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혹시 주꾸미볶음 어떠십니까?”
긴장감을 섞은 채 묻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 민 대리!”
최권호 부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혹시 자네도 어제 통통정보통 봤어?”
“예?”
보진 않았지만, 왠지 봐야 했다고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 네. 맞습니다.”
“그래! 거기서 어제 주꾸미볶음이 나와서 엄청나게 먹고 싶었다니까. 안 그래도 마침 그 식당이 요 근처에 있더라고.”
최권호 부장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평소엔 잘 몰랐는데 민 대리가 은근히 센스 있다니까!”
늘 내게 핀잔만 주던 최권호 부장은 평소와 다른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자, 얼른 가자고. 어제 방송 나와서 조금만 늦게 가도 줄 서야 될 거야.”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외투를 집어 들었다.
“다들 하던 업무 놓고 일어나. 가자고.”
“예.”
* * *
“어제 말이야. 와이프가 동창회 간다고 집을 비워서 혼자 라면 끓여 먹는데 TV에서 주꾸미볶음이 나오는 거야. 내가 어제 하도 군침이 돌아 가지고…….”
최권호 부장은 신이 난 듯 홀로 주꾸미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서 해나갔다.
적당히 호응해 주고 있었지만, 그의 말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최권호 부장이 나에게 이토록 호감 섞인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기뻐해야 할 일도 아니었고 머릿속엔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자꾸만 떠올랐으니까.
분명히 들렸다. 최권호 부장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전에 지나가면서 들었던 박수진 주임의 목소리도 마찬가지.
환청?
그럴 리가 없다. 최준성 과장으로 인해 최근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정신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이러한 경험은 한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들은 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환청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있다. 마치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속마음을 들은 것처럼 말이지.
대체 뭐였던 걸까…….
“민 대리, 봐봐.”
최권호 부장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벌써부터 매장이 꽉 차있잖아. 조금만 늦었으면 대기표 뽑을 뻔했어.”
어찌나 먹고 싶었는지, 그는 연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먹으러 가자고.”
* * *
[환청.]
[다른 사람의 속마음이 들려요.]
[생각이 들리는 초능력.]
네이버에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 애초에 검색해서 나올 리가 없지.
하지만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목소리의 정체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현실과 이어지지 않았다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절대 그 목소리는 허상이 아니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건 최 부장의 주꾸미볶음 타령 이후로는 또 잠잠하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파티션 너머로 조심스레 직원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펴보았지만, 아까와 같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면, 내가 무슨 행동을 해야 하나?
주먹을 쥐어보고, 손가락을 펴보기도 하고, 반쯤 구부려보거나 어깨나 다리에 힘을 주어보았지만, 여전히 속마음은 들리지 않았다.
대체 뭐지?
정체는 몰라도 어떤 메커니즘으로 속마음이 들리는지라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한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최 부장이 나를 불렀다.
“민 대리, 외근 가야 된다고 하지 않았어?”
시간을 보니, 어느새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네. 지금 가야 됩니다.”
“그래. 얼른 가 봐. 늦겠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오늘 세 군데 돌아야 된다고 했지?”
“맞습니다.”
“오늘은 직퇴해.”
“네, 알겠습니다.”
말이 바뀌기 전에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평소엔 무조건 회사로 돌아와서 얼굴도장은 찍고 가라던 사람이 직퇴를 하라니.
주꾸미볶음을 먹어서 기분이 좋아졌나?
현장에서 일찌감치 마무리하고 바로 집으로 퇴근해서 편하게 쉴 수 있겠다 싶었다.
최 부장이 평소엔 최 과장과 늘 붙어 다녀서 영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늘만큼은 괜찮다.
앞으로도 딱 이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는데.
* * *
도시 외곽에 위치한 신비 병원.
로비를 지나, 복도 안쪽에 있는 한 진료실로 향했다. 다행히 오늘은 환자가 적은지 대기하고 있는 손님은 없었다.
따로 커피를 챙겨 오진 않았다. 뭐라도 챙겨오면 임근수 과장은 부담스럽다며 질색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가방에 미리 챙겨둔 인공 관절, 트라우마, 소모품 등 주요 브로셔를 한 번 더 점검했다.
“후.”
늘 그렇듯 들어가기 전 나만의 루틴대로 방긋 미소를 장착하고 조심스레 노크했다.
똑똑.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깍듯하게 허리를 접었다.
“WG 메디컬 민지훈 대리입니다. 잘 지내셨죠?”
“아이고, 민 대리님 오셨습니까?”
임근수 과장은 장난기 다분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너는 무슨 인사를 볼 때마다 처음 만나는 직원처럼 깍듯하게 하냐. 편하게 해, 편하게.”
“이게 편합니다.”
“앉아. 오늘 안 그래도 환자 없어서 지루해 죽을 참이다.”
임근수 과장.
KJ 병원에 있다가 얼마 전 신비 병원으로 넘어온 엘리트 의사 중 하나다.
이직한 지 이제 한 3개월 정도 되었나?
임근수 과장이 신비 병원으로 이직하자마자 이 지역 메디컬 영업직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득달같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많은 직원들이 영업을 하고 노력을 쏟아 부어도 임 과장은 KJ 병원에서부터 거래하던 한마 메디컬과의 연을 이어오느라 다른 메디컬의 영업은 일절 달가워하지 않았다.
처음엔 나를 보고 질색을 하며 쫓아냈지만, 몇 번이고 안면을 트며 노력한 끝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지.
