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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9화 (9/339)

9화

빈 튀김 접시 옆에 초록 병들이 5병.

문이 열리고 주문한 소주 한 병이 마저 더 들어왔다.

“민 대리는 박 원장 아예 처음 보는 건가?”

“아니요. 박 원장님은 저 기억 못 하시겠지만, 2년 전쯤 저 신입 때 명의 병원 몇 번 갔던 적 있는데, 그때 인사드렸었습니다.”

“아, 그래서 낯이 익었었나?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았었는데 기억이 안 나더라고. 못 알아봐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오히려 낯익다고 해주셔서 기쁜데요? 그때가 완전 신입 때라 무턱대고 병원 찾아가서 인사드렸던 거라. 기억 못 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입사 초반이라 가진 게 열정밖에 없을 때여서.”

“올해 메디컬 몇 년 차예요? 아니, 몇 년 차야?”

박 원장은 아직 내가 어려운지 말을 편하게 놓지 않았다.

“저 이제 3년 차 됐습니다. 열정은 아직도 가득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쇼. 원장님.”

“그래, 도울 일 있으면 돕고 살아야지. 민 대리는 우리 어디 업체에서 넣고 있는지 알고 있나?”

“네, 들은 적 있습니다. MG 메디컬에서 거의 쓰고 계신다고…….”

“하긴 모르는 업체 없을 거야, 아마. 우리 병원은 MG 메디컬 제품이 꽉 잡고 있어서 말이지.”

“명의 병원이 이렇게 잘 되니, MG 메디컬 사장님은 너무 좋으시겠는데요?”

“그럼. MG 메디컬 사장님은 다른 병원 다 접고 명의 병원 하나로도 충분할걸, 아마.”

신비 병원 임근수 과장이 너스레를 떨며 얘기했다.

“맞아. MG 메디컬이 우리 명의 병원 총판인 셈이지 뭐. 하하.”

[이러니까 병원이 변화도 없고. 경쟁력도 없지, 참.]

박 원장은 웃으며 얘기를 하고, 한숨을 내쉬며 술을 들이켰다.

변화가 없고, 경쟁력이 없다?

명의 병원 박 원장은 MG 메디컬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서 흔쾌히 물건을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나도 명의 병원에 오래 있어서 신비 병원으로 이직했어도 MG 메디컬 물건 아직도 받잖아. 익숙해서 그래.”

“임 과장님, 그럼 신비 병원에 저희 WG도 살짝 틈 비집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하핫.”

채워진 술잔을 들고 임 과장 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래. 어디 틈 생기면 비집고 들어와 봐. 들어오면 나야 민 대리랑 일하는 거지. 하하.”

신비 병원의 임 과장은 앞에 놓은 술잔을 올려 들고 있는 내 술잔에 부딪혀 보였다.

“그나저나 민 대리, 여자 친구는 있어?”

“그러게. 그러고 보니까 민 대리 애인 있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네?”

“아……. 없어서 티를 하나도 못 냈었나 봅니다.”

“아니, 민 대리는 여태껏 애인 안 만나고 뭐 했어? 인물도 괜찮은데.”

“모든 여자들이 박 원장님같이 인물 괜찮다고 저를 봐주면 진작 있었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아직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그럼 주말에는 데이트도 안 할 텐데 뭐 해? 뭐 좋아해?”

“저는 드라이브 다니는 거 좋아합니다.”

“드라이브? 드라이브 좋지. 그런데 바이크는 안 타나, 민 대리?”

역시나 예상했던 주제로 흘러갔다.

“바이크 라이딩은 아직 따로 가본 적은 없는데, 매번 차로 드라이브만 다녀서 한번 가보고 싶긴 합니다. 박 원장님은 바이크 타십니까?”

“민 대리, 말도 마.”

임 과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박 원장 아주 바이크에 미쳐 산다니까?”

“아, 정말이십니까? 크으. 역시 박 원장님 포스가 스피드 좋아하실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래 보였나? 하하, 바이크 좋지. 왜 아직 못 가봤어?”

역시 박 원장의 라이딩 사랑은 손지혁 차장의 말 그대로였다. 바이크 얘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거리며 어깨가 한껏 올라가 신이 난 박 원장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시도할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한번 가보고 싶기는 했는데. 원장님들은 라이딩 자주 다니십니까?”

“나야 바이크 동호회에서 찾고 안달이지. 민 대리도 바이크 좋아한다니까 더 눈길이 가는데?”

박 원장은 의자를 당겨 테이블 쪽으로 붙어 앉아 술병을 들고 나에게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다음에 저도 한번 껴주십쇼, 원장님.”

“좋지, 좋아. 나중에 꼭 따라와, 민 대리.”

박승호 원장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한껏 커진 목소리로 바이크에 대해 한참을 신나게 설명했다.

쌓여가는 술병들처럼 오디오가 빈틈이 없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다가 박 원장이 졸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자고. 내일 나 오전 진료야.”

주섬주섬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는 박 원장을 따라 신비 병원 임근수 과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빨리 빌지를 들고 계산대로 가서 카드를 내밀었다.

