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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26화 (126/339)

126화

하라 정형외과의 병원장은 허공을 바라보며 회상하는 듯했다.

그가 말을 시작하기 위해 입을 움찔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입에 시선을 고정했다.

“최권호가 우리 병원에 영업을 거의 매일 오다시피 했었어.”

WG 메디컬의 최권호 부장.

그가 하라 정형외과에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던 것은 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만큼 하라 정형외과는 누구나 따내고 싶어 하는 병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병원장에게 답했다.

“10년 전부터 하라 정형외과에 영업을 매번 왔었나 보네요.”

“어. 그때는 나도 하라 정형외과의 일개 의사였지. 나한테 영업하러 오는 메디컬 직원이 많지 않았었어. 그래서 내가 최권호도 기억하는 거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시절에 내 뇌리에 남아 있는 건, 그 최권호가 아니라 장홍석이야. 지금 자네 사장이 된 장홍석 사장.”

하라 정형외과에 늘 영업을 오던 것은 최권호 부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장홍석 사장이 뇌리에 남아 있다라…….

나는 그 의미심장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나는 병원장을 향해 물었다.

그는 내 말에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고 눈썹을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있었지.”

짧은 한마디와 함께 그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때 하루가 멀다 하고 WG 메디컬에서 영업을 왔었거든. 그래서 우리 병원 사람들은 WG 메디컬을 모르는 직원이 없었지. 병원 관리하시는 청소부 이모님도 알 정도였으니까.”

그는 옛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자네 사장이 그때는 아마 대리인가, 과장인가 그랬을 거야. 직책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네, 직책이 그 정도 됐을 것 같습니다.”

그는 내 말에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최권호가 매일 왔다면, 자네 사장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은 꼬박꼬박 왔거든.”

내가 아는 WG 메디컬은 하라 정형외과에 물건 납품을 못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이든 예전이든.

그런데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였다는 말에 새삼 놀라웠다.

그만큼 하라 정형외과는 영업 성공하기 힘든 병원이라는 것 또한 한 번 더 느꼈다.

결국 영업에 성공을 하지 못했을 텐데, 이렇게 오래된 예전 일을.

특히나 장 사장에 대해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기억을 하는 거지?

나는 의문점이 들어 그의 말에 한층 더 귀를 기울였다.

“근데 어느 날, 병원으로 정장을 쫙 빼입은 남자가 옷이 다 찢어진 채로 병원에 뛰어 들어오는 거야.”

“네? 옷이 찢어져서요?”

놀라 커진 내 눈을 바라보며 병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어. 셔츠는 찢어지고, 옷에 피는 잔뜩 묻어 가지고 말이야.”

나는 눈을 연신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꼬맹이 여자애 하나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뛰어 들어오더라고.”

“아이가 크게 다쳤었나 보네요.”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게 지금 자네 사장이었어. 장홍석.”

나는 그의 말에 빠르게 눈동자를 굴려댔다.

10년 전쯤의 장홍석 사장.

그 당시에는 그에게 아이가 없었다.

특히 지금 아들만 있는 장 사장에게 여자아이라니…….

“장홍석 사장님의 애가 다쳤던 건가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답했다.

“아니. 생판 모르는 아이더라고.”

“예? 그럼 왜…….”

“우리 하라 정형외과에 영업하러 들어오는 길에 한 아이가 크게 다친 걸 봤나 봐. 부모를 잃어버린 건지, 혼자서 피를 흘리면서 넘어져 있는 애를 장홍석 사장이 데려온 거야.”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 당시 상황을 상상했다.

“근데 장홍석 사장님 셔츠는 왜 찢어진 거예요?”

내 질문에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얕게 저으며 대답했다.

“애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니까, 지혈할 게 없어서 급하게 옷이라도 뜯어서 응급조치해서 온 거더라고. 진짜 대단했지.”

“아……. 그래서 옷에 피도 다 묻고, 옷이 찢어졌던 거군요.”

