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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50화 (50/339)

50화

메디컬에서 일을 하면서 퇴사를 하고 개인 회사를 차리는 경우는 꽤 많은 편이다.

회사에 소속으로 일하며 담당 병원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정해진 것이 없다.

다니는 회사 대표의 재량인 셈.

그래도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은 그동안 거래처를 뚫은 공로를 인정하여 사장이 나가는 직원에게 거래처 몇 개를 쥐여 주고, 한번 잘해 보라며 보내주는 곳도 있고.

냉정한 곳은 직원의 담당 병원이 아닌 회사와의 관계를 맺은 병원이라 단 한 개의 병원도 못 가지고 나가게 하는 회사도 물론 있다.

누가 맞고 틀렸다는 것은 없다.

단지 회사 사장과 직원의 선택일 뿐.

“근데 이번에 태준 씨한테 병원 트레이드 했던 건 있지 않습니까.”

“응. 태준이랑 최 과장한테도 트레이드했다고 하더라고.”

“최 과장한테도요?”

“몰랐어?”

“네. 태준 씨 이야기만 들었어서.”

“이 차장이 혼자 나가서 관리하기에 병원 수가 버겁다고 그 병원들은 안 가지고 간다고 하더라. 참 이런 사람도 없지.”

그 트레이드 했던 병원의 실체를 모르는 대표는 이 차장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럼 태준 씨가 준 병원은요?”

“그것들도 두고 간다더라고.”

내가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 비상 병원에서 들은 내용과 사뭇 달랐다. 전의 일들을 미루어보아, 이 차장의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대표님.”

“응?”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될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서요. 제가 병원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무슨 병원?”

“우선 그 전에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나는 한태준에게 받은 병원 매출 파일을 펼쳐 대표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이어갈수록 굳어지는 대표의 얼굴.

“그래서 이 병원이, 이 차장이 태준이한테 넘겼다는 병원이지?”

“맞습니다. 근데 제가 비상 병원에 갈 일이 있어 들렀는데…….”

비상 병원에서 박지연 간호사와 했던 이야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한참이고 말없이 내 이야기만 듣던 대표.

입은 꾹 닫혀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내 말이 다 끝나고 나서도 대표실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확실하지?”

“네. 오후에 병원에 확인했고, 물건들도 확인하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그는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나도 따로 확인해 볼 테니까 민 대리도 퇴근해 봐.”

그의 말에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네.”

대표실을 빠져나오니 직원들은 모두 퇴근을 한 후였다.

큰 사무실에 홀로 불이 켜진 대표실을 바라보며 사무실을 나섰다.

* * *

“좋은 아침 입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 느껴지는 싸한 느낌.

아직 어떤 일인지 확인은 못 했지만, 무슨 일인가는 분명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

자리에 돌아와 가방과 재킷을 벗어두고 컴퓨터 전원을 켜며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블라인드가 쳐져 굳게 닫혀 있는 대표실. 그리고 그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란스러운 소리.

대표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몇몇 직원들은 이미 대표실 안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모르는 직원들 역시 눈치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각자 자신의 업무를 하기에 바빴다.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모두 대표실 안의 상황을 잊어갈 때쯤 대표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던 직원들은 열리는 문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보았다.

열린 문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상일 차장. 한참을 있었던 탓에, 이 차장이 나오는 것을 보고 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떤 일로 이 차장과 대표가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말이다.

이 차장은 새빨개진 얼굴과 함께 고개와 시선을 땅에 고정한 채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자리에 도착해 책상 아래에 있던 커다란 종이 상자를 꺼내 책상 위로 턱하고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종이 상자 안에 자신의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상자에 물건을 담는 것.

단순히 물건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상자를 꺼내어 물건을 담는다는 것의 의미는 단 한 가지.

바로 ‘퇴사’다.

이 차장이 물건을 담기 시작하니, 온 직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이 차장의 결말은 퇴사라고 생각했고, 이달 말에 퇴사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퇴사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눈길이 그쪽으로 힐끔거려졌다.

“민 대리님. 이 차장님 퇴사하시는 겁니까?”

한태준이 내 자리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근처에 앉은 직원들 역시 한태준의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내 쪽으로 귀를 쫑긋 열고 있었다.

“글쎄다. 나도 들은 게 없어서.”

대표는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병원에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확인 후 내린 결론이 이 차장에게 권고사직을 내린 모양.

이 차장은 끝까지 아무 이야기 없이 묵묵히 짐을 싸고 있었고, 그런 그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직원들은 일을 손에 놓은 채 있었다.

“다들 뭐 해. 뭐 구경났어?”

정적을 깨는 한 마디.

이사실 문을 열고 나온 장홍석 이사였다.

그의 한 마디에 온 직원들은 급히 고개를 돌려 컴퓨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차장 쪽으로 걸어가는 장 이사.

꽤 화난 듯한 얼굴로 쿵쿵거리며 다가갔다.

“이 차장.”

“네. 이사님.”

“회의실에서 잠깐… 아니다. 그럴 필요 있나.”

“…….”

