖아.”
“맞죠. 다들 광주에서 제일 처음으로 선점하시려고 하는 마음들이 크신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지역에서 첫 번째, 아니 선발대로 시작한다는 메리트가 있으니까.”
선발대로 시작하면 메리트가 있는 이유.
바로 환자들의 관심이다.
지역 메디컬 뉴스만 보아도 어느 병원에 어떤 최첨단 기구가 들어온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메디컬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확인하는 것이지, 일반 사람들은 사이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런데도 환자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느냐.
바로 입소문.
작은 지역 사회에서는 입소문만큼 빠른 것이 또 없다.
특히 관절 로봇 같은 최첨단 기기가 들어온다면, 금방 소문이 퍼지고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병원 여기저기에 널리 깔리기 전, 병원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설치를 서두르는 거지.
그래야 다른 병원보다 메리트가 생길 테니 말이다.
“민 과장님. 오늘 안 원장님은 오전 진료 없으셔서 바로 만날 수 있을 거야.”
“예, 그럼 오늘은 안 원장님부터 만나 뵈러 가야겠네요.”
“그래. 고생해!”
“넵. 아, 원장님.”
그녀는 내 부름에 뒤를 돌았다.
“응?”
“조심하세요. 또 그런 거 있으면 바로 전화하시고요.”
“하하. 알겠어.”
그녀는 내 말에 싱긋 웃으며 자신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 * *
똑똑.
“안녕하십니까. 민지훈입니다.”
나를 환한 얼굴로 반기는 사람.
바로 안국환 원장이다.
안 원장은 내가 광주 메디컬로 넘어올 때, 내가 아닌 WG 메디컬과 거래를 한 원장이다.
하지만 이번 WG 메디컬의 박스 갈이 사건으로 인해 전 물량을 광주 메디컬, 즉 나에게 넘겼었다.
그가 중간에 나를 믿고 따라와 준 것이 아니라, WG 메디컬에 머물러 거래를 이어 갔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영업 선상에서 그를 배제할 것은 아니었다.
왜냐, 이 바닥은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군도 없기 때문이지.
영업이라는 것이 그렇다.
물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영업은 절대적인 아군도 적군도 없다.
영업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성공하기가 어려운 법이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내 생각보다 그와의 관계가 깊을 수도, 얕을 수도 있기에 영업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언제고 흔들릴 수 있고 어느 장단에 흔들릴지 모른다.
그것을 유지하거나, 또는 반대로 내가 그 마음을 흔들어 빼앗아 오게 하는 것이 바로 영업이다.
안 원장은 WG 메디컬과의 관계, 그러니까 김윤중 대표와의 관계는 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광주 메디컬로 나왔을 때, 내가 아닌 WG 메디컬과의 거래를 이어 갔겠지.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그는 WG 메디컬과의 거래도 끊고, 환자에게 부작용이 나온 후 결국 신고와 제보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다시 안 원장을 담당으로 맡게 된 지금, 그동안의 일을 서운해할 마음은 단 1g도 없다.
그저 내게 다시 넘어와 준 것이 고마울뿐.
안 원장 역시 내가 WG 메디컬 건을 알아내 줘서 고마운 마음은 있을지언정, 그때 내 손을 놓았던 것을 미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 과장, 오랜만이네. 어서 앉아.”
“예, 원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응. 저번에 우리 공급실 물건 전체 다 바꿀 때, 내가 한창 정신이 없어서 이야기도 못 나눴더라고.”
“맞습니다. 원장님이 그때 많이 바쁘실 때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랬지. 아무튼, 지난번 공급실에서 그거 찾아낸 게 민 과장이었잖아. 다시 한번 고맙네.”
나는 양손을 뻗어 휘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후에 저희 물건 납품하게 해주셔서 감사하죠.”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민 과장, 근데 이번에 관절 로봇 납품하려고 한다고?”
“아… 네. 들으셨습니까? 어제 안 그래도 찾아뵀는데, 진료 끝나고 수술 스케줄 있다고 하셔서 오늘 다시 왔습니다.”
“응. 어제 늦게 끝났지. 오전에 회의 때 이야기 전해 들었어.”
나는 준비해 온 카탈로그와 견적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번에 서울의 대학 병원 몇 군데에 들어간 기기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경기도권 두 군데에만…….”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광주, 호남권에는 아직이고?”
역시 그가 물어보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광주에서 자신들의 병원이 첫 번째가 되는 거냐는 질문.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오늘부터 저희 메디컬에서 영업 시작했고, 제가 모던 정형외과를 제일 처음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붙잡고 있는 듯 보였다.
“네. 아직 발주 계약을 받은 곳은 없지만…….”
안 원장은 카탈로그 위로 손을 턱하고 올려놓으며 말했다.
“우리가 먼저 계약하지.”
“네?”
나는 아직 앉은 자리에서 관절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몇 분 내뱉지도 않았다.
아니, 본론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안 원장은 뭐가 그리 급한지, 덜컥 계약 이야기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단, 우리가 선발 주자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