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나는 김사랑 원장을 바라보며 침을 한 번 삼켰다.
“누구시길래 그러세요?”
내 질문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흠. 아니, 민 대리님 혹시 저녁에 뭐 해?”
“오늘 저녁이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없어요.”
“그럼 나랑 오랜만에 술 한잔할래?”
* * *
“짠!”
김사랑 원장은 나를 보며 술잔을 들었다.
크으.
소주를 한 번에 털어 넘긴 후 앞에 놓인 안주를 집었다.
“민 대리님이랑 오랜만에 술 마신다, 그렇지?”
“그러게요. 원장님,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술자리에 오기 전, 병원에서 그녀의 통화를 듣고 난 후였기에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한껏 풀이 죽은 표정으로 자신의 술잔을 손으로 빙빙 돌리며 답했다.
“그게……. 요즘 부모님께 자꾸 연락이 오네.”
“부모님이요? 무슨 일 있으세요?”
부모님이라는 말에 나는 한층 더 걱정스러워졌다.
그녀의 집은 원래 서울이었기에, 항상 부모님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김 원장을 걱정하신다는 말을 자주 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옅은 웃음을 피식 터트리며 이야기했다.
“아니. 무슨 일은 없고, 나 선보라고 하셔서.”
“예? 벌써 선을 보라고 하신다고요? 에이. 우리가 아직 선볼 나이는 아니잖아요.”
“내 말이. 나는 아직 연애도 많이 안 했는데 말이야.”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썹을 팔자로 꺾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 놓인 빈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술 받으세요.”
김 원장은 입술을 굳게 닫고 양손으로 내가 따르는 술을 받았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좋은 선 자리 있어서 그러신 거 아닌가요?”
“아니야. 그냥 시집가라는 뜻이야. 선이라는 게 양가 부모님이 이미 허락한 자리, 당사자들끼리 만나보고 바로 결혼하라는 거잖아.”
“하긴… 선이 그런 거죠? 부모님께서는 혹시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김 원장은 내 질문에 그제야 고개를 들고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급하게 원장님 결혼 생각하신다기에 혹시 정년이 얼마 안 남으신 직업인가 해서요. 보통 부모님들 회사 그만두시기 전에 자식들 얼른 결혼시키고 싶어 하시니까요.”
“아… 우리 부모님은 정년이 정해져 있는 직업은 아니셔. 우리 부모님 직업은…….”
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의 부모님 직업을 꼭 알아야 할, 궁금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쪼는 대화법은 사람을 집중하게 만든다.
“…비밀!”
기대하고 있던 내가 무색하게, 그녀는 검지를 치켜들고 입과 코앞에 가져다 대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뭐예요. 왜 이렇게 원장님은 비밀이 많은 거예요. 하하.”
“나 신비주의 컨셉이잖아. 하핫.”
그녀와 나는 술잔과 함께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술잔이 여러 번 부딪쳤다.
서로 젓가락질이 더뎌지고, 술잔이 부딪치는 횟수가 적어질 때쯤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원장님은 결혼을 안 하고 싶으신 거예요?”
“나? 아니, 나는 당연히 하고 싶지. 선 자리 같은 거 말고, 그냥 편하게 연애하고 싶어. 나 아직 어리잖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원장님 어리시죠. 부모님께서 원장님 타지에 혼자 떨어져 있으니까 걱정이 되셔서 그러신 것 같아요.”
“맞아. 우리 엄마랑 똑같이 이야기하네, 민 대리님이? 신기하다.”
그녀는 자신의 양손을 붙이고,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럼 어서 연애라도 하세요. 그래야 부모님께서 덜 걱정하실 것 같은데요?”
활짝 웃고 있던 그녀는 내 말에 금세 웃음을 떨쳐 내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연애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민 대리님 나 남자 소개해 주라.”
“소개요? 음… 누가 좋으려나……. 주변에서 막 해주기에는 원장님이 너무 아까우신데. 원하시는 스타일은요?”
나는 그녀의 스타일을 들으며 내 주변인들을 연상시키기 위해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는… 키는 나보다 크기만 하면 돼. 그리고 얼굴도 어디에 데리고 다니기 부끄럽지만 않을 정도?”
“생각보다 안 까다로우신데요? 하하.”
“그리고… 그냥…….”
말을 멈칫하는 김 원장.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민 대리님 같은 사람!”
“네?”
나는 순간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연속으로 깜빡였다.
그녀는 내 놀란 얼굴에 웃음을 터트리며 이야기했다.
“민 대리님 같은 사람이면 좋겠어. 알겠지? 다음에 있으면 꼭 소개해 줘!”
김 원장은 그 말을 끝으로 내게 술잔을 들어 보였다.
* * *
오늘은 온종일 장홍석 사장과 JC 병원에 넣을 데모 기구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오전 내내 다른 업무는 제쳐둔 채 회의실 안에서 기구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민 대리 생각에는 1번 기구보다는 2번 기구가 더 낫다는 거지?”
“예. 저는 2번, 3번으로 가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은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구 설명서를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자,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손지혁 차장.
그는 커피 두 잔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차장님, 오셨습니까.”
“응. 이거 한 잔 마시고 해. 사장님도 이거 드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 차장이 건네는 커피를 받았다.
이어 장 사장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좀 쉬었다가 하자. 힘들다, 힘들어.”
우리 셋은 회의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나는 장 사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그럼 이번에 오는 VIP 환자는 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오는 겁니까?”
“어. JC 병원에 제일 많이 오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들이라고 하더라.”
손 차장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다가 대화에 참여했다.
