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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67화 (167/339)

167화

휴대전화에는 두 통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고,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세연 정형외과의 원장이자 내 고등학교 동창인 한선우였다.

내가 정윤성 원장을 만나러 들어가기 전 걸었던 전화의 피드백이 지금 온 모양.

나는 시끄러운 병원을 빠져나와 주차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한선우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 지훈아.

“어, 선우야. 계속 전화했었네? 나 병원 좀 들어갔다가 온다고 이제 봤어.”

- 그래? 나도 너한테 부재중 전화 찍혀 있길래. 아까 진료 중이었거든. 급한 일인가 싶어서 몇 번 전화했었어.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은……. 잘 지내지?”

- 그럼. 너도 잘 지내고?

“응. 평소랑 똑같이 지내고 있지, 뭐.”

- 그냥 전화한 거야?

“뭐 좀 물어보려고 전화했었어.”

- 뭔데?

“너 정윤성 원장님이라고 알지?”

- 정…윤성? 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지금 여기 광주 곧은 정형외과에 계시는 원장님이신데…….”

- 아! 정윤성 선배님! 알지, 알지!

“맞아, 그분! 우리랑 나이 차이 좀 나는데, 너는 어떻게 아는 거야? 같이 대학 생활할 수가 없는 나이 차이잖아.”

- 광주 의대 동문회 때 알게 됐어. 선배님도 여수분이시거든. 그래서 친분이 생겼지. 근데 왜?

“나 이번에 곧은 정형외과에 정 원장님 영업하러 왔었거든. 근데 광주 의대 출신이시더라고. 그래서 너랑 아는 사이인가 해서 물어봤어.”

- 그랬어? 광주 의대 출신이 널렸지, 뭐. 광주에는 대부분이 광주 의대 출신들이니까.

“그렇긴 하지. 안 그래도 방금 뵙고 나오는데, 너 이름 물어보니까 안다고 같은 여수 출신이라고 하시더라고.”

- 역시 나를 기억하시네, 선배님. 다음에 선배님이랑 같이 한번 보자.

“그럼 나야 좋지.”

- 그래. 날 한번 잡아보자. 근데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야?

“어… 사실 말이야. 내가 부탁할 게 좀 있어서…….”

- 부탁? 뭐든 해. 너 나한테 티켓 하나 있잖아.

“기억하네, 선우?”

- 그럼. 그걸 어떻게 잊냐. 네가 우리 엄마 도와줬는데. 네 덕분에 우리 엄마 수술도 잘 됐잖아.

“에이, 뭐 그게 내 덕인가. 어머님은 이제 괜찮으시고?”

- 응. 다 회복하셨지. 다 네 덕이야. 다음에 엄마가 고맙다고 너 여수 오면 한번 보자고 하시더라.

“괜찮아지셨다니까 다행이네. 다음에 너 여수 내려가면 따라가서 한번 뵈러 가야겠네. 아, 그래서 너한테 부탁 하나 좀 하려고 하는데 말이야.”

- 어. 뭐든! 누굴 죽여달라거나 그런 것만 아니면 내가 다 들어주지.

“하하, 죽여주기는 뭘. 별 이야기를 다 한다.”

- 진짜야. 나 정말 그때 고마웠어. 너한테 마음에 빚도 많고……. 아무튼, 뭐야. 뭐길래 우리 민지훈이가 나한테 부탁할 일이 있을까?

“곧은 정형외과 정윤성 원장님 있잖아…….”

한선우는 내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는 것처럼 내 말을 끊어내고 소리쳤다.

- 아! 거기 뭐 납품하게 내가 이야기 좀 잘해 줄까?

“와. 우리 선우 파워 장난이 아니네. 물건도 넣게 해줄 수 있는 거야?”

- 하하, 말은 해줄 수 있지. 납품이 확정되는 거까지는 내가 장담 못 하지만 말이야.

“됐어, 인마. 그 영업은 내 일이니까. 하핫.”

- 그럼 뭔데. 자리라도 마련해 줘? 근데 그건 부탁 아니어도 셋이 자리 한번 하자니까?

“자리는 내가 정 원장님이랑 거래를 트고 나면 만들어 줘.”

- 좋아. 그럼 대체 부탁할 게 뭐야?

나는 목을 가다듬고 그에게 답했다.

“정 원장님 관심사 좀 알려주라.”

한선우는 내 말에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 응? 관심사?