“응. 아는 사람도 아니고, 병원 앞에서 그냥 생판 모르는 다친 아이를 그렇게 해 오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장홍석 사장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장홍석 사장의 칭찬이었지만, 그는 내가 따르는 상사였기에 내 칭찬을 듣는 것처럼 뿌듯했다.

“그래서 아이는요?”

“다행히도 아이 목에 목걸이가 있었어. 전화번호가 써진 덕에 부모님 바로 찾았지.”

“아… 미아 방지 목걸이가 있었나 보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했다.

“나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게 쉽지가 않아.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일 말이야. 특히나 아픈 사람. 그래서 그 당시에 그저 영업만 하러 오던 장홍석이라는 사람의 행동이 나에게 큰 울림을 줬었어.”

그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어 갔다.

“그게 벌써 10년이나 지났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또 일어난 거야.”

“예?”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민 대리. 바로 자네가 우리 아버지를 도와주지 않았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내 눈을 쳐다보며 하는 칭찬에 머쓱해하며 병원장에게 대답했다.

“길 지나가다가 아파하시는데, 다들 저처럼 했을 겁니다. 제가 그저 남들보다 일찍 그 자리를 지나갔던 거죠.”

내 말이 끝나자 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 도와야 한다는 거 모르는 사람 없을 걸세. 하지만 그걸 실천으로 옮기는 거? 요즘 같은 세상에 민 대리 같은 사람 또 없지.”

나는 그의 계속되는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정말 고맙네. 자네 명함을 보고 광주 메디컬… 처음 듣는 회사인데, 싶어서 알아보니 사장이 장홍석 사장이더라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딱 그 사장에 그 직원이야.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나는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답했다.

“내가 그 10년 전에 장홍석,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물건 발주를 하고 싶었어. 근데 못 했지.”

“왜…….”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왜냐고? 나 역시 10년 전에는 힘이 없었거든. 나도 하라 정형외과의 그저 일개 의사였으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병원에서 의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물건을 발주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병원도 많은 편이다.

특히나 병원장의 파워가 센 병원이라면 더더욱.

의사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사용하는 게 맞는 이치지만.

병원장의 선택으로 지정된 메디컬 회사에서 제품을 받아 써야 하는 곳들도 꽤 많은 편.

의사들 역시 어떻게 보면 그저 병원에서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직장인이기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병원마다 특성이 워낙 다르기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지만, 회사로 말하면 사장의 직책인 병원장에 따라 다른 것.

나는 그의 말에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씁쓸한 표정을 흩날린 뒤, 미소를 옅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도, 내 상황도 다르지. 나는 민 대리 자네와 장홍석 사장 같은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나와 장홍석 사장을 믿는다라…….

무엇을 믿는다는 거지?

나는 생각 후 입을 열려던 찰나, 앞에 앉은 그가 먼저 입을 떼 내었다.

“자네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면 우리 병원을 믿고 맡길 수 있겠어.”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모든 환자를 내 일처럼,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일할 거 아닌가. 그리고 내가 민 대리에게 보답도 하고 싶었고 말이야.”

“저야 정말 감사하지만, 하라 정형외과는 오래 물건을 받고 있는 메디컬 회사가 있지 않습니까?”

나에게, 그리고 광주 메디컬에 물건을 발주하겠다는 병원장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하고 기뻐하고 싶었다.

광주에서 척추로 가장 유명하고 큰 병원을 이렇게 따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알기 때문.

하지만 내가 그의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 치료를 받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큰 하라 정형외과를 받아도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내 질문에 단호한 얼굴로 답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민 대리에게 고맙다는 말로도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큰일을 받았지. 그것만으로도 자네에게 더한 보답을 하고 싶어.”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말이야. 그것을 떠나서도 우리 병원에 올 환자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야. 민 대리와 장 사장의 마인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우리 병원의 일을 맡길 수 있겠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내 인사에 병원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감사는 무슨. 내가 오히려 고맙지.”

