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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업사원이 되었다-7화 (7/339)

7화

옥상에서 최권호 부장에게 소담 정형외과에 대해 보고를 한 후 먼저 사무실로 내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사무실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 바로 최준성 과장의 핸드폰이다.

“여보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겉옷과 가방은 챙기지 않고 나가는 최 과장을 보니 최권호 부장의 호출인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최권호 부장과 최준성 과장이 나란히 사무실로 들어왔다.

최준성 과장의 표정은 눈썹과 입꼬리가 처질 만큼 처져,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 표정.

내가 최권호 부장에게 보고를 했던, 소담 정형외과에 관한 얘기인 것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최준성 과장은 사무실에 앉아 연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한참 동안 암담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며 멍하니 있던 최준성 과장이 자리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최권호 부장의 자리로 향했다.

“부장님, 저 소담 정형외과 좀 다녀오겠습니다.”

“지금 가서 뭐 하게?”

“우선 어떻게 된 건지 제가 직접 확인하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니. 아직은 기다려봐. 대표님한테 보고 올리고 납품하는 물건들 단가를 낮추든지 물건을 체인지하든지 대책 나오면 다녀와.”

“네…….”

풀 죽은 표정의 최 과장은 자리로 돌아와 가방과 겉옷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최준성 과장의 풀 죽은 모습.

그렇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 메디컬의 매출이 떨어진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슬쩍 입꼬리가 휘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날 무시하고 찍어누르던 저 인간이 이처럼 기가 죽은 건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었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차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사무실로 복귀를 하면 으레 건네는 인사말에 손지혁 차장은 웃으며 목례로 대답했다.

“차장님,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저 잠시 드릴 말씀이…….”

“어, 그래. 회의실로 먼저 가 있어.”

“네. 차장님 커피나 차 드시겠습니까?”

“나갔다 왔더니 당 떨어진다. 오랜만에 커피믹스 한잔하자.”

“네. 금방 타서 가겠습니다.”

탕비실로 들어가 여러 가지 종류의 커피 중 커피믹스 두 개를 꺼내 들어 종이컵에 넣고, 물을 부어 양손에 하나씩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

탕비실에 다녀오는 동안 손지혁 차장은 들고 있던 서류 더미만을 책상에 내려둔 채 왔는지 회의실에 도착해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춥다, 추워.”

“네, 너무 춥더라고요. 이제 패딩 조끼로도 부족해서 주말에 코트 정리 좀 하려고요. 차장님, 따뜻하게 이거 드세요.”

양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 중 하나를 손지혁 차장 앞에 내려놓았다.

“아, 당이 쫙 찬다 차. 근데 최 과장 쟤는 무슨 일 있냐?”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알아야 보이나 뭐. 들어오자마자 잠깐 책상만 갔다가 회의실 들어오는 건데도, 한숨을 뭔 회사 다 꺼지도록 쉬더라. 왜? 장홍석 이사한테 털리기라도 했어?”

“장홍석 이사님이요? 어……. 아직입니다.”

“아직이라니?”

“그게…….”

손지혁 차장이 사무실에 복귀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소담 정형외과 얘기를 모두 듣고 난 후 커피를 비워낸 빈 종이컵을 손으로 연신 구겼다.

“하……. 그래서 백상 메디컬이라고?”

“네. 백상입니다.”

“백상 자식들이 스플린트 단가 더 낮춰서 넣어 준다고 했나 보네. 하……. 이런 식으로 하면 서로 마진만 계속 줄이자는 거지. 분명 우리 쪽에서도 마진 줄여서 단가 조정할 텐데. 이런 식이면 소담 정형외과만 노났네, 노났어.”

“하긴, 백상 메디컬이 그렇게 단가 낮춰서 중간에 치고 들어가는 걸로 유명한 곳 맞죠?”

“어. 백상 메디컬 놈들이 워낙 유명하잖냐, 양아치들로.”

“그래서 그렇게 광주에 백상 메디컬이 담당하는 병원이 많은 거겠네요.”

“그치. 근데 중간에 최 과장 잘못도 분명 있을 거야. 최 과장 그 자식도 그렇게 소담 정형외과는 자기 담당이라고 꽉 잡고 있다고 늘 큰소리치더니.”

“…….”

어쨌든 최 과장도 내 윗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대화에서는 내가 공감이나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병원이나 공급실 선생님한테 뭐 실수했거나 밉보인 게 있긴 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단가가 불만이었으면 최 과장한테 금액 좀 낮춰달라고 하거나 했을 텐데. 이렇게 말없이 뒤통수니 말이다.”

최준성 과장이 신규 병원 거래처들은 많이 따오는 편이긴 하다. 물론 억울하게 빼앗긴 내 병원 거래처들을 포함해서 말이지.

그래서인지 거래처 수만 늘려가고, 기존 자기 거래처 관리에 소홀해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결국은 이 사달이 났다.

조금만 병원에 들러보고 담당 선생님에게 신경을 썼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고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심스럽기도 하다.

소담 정형외과의 소모품, 특히 부목인 스플린트의 매출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최 과장에게나 회사의 매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터.

