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모던 정형외과 박승호 원장의 진료실 앞.
역시나 그의 진료실 문 앞에 붙어 있는 표에는 ‘휴진’이라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휴진 알람을 무시한 채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박 원장.
그는 내 인사에 놀라 황급히 보던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모니터 옆으로 빼꼼 내밀며 나를 반겼다.
“민 대리, 어서 와.”
“원장님, 오늘 휴진이신데 무슨 일로 병원 나오셨습니까?”
나는 박 원장 쪽으로 걸어가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내게 답했다.
“잠깐 일 좀 볼 게 있어서. 지금은 이거 보고 있었어. 골프.”
“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다가가 박 원장이 보고 있던 일시 정지된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던 영상은 정말 골프 영상.
골프 강사가 나와 강습을 하는 영상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골프 연습하고 있지?”
“네, 그럼요. 혹시 날짜 잡힌 겁니까?”
저번 박 원장과 술을 마셨을 때, 그가 제안했던 골프 모임.
그곳에 나를 참여시키기 위해 골프 연습을 하라고 했던 박 원장.
덕에 나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시간만 비는 날이면 연습장을 찾았었다.
그리고 박 원장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가능하지?”
“가능합니다.”
“그럼 일요일에 필드에서 보자고.”
“예.”
그리고 그는 병원 일을 보기 전까지 나에게 골프에 대해 입으로 강습을 시작했다.
* * *
나는 박 원장을 만나고 온 월요일, 그날부터 저녁에는 매일 같이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어제인 토요일까지 연습장을 찾아 온종일 맹연습을 했다.
필드에 나가는 것이 처음이라 연습을 했던 탓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필드에서 만나는 원장들 때문이었다.
이 골프 모임에는 4명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모던 정형외과의 박승호 원장, 리오 정형외과의 천성진 원장, 프라 정형외과의 송길원 원장.
또 송길원 원장이 모임에 데리고 온 제약 회사 영업 직원까지, 총 4명이다.
그중 리오 정형외과의 천성진 원장.
천 원장은 승부욕이 세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박 원장이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은 즉, 그에게 져줘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필드에 나간 것이 처음이고 골프도 초보인 일명 ‘골린이’였기에, 당연히 질 것이 뻔했다.
그래도 맹연습을 한 이유는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야 재미있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승부욕이 센 사람이라면 상대가 너무 쉽게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자신의 스윙만 해도 이길 것이 뻔하기에 흥미롭지 않은 것.
내가 천 원장과의 비등한 실력은 되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실력이 맞춰져야 이기는 기쁨을 만끽할 테지.
영업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 그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판매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메디컬 회사의 영업 중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사람에게 필요로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열심히 골프 연습을 했던 이유의 전부가 그것이다.
“자, 다들 모였으면 우리 든든하게 아침부터 먹고 들어가지.”
나를 포함한 5명의 사람이 모두 모였고, 입구에 모여 한 명씩 돌아가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곧바로 골프장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든든한 밥 한 끼를 흡입했다.
“그래. 그래서 민 대리는 처음 머리 올린다고?”
송 원장은 밥을 한 수저 뜨며 나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항상 연습장만 다니다가 드디어 처음으로 라운딩 나왔습니다. 박 원장님 덕분입니다. 하하.”
내가 처음 나왔다는 말에 앞에 앉은 천 원장은 관심이 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잘해 보자.”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밥을 다 먹은 제약 회사 직원.
그는 주변 원장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마지막 밥 한 수저를 깨작대며, 나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 원장님들이랑 골프 다니면서 의료기기 메디컬 직원 데려오시는 거 처음 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송 원장 역시 시선을 돌려 박 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얼마나 좋은 사람이길래, 박 원장이 이렇게 메디컬 직원까지 데리고 왔어.”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직원입니다. 하하.”
그들의 대화로 나이를 유추할 수 있었다.
박 원장과 천 원장은 동갑.
그리고 송 원장은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듯했다.
제약 회사 직원은 나보다 족히 3살은 위인 것 같았다.
“기억나지? 나 저번에 라베쳤잖아. 다들 조심해라. 하하.”
“그럼요. 송 원장님 오늘 점수 기대하겠습니다.”
라베를 쳤다는 것은 골프에서 쓰는 은어.
자신이 그동안 쳤던 것 중 가장 잘 쳤던 최고 스코어를 뜻한다.
우리는 짧은 사담을 나누며 배를 채웠다.
