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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117화 (117/339)

117화

병원 입구에서 원무과로 걸어가는 내내 들리는 큰 목소리의 대화.

“우리 먼저 치료해 달라고!”

“아니, 환자분. 지금 앞에 순서 기다리고 계신 거 안 보이세요?”

멀리서도 보이는 그들의 관계.

간호사와 환자였고, 그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뭐.”

“네? 그래서라니요. 지금 앞에 순서를 기다리셔야…….”

“이 순서를 내가 왜 기다려야 하는데. 나 누군지 몰라?”

환자라고 하는 인물은 소리를 지르며 간호사에게 쏘아붙였다.

“이 작은 동네 병원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문 닫을 수도 있어. 문 닫고 싶은 거지, 지금?”

“아니요. 환자분 그게 아니라…….”

그는 간호사의 말을 모조리 자르며 자신의 말만 이어갔다.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냥 동네 마실 나오듯이 병원 오는 거잖아. 나 먼저 진료해 달라고. 나 급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는 피를 흘리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멀쩡히 서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자니, 어디가 아픈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의 고함에 간호사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비에는 그 간호사들을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보였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보호자 없이 혼자 왔기에, 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하.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어차피 나 먼저 진료 보게 되어 있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순서 바꿔 달라고!”

그는 고함을 치며 원무과 앞에 놓인 종이들을 손으로 벽에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악!”

그의 무자비한 고함과 난리 통에 간호사들은 소리를 질렀고, 나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저기요.”

그러자 그는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매서운 눈으로 쏘아봤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뭐야.”

“저도 바쁩니다.”

“그래서 뭐!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구신지는 모르겠고요. 보아하니, 수술받으실 건 아닌 거 같고, 단순 치료 같으신데. 여기 다들 시간 넘쳐서 병원 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먼저 해달라고 떼를 쓰시면…….”

그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떼를 써? 너 누군데! 누군데 여기서 끼어들어!”

그는 뒷짐을 지고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저요? 진료받으러 온 환자요.”

“내가 급하다잖아. 급해서 먼저 하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는 끝까지 말이 되지도 않는 말을 내뱉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그에게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대응했다.

“그렇게 급하시면 어제 오시지 그러셨어요.”

“뭐라고?”

그는 꽤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고, 간호사들과 주변에 있던 환자들은 내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급하면 지금 말고 며칠 전에 오시지 그러셨냐고요. 그쪽만 바쁜 거 아니고, 다들 바쁜 사람들이에요. 한가해서 온 게 아니라, 시간 내서 진료받으러 왔다고요.”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가르치려고 들어?”

그가 누군지 알 리가 전혀 없었다.

그가 고위 관직이든 재벌이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 하물며 완도에서 한따까리하는 사람이라면, 광주에 있는 나와는 더더욱 상관없었다.

하지만 정말 완도에서 뭐라도 되는 사람이면 완도 정형외과 간호사들이 쉽게 관여할 수 없으니, 내가 그와 부딪치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런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크다.

“누구신데요?”

“뭐?”

“누구시냐고요. 잘나가시는 분이시라면서 이렇게 사람 많은 병원에 오셔서 새치기하려고 하고, 바쁜 의료진들 앞에서 큰소리치시면 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는 내 일침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너 뭔데? 네 갈 길이나 가. 나 여기 아가씨들이랑 얘기하고 있잖아. 왜 자꾸 끼어들어!”

나는 그의 말에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가씨들 아니고, 간호사 선생님들입니다.”

그는 내 말에 눈을 부라리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빠가 완도에서……!”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르며 답했다.

“저희 아버지는 집에 잘 계시고요. 그쪽 아버지는 누군지 안 궁금합니다. 여기서 큰소리 자꾸 치시지 말고요.”

주변에는 로비에 있던 환자들이 우르르 구경하러 다가왔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작게 한마디씩을 내뱉고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군데?”

“몰라. 그나저나 대체 어디가 아픈 사람인 거야?”

주변으로 몰린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하자 그는 내 앞에서 별안간 소리를 꽥 질렀다.

“야! 내가 이 병원 진짜 문 닫게 해줘?”

그의 큰 외침에 주변은 조용해졌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바로 유재필 원장이었다.

유 원장은 수술이 끝난 후 소란스러운 로비에 나와본 모양.

그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큰 보폭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냐고요. 뭐, 병원 문을 닫게 해요? 어디 전화 걸어보시죠. 제가 통화 좀 해보려니까!”

의사 가운을 입은 유 원장. 그의 단호한 목소리의 호통에 환자는 그제야 기가 죽은 듯 보였다.

“아니. 제가 지금 아파서 먼저 진료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언제 소리를 쳤냐는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유 원장에게 설명했고, 유 원장은 그의 말을 잘라버린 채 간호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박 간호사님.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줘 봐요.”

“네. 원장님, 그게 이 환자분이 오셔서…….”