“사우디에 왕자가 그렇게 많다더니, 다들 한국으로 치료받으러 오는 겁니까? 크으. 돈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다른 나라까지 와서 치료를 받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우리나라 의료 시설이 좀 좋냐. 돈 많은 왕자 한 명이 치료 받고 간 후로 JC 병원 원장님이 거기 지인들한테 소문 난 모양이지.”
“JC 병원 원장님은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으시겠는데요? 하하.”
손 차장은 웃으며 말했고, 장 사장은 혀를 차며 답했다.
“그렇지. 우리도 평생 먹고살 걱정 없이 일해야 할 텐데…….”
나는 그들의 말에 당찬 얼굴로 외쳤다.
“제가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꼭 JC 병원 데모 성공해서 광주 메디컬 평생 먹고살 걱정 없이 만들겠습니다!”
내 당당한 말투에 장 사장과 손 차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민 대리 덕분에 우리 광주 메디컬 성공하겠다. 하하.”
그때 울리는 장 사장의 휴대전화.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우리에게 보이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올까?”
손 차장은 빈 회의실에서 나에게 담배를 피우자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고,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모는 잘 돼가?”
손 차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게 물었다.
“예. 오늘 중으로 데모 준비는 끝날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중요한 건 원장님 앞에서 데모하는 건데…….”
“그거야 장 사장님이 계시니까, 옆에서 보조만 잘 해주면 될 거야.”
“맞습니다. 그래도 이런 데모는 처음이다 보니, 좀 떨립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불어내며 말했다.
“에이, 민 대리가 긴장하기는. 평소처럼 하면 다 잘될 거야.”
“감사합니다. 하하.”
“그거 말고는 힘든 거 없고?”
“네, 괜찮습니다.”
그는 담배를 물고, 한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열심히 해봐. 요즘 사장님이 민 대리 더 키우고 싶어 하셔서, 항상 민 대리한테 이것저것 시키시느라 일이 많을 거야.”
“그런 거라면 감사하죠.”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민 대리는 일도 잘하고, 능력도 충분한데 아직 그래도 몇 년의 경험밖에 없다 보니까, 다양한 경험을 시켜 주고 싶으신가 봐.”
요즘 들어 장 사장은 나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그냥 무작정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늘 처음 겪는 일들에 대한 일이었다.
이번 JC 병원도 그렇고, 전의 한국 병원 입찰 건도 그렇고.
모두 내가 3년을 넘게 일하며 겪어 보지 못했던 일들이었지.
손 차장 말에 의하면 장 사장은 나를 키우고 싶어 한다 뜻인데, 나는 그로 인해 바빠진다고 해도 충분히 반가웠다.
내 경험치를 채우기에 이만한 일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오히려 내가 감사한 일일 테지.
“그래서 이번 일 한번 잘해 봐. 어차피 사장님이 하시는 일에 옆에서 도움 주면 따올 수 있을 거야. 사장님도 민 대리한테 항상 고마움 많이 느끼시고. 그리고…….”
손 차장은 담배를 끄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 차장의 끊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그리고 이제 민 대리도 직책 하나 올려야지.”
“하하, 아닙니다. 제가 몇 년 안 됐는데, 벌써 승진이라니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고, 그는 미소를 띠지 않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지. WG 메디컬에 남아 있었어도 밑에 애들도 치고 올라오고, 민 대리 능력은 계속 올라갔을 텐데. 이미 민 대리 실력이면 과장 승진, 머지않아 했을 수도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손 차장을 따라 담배를 꺼트리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민 대리 나이에 과장 달면……. 하.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하하. 아무튼, 열심히 해보고, 사장님 항상 바쁘시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넵. 알겠습니다, 차장님!”
승진.
대리를 달고나서 과장이라는 직책은 멀게만 느껴졌었다.
연수를 채운다고 해서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수가 짧은데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승진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 경계선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승진.
지금 광주 메디컬은 인원수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더욱더 승진이라는 말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과장이라는 직책이 비어 있었지만, 애초부터 비어 있던 채로 만들어진 회사이기에 욕심을 냈던 적도 없었지.
게다가 광주 메디컬이 생긴 이후부터 줄곧 바빴던 회사, 그리고 나는 그 직책과 승진에 대해 한 번도 생각을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승진, 과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야 욕심이 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JC 병원을 따내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내가 옆에서 장 사장을 잘 서포트 한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힘찬 걸음으로 회의실로 향했다.
* * *
며칠을 공들였던 JC 병원의 데모.
대망의 데모 날이 밝아 왔다.
JC 병원 원장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
장 사장은 오전에 다른 병원 원장과 약속이 있던 탓에 병원에서 직접 출발을 하기로 했다.
그로 인해 나는 사무실에서 따로 출발 준비를 마쳤다.
1시 30분.
긴장을 한 탓인지 생각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병원에 올라가지 않고, 차에서 장 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계는 금방 1시 45분을 가리켰다.
나는 시간을 확인한 후 곧바로 장홍석 사장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전화를 들었다.
장 사장에게 발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신호음이 울리는 사이 나는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다.
바지와 구두를 다시 정리할 때까지 받지 않는 전화.
- 전화를 받지 않아…….
나는 대수롭지 않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 실린 수술 기구를 꺼내 카트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 카트를 끌고 JC 병원으로 올라가며 다시 한번 전화의 발신 버튼을 눌렀다.
귀에 대고 있는 전화에서는 통화 연결 수신음이 계속해서 울렸고, 또 한 번 들리는 안내 음성.
- 전화를 받지 않아…….
나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제자리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장 사장에게 다시 한번 연결을 시도했다.
또다시 울리는 연결 수신음.
나는 수신음이 끊기자마자 소리쳤다.
“여보세요?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