“민 대리가 사는 거야? 오늘은 내가 고마워서 보자고 했으니까 내가 살게.”

뒤이어 따라온 임근수 과장이 지갑을 열며 카드를 꺼냈다.

“아닙니다. 이미 계산했으니 다음번에 과장님이 맛있는 거 한번 사주십쇼.”

“그래, 그럼. 내일 박 원장 오전 진료니까 오늘은 이만 들어가고, 다음번에 셋이 한 번 더 뭉치게.”

“네. 너무 좋습니다.”

“봉선동 대리 왔습니다.”

저 멀리서 대리운전기사가 도착해 박승호 원장이 먼저 차로 향했다.

“원장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기사님, 조심히 부탁드립니다.”

차를 타는 박승호 원장을 향해 허리를 접어 인사를 했다.

지이잉.

차에 올라탄 박 원장은 창문을 내려 손짓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민 대리. 다음에 지나가다 병원 들러. 커피나 한잔하게.”

“네! 바로 가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원장님.”

오늘 술자리에서 가까워진 덕분인지, 술이 올라와 하는 얘기인지는 몰라도 명의 병원의 박 원장과 친분이 생겼다는 사실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그를 보며 한 번 더 허리를 숙여 떠나는 차를 바라보고 인사를 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숙취를 이끌고 사무실이 아닌, 명의 병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명의 병원은 입사 초에 아무것도 모를 시기에 조사 없이 영업을 왔다가 대차게 외면을 당한 이후로 거의 3년 만에 방문했다.

그 시절에는 명의 병원 입구에 들어와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조차 모를 때라, 병원 로비를 하염없이 서성였다. 그러다 외래 진료 눈치를 보고 한 번씩 한가한 써전들 방에 찾아가 무작정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했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만 영업해서는 성과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정말 무식하게 영업했다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그 다음 날 또 같은 써전을 찾아가 인사를 해도 나를 기억 못 해준다는 게 당시에는 가히 충격이었다.

사실, 여러 번이나 거절당한 병원에 다시 영업을 하러 온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분명히 거절을 당했을 이유도 있을뿐더러, 굳이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거절을 당했는데 오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내 발로 직접 명의 병원에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었으니까.

3년 전, 명의 병원에 들어갈 때와는 다른 느낌과 다른 발걸음으로 출입문을 열었다. 접수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원무과를 지나 정형외과 쪽으로 향했다.

각 방에 적힌 써전명을 확인하며 ‘박승호 원장’이 적힌 방을 찾아냈다.

똑똑.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문을 여니 바로 보이는 ‘박승호 원장’ 명패가 올려져 있는 책상.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박 원장과 눈을 맞추고 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 민 대리 왔어?”

박 원장은 나를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얼른 들어와.”

그는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의자를 빼내며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처음 명의 병원에, 그것도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박승호 원장에게 영업을 하러 연달아 며칠을 왔었을 때. 그 당시 박승호 원장은 며칠이 지나도 내 얼굴을 그리고 내 명함을 늘 처음 받는 것 같은 표정과 태도를 보였었다.

그랬던 박 원장이 내가 인사를 하자마자 환한 웃음을 보이며 자리를 내어줬다는 자체만으로도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뿌듯함이 온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네, 원장님. 어제 잘 들어가셨습니까?”

“그럼 잘 들어갔지. 근데 너무 피곤하다.”

“그러니까요. 원장님 오늘 오전 외래 진료라고 하셔서, 얼굴만 잠깐 뵈러 왔습니다. 밖에 환자들 많던데 아직 진료 시작은 안 하신 겁니까?”

“오늘 옆에 김 원장님 일 있다고 진료 좀 바꿔 달라고 해서 오후 진료로 바뀌었어. 덕분에 오전에 갑자기 한가해져서 좋지.”

“쉬셔야 되는데, 제가 너무 불쑥 온 거 아닙니까?”

“아니야. 안 그래도 갑자기 오전 시간 떠버려서 지루했거든. 마침 민 대리가 잘 맞춰왔지. 내가 커피 한잔하러 오랬는데 딱 잘 왔네. 커피 마시러 가자고.”

“네! 좋습니다.”

영업직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마시게 된 게 술과 커피다. 써전들을 만나면서 하루에도 대여섯 잔씩 마시는 커피에 이제는 아침 일찍부터 빈속에 커피를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는 경지까지 와 있다.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일 주말인데 원장님은 뭐 하십니까? 주말에 날씨 엄청 좋다고 하던데, 어디 안 가십니까?”

“어, 그러니까. 안 그래도 내일 날씨 좋다고 해서 바이크나 타러 가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어.”

대화 초반부터 바이크 라이딩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안 그래도 어제 술자리에서 바이크 라이딩에 대해 물꼬를 텄을 때 그 얘기를 하며 친분을 쌓으려고 했는데 박 원장이 술이 거나하게 올라온 탓에 금방 다른 화제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기회. 사람과 사람이 빠르게 친분을 쌓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취미 공감과 공유다.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찾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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