그리고 곧이어 내 인생 첫 골프 라운딩이 시작되었다.
* * *
“원장님, 굿샷입니다!”
“나이스샷!”
내가 라운딩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가장 많이 외치고 있는 말이다.
필드에서의 골프는 연습장에서 칠 때와 생각보다 아주 달랐다.
그리고 제일 다른 점은 정신이 없다는 것.
처음 필드에 나와 신경 쓰며 공도 쳐야 하지, 처음 보는 병원 원장님들을 살펴야 하지,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돌아온 천 원장의 차례.
탁.
그의 공이 골프채를 맞고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갔다.
“원장님, 나이스 샷입니다!”
천 원장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 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너무 쉽게 이기겠는데? 민 대리 쟤는 처음 왔으니까, 혼자 카트도 못 타고 계속 공만 주우러 다니겠구먼. 아, 오늘 오랜만에 나왔는데 재미없겠는데…….]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천 원장.
그의 속마음은 그 얼굴과 정반대였다.
카트도 못 타고 계속 공만 주우러 다니겠다고 이야기하는 그.
필드에서 카트를 못 탄다는 것.
공을 멀리 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골프공을 한 번 치고 나서 내가 날린 공까지 가서 다음 샷을 쳐야 한다.
공을 멀리 날린 뒤 그 공에 다가가기 위해서 골프장에 있는 카트를 타고 그곳까지 가는 것이지.
하지만 꼴랑 눈에 보이는 저 앞까지만 공을 날린다면?
그곳까지 걸어가서 공을 치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대부분 공을 코앞에 떨어트리기 일쑤.
그래서 끝날 때까지 카트를 못 탔다는 사람도 있다.
천 원장의 속마음.
나를 무시하는 말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되레 그의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적수가 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원래 게임이라는 건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상대의 점수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이겨야 승리의 짜릿함이 배가 되지 않는가.
상대가 너무 시시할 경우, 승리를 한다고 해도 찝찝함이 남아 있다.
나 역시 그 기분을 알기에 주먹을 불끈 쥐며 최면을 걸듯 운동에 임했다.
잘해야 한다.
그래, 연습했던 만큼만!
잘할 수 있다, 민지훈.
내 스윙에 공은 골프채를 맞고 날아갔다.
‘아……. 잘하려고 하다가 실수를 해버렸다.’
긴장한 탓인지, 샷을 잘못치고 말았다.
그 샷을 본 박 원장이 입을 열었다.
“민 대리, 멀리건 하나 쳐.”
멀리건.
샷을 잘못 쳤을 때, 그 샷을 무효로 하고 다시 한번 더 치는 것을 말한다.
승부를 하고 있기에, 함께 게임을 하는 이들이 동의했을 때 진행할 수 있는 샷이다.
“그래. 오늘 처음 하는데 긴장해서 잘못 친 거니까, 멀리건 하나 쳐.”
“감사합니다.”
“긴장하지 말고 해요, 민 대리님. 파이팅.”
제약 회사 직원이 주먹을 불끈 쥐고 나에게 그 팔을 들며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인 뒤, 심호흡을 한 뒤 골프채를 들고 자세를 다시 고쳐잡았다.
연습했던 대로…….
다리에 힘을 주고, 스윙.
탕.
조금 전 쳤을 때, 공이 언제 잘못 날아갔었냐는 듯 이번에는 저 멀리 날아갔다.
“와. 민 대리 나이스!”
원장들은 자신의 공이 날아갔을 때처럼 기뻐해 주었다.
박 원장은 나를 보고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 민 대리 재수해서 서울대 갔네? 하하.”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하핫.”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박 원장 근처로 다가갔다.
“민 대리 뭐야, 생각보다 더 잘하는데? 처음 나온 거 맞아?”
“원장님. 제 예상보다 더 어려운걸요?”
나는 박 원장과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렵긴. 머리 처음 올린다고 말씀드려놨는데, 너무 잘해서 내가 다 당황스럽다. 볼링 칠 때부터 운동 신경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박 원장은 또다시 그날의 볼링 이야기를 꺼내며 영웅담을 펼쳐놓듯 역전승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날의 볼링 승리가 매우 기억에 남았던 모양.
“오늘 날씨 죽인다.”
송 원장은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 중인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오늘 뜨겁지도 않고, 골프 치기 딱인데요?”
박 원장 역시 그의 말에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강하지 않고, 조금 구름이 껴서 중간중간 바람까지 부는 선선한 날씨.
