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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18화 (118/339)

118화

“환멸 나지.”

유재필 원장의 짧은 한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가는 유 원장.

“돈 많은 환자. 고위 관직에 있는 환자들. VIP만을 외치는 사람들. 특히 아프고 위급한 환자들이 오는 병원에서 돈, 돈, 돈하고 있는 사람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기도 해.”

유 원장의 말.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메디컬 업계에 종사하면서 저런 일들을 생각보다 많이 봐왔었다.

병원에 하루 내내 상주하는 것도 아닌 내가 볼 정도라면 말 다 했지.

병원에 가보면 위급하거나 수술이 시급한 환자들은 대부분 취약 계층의 환자들이 훨씬 많은 편이다. 긴박하게 사고가 나서 오는 환자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부유 계층으로 갈수록 평소에 건강을 관리하기에 위급한 환자들이 없는 편.

“의사는 돈을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야. 환자를 따라서 움직이는 거지.”

유 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 생각도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질서, 돈, 명예와 상관없이 시급한 사람, 아픈 사람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렇지. 이쪽 바닥에서 일하다 보면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

유 원장과 나는 공감대를 찾은 듯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근데 민 대리는 광주에서 완도까지 매번 오기 멀 텐데, 완도로는 왜 오게 된 거야?”

나는 그의 질문에 내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제가 의사나 의료 기관의 종사자는 아니지만, 나름 이쪽 업계에 일하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지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었다.

“제가 직접 사람을 살리는 데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런 의료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민 대리처럼 메디컬 업계에 있는 사람이 없으면, 병원에서 쓸 물건이 없으니까. 공생 관계인 거지.”

“네. 그런데 이쪽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그는 내 말에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뭔데?”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그러니까 지방으로 갈수록 병원이 적어지는걸요. 그건 이쪽 업계에 없었어도 알 수는 있는 거지만, 그래도 지방에도 충분히 의료 기관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했었거든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 원장.

나는 그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병원의 개수가 적은 것뿐 아니라, 수술을 하는 병원, 수술을 해줄 의료진이 정말 적더라고요.”

“맞지. 그만큼 환자 수나 수술하는 케이스가 적으니까.”

“그런데 사람이 사는 곳이니, 적든 많든 수술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 병원도 봐 봐. 환자들 늘 많잖아.”

“네. 그래서 제가 그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은 지금 당장 부족하지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요.”

그는 내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민 대리가 완도까지 왔던 거구나?”

“예. 처음에 완도에 수술을 하는 원장님이 계신다고 해서 놀랐었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예전에는 없었어요. 소모품도 그렇고, 수술 기구도 그렇고 받기가 힘드시지 않습니까.”

“어. 처음에 완도로 내려왔을 때, 확실히 여기가 시골이라 메디컬 회사들도 영업을 잘 안 오더라고. 몰랐지, 이렇게 많이 안 올 줄은.”

메디컬 회사가, 아니 회사라는 곳 자체가 돈이 되어야 움직이는 곳이다 보니 광주에서 멀어지는 지방일수록 영업을 잘 가지 않는다.

물건을 팔아 남는 마진율은 한정적이다. 회사에서 멀어질수록 마진율을 많이 남겨 먹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되도록 회사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그리고 케이스가 많은, 즉 환자가 많아 발주량이 넘치는 곳에 갈수록 당연히 회사의 매출도 올라가는 것.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작은 병원, 특히나 지방에 있는 병원들은 영업을 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을 들인 것에 비해 얻어오는 수익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도 정형외과에 왔을 때도 경쟁 메디컬 회사는 적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단 한 곳뿐이었다. 이미 완도 정형외과에 납품을 하고 있는 메디컬 회사 단, 한군데.

“그렇죠. 확실히 지방으로 갈수록 케이스가 적으니까요.”

“그래서 민 대리가 영업 오고, 몇 번 만나면서 이야기해보면 생각하는 게 다른 요즘 직원들이랑은 좀 다르더라고.”

“칭찬이신 거죠? 하하.”

그는 내 너스레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칭찬이네.”

“감사합니다. 저도 원장님과 저번에 이야기 나누고 조금 놀랐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환자를 먼저 생각하시는 거요.”

그는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답했다.

“당연한 거지. 의사가.”

“그러니까요. 당연한 거지만, 막상 보면 원장님들이 자신이 편한 수술 기구를 대부분 이용하시잖아요. 그래서 환자의 상태는 매번 다른 환자들이 오지만, 수술 기구는 늘 똑같은 걸 쓰시는 것처럼요.”

“환자에게 맞는 수술 기구, 수술 방법을 써야 해. 그게 당연하고 기본적이지만 지키기 힘든 일이지.”

매번 환자에게 맞는 수술 기구, 수술 방법을 쓴다는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현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공급의 문제?

단가의 차이?

모두 아니다.

단순히 기구가 다르면 수술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손목 수술을 하더라도 제조사는 많고, 그렇기에 기구는 천차만별. 사용 방법 또한 기구마다 다르기에, 기구의 수술 방법뿐 아니라 그 기구의 특색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 환자의 상태를 보고, 기구를 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의사는 끝없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 그런 의미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가고 싶어 하지, 어려운 선택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이 한 수술 기구를 어느 환자에게 든지 사용하게 되는 것.