“어휴. 큰일이다, 큰일. 장 이사님 사무실 오시면 큰소리 한번 나겠다. 그런데 이거 때문에 부른 거야?”

“그게 실은, 차장께 뭐 좀 여쭤보려고요. 저희 명의 병원에도 영업 나갑니까?”

“명의 병원? 어… 거기 안 나가게 된 지 꽤 됐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한창 영업 다녔었는데, 안 뚫려 진짜.”

“아, 그렇습니까? 저 입사하고 초반에 그냥 무턱대고 저희 거래처 아닌 병원들 하나씩 돌아볼 때 몇 번 간 적 있는데. 뭐 아무런 성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거기 써전들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요.”

“어. 명의 병원에 정형외과에 써전 수가 6명이었나? 꽤 있었을 걸 아마? 최 부장님도 몇 번 가다가 포기했지.”

“명의 병원은 메디컬 한 군데에서 꽉 잡고 있다던데, 그게 맞는 건가요?”

“MG 메디컬에서 아주 꽉 잡고 있더라. 인공 관절이며, 기본 외상 수술, 소모품까지 거의 독점마냥 다 먹었어. 나도 몇 번 갔는데, 듣기로는 무슨 원장이더라? 누가 MG 메디컬 사장이랑 아는 사이여서 그렇다는데. 그쪽이 기구도 그렇고 소모품도 그렇고 명의 병원이 주 거래처라 지극정성이라는 거 같더라.”

“그럼 MG 메디컬은 명의 병원만 가지고도 먹고 살겠네요. 저는 독점인 줄도 모르고 입사 초반에 무턱대고 영업 나갔으니, 그 당시에 됐을 리가 없는 게 맞네요.”

“그렇지. 나도 명의 병원 갔다가 알았어. MG 메디컬 거기가 사장 혼자서 하는 사무실이라 거래처도 아마 많진 않을 거야. 직원도 없으니까 나눠 먹을 것도 없고, 혼자 다 해 먹는 거지.”

“와. 매출 상당할 것 같은데…….”

“그렇지. 이쪽 바닥이 그렇잖냐. 배우고 나가서 혼자 다들 차리잖아. 그러다가 쪽박 차는 게 대부분이지만.”

“자기 거래처 그대로 들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쪽박이 훨씬 많아요?”

“그럼. 회사에서 나갈 때 나가는 직원한테 거래처 주기 싫지. 꾸역꾸역 자기 담당 거래처 한두 개 병원만 믿고 나갔다가 배신당하면 바로 쪽박이지, 뭐. 근데 명의 병원은 왜? 다시 가보려고?”

“가보려는 건 아니고. 신비 병원에 임근수 과장 있지 않습니까.”

“그래, 신비 병원. 그 저기 IC 빠져서 저 멀리 있는 거? 너 임근수 과장한테 공들이더니. 잘 되어 가냐?”

“네. 아직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근데 임근수 과장한테 연락이 왔는데, 임근수 과장이랑 박승호 원장이 친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박승호 원장이랑 술자리 있는데, 한번 오겠냐고 해서 차장님께 미리 조언 좀 구하려고 여쭤봤습니다.”

“박승호 원장이랑 같이 술을 먹재?”

손지혁 차장은 들고 있던 구겨진 종이컵을 내려놓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네. 박승호 원장은 제가 얼굴만 몇 번 본 거라 저 기억도 없을 테지만, 임근수 과장이 저를 좋게 봐줬는지 자리할 때 들르라는 식으로 슬쩍 물어봤습니다.”

“그래, 좋은 기회네. 근데 의외다.”

“어떤 게 말입니까?”

“그 명의 병원 박승호 그 양반이 메디컬 직원들이랑 술자리를 잘 안 하거든. 자기네 거래처인 MG 메디컬 사장이랑도 잘 안 마신다고 하더라고. 명의 병원 영업 의미 자체가 없긴 할 거 같은데, 그래도 박승호 원장이 언제 또 다른 병원으로 나올지 개인 병원 차릴지 모르니까 관계는 만들고 와.”

“네. 알겠습니다.”

“그래. 어쨌든 한번 잘 만나 보고와. 내가 이사님한테는 미리 말씀드려 둘 테니까. 법인 카드 잘 챙겨가고.”

“네.”

손지혁 차장은 나를 쳐다보며 나가도 좋다는 눈짓과 표정으로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회의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컵을 모두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민 대리!”

회의실 문을 열기 직전 손지혁 차장이 나를 다급히 불러 세웠다.

“네?”

“박승호 원장 말이야. 저번에 내가 다른 써전들 만날 때 들었는데, 바이크 라이딩 엄청 좋아한다더라. 미리 좀 알아보고 가서 아는 척이라도 좀 해줘. 그 양반 라이딩 열심히 다니고, 허세도 좀 심하다더라고”

“오, 바이크라……. 네. 바이크 코스라도 좀 뒤져보고 가서 얘기 좀 섞어 보겠습니다. 차장님 감사합니다.”

“그래. 만나 보고 특이 사항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고. 나가서 일 봐.”

“네.”

그러나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큰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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