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27화 (27/339)

27화

“그게 말이야…….”

백승원은 내가 묻는 말에 뜸을 들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요즘 새로 파기 시작한 소스가 있거든.”

“응.”

“내가 한동안 계속 실적이 안 좋았었어. 그러다가 이번 건 소스 생각해 냈는데, 잘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 소스가 뭔데? 뭐길래 왜 이렇게 서론이 길어.”

“제약 회사들 리베이트하는 건 알지?”

“그럼, 모를 수가 없지.”

리베이트.

제약 회사에서의 리베이트는 거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리베이트라고 인터넷 창에 검색만 해도 연관 검색어는 ‘×× 제약 리베이트’, ‘○○ 제약 리베이트 검거’ 등의 해당 제약 회사의 이름까지 거론 된다.

게다가 뉴스에 ‘제약 회사 불법 리베이트 조사’와 같은 기사들이 심심찮게 뜬다.

물론 불법이지만, 제약 회사에서는 리베이트를 안 하는 회사가 없을 정도로 제약회사만의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백승원이 나에게 기사 소스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앞에 메디컬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리베이트라…….

“그렇지. 제약 쪽은 뭐, 리베이트를 안 하는 게 이상하지?”

“응. 어디서 제보를 하느냐에 따라서 걸리고 안 걸리고 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리베이트가 참 문제인데 말이야.”

“맞아. 관행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불법이니까.”

“아, 광주에 그 제약 회사 걸린 거 봤어?”

“뉴스에 조사한다는 것까지는 봤어. 그 후에는 어떻게 됐대?”

“거기 사장 결국 구속이래. 옆에 그 이름 뭐더라? 작은 제약 회사 붙어 있는 거 있잖아. 거기 직원도 리베이트 때문에 퇴사했다고 하더라고.”

앞에 놓인 술잔을 들고, 백승원을 보며 건배하는 시늉을 한 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휴, 참 문제다. 근데 아까 KJ 병원 앞에서 심각하게 통화하던데 무슨 일 있어?”

“그게. 사실 제약 쪽이 아니라 정형외과 쪽 리베이트에 대해서 취재 시작했거든.”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나야 리베이트를 해본 적도 할 생각도 없지만 얼마 전 최 과장이 리베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라 백승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근데 아까 위에서 전화가 와서 말이야. 뭐 찾아낸 거 없는지 쪼아대더라고.”

그는 뒤이어 할 말이 있는 듯 소주 한 잔을 털어내고 침을 꿀꺽 한번 삼켜댔다.

“널 만났었잖아? 메디컬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고 보고해버렸어. 미안해.”

그는 사과가 끝나기 무섭게 양손으로 합장 자세를 취하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긴. 네 친구 메디컬 다니는 거 맞는데 뭐.”

“그렇게 생각해 주니까 고마워. 취재 때문에 술 마시자고 한 건 아니고, 진짜로 오늘 만나서 반가워서 그랬어.”

“그래.”

술잔을 부딪치며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도 백승원의 표정은 할 말을 못 한 사람처럼 불편함이 눈에 보였다.

[KJ 병원 제보를 받아서 리베이트 하는 거 이미 알고 있다고 얘기를 해, 말아? 근데 지훈이네 회사가 아닐 수도 있는데.]

순간 헉 소리가 육성으로 삐져나올 뻔했다. 단순히 나에게 리베이트에 관한 질문을 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KJ 병원은 광주에서 크고 유명한 병원 중 하나로, 우리 WG 메디컬의 매출 탑 5위 안에 드는 병원이다.

이런 큰 병원과 거래를 하다 보면 다른 메디컬 회사에서 빼앗아 가기 위해 기를 쓰고 약점을 찾기도 한다. 정치판에서도 서로의 비리, 약점을 제보하여 지지율을 떨어트리듯이 말이다.

보통 메디컬 판에서는 이미 넣고 있는 제품과 동일 제품의 단가를 낮춰 들고 오는 상도덕 없는 메디컬 회사들이 있다. 아니면 우리가 병원에 납품 실수를 하는 걸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사이에 비집고 들어오는 회사들.