“맞아요. 기구는 새로 개발하고 늘 새로운 제품이 나오니까. 다들 공부하고 습득하시는 게 어려우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살리기 위해서는 평생 공부하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야. 숙명인 거지.”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병원에 들어오기 전 유 원장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수술 기구 자료를 가지고 온 것이지.

그런데 이렇게 한참을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또 한 가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유 원장도 자신과 내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

내가 처음 완도 정형외과에 왔을 때, 그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차가운 눈빛, 경계를 잔뜩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뭐 처음 만나는 사람, 특히나 목적을 가지고 영업하러 온 사람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의사는 없기는 하다.

하지만 유 원장은 조금 달랐다.

조금 날카로워 보였었다.

어딘가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는.

드라마를 보면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러니까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그곳에만 온 신경이 집중된 사람 같달까?

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눈빛이 조금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 마음에 문을 조금이나마 연 것 같은 얼굴.

영업 성공을 해서 기쁘다는 느낌보다는 유 원장의 마음을 얻어 냈다는 생각에 가슴속에서는 기쁨의 꽃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근데 아까 가지고 온 자료는 뭐야?”

그는 눈짓으로 내가 가지고 온 파일 가방을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그의 시선 끝에 있는 가방을 재빨리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서류를 가방에서 꺼내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이거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수술 기구들 카탈로그입니다.”

“수술 방법이 복잡하다고 했던 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예. 제가 생각할 때는 장점이 굉장히 많은 기구들인데, 단점은 딱 한 가지. 수술 과정이 조금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수술 직후부터 회복까지는 장점들밖에 없는 기구들입니다.”

“그럼 좋네. 어디 봐보자.”

그는 카탈로그를 자신의 앞으로 당겨 펼쳐보았다.

“그래서 많은 병원들에 추천을 했는데, 많이 거절하시더라고요. 당연하기도 한 것이 이게 좀 수술 시간도 길고, 확실히 타 기구에 비해 몇 배는 힘들고 고되기는 합니다.”

그는 내 말에 대답 없이 카탈로그를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파일을 정독 후에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좋은데?”

“정말이십니까?”

“어. 환자 수술 직후 엑스레이랑 회복 과정 보면 확실히 다르긴 하네.”

“맞습니다.”

유 원장에게 보여 주고 있는 이 기구를 수많은 병원들에 가져갔지만, 단 한 번도 영업 성공을 하지 못한 기구이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생각하는 유 원장은 역시나 이 기구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음에 라이브써저리 파일 좀 보내줘. 기구 데모도 한번 해주고.”

“알겠습니다. 라이브써저리 파일은 사무실 복귀하는 대로 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거 하나 보여주려고 완도까지 온 거야?”

그는 내 서류 가방을 보며 물었다.

나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방 속에 있는 카탈로그 몇 부를 더 꺼내 그에게 건넸다.

“방금 보여드렸던 기구 같은 것들. 몇 가지 더 가지고 와봤습니다. 하핫. 원장님이라면 장단점을 파악하시고 사용하실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는 내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깠던 기구 나한테 가지고 오는 거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장점이 많은 기구들인데, 진가를 발휘하지 못해서 원장님께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단지 기구를 공부할 뿐이지, 직접 수술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내밀었던 카탈로그를 모두 집어 들었다.

“오늘 민 대리 덕분에 공부할 게 넘치겠네. 한번 봐보고 연락 줄게.”

“넵. 역시 명의 유 원장님이십니다.”

그는 내 말에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오늘 우리 병원 간호사들한테 도움 줘서 고맙네.”

* * *

출근을 하자마자 사무실이 아닌, 광주 권역외상센터로 향했다.

광주 권역외상센터는 완도 정형외과의 유재필 원장이 있었던 곳.

전날 완도 정형외과에서 유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외상센터에서 완도로 내려온 이유에 대해 듣게 되었었다. 하지만 그 대답으로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권역외상센터는 웬만한 실력으로는 갈 수가 없는 곳이었기에,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빠질 것이 없는 곳. 바쁘고 정신이 없는 곳이지만, 한번 그곳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갔다면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 원장이 나온 이유가 돈 많은 환자들, 고위 관직 환자들에 환멸을 느껴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이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내가 3년 동안, 이 업계에서 일하며 만났던 의사들 중 가히 환자를 제일 생각하는 의사가 유재필 원장이라고 느꼈기에, 그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완도로 내려오게 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권역외상센터에 들어와 어느 의사를 만나야 할지 로비를 둘러보던 그때, 유리문 밖에 보이는 의사 가운을 입은 인물.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담배를 태우고 있던 그는 나를 보며, 입에 문 담배를 빼내며 말했다.

“네. 누구…….”

“저는 광주 메디컬 민지훈 대리라고 합니다.”

나는 그에게 명함을 건네며 대답했다.

“어? 광주 메디컬이요?”

그는 나를 명함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내게 회사 이름을 재차 되물었다.

‘뭐지? 신생 메디컬인 우리 회사를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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