임근수 과장의 가장 큰 특징 두 가지를 꼽자면 엄청난 ‘기분파’라는 것과 ‘발이 넓다’는 것. 그래서인지 임 과장은 사교 모임을 즐겨 하며 간호사들에게도 꽤나 평이 좋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임 과장에게는 철저한 영업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 천천히 관계를 지속시킨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성과가 없어도 3개월째 꾸준히 눈도장을 찍고 있는 중이다.
늘 그렇듯 내가 먼저 친숙하게 말문을 열었다.
“과장님 요즘 별일 없으시죠?”
“나야 늘 똑같지. 너무 별일이 없어서 지루하던 참이야.”
그는 슬쩍 내가 들고 온 가방을 보더니 은근히 물었다.
“근데 뭐 제품 들고 온 거 아니고? 보여줄 거면 얼른 꺼내.”
역시나 기분파답게 화끈하다.
민망하게 웃으며 가방에 손을 얹는 찰나.
[그러면 그렇지, 또 영업이겠지. 어휴, 얼른 브로셔나 받고 보낸 뒤에 커피나 한잔하러 가야겠다. 어우, 피곤해.]
임근수 과장의 목소리가 귀에 꽂혀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증거로 임근수 과장의 입가엔 사람 좋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런 말을 하고 웃을 만한 사람은 절대 아니니까 그가 말한 게 아니란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방금 들은 건 그의 속마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조금 당황스러웠다.
늘 제품을 소개할 때면, ‘괜찮은 제품이네.’, ‘이건 또 어떤 거야? 간단하게 설명 좀 해줘.’, ‘다음에 올 때는 다른 제품도 한 번 가져와 줘. 궁금하네.’라는 등 사람 좋은 소리를 하던 임근수 과장의 속마음이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푸근한 인상을 보면 믿어지지 않지만 오늘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방금 내가 들은 게 그의 속마음일 확률이 높았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은 깊숙이 감춰두고 능청스레 미소를 지었다.
“에이, 과장님. 제가 뭐 늘 영업만 하러 오겠습니까?”
슬며시 가방에 얹었던 손을 떼어냈다.
“지나가던 길에 과장님 생각나서 얼굴이나 뵙고 인사하고 가려고 왔죠. 저희가 비즈니스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늘 비즈니스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나는 진심이라는 듯 어깨를 펴며 그를 바라봤다.
“오늘 날씨도 좋은데 과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오늘은 법카 말고 제 개인 카드로 쏘겠습니다.”
제발 통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의 미간을 바라본 순간 또 한 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민 대리, 이 친구,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녀석 같은데?]
됐다. 잘 먹혔다!
임근수 과장은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카페인 당겼는데 좋지. 잠깐 다녀오자고.”
“예, 과장님.”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과장님 뭐 드시겠습니까?”
“나는 아메리카노로 하지.”
“예. 저기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주머니에서 내 개인 카드를 꺼내려고 하자.
“에헤이, 민 대리!”
그는 근엄하게 손을 뻗으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오늘은 비즈니스 아니라며. 늘 얻어 마셨으니 내가 살게.”
“어, 아닙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나 그러면 민 대리 안 봐.”
근엄한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엔 한발 물러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뭐 이런 걸로.”
처음이었다. 늘 법인 카드로 결제하기만 했지, 영업 상대인 의사에게 무언가를 얻어먹어 보는 건 영업직 3년 만에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의사들은 잘 버는 만큼 통 크게 쏘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 같은 거래처 직원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이쪽에서 오래도록 일하며 느낀 바로는, 써전들은 우리를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철저한 갑과 을로 대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이 3,8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뭐라고 괜히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냐.
“맛있게 잘 마시겠습니다.”
“에이, 고작 커피 한 잔에 몇 번 감사 인사를 하는 거야. 사람 민망하게끔.”
“하하하, 죄송합니다.”
나는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지금껏 먹었던 여느 아메리카노보다도 훨씬 더 시원하고 청량했다.
“그나저나 민 대리가 올해 서른둘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나랑 딱 10살 차이네. 나도 그때는 참 열정적이고…….”
제품 설명으로 시간을 보내던 여느 때와 달리, 우리는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또 한 번 그의 미간을 바라보는 순간.
[아들 생일엔 뭘 해줘야 하나. 저번에 토마스 장난감을 사달라는 걸 통아저씨로 착각해서 잘못 사줘서 이번엔 만회해야 하는데…….]
또 한 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듣자마자 직감했다.
이건 내게 찾아온 기회라고.
임 과장과 더욱더 가까워질 기회!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과장님.”
“응?”
“다음 주에 아드님 생일이라고 하셨죠?”
“오, 민 대리 그걸 기억하네?”
그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뭘 줘야 될지 고민이었거든. 혹시 민 대리, 애들 장난감 잘 아나?”
임근수 과장은 물어봐 놓고 아차 싶었는지 민망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이고, 민 대리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 했는데 알 리가 없지. 미안해. 내가 너무 급해서 말이야.”
나는 아니라는 듯 오히려 그에게 몸을 기울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과장님 혹시 천둥맨 아십니까?”
“천둥맨?”
“예. 요즘 TV에서 굉장히 잘나가는 애니메이션인데, 제가 과장님 아드님이랑 동갑인 5살짜리 조카가 있거든요. 저번 주에 생일이어서 제가 뭘 갖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유치원에서는 ‘천둥맨 세트’가 있는 친구들이 제일 인기가 많답니다. 그래서 옷이랑 장난감 세트 사줬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오, 그래?”
그는 눈을 번뜩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 찾아봐야겠네. 고마워.”
“별말씀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