하지만 이렇게 리베이트로 제보를 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서울의 아주 큰 메디컬 회사들은 리베이트로 조사를 받으러 갔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으나, 광주처럼 지방에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게다가 KJ 병원은 최준성 과장의 담당 거래처.

최준성 과장이 리베이트를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백승원과는 KJ 병원에 관하여, 그리고 리베이트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최준성 과장이 싫어도 같은 회사 직원이기 때문에 그가 걸리는 순간, 우리 회사도 함께 가라앉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다.

아직까지는 말이지.

“지훈아. 정형외과 쪽도 많아?”

“근데 아까 병원에서 잠깐 보고 내가 정형외과 파트인 건 어떻게 알았어?”

KJ 병원이 종합 병원이라 정형외과 말고도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진료 과목이 꽤 많은데, 단번에 날 알아봤다는 게 신기했다.

“아까 들고 있던 물건이 정형외과 품목이길래.”

“아……. 기자라더니, 진짜 눈썰미 장난 아니네?”

“하하. 괜히 기자 짬밥 먹었겠냐?”

“그러니까.”

“그래서 정형외과 쪽 메디컬도 리베이트 많다던데, 맞아?”

“이쪽은 그렇게 많지 않아.”

“근데 제보도 많이 들어왔기도 하고, 그리고 예전에 한 번 메디컬 직원의 대리 수술 사건 터진 거 알지?”

“응. 난리였었지, 그때.”

“맞아. 그때 이후로 정형외과 메디컬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 우리는 그런 관심 따라가야 되는 거잖아. 흐름 타서 메디컬 쪽 담당 취재 시작했어.”

“그렇구나. 근데 나는 리베이트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여서, 도움이 된다면 돕겠지만 내가 해줄 얘기가 없을 거 같네.”

“아니야. 다행이다. 괜히 나도 너한테 피해 갈까 봐 물어봐도 되나 걱정했거든.”

대답은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리베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대답에 백 프로 믿는 눈치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나도 뒷돈 이런 거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힘들게 영업하는데, 리베이트네, 뒷돈이네, 이러면서 거래처 빼앗기는 게 그렇게 거지 같을 수가 없거든.”

“나도 취재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정형외과 쪽도 이렇게 백마진이 많을 줄은…….”

정형외과 쪽의 리베이트, 백마진은 보통 수술 건당으로 돈을 돌려준다고 한다.

A 메디컬에서는 수술 한 케이스 당 20만 원을 의사에게 현금으로 따로 준다고 하고, B 메디컬에서는 40만 원, C 메디컬에서는 30만 원을 준다고 하면 의사는 당연히 B 메디컬과 거래를 트게 된다.

수술은 급여 품목이기 때문에 각각 다른 제조사 제품을 사용한다고 해도 남는 금액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근데 케이스당 저렇게 돈을 백마진으로 의사에게 돌려주면 실제로는 남는 게 많이 없지만, 저렇게 해서 병원과의 거래를 트는 메디컬이 실제로 많다.

거래 시작 전부터 엄청난 갑과 을을 스스로 정하고 들어가게 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이런 행위는 당연히 불법이지만, 종종 병원의 써전이 당당하게 먼저 요구를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내가 어깨 인공 관절을 너희 회사 제품으로 써줄 테니 얼마를 따로 달라. 소모품을 써줄 테니 개당 얼마를 달라, 라며 요구를 한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한 번도 그런 써전을 만나 본 적은 없었다.

백승원이 취재를 해서 기사를 내고 그로 인한 파장이 얼마나 클지는 모르겠지만, KJ 병원 관련하여 우리 WG 메디컬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다가도 한편으로는 이 기회로 이쪽 세계에서 리베이트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다음에 도움될 만한 일 생기면 도울게. 취재 열심히 해서 이번 기회에 승원이 너도 잘됐으면 좋겠다.”

“그러게. 고마워. 물어볼 거 생기면 연락해도 되지?”

“당연하지.”

* * *

지이잉.

