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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71화 (171/339)

171화

곧은 정형외과 앞 주차장.

주차한 뒤, 나는 병원에 올라가지 않고 차에 앉아 있었다.

아직 병원의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병원에 올라가 정윤성 원장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결론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원장의 아내가 개인 SNS에 남편이 있는 티를 내지 않는 것.

그것은 내가 정 원장에게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건 오로지 정 원장 아내의 사적인 일이기에.

하지만 그녀가 내게 남편이 없다며 사적으로 다가오는 일은 나 홀로 묵인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그건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일이었고, 나는 정 원장에게 영업하는 사람이기에 이 일을 모른 체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정 원장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내가 여수 본가에 갔을 때, 산책하다가 그녀를 마주쳤었다?

그 이야기는 할 수 없다.

당시, 나는 그녀에게 내 정체를 밝히지 않았었다.

어제 정 원장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도 나는 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 원장 입장에서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가장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최선의 해결 방법은 그녀가 나에 대한 마음을 접게 하는 것.

더불어 정 원장에게 도움을 주어 그가 아내의 마음을 돌려내는 것이다.

정 원장은 자신의 아내에게 자상하게 대하여 마음을 얻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적어도 어제 술자리에서 본 정 원장의 마음은 그랬다.

모든 점을 고려하자 최선의 방안이 떠올랐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혼잣말로 차 안에서 외쳤다.

“아! 내가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그리고 휴대전화를 들어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 * *

똑똑.

“원장님, 저 왔습니다.”

“어. 민 과장 왔어?”

정 원장은 막 병원에 도착한 듯, 가운을 아직 걸치지 않은 채로 나를 반겼다.

“네. 식사는 하셨습니까?”

“응. 어휴, 아침에 술 깨고 오느라 힘들었지 뭐야. 나 가운만 걸치고……. 얼른 앉아.”

“넵.”

나는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정 원장은 가방을 정리하고, 의사 가운을 걸치며 내게 물었다.

“오늘 올 거라더니, 진짜로 왔네?”

어제 술자리가 끝날 때쯤, 내일 병원에 가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 약속을 지킨 나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정 원장.

“그럼요. 영업사원에게 약속은 칼 같은 거잖습니까. 당연히 원장님 뵈러 와야죠. 속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안 그래도 점심에 국밥으로 해장하고 왔어.”

“진료 시간은 아직 좀 남은 거 맞으시죠?”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응. 아직 30분 정도 남았어. 왜?”

“원장님도 쉬셔야 하니까, 저도 시간 보고 가려고요.”

“괜찮아. 민 과장이 30분 꽉 채우고 가도 돼. 하하.”

처음 정 원장을 만나러 왔을 때는 10분의 문턱을 넘기 위해 노력했었다.

어떻게 해야 5분, 10분을 넘을 때까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는데, 지금은 정 원장이 자기 시간을 나와 나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나는 곧장 휴대전화를 열어 미리 준비해 둔 표를 정 원장에게 전송했다.

딩동.

정 원장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는 곧장 휴대전화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메시지가 온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바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원장님, 선물입니다.”

“어? 이게 뭐야? 방금 이거 민 과장이 보낸 거야?”

그는 휴대전화의 메시지 함을 열어 내게 보이며 물었다.

“네. 사모님이랑 가서 오랜만에 오붓하게 데이트하시라고 표 구했습니다.”

“에이, 우리 와이프 이런 거 안 좋아할걸?”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의 아내는 연극을 좋아한다.

SNS에는 연극을 보러 다녀온 이야기가 많았고, 내게 메시지로 연극을 보자는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했었으니까.

하지만 평소 관심이 없었던 정 원장은 그걸 몰랐던 게지.

그러나 내가 정 원장에게 당신의 아내는 확실히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터.

“여자분들 가끔 그런 이벤트도 좋아하실 거예요.”

그는 내 말에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연극 표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말을 이어 갔다.

“오랜만에 꽃다발도 사 가셔서, 연애 때처럼 데이트하고 오세요.”

“꽃다발은 무슨. 우리 이제 그런 거 할 때는 지났지.”

“그러니까 오랜만에 꽃다발 주시면 사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그는 내 말에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그는 시선을 옮겨 휴대전화의 스크롤을 내려 표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는 듯했다.