“민 대리가 날씨 운이 좋네.”
조금 전 내가 쳤던 샷에 살짝 마음이 움직였는지, 천 원장은 나를 바라보며 호의적인 멘트를 던졌다.
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답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라운딩 나오실 때 불러주시면 날씨 운 잔뜩 가지고 오겠습니다.”
* * *
“이모, 소주 한 병 추가요!”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골프가 끝난 후 뒤풀이로 술집에 온다.
내가 이 골프 라운딩에 참여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 바로 지금 이 자리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가장 쉽고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는 공통 관심사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함께 운동하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술자리.
술자리에서는 이야기를 나누며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그 경계선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운동하는 것은 오늘 낮에 골프에서 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골프라는 운동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 깊은 이야기, 특히 영업 이야기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불편한 자리였다.
그래서 골프가 끝난 후, 뒤풀이로 술자리가 생기는 것이 필수였기에 이 자리를 기다렸던 것.
다들 운동 후 배가 고팠는지,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 골프였기에, 끝나고 뒤풀이를 온 지금까지도 하늘에는 해가 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술을 빼놓을 수 없었다.
“민 대리는 이름이 지훈이라고 했던가?”
천 원장은 내 골프 실력을 보고 난 이후, 나에게 마음의 문이 조금 열렸는지 먼저 이야기를 하며 소주를 따라 부었다.
“예, 맞습니다. 저도 한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박 원장이 민 대리 운동 신경 있다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 처음 라운딩 나온 거 치고 너무 잘했는데? 아니,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정말 잘 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에 옆에 앉은 송 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민 대리가 당연히 꼴찌 할 줄 알았어. 점점 실력이 늘면서 우리 한 명씩 이겨가는 거 보려고 했더니, 내가 져버렸잖아. 천 원장 아니었으면 민 대리가 1등이었지. 우리 분발해야겠어.”
송 원장은 오랜만에 게임다운 게임이었다며 훈훈하게 내 승리를 축하했다.
나는 온 실력을 발휘해 천 원장에게 겨우 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낮은 등수.
바로 제약 회사 직원이었다.
그는 박 원장에게 들었던 대로 원장님들에게 잘 보이려, 일부러 지는 티가 팍팍 났다.
골프를 치는 내내 그는 헛스윙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 원장은 몇 번이고 혀를 찼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처음이라, 초심자의 행운으로 정말 운 좋게 실력이 부풀려져서 잘 쳤던 것 같습니다.”
“겸손은, 하하. 그나저나 회사 이름이 광주 메디컬이라고?”
천 원장은 내가 채운 소주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예, 맞습니다.”
그러자 박 원장이 대화에 참여했다.
“자가혈 주사라고 알지?”
“어. 이번에 박 원장네 기구 들어왔다는 거?”
“응. 그거 총판이 민 대리네 광주 메디컬이야.”
“정말? 그거 광주 병원 몇 군데 없잖아.”
박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가혈 주사, 환자들 반응도 좋고, 기계가 비싼데 비싼 값을 해. 다들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봐.”
이들은 이후로 전문적인 지식을 뽐내며 자가혈 주사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고, 이내 송 원장이 입을 열었다.
“곧 열리는 추계 학회 때 말이야. 부스 차리는 회사들이…….”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빈 소주병이 7병.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송 원장과 제약 회사 직원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두 명이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서 술잔을 주고받더니, 결국은 취한 모양.
시끄러운 술집 분위기 속, 내 귀에 선명히 들려오는 진동 소리.
지이잉.
지이잉.
나는 황급히 주머니 속 전화기를 손으로 만져봤다.
하지만 고요한 내 휴대전화.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동 소리가 계속 울리는데, 전화 오는 것 같아요.”
“그래? 다들 폰 봐봐.”
박 원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했고, 자신은 아니라는 듯 휴대전화를 우리에게 보였다.
천 원장 역시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전화기를 찾아댔다.
그의 의자에 걸려 있던 겉옷.
그는 그 옷 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
“옷 안에 있어서 전화 오는 거 몰랐네.”
천 원장이 전화기를 꺼냈을 때는 이미 전화가 끊어졌다.
울리지 않는 진동.
미소를 보이며 이야기한 천 원장은 휴대전화를 열어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동시에 굳어지는 그의 표정.
아니, 무표정을 넘어 그의 얼굴에는 인상이 한가득 지어졌다.
그리고 그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하. 장난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