“나는 이 차장 그런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 이쪽 바닥에 오래 있었다면서 이런 상도덕도 없이 일하는 건 아니지.”

“…죄송합니다.”

“됐고. 나가서 회사 차리든 다른 회사를 들어가든 상관은 없는데. 마음처럼 쉽게 안 될 거야.”

장 이사의 화난 모습에 직원들은 모두 고개를 책상에 고정한 채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는 이 바닥에서 마주칠 일 없었으면 좋겠네. 조심해서 가고, 앞으로 어떤 일 하든 간에 그따위 양아치 짓거리는 하지 말자.”

“그…….”

장 이사의 말이 끝나고 이 차장이 입을 열려는 순간, 장 이사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한층 더 싸해진 사무실의 분위기. 사무실 직원들은 앞뒤 상황은 모르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를 파악한 채 정적이 흘렀다.

“민 대리. 잠깐 들어와 봐.”

정적을 깨고 대표실 문이 열리고, 대표는 나를 크게 불렀다.

“아, 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응. 저기 앉게.”

“네.”

익숙한 듯 소파에 앉아 대표가 맞은 편에 앉기를 기다렸다.

“민 대리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이 차장 건 말씀하시는 거죠?”

“응. 어제 민 대리 이야기 듣고 장 이사랑 병원 전부 확인해 봤거든.”

“아…….”

“잠깐만.”

대표는 내게 손바닥을 내밀며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들어와 봐.”

곧이어 대표실 문이 열리고, 장홍석 이사가 들어왔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 장 이사. 그는 사무실에서의 흥분이 덜 가라앉았는지 여전히 얼굴에는 화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민 대리가 알아냈다며?”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진짜 일 날 뻔했지.”

내 말에 맞은 편에 앉은 대표가 큰 숨을 내쉬며 대답을 했다.

“그럼 이 차장은 바로 퇴사하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대표와 장 이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래처는요?”

“당연히 하나도 못 들고 나갔지. 아마 앞으로 광주의 메디컬 업계엔 발도 못 붙일 거야.”

“아…….”

단호하게 말하는 장 이사의 말에 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사장은 허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차장이 나가서 자기 회사 차리면 비상 병원이고 뭐고 다 자기 거래처로 만들려고 했었단다. 말이 되냐?”

“그러니까요. 저도 듣고 놀랐습니다.”

“아무리 상도덕이 없다지만, 이건 진짜 아니지.”

“근데 민 대리는 어떻게 알게 됐어?”

미간에 힘을 주고 나를 바라보며 묻는 장 이사.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레일 정형외과 담당하던 복 메디컬의 직원이 이 차장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뭐?”

장 이사는 내용을 몰랐는지 내 말을 듣고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신입 직원한테 떠넘기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저희 회사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확하게 확인하고 말씀드리려고 알아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김 대표와 장 이사는 동시에 감탄을 터뜨렸다.

“민 대리가 정말 잘했네.”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민 대리.”

“네.”

맞은 편에 앉은 대표가 다이어리를 끄적이며 나를 불렀다.

“혹시 요즘 업무 많은가?”

업무가 많냐고 묻는 상사의 말에 많아도 많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 차장이 가지고 있던 메디컬 전부 관리해 볼 수 있겠어?”

“네? 전부요?”

“응. 물론 그냥 떠넘기는 건 아니고.”

“상이지, 상.”

장 이사가 대표의 말에 덧붙이듯 말을 했다.

“상이요?”

“응. 민 대리 덕분에 크게 엎질러질 뻔한 물 엎어지기도 전에 예방했잖아.”

“네.”

“그 거래처들 민 대리가 한번 관리해 봐.”

이 차장이 아무리 그래도 차장직을 맡고 있던 사람이기에, 그의 업무 자체는 내가 지금 해내고 있는 양보다 많았고 더 책임감이 막중한 역할을 했었다.

그런 그 업무가 나에게 고스란히 오게 된다면, 지금 내 업무에 그 업무까지 어떻게 홀로 처리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잠시 버퍼링에 걸렸다.

이게 상이 맞나 싶었지만, 내 역량을 평가하여 준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그 정도로 크고 많은 업무 하는데, 급여나 대우가 기존과 똑같을 거란 생각은 안 하겠지?”

“네?”

“하하. 민 대리 이러다가 과장직도 최연소로 달 수도 있겠네.”

장 이사가 웃으며 하는 이야기에 나는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과장이요?”

“아직은 아니지만, 민 대리가 해나가는 것 보고 결정을 할 것 같아.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지만 말이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필요하면 밑에 직원 하나 데리고 다녀.”

대리 직책 중에서는 연차가 가장 오래된 홍 대리만이 신입 직원인 백태석을 데리고 다니고 있다.

물론 백태석에게 일을 가르쳐 줘야 하기 때문이지만, 데리고 다니는 홍 대리 입장에서도 크게 불리한 점은 없다.

크고 작은 업무들을 밑에서 도와줄 직원이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사코 거절할 이유는 만무했다.

“감사합니다.”

최연소 과장 승진의 꿈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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