“어? 나 이날 안 그래도 약속 없는 거 어떻게 알고 이 시간으로 예매했어?”

나는 연극 표를 수요일 저녁으로 예매했다.

병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원장들의 진료 스케줄이 뜨는데, 그걸 보고 정 원장의 휴진 시간을 확인했지.

“제가 원장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

나는 그에게 너스레를 떨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역시, 민 과장 준비성 철저한 거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고마워. 이런 거 연애 이후로 같이 보러 갔던 적이 없는 거 같긴 하네.”

“아마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재밌게 보고 오세요.”

“그러네. 여수 예술 마루에서 공연하네?”

“네. 여수에 이 공연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는 내 말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민 과장 덕분에 문화생활 좀 즐기고 와 볼게.”

“넵. 사모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오십시오. 하하.”

부디 이 작전이 먹히기를 바라며 나는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 * *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부터 우리는 사무실로 모두 출근했다.

회의 일정이 미리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 모두가 병원이 아닌 사무실로 먼저 출근해 이렇게 만나질 때가 있기도 하다.

“오랜만에 출근 시간부터 사무실에서 만나네?”

손지혁 차장은 나와 한태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저는 조금 이따가 병원 원장님과 약속이 있어서 그때 맞춰 나갈 것 같습니다.”

나는 손 차장을 향해 오늘 동선을 이야기했다.

“그래? 나도 전북 쪽으로 돌아야 해서 곧 나가려고 하는데, 나랑 비슷하겠네. 태준이는?”

손 차장의 질문에 나 역시 고개를 돌려 한태준을 바라보았다.

한태준은 분주한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답했다.

“저는 바로 나갈 것 같습니다. 납품해야 하는 병원이 많이 쌓여 있어서요.”

그의 말에 납품 준비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납품 준비 테이블에는 병원에서 발주가 들어온 물건들을 챙겨 올려 둔다.

그리고 발주 물건 위에는 각 물건이 들어가야 할 병원 이름이 붙어 있다.

평소 나와 손 차장, 그리고 장 사장은 각자 병원에 들어갈 때, 테이블을 확인해 그 병원 물건을 챙겨가고는 한다.

하지만 일부러 그 물건만 넣기 위해 병원을 찾지는 않는다.

납품만을 하기 위해 병원을 무턱대고 가게 된다면 병원의 원장과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딱 납품만 하러 병원에 가는 거라면 영업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상당한 시간 낭비, 기름값 낭비인 셈.

한태준은 납품뿐 아니라 영업도 하는 직원이기는 하지만 아직 나를 포함한 위 직원들처럼 영업력이 뛰어나지는 못하다.

한태준이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직 경력이 부족한 것이지.

그렇기에 한태준은 영업 외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는 편이다.

따라서 이런 납품 업무 대부분은 한태준 홀로 처리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태석과 한태준이 같이 이 업무를 했었다.

백태석은 한태준보다 몇 개월 후임이었기에 백태석이 더 먼 지역까지 가고는 했지.

그런 백태석이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그 업무까지 모두 한태준이 떠맡게 되었다.

사장 직책인 장 사장이 납품하는 일은 드물고, 손 차장과 내가 한태준의 업무를 조금씩 나눠서 하고는 있다.

그러나 사실상 납품보다 영업이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에 우리는 영업 쪽으로 시간을 더 할애하고 있다.

납품 테이블에 가득 쌓여 있는 물건들. 그것을 바라보고 나는 한태준을 향해 말했다.

“태준아, 내가 오늘 광주 쪽에 있을 거니까 동선이랑 맞는 건 내가 들고 나갈 거야. 나랑 나눠보자.”

“감사합니다, 과장님.”

그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는 무슨……. 같이 하는 건데. 그나저나 요즘 혼자 물건 돌리느라 네가 고생이 많다.”

내 말에 손 차장은 공감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 태준이 하루 내내 운전하고, 납품하고, 또 운전하고. 네가 고생이 많네. 항상 운전 조심하고, 너무 무리해서 한 번에 가지 마. 병원 확인해서 급한 곳부터 천천히 돌아. 밥 잘 챙겨 먹고.”

