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뒤를 돌아보자 수간호사의 번쩍 들려있는 팔을 쓱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
교복을 입고 어깨가 축 처진 채로 걸어오는 그.
키와 앳된 얼굴로 보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이었다.
터벅터벅 천천히 걸어오는 그.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수간호사의 앞에 섰다.
입을 열지 않았지만, 딱 분위기를 보아 하면…….
“아들, 왔어?”
역시.
학생은 그녀의 아들이었다.
“어.”
딱 보아도 사춘기에 접어든 수간호사의 아들.
시크하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것이 중학생의 격한 사춘기 시절로 보였다.
그녀는 아직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가셔도 돼요.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 수간호사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 네, 선생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가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듣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기보다는 조용한 수술실 층에 그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기에, 내 귓가에 들려왔던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녀는 내가 뒤를 돌자마자 놀란듯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소리쳤다.
“아들! 뭐야, 얼굴이 왜 이래? 손목은 또 왜 이렇고!”
나 역시 그녀의 말에 놀라 걸음을 멈춰 세웠다.
내가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대화에 의하면 아들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말에 놀랐던 것.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오히려 그녀에게 큰소리를 치며 말했다.
“아까 계단에서 넘어졌어. 만지지 마, 놔둬!”
“맞아? 넘어진 거 확실해?”
“어! 나 학원 가야 해. 왜 오라고 했어?”
화가 난 듯 퉁명스럽게 소리치는 아들. 하지만 그녀는 그 말투가 익숙한 듯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나에게 대할 때와는 180도 다른 표정과 말투로 아들에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하는 그녀.
“아침에 엄마가 너 용돈 안 주고 나왔더라고. 오늘 학원 가기 전에 밥 사 먹고, 그리고…….”
딩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나는 그곳에 발길을 옮겼다.
이음 정형외과 정문 앞.
나는 차에 올라타기 전,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흡연 구역 쪽으로 걸어 왔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그때, 내 앞쪽을 지나가는 한 아이.
바로 조금 전 보았던 수간호사의 아들이었다.
나는 담배를 물고 그와 눈이 마주쳤고, 황급히 그 담배를 손으로 빼내었다.
그는 나와 잠깐의 눈 마주침을 피하고, 시선을 땅으로 돌려냈다.
[애들한테 맞은 거라고 사실대로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 아빠 없이 키워서 그렇다고 또 내 앞에서 펑펑 울 거 뻔한데. 하.]
담배를 들고 있던 내 손에 힘이 쭉 풀려버렸다.
지나가는 짧은 순간 보았던 그의 얼굴의 상처.
그리고 조금 전 수간호사가 말했던 손목.
그 상처까지 모두 보았다.
더불어 그의 속마음이 들려 왔고, 그 상처들의 원인 또한 알아버렸다.
나는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저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빠가 없다는 사실.
게다가 그 모든 이유를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까지.
그저 사춘기의 반항으로 엄마에게 툴툴거렸다고 생각했던 나.
저 아이의 축 처진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 작은 어깨 위로 많은 걱정거리와 고민이 얹혀 있는 듯했다.
* * *
다음 날 오후.
나는 오늘도 이곳 이음 정형외과에 왔다.
영업의 기본 중 하나인 눈도장.
바로 이음 정형외과의 수간호사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오늘 찾아온다고 해도 병원의 원장은 만날 수 없을 걸 알지만, 의사와 거의 동급 시 되는 수간호사에게 영업을 하기 위해서다.
어제 병원에 와 짐작으로 그녀의 나이를 알 수 있었고, 또 그녀가 이 병원에서 근무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도 다른 간호사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소모품은 물론이고 수술기구, 인공 관절 기구까지 모두 빠삭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한마디에 메디컬 회사의 물품이 순식간에 바뀔 수도, 그리고 메디컬 업체가 바뀔 수도 있음을 확신했다.
더불어 병원의 원장이 수간호사에게 그 정도의 일을 일임했음도 알 수 있었다.
보통 병원에서 수간호사들이 카탈로그를 받아 연락을 준다고 하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
나는 원무과로 걸어가 원장이 아닌, 수간호사를 보러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늘 역시 수술실 층으로 향했다.
짧은 만남.
그리고 짧았던 대화.
그녀와 십 분가량 대화를 마친 뒤 나는 병원을 빠져나와야 했다.
내가 전날 건넸던 카탈로그에 대한 피드백만 주고받았을 뿐, 그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견적 금액도 나쁘지 않았고, 물건도 장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거래처를 우리 회사로 바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듯 보였다.
이렇게 의사가 아닌, 간호사에게 영업했을 때의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의사는 병원의 이익을 위해 거래처를 순식간에 바꾼다. 이익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이 많이 남는 것도 있겠지만, 물건의 장점을 보고도 쉽게 바꾸는 것이지.
하지만 간호사 입장에서 본다면 물건을 바꾸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병원에 납품하는 물건에는 코드가 존재한다.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쓰는 코드가 아닌, 우리나라 병원, 메디컬 회사, 의료 계통에서 모두 동일하게 사용하는 코드.
그 코드는 제품마다 모두 다르다.
제품의 고유 코드가 있는 것이지.
