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72화 (72/339)

72화

여천 정형외과에서 박승철 원장 진료실에서 나와 다른 원장님들을 한 분 한 분 만나, 인사를 하고 카탈로그와 명함을 전달한 뒤에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급히 여수에서 광주로 넘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사무실로 들어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을 넘게 걸려 갔던 여수에서 급히 돌아온 이유. 바로 주간 회의 때문이었다.

주간 회의는 일정이 매주 정해져 있지는 않다. 영업직 회사이기 때문에 직원들을 주에 한 번씩 모아 회의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날이나 당일에 각 일정을 확인하고 회의를 잡고는 한다.

오늘도 오전에는 각자 일정들이 빡빡해 퇴근 1시간 전에 모여서 주간 회의를 하기로 통보가 내려왔다.

나는 이미 여천 정형외과를 가기 위해 여수로 넘어가고 있었고, 회의가 잡혀 어쩔 수 없이 여수의 다른 병원은 가보지 못한 채 광주로 넘어왔다.

그렇기에 주간 회의 때 발표할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 전원을 클릭했다.

회의가 몇 시간 남지 않아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거의 다 도착해 있었다.

회사 직원의 80퍼센트가 넘게 영업 직원이다 보니, 평소에는 거의 외근 업무를 나가 있는 편이다. 그러다 가끔 지금처럼 온 직원들이 들어와 있으면 사무실이 시끄럽고 정신이 없다.

사람이 많아 북적거릴뿐더러 직원들끼리 평소에 잘 마주칠 일이 없으니, 모이면 병원 이야기에 원장들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작업 중인 병원 이야기. 그 외에도 사담을 나누기에 바쁘다.

지금도 역시 사무실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모여 수다를 떠느라 시끌벅적했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사이, 나는 커피를 한잔 타기 위해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로 걸어가는데 보이는 인물들. 최준성 과장과 홍 대리, 백태석, 한태준. 이 네 명은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들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탕비실을 놔두고 굳이 그 문 앞, 회계부와 탕비실 그 사이 언저리쯤에 서 있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더니 남자 넷이 모여도 매 한 가지다.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탓에 회계부 여직원들의 눈총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도 모른 채 신이 난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동그랗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민 대리, 왔어?”

“민 대리님 오셨습니까.”

인사에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 곧장 탕비실로 들어갔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탕비실로 들어 온 이유. 그 이야기에 굳이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과장이 끼어 있어서?

그 사람들이 싫어서?

회계부의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남은 업무가 바빠 커피만 뽑은 채 자리로 돌아가야 했고 또 대화 내용이 지극히 사적인 사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렸다. 하지만 열린 문으로 그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내 귓가에 들려왔다.

네 명이 서 있었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단 한 명의 목소리였다. 바로 최준성 과장.

그는 지난밤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제야, 바로 어제.”

그의 목소리는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커피가 내리는 소리를 뚫고 귀에 박히는 그의 이야기.

“상무지구에서 술 먹고 시간도 많이 늦었겠다. 술도 깬 것 같아서 운전대를 잡았거든?”

“네? 어제 많이 드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의 이야기에 홍 대리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한, 소주 두 병 정도 마셨나?”

“많이 드셨는데요? 근데 운전대를 잡으셨다고요?”

역시나 그의 말에 놀라 큰 목소리로 묻는 한태준.

“에이. 나 술 센 거 알면서. 아무튼, 술 마시고 나서 커피 마셨어. 그래서 좀 깼거든.”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술 부심을 부리는 최 과장.

“근데 우리 집 앞쪽에 음주 운전 검사를 잘 안 한단 말이야. 그래서 어제도 몰래 가긴 했거든. 근데 어제 뭣 될 뻔했다니까?”

그는 그 이야기를 하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왜요? 음주 운전 걸리셨습니까?”

“에이, 그랬으면 나 지금 여기 없지. 나는 바로 핸들 꺾었지.”

“헉. 경찰이 안 따라붙었고요?”

백태석은 놀라는 추임새를 넣으며 물었다.

“같이 술 마신 친구 놈이 나랑 같은 아파트 살거든. 걔가 걸린 거야. 그래서 나한테 바로 연락했지.”

“과장님은 같이 출발하신 거 아닙니까?”

“어제 뒤따라가는데, 나만 자꾸 신호에 걸리는 거야. 계속 빨간불 걸려서 화났었는데, 덕분에 전화 받고 핸들 미리 꺾은 거지. 진짜 뭣 될 뻔했다니까.”

뭐가 자랑이라고 무용담을 펼치듯이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나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친구 연락받고 골목으로 들어가서 주차해 놓고 택시 타고 집 들어갔어.”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침 내리고 있던 커피가 다 나오고, 커피를 들고 곧장 최 과장에게 다가갔다.

“크. 나 진짜 운 작살 나지 않냐? 다들 조심해. 요즘 단속 많이 한다.”

탕비실 문을 여니 보이는 최 과장의 표정. 세상 뿌듯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홍 대리와 한태준, 그리고 백태석의 표정은 꽤 불편해 보였다.

듣자 하니 이건 아닌 것 같은 생각에 나는 입을 열었다.

“과장님.”

“응?”

최 과장은 눈썹을 들썩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음주 운전하셨습니까?”

“아… 들었어? 대박이지. 겨우 살았다니까.”

“잠깐 저 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사무실 한복판에서 상사에게 직언을 내뱉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탕비실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그냥 여기서 말해.”

하지만 따라오지 않는 최 과장.

“음주 운전 이야기하셔서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내 이야기에 콧방귀를 끼며 어깨를 드는 최 과장.

“어. 말해.”