그녀의 설명에 유 원장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간호사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 유 원장은 그녀에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오신 순서대로 진료실 입장 시작해요. 나 바로 진료실 들어가요.”

“네, 원장님.”

유 원장은 진료실로 들어가기 위해 뒤를 돌았고, 내 앞에 서 있는 그가 소리쳤다.

“아니! 제가 지금 아파서 먼저 진료받아야 한다고요!”

“위급하고 덜 위급하고는 여기 간호사 선생님들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요. 환자분 상태 보니까, 충분히 순서대로 들어오셔도 될 것 같네요.”

“이봐요, 의사 양반. 내가 지금 많이 아프다잖아.”

유 원장은 그의 막말에 입을 닫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순서대로 받으신다는 건 전혀 위급하시지 않은 거니까. 다행이다, 생각하시고 차분히 기다리십쇼.”

유 원장의 말에 그는 얼굴이 빨개져 씩씩대기 시작했고, 주변의 간호사들은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아댔다.

그대로 유 원장은 진료실로 급히 들어갔다.

간호사들은 곧바로 진료 순서대로 환자들을 입장시켰고, 덩그러니 남게 된 그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황급히 병원을 나가버렸다.

상황은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감사해요, 민 대리님.”

환자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받고 있었던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에요. 저 환자분이 이상해서 그런 거죠.”

“그러니까요. 그래도 소리 지르고 행패 부리니까 겁이 났는데, 대리님이 나서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근데 저 사람은 대체 누군데 자꾸 아버지 타령하는 거예요?”

내 물음에 옆에 있던 간호사들도 다가와 대화에 참여했다.

“그니까 처음 보는 사람인데. 김쌤은 완도 사람이죠? 누군지 알아요?”

“아니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들에게 물었다.

“완도 군수 아들인가? 아니지. 그럼 더더욱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내 질문에 김 간호사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완도에 군수 아들 없어요! 저 사람 군수 아들 아니에요.”

“그래요? 아무튼, 별거 없을 거예요. 저렇게 큰소리치는 사람치고 뭐라도 되는 사람 본 적 없어요. 선생님들이 고생이 많으세요.”

내 말에 그녀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민 대리님. 원장님 뵈러 오신 거 맞죠?”

“네.”

그녀는 시계를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오늘 원장님 진료 시간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해요. 저 그럼 차에 물건 좀 가지러 갈게요. 혹시 원장님 나오시면 알려주세요.”

“그럴게요.”

* * *

30여 분이 지나고서야 나는 유재필 원장의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원장님.”

“어. 민 대리 여기 앉게.”

나는 가지고 온 자료를 한쪽에 내려두고 그의 앞에 앉았다.

“민 대리.”

“예, 원장님.”

“박 간호사한테 들었네. 아까 환자가 간호사들한테 소리 지르고 난동 피울 때 민 대리가 도와줬다며. 고맙네.”

나는 그에게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뭐 한 게 없어서 민망합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수술하고 있느라 늦게 나왔거든. 병원도 작아서 따로 경비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어휴, 근데 저 사람은 언제까지 저러고 다니는 건지.”

유 원장은 아까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모양.

“원장님, 그 환자 아시는 분입니까?”

“뭐 이쪽 지역에서 정치 바닥에 있는 사람 아들내미라고 하더라고.”

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아버지가 정치계에 있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쳤다는 게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유 원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평소에도 행실이 오늘과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다.

“정신 나간 거지. 제 아비가 아무리 밖에서 애를 쓰고 다녀도 아들이 저 모양 저 꼴이니.”

“그러게요. 자기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고 다니는 꼴이네요.”

유 원장은 그 환자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런 것들이 문제야. 저 꼴 안 보려고 완도에 내려왔더니만… 어디든 다 똑같네, 똑같아. 하.]

그때 들리는 유 원장의 마음의 소리.

선명히 귀에 꽂히는 유 원장의 생각이 마치 한숨을 타고 내 귀에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

유 원장이 대체 왜 잘 나가는 광주 권역외상센터에서 이 시골로 내려왔을까? 이 질문을 끝내 못했지만, 드디어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가 내려온 이유가 아까와 같은 환자들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내 생각에는 저 이유 한 가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계든 어디든 단순히 저 이유 하나만으로 광주를 벗어나 완도까지 내려왔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왜인지 모르게 그의 과거가 점점 더 궁금해져 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원장님은 의사 생활하시면서 저런 사람들 보신 적 있으십니까?”

유 원장은 내 질문에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어떤 사람?”

“조금 전에 왔던 정치 집 아들 같은 사람 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의사 생활이 오래됐으니까.”

짧게 끝나버리는 그의 대답에 나는 내 생각을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넘어갔을 테지만 그의 생각을 읽었고 그와 내 생각이 같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저는 고위 관직에 있는 저런 사람들이 갑질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아까도 그래서 못 참고 나섰던 거구요.”

그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돈 많다고 자신이 늘 앞서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 원장은 숨을 코로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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