[발신인 : 명의 병원 이명호 원장]

사무실 문을 열다가 이명호 원장에게 오는 전화를 확인하고 다시 뒤로 돌아 한쪽 모퉁이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네. 원장님, 민지훈입니다.”

- 어, 민 대리. 출근은 했어? 내가 너무 일찍 전화했나?

“아닙니다. 막 출근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 모레 어깨 수술할까 하는데, 기구 가능한가?

“IBH 거 어깨 인공 관절 말씀이십니까?”

- 응. 데모해 줬던 걸로.

“당연히 가능합니다. 모레 몇 시 수술입니까?”

- 첫 스케줄이야.

“그럼 소독 돌려야 되니까, 내일 오후까지는 수술실에 넣겠습니다.”

- 그래.

“내일 기구 넣고 찾아뵙겠습니다.”

- 응. 내일 보자고.

“원장님!”

- 왜?

“진짜 감사합니다.”

- 하하. 그래. 내일 보게.

“넵! 좋은 하루 되십시오.”

이명호 원장과의 전화가 끊기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사무실 문 앞 복도에 서서 핸드폰을 꼭 붙잡고, 주먹을 쥐고 허공에 휘둘러 보였다.

해냈다는 이 기쁨을 표현할 방법이 이 조용한 복도에서는 기껏해야 입을 앙다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이는 게 최선이라는 게 아쉬울 따름.

당당한 발걸음과 내려올 줄 모를 입꼬리를 간신히 붙잡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벽면에 걸려 있는 커다란 스케줄 칠판에 모레 날짜 칸에 ‘명의 병원 shoulder’를 크게 적어 보였다. 그리고는 곧장 장홍석 이사실로 향했다.

똑똑.

“이사님.”

“어. 민 대리 왔어?”

“네. 이사님! 제가 명의 병원 인공 관절 따냈습니다!”

“정말이야? 무슨 수술로?”

“어깨 케이스입니다. 모레 수술 잡혔습니다.”

장홍석 이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웃음.

“민지훈 이 자식 일냈네, 일냈어.”

“감사합니다. 다 이사님 덕분입니다.”

“야, 그렇게 얘기해 주면 나 또 감동 받는다.”

“하하. 진짭니다.”

“그래서 언제 정해진 거야?”

“방금 명의 병원 이명호 원장이랑 통화했습니다.”

“스케줄판에는 적었고?”

“네. 바로 적어뒀습니다.”

“그래. 내가 우선 대표님한테 말씀드릴게. 대표님 나오셨냐?”

“아니요.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민 대리. 잘될 줄 알았다. 진짜 고생했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명의 병원이니까 내일 기구 넣으면서 신경 쓰고. 재고부에서 확인해 줘도 네가 다시 한번 기구랑 임플란트 잘 체크해서 넣어.”

“넵.”

“우리 거로는 처음 하니까, 신경 잘 써야 해. 첫 수술로 계속 사용할 건지, 한 번만 쓰고 마는 건지 정해지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 번 체크해서 납품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환자 상태 따라서 당일에 수술 홀드 될 수도 있으니까, 우선 첫 케이스 끝나는 것까지 잘 지켜봐 보자.”

“넵!”

“아마 인공 관절은 한 케이스 뚫기 시작하면 별 탈 없으면 계속 쓸 거야.”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 IBH 제조사 제품 이명호 원장이 엄청 선호하시더라고요.”

“잘됐네. 이번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잘 풀리면 인센티브는 쏠쏠하게 나갈 거야.”

“네. 감사합니다.”

“그래, 고생했다. 나가서 일 봐.”

장홍석 이사실에서 나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탕비실로 향했다.

오늘은 뭔가 오전부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도 될 것 같달까?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탕비실 문이 다시금 열렸다.

“어? 민 대리님!”

“네. 주임님 안녕하세요.”

박수진 주임은 탕비실에 들어와 커피를 내리거나 차를 꺼내지도 않았다. 나에게 볼일이 있어 들어 온 것 같은 느낌.

핸드폰을 양손으로 꼭 쥐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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