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73화 (73/339)

73화

최준성 과장은 김 대표의 말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여수는 제 담당 지역인데, 민 대리가…….”

김 대표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민 대리가 여수 다녀오기 전에 나한테 보고했어.”

내가 최 과장을 또 믿으랴. 최 과장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던 나는 전날 최 과장에게 여천 정형외과에 관한 이야기를 한 뒤, 혹시 몰라 대표실을 찾아갔었다.

김 대표에게 최 과장과 이야기하고 오케이를 받았다, 그래서 여수를 다녀오겠다는 보고를 했었다. 김 대표는 평소 예의와 정직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김 대표는 최 과장의 거짓말에 분노를 일으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최 과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최 과장만이 볼 수 있게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려 조소했다.

최 과장은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났다는 것을 눈치채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목소리를 한껏 떨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렇게 큰 건이니, 과장인 제가 다녀와 보겠습니다.”

나는 그의 발언에 올라가 있던 한쪽 입꼬리를 겨우 내리며 김 대표를 바라보았다.

전 직원이 모여있는 회의실이기에 김 대표는 시시비비를 놔둔 채 한숨을 내 쉬며 말을 이어갔다.

“하. 그래서 최 과장 너는 지금 네가 받아서 영업하고 싶다는 말이지?”

탁.

나는 회의실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아니요. 제가 하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최 과장을 바라보고 있던 김 대표의 시선을 빼앗아 왔다.

“저 자신 있습니다.”

내 당찬 한마디에 김 대표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영업에서 자신이 있다는 말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 영업이라는 것을 나를 포함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내 외침에 모든 직원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향했다.

“확실해?”

김 대표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되물었다.

“네. 여천 정형외과는 예전에 최 과장이 몇 번이나 실패했던 병원입니다. 한참이 지난 지금, 재방문으로 영업을 하는 것보다 새로운 사람이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는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을 하는 듯했다.

“게다가 저는 이미 병원에 다녀왔고, 제가 작업 중인 병원이니 끝까지 책임지고 해보겠습니다.”

김 대표 옆에 앉은 장홍석 이사가 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 대표는 곁눈질로 최 과장을 쳐다보았다. 최 과장은 책상을 바라보며 눈을 깔아 내리고 있었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여천 정형외과에 자신이 영업에 실패했기에 내가 영업을 해봤자 헛수고였을 거라고.

내가 아직 영업을 따온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큰 스케일에 놀라 자신이 중간에서 인터셉트 하려고 거짓말을 내뱉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림없었다.

“민 대리.”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김 대표.

“네.”

“최 과장에게 안 넘기고, 자네가 맡아도 해낼 수 있겠어?”

“예.”

나는 별다른 조사 없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는 입술을 내밀고 눈에 힘을 주어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그럼 결과로 보여줘.”

“네. 책임지고 여천 정형외과 따오겠습니다.”

그는 내 굳은 의지가 나타난 마지막 멘트에 눈을 한 번 깜빡이고는 다음 차례인 한태준을 가리켰다.

나는 불타는 의지로 다이어리에 써놓은 여천 정형외과 글씨에 동그라미를 연속해 그려냈다.

이번만큼은 꼭 성공해 내야 했다. 온 직원들 앞에 그리고 김 대표에게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 * *

많은 메디컬들이 이미 여천 정형외과에 영업하러 갔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는 어떤 방법으로 시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고민하기를 몇십 분.

머리를 식히러 옥상으로 향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입술로 불이 붙은 담배를 물고 크게 빨아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박승철 원장은 왜 여수의 메디컬과 거래를 끊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 숨을 내뱉으며 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해답을 찾아내 그 문제점을 내가 보완한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때 닫혀 있던 옥상 문이 열렸다.

끼이익.

“대리님!”

옥상에서 듣기 힘든 목소리. 박수진 주임이었다.

나는 황급히 담배를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밟아 불을 꺼트렸다.

박 주임은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나에게 용건이 있어서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박 주임을 보고 담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여기 계셨네요?”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는 그녀에게 물었다.

“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사무실에서 나가시길래 옥상에 가시는구나, 싶어서 올라왔어요.”

“아, 근데 무슨 일로…….”

그녀는 내 물음에 자신의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손 옆에 입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대리님. 연봉 오르셨다면서요?”

이번에 김 대표가 승진 대신 연봉 인상을 해준 것을 알고 있는 그녀. 나는 놀라 가까이에 있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되물었다.

“네?”

“제가 급여 담당이잖아요. 저밖에 몰라요. 하하.”

“아…….”

당황한 나의 표정을 보고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해요. 축하드린다고 하려고 왔는데.”

“고마워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월급도 올랐는데, 다음에 밥 사주세요.”

키가 160이 조금 넘는 그녀는 아래에서 나를 위로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즉각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

“네? 데이트하자는 것도 아니고, 월급 올랐으니까 직장 동료로서 밥 한 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뭐, 그래요.”

나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직장 동료끼리 밥 한 끼 할 수도 있지, 라는 생각에 대답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내 생각과는 다른 것 같았다.