“어, 관심사. 원장님이 좋아하시는 거 뭐 없어? 골프라든지, 뭐 취미 생활도 좋고.”

- 음……. 나도 최근 몇 년 동안은 선배님 못 봬서 잘은 모르겠는데, 한번 알아볼게.

“알겠어. 티켓 한번 쓰자.”

- 이걸로 티켓을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거 아니냐? 너무 약소한 부탁인데.

“아깝긴. 그래도 부탁은 부탁이지. 너 아니면 내가 어디서 원장님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내겠냐? 그리고 그 티켓으로 인해서 내가 얼마나 잘될지 모르는 거지. 하하.”

- 역시 민지훈답다. 근데 원장님, 운동 같은 거는 별로 뭐 하시는 거 없는 것 같던데. 우선은 내가 알아보고 바로 연락 줄게.

“그래. 고맙다, 선우야.”

- 고맙긴. 바로 연락할게.

* * *

“고생하셨습니다.”

사무실로 들어오니 박수진 주임만이 자리해 있었다.

“네, 다녀왔습니다.”

박 주임은 지난주 술이 잔뜩 오른 채로 나에게 재차 고백 아닌 고백을 했었다.

그 이후 단둘이 사무실에 있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그 당시 그녀의 상태로 보자면 기억을 정확히 하는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얼굴이 취기로 달아올랐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때의 일을 기억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니,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는 게 정확하겠다.

매일, 하루에 9시간을 회사에 있어야 하고, 그중 몇 시간만을 마주친다고 해도 그 일로 어색해지기는 싫으니까.

더불어 그날 일에 대해 맨정신으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나는 그녀의 마음을 재차 거절할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은 여전히 같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사이는 더더욱 불편해지겠지.

박 주임도 내 마음을 알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그녀의 마음도 점점 식어갈 거라고 예상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보고를 올릴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과장님, 커피 한 잔 드세요.”

그녀는 탕비실에서 머그잔 두 잔을 가지고 나와 내게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아……. 고마워요.”

박 주임은 내가 잔을 건네받자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날은 잘 들어가셨어요?”

“네?”

“저번에 회식 때요. 저 그날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그녀는 그날 자신이 취했다는 생각에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흐렸다.

“아… 저는 잘 들어갔죠. 주임님은 잘 들어가셨어요?”

“넹. 다음날 머리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게요. 그날 저희 전부 다 많이 마셔서. 저도 다음날 숙취로 고생 좀 했어요.”

“맞아요. 저도 회식 후반부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니까요?”

그녀가 그날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던 그때, 편의점에서의 기억이 나는지 안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급히 재차 입을 열었다.

“회식 끝나고 나오고 나서부터는 기억이 거의 없어요. 진짜예요.”

박 주임은 눈을 연신 깜빡이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행동과 말투로 보아, 그녀는 그 당시 나와 나눴던 대화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술을 많이 마시고 했던 말이기에 그렇겠지 싶었다.

나 또한 그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고, 그녀의 마음이 그렇다면 더더욱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던 그때, 내 책상 위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주임님, 저 전화 좀 받을게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여기서 받으세요. 저도 어차피 다시 일하러 가야 해요.”

나는 자리를 벗어나 받으려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수신 버튼을 눌렀다.

“어, 선우야.”

- 응. 지훈아 통화 가능해?

“그럼. 벌써 알아본 거야?”

- 뭐 어려운 일이라고. 하하. 벌써 알아봤지.

“대단하다.”

- 형이 누구냐. 나 친한 선배 있어서 통화하다가 물어봤거든. 근데 정윤성 선배님 취미가 딱히 없으시대.

“정말? 하… 어렵네.”

- 그러니까. 근데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시더라고.

“강아지?”

- 응. 엄청나게 오래되셨대. 사모님이 지금 여수에 살고 계시는데, 거기에 강아지가 있나 봐. 선배님은 광주에 일 때문에 오셔서 혼자 오셨고.

“어. 사모님만 여수에 계시는 건 들었어.”

- 그래? 근데 강아지 때문에 사모님도 광주로 이사 오라고 하시나 봐.

“그 정도야?”

- 그러게 말이다. 강아지를 자식처럼 키운다고 하시더라고. 지금 애는 없고.

“하긴. 강아지 키우면 그렇게 되지.”

- 맞네. 지훈이 너희 집도 강아지 키우지 않았냐? 고등학교 때 있었던 것 같은데.

“자식. 그걸 기억하네?”

