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김사랑 원장의 속마음.
무슨 말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새벽에 그녀에게 뭐가 왔던 걸까?
지난번, 그녀의 진료실에 있을 때 발신 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왔던 적이 있다.
그때 말고도 몇 번 더 울렸던 적이 있었다고 했었는데…….
혹시 새벽에도 또 전화가 울렸던 걸까?
그래서 김 원장이 밤새 뒤척이느라 피곤해 평소보다 다크서클이 내려온 것일까?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녀에게 지난밤 일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주변에 직접 만나서 털어놓을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원장님.”
그녀는 내가 아닌 내 옆,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내 부름에 놀란 그녀는 몸을 한 번 움찔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응?”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 아니, 왜?”
아무 일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가 없었기에 농담이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평소보다 조금 피곤해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는 거 맞는 것 같은데요?”
나는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입술을 말아 넣고,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나에게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
나는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아! 저번에 그 발신 번호 표시 제한으로 오던 전화는 이제 안 와요?”
내 질문에 그녀는 곧바로 표정을 풀고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민 과장님.”
김 원장은 이내 무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나… 사실 어젯밤에 말이야.”
어젯밤…….
조금 전 그녀가 속마음으로 말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모양.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덩달아 심각해진 얼굴로 김 원장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밤늦게, 그러니까 거의 새벽이었지, 아마?”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초인종을 누르는 거야.”
“초인종이요?”
“응. 막 잠이 들었었거든. 근데 초인종이 울리니까, 무섭더라고.”
“그렇죠. 그 시간에 올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녀는 그때가 생각나는지 핏기가 없는 얼굴로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그래서 안 열었거든. 그냥 사람 없는 척했어.”
“잘하셨어요. 그 시간에 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요. 저희 집도 가끔 술 먹은 사람들이 실수로 자기 집인 줄 알고 초인종 누를 때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잠을 잘 못 주무셨구나?”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표정이 풀리지 않았고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아니. 그리고 나서도 몇 번이나 초인종을 누르더라고. 끝까지 대꾸도 안 하고 있었어. 한 서너 번쯤? 누르다가 조용해지더라?”
“그래서요?”
“그래서 그냥 이불 머리끝까지 덮고, 떨다 보니까 잠들었는지 아침이더라고.”
그녀는 경직되어 있던 몸을 한숨을 내쉬며 풀어냈다.
“그리고 출근하려고 나오는데, 집 앞에 이런 게 있었어.”
김 원장은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내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휴대전화를 건네받았고, 그 안에 찍혀 있는 것을 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진 속에 있는 건 다름 아닌 곰 인형.
아주 특별할 것도 없는 일반 곰 인형 사진이었다.
다만 그 사진의 배경이 김 원장의 문 앞이라는 게 꺼림칙한 것이지.
“곰 인형?”
나는 사진을 보며 혼잣말을 내뱉었고, 곧바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름 돋아. 어제 초인종 누른 사람이 두고 간 건가 봐.”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하셨어요? 설마 집 안에 두고 오신 건 아니죠?”
내 물음에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집에 안 뒀지. 그게 뭔 줄 알고……. 나오면서 바로 버렸어. 찝찝해서 집 앞에도 그대로 못 두겠더라고.”
그녀는 소름이 돋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체 뭘까요? 지난번 전화했던 사람이랑 같은 사람일까요?”
내 질문에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닐 거야. 광주에서 내 집을 아는 사람도 없고, 여기서 새로 사귄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민 과장님이랑 병원 사람들이 전부인걸?”
“그러니까 동일인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야. 아마 그때 전화는 전 남자 친구일 것 같았거든. 뭐 전화를 받아서 아무런 말도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집에 초인종만 누르고 간 게 아니라 곰 인형까지 두고 갔다면……. 우선 경찰에…….”
김 원장은 내 말을 자르며 답했다.
“아무것도 안 했잖아. 그래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더라고. 그리고 민 과장님 말대로 술 먹고 초인종 실수로 눌렀을 수도 있고 말이야.”
“한 번밖에 그런 적이 없으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문단속 잘하세요. 그리고 또 그런 일 있으면 곧장 경찰에 신고하세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김 원장은 광주에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는 것을 알고 있다.