고백이라도 받은 듯한 설레는 표정으로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녀.

“진짜죠? 그럼 조만간 저희 밥 먹는 거예요!”

내가 뭐라고 밥 한 끼 같이하자는 말에 이렇게 좋아하는지.

뿌듯한 감정도 미안한 감정도 아닌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볼은 점점 발그레해지고 있었다. 그것을 스스로도 느낀 박 주임은 민망했는지 눈동자를 허공으로 돌려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대리님.”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리님이 착하고, 후배들 생각하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자꾸 베풀지 마세요.”

“그게 무슨…….”

조금 전과는 180도 다른 표정을 지으며 나를 째려보는 박 주임. 나는 그녀의 표정에 눈을 연달아 깜빡이며 물었다.

“영수증 말이에요. 한태준 씨 담당 병원에 쓰라고 빌려줬던데요?”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영수증을 첨부해 지출결의서를 올릴 때 카드를 쓴 사유를 기재하는데 그곳에 내 담당 병원을 기재했었기 때문이다.

“영수증에 주소가 태준 씨 담당 병원 1층 카페던데요?”

평소라면 그렇게 자세히 보지 않고 넘겼을 일을 주소까지 확인했다는 걸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태준이 직책에서 영업 지원금이 너무 적게 나오니까 사비를 쓰더라고요. 그래서 안쓰러워서 그랬죠.”

나는 이유를 털어놓자 그녀는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래도, 제가 걱정돼서 그래요. 앞으로는 자꾸 카드 넘겨주지 마세요.”

나에게 나오는 영업 지원금을 다른 직원에게 양보했다는 게 영 신경이 쓰이는 모양.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박 주임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 주임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답을 했고, 그녀는 이내 미소를 머금었다.

끼이익.

다시 한번 울리는 옥상 문소리.

“민 대리. 여기 있었네.”

나를 보며 큰 목소리로 외치는 장홍석 이사.

나와 박 주임은 다가오는 장 이사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시선은 그를 바라보며 데시벨을 낮춰 옆에 있는 박수진 주임에게 속삭였다.

“오늘따라 저를 찾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 하하.”

그녀 역시 나를 따라 목소리를 한껏 낮춰 대답했다.

“그러게요. 민 대리님 인기 많으시네.”

그사이 앞까지 다가온 장 이사는 나와 박 주임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둘이 무슨 일 있어?”

평소 나와 박 주임을 엮으려고 하던 장 이사는 눈썹을 들썩이며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아닙니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 대답했다.

“바람 쐬러 올라 왔다가 마주쳤어요.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저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녀는 눈을 연신 깜빡이며 장 이사에게 속사포로 말을 내뱉은 후 그를 지나쳐 문 쪽으로 향했다.

장 이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은 뒤 나를 바라보았다.

“민 대리.”

“네, 이사님.”

그는 주변을 살펴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여천 정형외과 말이야.”

“네.”

“어떻게 알고 갔어?”

그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큰 건을 따오게 된 건지 여간 궁금했던 모양.

“광주 근교로 영업을 나가보고 싶었는데, 정보를 얻게 되어서 다녀오게 됐습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여천 정형외과가 메디컬 업체를 바꾸려고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는 말이지?”

“맞습니다.”

그는 입술을 움직이며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여수 담당은 최준성 과장인데, 그 친구보다 민 대리가 빨리 정보를 얻었네.”

“여기저기 영업을 다니다 보니 들어오는 정보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단순 영업도 중요하지만, 영업은 결국 정보 싸움이거든.”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영업직은 경력 직원이라는 말이 곧 정보 경력인 것 같아요.”

[이 친구라면 다음에…….]

입을 꾹 다물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 이사의 속마음 소리가 내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다음에 뭐?’

그의 속마음에 대해 풀이를 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던 그때.

지이잉.

주머니 속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휴대폰.

급하게 휴대폰을 열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발신인 : 모던 정형외과 김사랑 원장]

나는 이름을 확인하고 장 이사에게 휴대폰을 들고 눈썹을 들썩였다.

병원 전화임을 보여준 후 전화를 받기 위해 옆으로 걸어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민지훈 대리입니다.”

- 민 대리님. 바빠?

“아닙니다. 통화 괜찮습니다.”

-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오늘이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저번에 병원 원장님들이랑 저녁 같이 먹기로 한 거 말이야. 그거 오늘 먹자고 하시는데, 가능한가 해서.

내일 여천 정형외과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가려고 했던 계획이 있었다. 광주에서 여수까지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기에 오늘 술자리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아…….”

뜸을 들이는 내 말에 김 원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 퇴근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갑작스러웠지. 내가 오늘 시간이 괜찮아서. 일 있으면 다음 주로 미뤄도 돼. 괜찮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해줘.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오늘 자리에 명의 병원의 박승호 원장이 온다는 사실.

여천 정형외과의 박승철 원장의 친동생인 박승호 원장과 만남은 나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될 리가 없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김 원장에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오늘 보시죠. 시간 맞춰서 가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