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이럴 수가.
명패에 떡하니 새겨져 있는 글씨.
[총무과장 홍찬기]
어디서 본듯한 얼굴.
명패의 이름을 보고 나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홍찬성 대리와 닮았다는 것을. 그리고 조금 전 사무실에서 들었던 그의 형 이름, 홍찬기.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그가 진짜 홍찬성 대리의 친형이 맞는지는 재차 확인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대리님?”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묻는 총무과장.
“아, 네!”
“여기로 앉으시죠.”
그는 나에게 테이블을 가리키며 이야기했고, 그 테이블 의자에 그가 먼저 착석했다.
나는 들고 온 커피를 그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이거 한 잔씩 드시라고 사 왔습니다.”
“감사해요. 소현 씨 이거 들고 가서 한 잔씩 마셔요.”
책상에 앉아 있던 여자가 총무과장의 부름에 다가와 커피를 들고 유유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에 나를 보며 묻는 총무과장.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을까요?”
나는 그에게 가져온 거래처 원장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번 달 매출 원장 정리해서 왔습니다. 확인 부탁드릴게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전화를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원장 확인하러 이번 달에는 좀 일찍 오셨네요?”
“네. 제가 근처 병원 올 일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서류를 살펴보았다.
“맞네요. 그런데 다음 달 건부터는 간납 업체 끼어 있으니, 굳이 이렇게 안 오셔도 될 것 같네요.”
나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달은 이대로 마감해서 세금 계산서 발행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예. 오늘 중으로 계산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거 서명받으러 오시는데, 커피까지 사다 주시고… 잘 마실게요.”
어떻게 그에게 물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과장님 형제 있으신지 여쭤봐도 됩니까?”
나는 그가 홍 대리의 형이 맞는지, 단순히 이름이 같은 것인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
“네? 갑자기요?”
그는 예상 밖의 질문에 눈이 커진 채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아는 분이랑 닮으신 것 같아서요.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아니요. 저는 외동이라서요.”
딱 잘라 대답을 하는 총무과장.
그의 말에 총무과 앉아 있는 직원들 몇 명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외동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 자신이 형제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가 홍찬성 대리의 친형이기 때문.
그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단호하게 대답을 하는 총무과장, 홍찬기는 말과는 달리 표정에서는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그의 표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동안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어 왔었고,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의 표정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는 됐기 때문이다.
그는 내 질문 이후 눈을 자주 깜빡이고, 앞에 놓인 거래처 원장 종이 끄트머리를 몇 번이고 손으로 만져댔다.
나에게 무언가가 걸릴까 불안했던 것이지.
[아… 홍찬성, 자기네 회사에서 걸린 거 아니겠지?]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찬기 총무과장의 속마음 소리가 내 귀에 똑똑히 들어왔다.
그의 태도에서 눈치를 챈 후였지만, 그의 속마음을 통해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됐다.
그들의 만행.
선아 정형외과의 총무과장이 홍 대리의 친형이었을 줄이야.
생각보다 더 큰 홍 대리의 스케일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켜냈다.
홍 대리는 메디컬 회사에서 뒷돈을 챙기고, 형인 홍찬기 총무과장은 병원에서 뒷돈을 챙겼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기 위해 동생인 홍찬민을 대표로 세웠던 것.
자신들은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해 실행에 옮겼을 터. 물론 나 역시도 총무과장이 그의 형이었을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긴 하다.
홍 대리의 마이웨이 성격 탓에 회사의 그 누구도 선아 정형외과에 그의 형이 다니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을 알아버린 나는 이 상황을 어서 정리하고 사무실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시구나. 제 눈썰미가 부족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과장님.”
“아닙니다. 제가 워낙 흔하게 생긴 얼굴이라 그랬나 봐요. 하하.”
나는 그의 말에 양손을 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아무튼 실례했습니다, 과장님.”
“정말 괜찮습니다. 그럼 오늘 중으로 세금 계산서 부탁드릴게요.”
“넵.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 *
“다녀왔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홍 대리.
그는 영업 직원인 것치고는 요즘 사무실에서 자주 보이곤 했다.
항상 밖에서 묵묵히 영업하던 그였기에, 이제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게 다 뒤로 돈을 이중으로 벌고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지나쳐 곧장 대표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실을 모두 알아버린 이상, 지체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똑똑.
“네.”
대표실 안에서 들리는 음성.
나는 그 소리에 문손잡이를 열고 문을 활짝 열었다.
“대표님.”
“어. 민 대리. 무슨 일이야?”
“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지금 시간 괜찮으실까요?”
“그럼.”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다가왔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소파에 자리했다.
“민 대리가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와? 괜히 긴장되네.”
그는 내가 어떤 주제의 이야기도 꺼낼 것인지 감도 못 잡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게…….”
나는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을 하며 입을 떼어내려는데, 내 말을 자르는 김 대표.
“안 돼. 민 대리 혹여나 회사 그만둔다는 이야기면 나는 못 듣겠네. 아니, 안 들어야지.”