밤늦은 시간이든, 새벽이든 전화할 친구는 많을 테지만, 부르면 당장 달려와 줄 근처에 있는 가까운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무서우면 전화해요. 광주는 아무리 멀어도 15분이면 다 갈 수 있잖아요.”
내 말에 그녀는 그제야 미소를 보였다.
“민 과장님이 와주게?”
“그럼요. 뭐 신고한다면 경찰이 저보다 빨리 가겠지만요. 하하.”
내 농담 섞인 말투에 그녀는 긴장하고 있던 몸을 쭈욱 풀어냈다.
“말이라도 든든하다.”
그녀는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말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요, 원장님.”
“고마워, 민 과장님.”
그녀와 사담을 나눈 후, 관절 로봇에 관한 이야기 역시 한참 동안 나눴다.
* * *
다음 날 아침.
회의가 있다는 말에 모든 직원이 사무실로 출근했다.
출근 후 각자 정리를 마친 후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는 손 차장의 짧은 이야기로 시작됐다.
내가 관절 로봇 총판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와. 그럼 저희가 유일한 총판인 겁니까?”
한태준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메디컬 더 유명해지겠네요. 안 그래도 요즘 병원 가면 이제 굳이 설명 따로 안 드려도 광주 메디컬 이름 다 아시더라고요.”
“태준이 가는 병원도 그래? 하하.”
손 차장은 한태준의 말에 기쁜 얼굴로 답했다.
“예. 이제 저희 광주에서 유명한 메디컬 반열에 오른 것 같습니다!”
장 사장은 회의실에서 유일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있었고, 한태준에게 그리고 우리 전 직원을 향해 외쳤다.
“조금 더 힘내줘, 다들. 더 열심히 해서 광주에서 제일가는 메디컬 한번 돼보자!”
“넵!”
회의 초반부터 의지를 굳히며 모두 불타오르는 얼굴로 집중했다.
각자 주간 보고를 마친 후, 장 사장은 나와 손 차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손 차장이랑 민 과장은 로봇 관절 반응 좀 알아봤나?”
그의 질문에 나는 손 차장을 바라보았고, 손 차장은 턱을 치켜들며 나에게 먼저 말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장 사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제 모던 정형외과에서 몇 분의 원장님만 먼저 만나 뵙고 왔습니다. 관절 로봇에 대해서는 우선 전부 호의적인 반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 그래?”
장 사장은 자신의 턱을 만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아직 서울에 몇 군데만 기계가 깔려 있어서, 아직 광주에 들어오는 걸 꺼려하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손 차장은 내 말에 힘을 실어주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저는 어제 두 군데 큰 병원만 돌고 왔는데, 이쪽도 전부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구입할 생각이 있다는 거지?”
장 사장의 질문에 손 차장이 곧장 답했다.
“예. 다른 병원에서 넣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넣어야 하지 않겠냐는 반응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원들에서 넣기 시작하면 자신들이 뒤처지지 않게 따라서 넣어야겠다는 말도 있었고요.”
장 사장은 손 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신입 사원 두 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성훈이랑 우진이 생각은 어때? 혹시 궁금한 건 없고?”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고, 조용히 있는 신입 사원에게 발언의 기회를 준 장 사장.
권성훈이 궁금한 점이 있었는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저… 총판을 가지게 되면 저희에게 좋은 겁니까?”
신입 사원 다운 질문이었다.
총판을 맡게 되면, 오히려 우리가 피곤하다고만 생각할 때지.
그의 말에 장 사장은 나를 보며 눈썹을 들썩였다.
내게 답변을 하라는 뜻이지.
나는 고개를 돌려 질문을 한 권성훈, 그리고 옆에 앉은 주우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좋은 일이야. 특히나 이렇게 전국에 총판이 하나라면 더더욱. 관절 로봇 같은 경우는 현재 서울 병원 쪽에 몇 군데만 들어가 있어. 그런데 갑자기 광주에 병원에 그 기계가 들어온다면?”
내 물음에 주우진이 곧바로 외쳤다.