그리고 그는 내게 오른손을 뻗어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우리 하라 정형외과 잘 부탁하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정말 고맙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뻗은 그의 손에 내 손을 가져다 댔다.

“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확실하게 일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장은 아래 직원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와의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입사 때부터 들었던 ‘하라 정형외과’.

WG 메디컬에서 최권호 부장이 무려 10년 전부터 틈나는 대로 영업하던 그 병원.

높고 단단한 벽에 부딪혀 항상 실패했던 그 병원을 내가 맡게 되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조금 전 병원에 도착해 올라가기 전에 바라보았던 병원 건물.

높고 웅장한 이 병원의 건물을 바라보던 내 시선조차 달라졌다.

이 병원의 담당 메디컬이 우리 광주 메디컬이라니.

이 병원의 담당 메디컬 직원이 나 민지훈이라니!

나는 불과 1시간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병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 가슴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기분.

하라 정형외과 건물 앞에 서서 나는 혼잣말로, 다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광주에서 메디컬 업계 탑을 찍어보자, 민지훈. 할 수 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다녀왔습니다!”

사무실에는 장 사장과 손 차장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하라 정형외과에서 있었던 일을 무용담 펼쳐 놓듯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야기가 끝나자 손 차장은 연신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 민 대리 진짜 대단하다.”

“감사합니다. 하하.”

“사장님. 하라 정형외과가 최 부장이 그렇게 두드리던 병원 아닙니까?”

손 차장의 이야기에 장 사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맞아. 나도 몇 번 갔었는데, 그런 큰 병원은 소모품 하나 넣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잖아. 민 대리 정말 애썼다.”

“아닙니다. 십여 년 전에 사장님께서 하라 정형외과에…….”

나는 병원장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한참 풀어놓았다.

장 사장과 손 차장 역시 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이런 기회도 있을 수 있었던 거죠. 사장님 덕분입니다.”

장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거기에 민 대리가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야. 민 대리 공이 크지. 정말 잘했어.”

“하하. 그럼 저희 모두가 함께한 거네요.”

손 차장은 내 말에 나와 장 사장을 바라보며 쌍엄지를 치켜들었다.

장 사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오늘은 조금 일찍 정리하고 회식하자. 회사 차리고 정신없어서 밥다운 밥 한 끼를 같이 못 먹었네.”

“좋습니다!”

* * *

회사 앞 작은 연탄구잇집.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려놓고 그 위로 찰랑거리는 소주잔을 부딪쳤다.

“광주 메디컬을 위하여!”

“위하여!”

잔이 부딪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소주를 입에 털어 부었다.

크으.

“첫 회식이니까 한웃집 가자니까.”

장 사장은 비교적 저렴한 곳에 온 것이 미안했는지 가게 주인의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에이, 여기가 맛집인데요. 그렇지 않아, 민 대리?”

손 차장은 능글맞은 말투로 내게 물었다.

“하하, 그럼요. 뭘 먹는 게 중요한가요. 이렇게 저희 셋이서 먹고 있다는 게 제일 좋습니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우리 테이블.

“그래. 앞으로도 자주 맛있는 거 같이 먹게 열심히 일하자. 자, 내가 한 잔 줄게.”

그는 소주병을 들고 빈 잔에 소주를 부었다.

저녁을 먹기에 조금 이른 시간 탓인지, 식당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두 테이블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벽에 걸린 커다란 TV에서 쉬지 않고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식당 안의 누구도 그 TV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리모컨을 들고 소리를 줄이려는 그때, 장 사장이 시선을 돌려 TV를 바라보며 식당 주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어? 사장님! TV 소리 좀 켜주세요. 저게 뭐야?”

그의 한마디에 나와 손 차장의 시선 역시 그 TV 화면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우리 셋은 들고 있던 소주잔을 테이블에 황급히 내려놓았다.

“저게 TV에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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