물건을 바꾸게 된다면 병원에 바뀐 제품의 코드를 모두 등록해야 할 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의 재고를 반품해야 하기도 하고, 우리 제품으로 바뀌면서 제품도 새로 익히고, 모든 간호사에게 숙지를 시켜야 한다. 그렇기에 간호사 입장에서 본다면 제품 하나를 바꾸는 것.
특히 받고 있던 메디컬 회사를 바꾸는 것은 정말 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간호사는 우리 회사의 견적 금액과 물품의 장점은 알아도, 쉽게 바꾸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우리 물건을 납품하는 것이 영업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기로 하고, 영업 전략을 짜서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이음 정형외과에서 나와 근처에 사무용품을 사기 위해 걸어 나서는 길.
몇 분을 걸은 끝에 문구점을 발견했고, 간판을 보며 걸어가던 그때.
문구점 옆쪽 골목.
시끄러운 길거리, 그 틈을 비집고 내 귓가에는 한 남성의 지속적인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골목을 보았다. 멀리서도 수상한 인영이 눈에 들어와 그 골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문구점 모퉁이를 돌자마자 보이는 광경.
교복을 입은 한 남자아이가 담뱃갑을 든 채 서 있었다.
‘어디 쪼그만 녀석이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려고 들고 있어?’
나는 턱을 치켜들고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담배를 피우던 것이 아닌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디서 주운 듯한 구겨진 담뱃갑을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그 담뱃갑을 바라보며 한숨을 연신 내쉬고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 학생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
나는 그 학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는!”
하지만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내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황급히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짓밟았다.
“너, 맞지?”
그는 이음 정형외과 수간호사의 아들.
바로 전날 보았기에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담배를 버린 뒤 고개를 들고 나를 쏘아보며 답했다.
“아닌데요.”
“맞잖아. 이음 정형외과 수간호사 선생님 아들. 어제 나 봤는데, 기억 안 난다고?”
그는 재차 묻는 내 말에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라고요.”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고, 그가 나를 모른 체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럼 수간호사 선생님한테 말해도 되지?”
그는 탄식을 내뱉고 나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아. 왜 그러는데요.”
반항기가 가득한 목소리와 눈빛.
나는 어깨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그에게 말했다.
“네가 아니라며.”
그러자 그는 나에게 점점 더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리고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니, 삼촌. 아니, 형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엄마한테 말하지 말아 주시면 안 돼요? 제발요.”
그가 나를 부르는 호칭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겨우 그 웃음을 삼켜냈다.
“삼촌이라고 불러.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예?”
“엄마한테 말하지 말아 달라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건…….”
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에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나는 그에게 입을 열었다.
“잠깐 삼촌이랑 이야기 좀 할까?”
“무슨 이야기요?”
“여기 앞에 카페 좀 갈까?”
“싫어요. 제가 왜 아저씨… 아니, 삼촌이랑 가요? 엄마한테 이야기하려고 그러죠?”
그는 수간호사에게 담배 이야기를 할까 걱정되는 표정과 떨리는 말투로 물었다.
“아니. 해줄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따라오면 이야기 안 할게.”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바로 앞 카페로 들어갔다.
그는 내 앞에 앉아 아이스 초코를 한 모금 들이키며 나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담배는 왜 갖고 있었어? 설마 피우려고 한 건 아니지?”
그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놀란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제가 담배 가지고 있던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그의 순수한 표정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 알지. 왜 그랬어?”
“담배……. 어른들이 답답할 때 피우는 거잖아요. 그럼 그 답답함이 다 날아가는 거 아니에요?”
그는 한껏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무슨 이유로 답답함을 느껴 담배까지 주웠는지 알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피워보면 답답함이 사라질 것 같았어?”
“…아니요.”
“답답할 때는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야. 그게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낄 때는 어른들한테 도움을 받아야지. 그래서 너를 보호하는 보호자, 어른이 있는 거고.”
그는 내 말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말 못 해요.”
그는 연신 한숨을 내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말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삼촌은? 나는 그냥 내 답답한 고민거리 엄마한테 털어놔서 엄마까지 답답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요.”
“네가 답답한 게 뭔데? 그럼 남남인 삼촌한테 털어놔 봐. 내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
“…….”
그는 내 말에 입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끝내 열지 못하고 닫아버리는 그.
그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줄 알기에, 나는 그에게 돌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답답한 걸 담배로 해결하는 건 답이 아니야.”
“알았어요. 엄마한테만 말하지 말아줘요. 엄마 맨날 바빠서 나까지 신경 쓸 시간 없어요. 나 때문에 고민하게 하는 거 싫다고요.”
“엄마가 바빠서 답답한 고민을 말 못 하는 거야?”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엄마는… 그냥 몰라야 해요. 내게 조금만 안 좋은 일 있어도 아빠 없이 키워서 그렇다고,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말을 읊조렸다.
“엄마 탓 아닌데…….”
“그럼 넌 네 몸 네가 잘 지켜야 해.”
그는 내 말에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누가 괴롭힌다고 해도 방어할 줄 알아야 해.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그렇지 못한 세상이라면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한다고.”
그는 내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주머니에 잡히는 것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테이블 위로 올려 그가 볼 수 있게 맞은편으로 밀었다.
내 행동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고 그것을 바라본 후 곧바로 내 눈을 쳐다보았다.
“이게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