“그럼 지역 메디컬 기사에 실리는 거 아닙니까? 매번 특이한 기구나 일 생기면 사이트에 올라오더라고요.”
“맞아. 우진이가 평소에 메디컬 기사 잘 보고 있었네. 그럼 그 기사를 보고 다른 병원들도 따라서 넣기 시작하겠지. 금방 여러 병원에서 각자 담당 메디컬로 연락해서 발주할 테고, 그럼 총판인 우리 회사로 연락이 오겠지.”
“그럼 총판이 우리 회사 한 군데니까, 우리한테만 주문이 엄청나게 오겠네요?”
권성훈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답했다.
“맞아. 윗지방을 빼고 아랫지방에서는 전부 우리 회사로 연락을 할 거야. 이게 총판을 맡게 되면 좋은 이유지.”
내 말이 끝나자 장 사장은 말을 이어 붙였다.
“보통 서울에서 사용하는 의료 기기가 지방보다 좋은 거라는 거, 옛말이긴 해. 하지만 아직도 그런 게 많아. 그래서 사람들이 큰 수술을 하면 서울로 가는 게 의사 실력 탓도 있지만, 의료 기기 탓도 크거든.”
장 사장은 코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갔다.
“윗지방에 있는 게 아랫지방에는 없어도 그러려니 해. 근데 지방에 어디라도 첨단 의료 기기가 들어오기만 하면, 타 지역에서도 난리가 나는 거야.”
그의 말에 신입 사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각자 지역이, 각자 병원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 지방에 최첨단 기기가 들어오면 자신들도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이번 관절 로봇도 마찬가지지.”
“광주에서 몇 군데 놓이기 시작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연락이 당연히 온다는 말씀이시죠?”
주우진의 말에 장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금방 불티나게 연락이 오기 시작할 거야. 관절 로봇 인원을 어떻게 나눌 거냐면…….”
장 사장의 말에 나머지 직원들은 볼펜을 들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태준이를 필두로 성훈이랑 우진이가 설치하고 설명 위주로 하고, 손 차장이랑 민 과장이 광주 지역부터 영업 시작하면 될 것 같아.”
그의 말에 우리는 볼펜을 다이어리에 끄적였다.
“민 과장.”
“예, 사장님.”
“어제 관절 로봇 본사 대표랑은 내가 연락했는데, 민 과장 칭찬을 엄청나게 하더라.”
나는 장 사장의 말에 눈을 연신 깜빡였다.
“우리 회사가 광주에서 유명하다고 했다더니, 민 과장이 더 유명하다던데? 하하.”
장 사장의 말에 손 차장이 대신 입을 열었다.
“와. 민 과장이 더 유명하대요? 대단하네, 민 과장.”
“그 본사 대표님과 제가 직접 만났었잖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하하.”
“과찬은. 내가 낸 이야기도 아니고, 본사에서 그렇게 알고 있던데. 우리 민 과장, 이러다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겠어?”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멀었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 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관절 로봇은 어차피 발주 낸다고 해도 시간이 좀 걸릴 거야. 하루라도 빨리 영업 시작해야겠지?”
“넵.”
“민 과장은 어제 모던 정형외과 원장님들 다 만난 건가? 인원이 많아서 다 못 돌았지?”
“예. 몇 분은 어제 진료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뵀습니다.”
“그럼 모던 정형외과 먼저 다시 가서 결정짓고 와. 견적서 나왔으니까 가져가고.”
“네, 알겠습니다.”
* * *
모던 정형외과에 도착하니 진료 주차장에 ‘만차’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직원만 알 수 있는 의료진 주차장으로 향했다.
가끔 수술 기구가 급할 때 몇 번 이용했던 적이 있는 병원 뒤쪽 주차장.
역시나 그곳에는 자리가 있었고, 나는 서둘러 주차를 마쳤다.
곧바로 차에서 내려 병원 후문으로 걸어가던 그때, 시야에 걸리는 차 한 대.
모던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의 차였다.
김 원장의 차는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오늘 특별하게 눈에 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차 보닛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김 원장이 실수로 두고 간 건가? 라는 마음에 그 차 앞으로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물건.
바로 꽃 한 송이와 손바닥만 한 작은 곰 인형이었다.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