그와 나의 이야기에 나머지 직원 세 명도 나를 바라보았다.

“음주 운전은 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여는 최 과장.

“알아. 우리 걸리면 영업직 끝장이야. 그래서 어제 겨우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거잖아.”

나와 논점이 전혀 다른 그. 그의 말은 내 마음속 심지에 불을 붙였다.

“영업직 문제가 아니잖아요. 음주 운전이라는 게 단순히 면허 취소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내가 괜찮다는데 무슨…….”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판단 흐려져서 사람이라도 치는 건요? 음주 운전이 생명을 위협하는 거 아닙니까.”

그는 목부터 빨개지기 시작했다.

화가 나는 것인지 내 팩트에 쪽이 팔리기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이 살다가 실수 좀 할 수 있는 거지, 뭐.”

“과장님 실수 한 번 아니시잖아요.”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회계부의 박수진 주임이었다.

“과장님 저번에 회식하고 나서 대리 기사님 부르신다더니 운전하고 집 가시는 거 택시 타고 가다가 봤어요.”

“그날은…….”

“그날 한 번도 아니시잖아요.”

박 주임은 자리에서 일어나 최 과장에게 다가오며 이야기를 했다.

“술 먹고 제발 운전대 좀 잡지 마세요.”

그녀는 최 과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 뒤 나를 쳐다보고 눈썹을 한 번 들썩인 뒤 화장실을 향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머쓱해진 분위기에 다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그때.

“후배들한테 좋은 거 자랑한다.”

뒤에서 들려오는 최권호 부장.

“죄송합니다.”

최 과장은 최 부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뭐 해. 다들 회의 자료 준비했어? 30분 남았다. 얼른 가서 준비해.”

“네.”

그의 말에 모여있던 직원들은 바로 뿔뿔이 자리로 흩어졌다.

최 과장 역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자리로 조용히 돌아갔다.

5시.

회의 시간이 되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다이어리를 챙긴 채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에 빠진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퇴근 전에 회의하니까 참석률이 100퍼센트네. 앞으로는 이렇게 회의해야겠어.”

마지막으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하는 김 대표. 그의 착석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시작됐다.

“…해서 다음 달까지 신제품 데모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신제품 나오면 직원들 교육 끝내고, 바로 병원 데모 들어가도록 해.”

“네.”

손지혁 차장의 발표 후, 앉은 차례로 순서가 이어졌다.

최준성 과장과 홍 대리 이후 다가온 내 순서. 김 대표는 고개를 들고 턱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먼저 이번 주, 실적에 대해 보고하겠습니다. 모던 정형외과에 안국환 원장님에게 창상 피복제 납품 시작하기로 했고, 김사랑 원장은 견적 넘긴 후에 답변 대기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김 대표는 나를 보며 물었다.

“거기, 박승호 원장도 넘어간다며.”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김 대표의 정보력과 말 한마디는 늘 나를 놀라게 한다.

많은 직원과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병원과 의사들, 그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심지어 광주 바닥에서 일어나는 병원 관련된 사항들은 늘 빠삭하다. 그래서 내가 본받을 점이 매우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네. 아직 날짜는 확정이 나지 않아서 확인되는 대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민 대리가 박승호 원장, 지금 명의 병원에서도 담당이었지?”

“예. 모던 정형외과로 옮기면서 저희 품목을 더 늘리게 영업할 계획입니다.”

“그래. 그럼 이때가 기회야. 창상 피복제 단가 나한테 다시 가져와 봐. 계산서 발행하기 전에 단가 몇십 원이라도 더 낮춰서 넣자. 그럼 병원에서도 반응이 있을 거야.”

“넵.”

“그리고 다음.”

김 대표는 내 옆에 앉은 한태준을 볼펜을 들고 있는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보고 사항 더 있습니다.”

나는 서둘러 그의 시선을 다시 가져왔다.

“그래? 해 봐.”

“오늘 여천 정형외과에 다녀왔고, 박승철 원장과 컨택 했습니다.”

내가 여수에 다녀온 것을 알고 있는 최준성 과장이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품목은?”

김 대표 옆에 앉은 장홍석 이사가 입을 열었다.

“전 품목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직원들은 내 한마디의 말에 일동 고개를 들었다.

“전 품목?”

“인공 관절도 전부?”

수군대기 시작하는 회의실. 전 품목을 전부 바꾸려고 한다는 내 말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네. 전 품목을 한 군데 업체에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업체를 바꾸면 동일하게 한 업체랑만 일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거기 분위기는?”

병원의 실제 분위기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내 영업력에 대해 병원이 보였던 분위기에 대해 확인을 하는 것.

“아직은 호의적이기는 하나, 광주에서 이미 여러 업체가 다녀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주 컨택하고 품목들도 다양하게 더 시도해 보겠습니다.”

“저… 대표님.”

모두가 나에게 집중을 하고 있는 지금, 그 순간을 깨는 목소리. 최준성 과장이었다.

“응?”

“제가 여천 정형외과 내일 다녀와 보겠습니다.”

터무니없는 그의 말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최 과장이? 왜?”

김 대표의 말에 최 과장은 이어 입을 열었다.

“여수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들어보니 스케일이 꽤 큰데, 대리인 민 대리보다는 과장인 제가, 그리고 담당 지역인 제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큰 건이라는 것도 맞는 이야기이고 최 과장의 담당 지역인 것도 맞는 이야기였다.

“음…….”

김 대표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민 대리는 후임인데, 이렇게 말없이 내 지역에 가서 영업하는 건 좀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나?”

나를 쳐다보며 말하는 최 과장. 그런 최 과장을 바라보며 김 대표가 미간을 찌푸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