대표는 나의 굳은 표정에 퇴사 이야기를 꺼내러 왔다고 생각한 모양.
나는 그에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인데, 이런 얼굴과 말투로 들어온 거야?”
“제 생각에는 퇴사보다 더한 일인 것 같긴 한데요.”
그는 소파에 기대고 있던 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앉아 내게 대답했다.
“민 대리 퇴사하는 거 아니면 뭐든 됐지. 하하. 괜찮아, 뜸 들이지 말고 이야기해 봐.”
“선아 정형외과 건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선아? 거기가 왜? 이번에 단가 올려서 뭐 문제 생겼어? 나한테 이 원장이 따로 연락 온 건 없었는데?”
선아 정형외과는 김 대표의 담당 병원이었기에, 그는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가 문제는 아니고, 이번에 간납 업체 생긴 거 있지 않습니까.”
“어. 두 달 됐나?”
“이제 3개월 됐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거기는 병원장이 아예 총무과장한테 일임을 해둬서. 나도 선아 정형외과에 이 원장이랑만 이야기하고. 아무튼, 그런데?”
나는 옆에 들고 왔던 결재판을 열어 그에게 내밀었다.
결재판 속에는 선아 정형외과 간납 업체의 사업자 등록증을 넣어 왔다.
그는 내가 내민 사업자 등록증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 선아 정형외과 간납 업체 사업자 등록증 아니야?”
“네. 맞습니다. 여기 보시면 대표자 이름이…….”
“홍…찬민? 이게 누군데?”
“홍 대리 동생이더라고요.”
“뭐? 홍찬성 친동생?”
“네. 그리고 선아 정형외과의 총무과장인 홍찬기 과장은 홍 대리의 친형이고요.”
그는 내 말에 1초도 지나지 않아 표정이 싹 변했다.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의 김 대표.
“홍 대리……. 이 미친 새끼가.”
그의 거친 말투.
3년을 넘게 김 대표를 봐왔지만, 이런 표정과 말투는 처음 보고 듣는 것이었다.
“어쩐지…….”
그는 무언가 의심을 하는 것이 있었는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네?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
그는 내 놀란 표정을 신경 쓸 틈도 없이 옆에 놓인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김 대표.
“여보세요. 어. 박 주임 지금 당장 홍 대리 직원 서류 들고 내 방으로 좀 와줘.”
내 말에 재차 확인을 하려는 모양이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 없이 그저 사업자 등록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닫은 뒤 김 대표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똑똑.
박 주임을 호출한 지 5분이 채 지나지도 않아 그녀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와 대표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박 주임은 대표와의 짧은 통화에서 심각성을 느꼈을 테고, 그 상황에 내가 왜 있냐는 듯한 의문과 걱정스러운 표정의 그녀.
“어, 박 주임.”
“네. 여기 말씀하신 자료 가지고 왔습니다.”
그의 부름에 그녀는 대표 앞으로 걸어와 들고 온 서류 파일을 그에게 내밀었다.
“고마워.”
“네.”
박 주임은 그에게 고개를 한번 까닥이고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떠냈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며 음 소거한 목소리로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입 모양으로만 말을 했다.
나는 ‘이따가요.’라는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대답한 뒤 김 대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대표실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김 대표 앞에 놓인 파일.
‘홍찬성’이라고 적힌 종이 파일이었다.
그 안에는 그의 이력서부터 근로 계약서, 그리고 주민 등록 등본과 같은 기본 인적 사항 서류들이 모두 들어 있다.
서류를 뒤적이며 등본을 찾은 뒤 그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읽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글씨를 보던 그때.
등본에 나와 있는 그의 형제 관계.
역시나 그의 등본에는 홍찬기, 홍찬민이라는 글씨가 잉크로 뚜렷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김 대표는 서류를 바라보며 또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병원장님. 저 WG 메디컬 대표 김윤중입니다. 잘 지내셨죠? …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간납 업체 말입니다. 네, 네. 총무과장이랑 병원장님이랑 아무 관계 없으시다는 말씀이시죠? 예. 알겠습니다. 제 선에서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선아 정형외과의 병원장과 통화를 했고, 내용을 들어보니, 병원장과 홍찬민, 그러니까 병원의 총무과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냥 병원장과 병원 직원인 셈.
즉, 홍 대리의 형제들이 독단적으로 회사와 병원의 돈을 마음대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큰 숨을 몰아내 쉰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는 그대로 대표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걸어갔다.
나는 곧장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나가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홍찬성!”
대표실 문 앞에서 소리를 치는 김 대표.
그의 큰 외침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두리번거리며 홍 대리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옥상 잠깐 올라간 것 같습니다!”
끝쪽 책상에 위치한 백태석이 김 대표를 향해 외쳤다.
“뭐 해. 빨리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해.”
“넵.”
대표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백태석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들어 그를 호출했다.
그리고 곧장 열리는 사무실 문.
홍 대리는 웃는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와 분위기를 살폈다.
“야, 이 새끼야!”
홍 대리의 미소 띤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김 대표.
그의 사자 후에 사무실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