- 당연하지, 인마. 내가 기억력 하나는 좋잖냐. 잘됐네, 강아지 이야기하면서 선배님한테 가봐.

“그래야겠다. 취미도 딱히 없으시면, 공통점이 그거밖에 없겠네. 고맙다, 선우야.”

- 고맙기는. 내가 더 고맙지. 이런 간단한 거로 티켓을 써버려 줘서. 하하.

“아… 내가 너무 간단한 거로 썼나?”

- 무르기 없음이다?

“당연하지. 하하. 진짜 고맙다.”

- 아니야. 다음에 정 선배님이랑 같이 한번 보게 영업 잘해 놔라.

“그래, 조만간 보자.”

정윤성 원장이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한 가지가 강아지라…….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 * *

다음 날.

나는 오늘도 역시 곧은 정형외과에 눈도장을 찍으러 갔다.

수많은 메디컬 영업사원 중 내가 그들보다 정 원장의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많은 영업사원이 시간과 정성이 영업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아니, 못 하는 것이지.

이론대로 하기만 해도 반은 먹는다는 것을 알지만, 노력이 부족한 것.

나는 오늘도 내 일에 있어서 노력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처음 온 날, 그리고 두 번째로 왔던 어제.

세 번째로 온 오늘까지도 나는 같은 모습, 같은 미소를 유지한 채 진료실 문을 열었다.

“어? 또 왔네요?”

정 원장은 나를 바라보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나를 알아봤다. 그저 알아봐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내 계획이 성공해 가는 길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남에게 관심이 없고, 지인들만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광주 메디컬과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더욱더 환한 미소로 그에게 다가가 물었고,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에이, 어제도 왔는데 잘 지냈긴요.”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감동입니다, 원장님.”

그가 내 이름을 모르기에 나는 정 원장이 민망하지 않게 내 명함을 재차 내밀었다.

“그래도 오늘은 다른 해가 떴으니, 명함 한 번 더 드리겠습니다.”

정 원장은 내 행동에 입꼬리를 올리며 명함을 받아 들었다.

“그래요, 민 과장님.”

“저 선우랑 동갑인데,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그럴까… 그럼?”

“네! 원장님, 카탈로그는 계속 바쁘셔서 못 보셨을 것 같아서 정리된 다른 파일로 하나 가지고 와 봤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주면 한번 봐볼게. 안 그래도 출근하고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와서 아직 카탈로그 하나도 못 봤거든.”

“그러시죠? 워낙 많은 메디컬에서 오니까 정신없으시겠어요.”

“근데 민 과장처럼 삼 일 내내 오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네.”

“정말요?”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그와 카탈로그와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일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나는 그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원장님, 혹시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안 키우시나요?”

“동물? 갑자기 왜?”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에게 관심사를 끄집어내야 했다.

“사모님은 여수에 계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광주에 혼자 계시는데, 외로우시지는 않을까 싶어서요. 보통 혼자 계시는 분들이 반려동물 많이 데리고 계시길래 여쭤봤습니다.”

그는 내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식 사진을 보여주듯 사진첩을 열어 한 장씩 사진을 수차례 넘기며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 자식 같은 애야.”

“진짜 귀여운데요? 푸들이죠?”

“응, 푸들 맞아. 지금 와이프가 여수에서 혼자 키우고 있거든. 내가 광주에 와 있어서 못 보는데, 주말에 약속 없을 때는 무조건 여수 간다니까. 얘 보러.”

“그러시겠어요. 저도 본가에서 강아지 키우는데, 어찌나 보고 싶은지. 그렇다고 광주로 데려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거의 집에 잠만 자러 들어가다 보니, 강아지가 외로울 것 같아서요.”

정 원장은 손뼉을 부딪치며 내게 말했다.

“어? 나도 같은 이유야. 신기하네. 사람들은 자기 외롭다고 키우는 사람이 태반이거든. 강아지가 더 외로운데 말이야. 자기들 밖에 나가 있는 건 생각은 못 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안타까웠거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내게 삼 일 만에 처음으로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우리 후추 사진 좀 봐.”

“이름이 후추입니까?”

“어. 성은 ‘통’씨야. 하하.”

“통후추요? 진짜 원장님 센스 장난 아니십니다. 하핫.”

잠시도 오디오는 조용하지 않았고, 그는 계속해서 강아지 이야기를 신난 얼굴로 내뱉고 있었다.

먹혔다.

오늘은 그와 30분을 넘게 진료실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대화를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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