“네, 알겠습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병원은 뭐 항상 자기들이 제일 급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오전에도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요즘 점심에 김밥 한 줄도 사 먹기 힘들 때가 있다니까요?”

한태준은 고개를 떨구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때 우리 뒤에서 장홍석 사장이 다가오며 우리를 향해 외쳤다.

“안 그래도 오늘 면접 보러 오기로 했어.”

그의 말에 놀라 우리 셋은 모두 고개를 돌려 장 사장을 바라보았다.

“네? 면접이요?”

“어. 태석이가 나갔는데, 갑자기 태준이가 막내 돼버려서 혼자 일하는 거 나도 다 알고 있어. 오늘 면접 봐서 최대한 빨리 직원 구할 테니까 조금만 힘내고. 민 과장이 바쁘겠지만, 태준이 좀 도와주고.”

역시, 사장의 직책은 아무나 다는 것이 아니다.

항상 위에서 모든 직원을 바라보고 어우르는 사장직.

장 사장은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한참 전 공고를 올리고 오늘 면접을 봐 직원을 구하려는 모양이다.

손 차장이 장 사장을 향해 말했다.

“아… 그래서 오늘 사장님께서 오후에 사무실 계신다고 한 겁니까?”

“어. 오후에 면접 볼 사람이 수두룩하다.”

한태준은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장 사장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사장님입니다! 그럼 제 밑으로도 막내 들어오는 겁니까?”

“그래. 손 차장이랑 민 과장은 괜찮고?”

“네. 저희야 뭐 신입 들어오면 일 분담도 편하니까 좋죠.”

장 사장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경력 직원도 좀 있었으면 회사를 키우기 더 좋을 것 같은데, 어중간한 경력 직원 뽑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네.”

이쪽 바닥에서 마땅한 경력 직원을 뽑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손 차장 정도의 경력직은 이미 머리가 커질 만큼 커져, 들어온다고 하면 그의 스타일대로 일을 할 것이다.

그럼 회사에서는 기존에 해왔던 방식대로 끌고 나가기가 힘든 것은 사실.

나는 장 사장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기에, 자신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제가 제 자리에서 조금 더 노력하겠습니다!”

장 사장은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역시 우리 민 과장님, 책임감 하나는 끝내주신다니까? 하하. 어차피 경력직 뽑아도 대리 직책 정도로만 보려고 했어. 민 과장 일이 점점 많아지니까, 힘들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는 내 걱정에 경력 직원을 뽑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태준이도 열심히 하고 있고, 신입 직원 뽑히면 제가 제 간단한 업무들은 태준이에게 조금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한태준은 내가 일을 넘긴다는 말에 활짝 웃어 보였다.

단순히 일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신입의 일을 모두 할 줄 아는 한태준이기에 내가 업무를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테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병원을 담당하는 업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태준도 작은 규모의 담당 병원이 이미 있지만, 내가 맡고 있는 병원들은 모두 규모가 큰 편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말에 한태준은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당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그럼 신입 직원들 들어오면 태준이가 가르쳐야 할 테니까, 더 바빠지겠네?”

손 차장은 한태준을 바라보며 놀리는 듯한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럼 저는 빨리 납품하러 다녀오겠습니다.”

한태준은 아침에 막 출근했을 때와는 달리 기쁜 얼굴로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태준이 나가고, 손 차장도 금방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병원 원장과의 선약 시간이 조금 남아 사무실에 앉아 있던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휴대전화를 바라보니, 화면에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이쪽 업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낯선 전화는 잘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곳에서 어떤 영업 전화가 올지 모르기에, 항상 모든 전화는 받고 보아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스팸 전화일지라도 말이다.

사무실에는 장 사장과 나, 그리고 박수진 주임만이 자리해 있었기에 나는 굳이 사무실을 빠져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광주 메디컬 민지훈 과장님이신가요?

“네. 맞는데, 어디 병원이신가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 회사와 이름, 그리고 직책까지 알고 있는 것은 병원뿐이다.

내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었을 테니까.

하지만 저장이 되지 않은 번호였고, 휴대전화 번호였기에 나는 전화를 건 쪽의 병원명을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 여기는 병원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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