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
아침에 조깅을 하며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길가에 핀 잡초는 오늘따라 왜 이리 상큼할까.
우중충한 날씨 덕분에 썬크림도 안 바르고 나왔다.
"어, 정수호다!"
"내가 니 친구...."
지나가는 초딩도 알아볼 만큼 유명해졌구나.
기분 좋은 날이니까 오늘은 내가 참아야지.
"사진 찍어줄까?"
"오 진짜요?"
"응."
잼민이와 쿨하게 사진을 찍어주고 집에 돌아왔다.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한 잔 뽑고,
영자 신문을 소파 위에 살포시 두었다.
이내,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연예계 뉴스를 확인했는데.
《왕의 품격, 글로벌 신드롬.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애 베니스와 칸 영화제 노미네이트 기대작으로 선정된....》
그 댓글창에 예지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예지 연기력 진짜 미쳤음 ㄷㄷ
ㄴ메인보컬이 연기를 왜 이렇게 잘함?
ㄴ언니 사랑해 ㅠㅠ
ㄴ예지도 언젠가 결혼하겠지?
ㄴ재벌 만날 듯 ㅋㅋㅋ
ㄴ그냥 평생 혼자 살아줘 제발
ㄴ팬이냐 안티냐 ㅋㅋㅋㅋ
"아휴, 참."
제가 재벌 2세는 아니지만.
그분이 제 여자친구에요.
띵동─
마침, 약속 시각에 맞춰 초인종을 누르는 사랑스러운 여인.
문을 열고, 상대를 확인했다.
편한 복장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예지야."
"대표-, 아니, 오빠!"
"어서 와."
예지는 들어오자마자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침에 화장기 없어도 미모는 여전히 빛났다.
"와아, 아침부터 영자신문 읽으세요?"
"그럼."
"역시, 우리 오빠는 다르네요. 헤헤."
"...."
사실, 오늘 처음 읽으려고 해.
근처 가판대에서 우연히 샀어.
"커피 한잔할래?"
"네. 좋아요."
솔라의 리더, 예지와 연애 2일 차.
항상 매니저로 붙어있었기에 어색함은 없었다.
"오빠,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돼요?"
"일단 소파에 앉을까?"
"네에!"
예지는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기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업계 포상이네.'
탑 영화배우이자 전 세계 최고 걸그룹 멤버.
예지는 내 옆구리에 딱 붙어서 입을 열었다.
"The Solar, 이건 무슨 촬영이에요?"
"음, 너튜브에 솔라 일상 찍어서 올리려고."
"오, 좋은데요?"
"그래?"
"네!"
나는 별로라서, 정말 다행이야.
마침 뒤통수도 간질간질하거든.
"우주갓소미 너튜브 채널이 많이 커졌더라고."
"오, 정말요?"
"응. 주 피디님이 노력해주신 덕분이지."
"오, 완전 잘됐다."
"...."
거의 리액션 머신이네.
방청객 알바 해도 되겠어.
"아무튼, 당분간 카메라 감독님이 붙어있을 거야."
"앗, 그럼 우리 데이트도 못해요?"
"응. 당분간."
"아우, 드디어 사귀는데."
"걱정하지 마. 밤에 만나면 되지."
"아."
예지는 살짝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예지야, 그런 뜻 아니야. 그냥 밤에 만나면 된다고. 문자 그대로."
"괜찮아요. 저도 성인이잖아요."
"아니야, 진짜 그런 뜻 아니라니까."
"오빠도 참."
"그래. 그냥 그런 걸로 하자."
"헤헤."
사실, 애초에 예지와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윗집이라 왔다갔다할 수도 있지만.
파파라치 없이 돌아다니기는 어려울 테니.
'차라리 미국이면....'
해외 인지도도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좀 낫겠지.
한국에서는 잼민이도 내 얼굴을 알아볼 정도니까.
"예지야, 소미 수능도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네. 알아요."
"끝나면 다 같이 미국 갈래?"
"미국이요?"
더 솔라, 촬영 기간이 비욘세이 콘서트까지니까.
"미국에 가면 한국 스케줄은요?"
"왔다 갔다 해야지. 해외 스케줄 위주로 잡고."
"으음."
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다.
"역시, 대표님은 일할 때 제일 멋있어요."
"일할 때?"
"네! 우리를 위해 항상 열정적으로 일하시니까."
"...."
무슨 소리야.
편하게 연애하려고 가려는 건데.
"아무튼, 나는 오늘 오전에 나가서 살 게 있어."
"쇼핑? 같이 가요!"
"아니, 요즘 건물 알아보고 있거든."
"그럼 건물 쇼핑!?"
"응. 맞아."
방 마담님께는 이미 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알아봐 주신다고 하셨으니.
"오후에 돌아올 거야."
* * *
솔라의 인기는 고점이 없었다.
왕의 품격 이상으로, 오락실 유니버스의 인기도 꺾일 줄 몰랐다.
그럴 만도 한 게, 영화와 예능에 출연자 중 상당수가 겹쳤으니.
"반응이 핫하네요."
"그러게요."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극과 극」 촬영 이후 모든 스탭이 모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주현성 피디는 촬영 장비를 설치하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며칠 전에 올라온 「오락실 유니버스」 영상을 확인했는데.
《[하이라이트] 오락실 유니버스 S2 E.12 (Feat. Beatles Faul)》
-3일 전
-조회수 2.6억 회
-좋아요 7,310만, 싫어요 507만
-댓글 13,531,215
역시, 비틀즈인가.
전설의 아티스트에게 별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었다.
오랜만에 출연한 TV쇼에 전 세계 비틀즈 팬들이 열광했다.
'우리도 책임감을 갖고....'
솔라의 이름에 걸맞은 품질로 편집해야겠지.
그는 함께하는 스탭들과 굳은 결의를 다졌다.
"여러분, 이제 다들 흩어집시다."
"네, 좋아요!"
"오후에 공동 촬영이니까 연습실에서 모이면 됩니다."
"네. 피디님!"
오전에는 각자 개별 시간.
오후에는 비욘세이 게스트 무대 컨셉 회의.
'나는 오전에....'
주 피디는 첫 번째 스케줄로 소미에게 향했다.
채널명도 여전히 우주아이돗 갓소미.
그래도 예능이니까 소미가 메인이지.
주현성 피디는 곧장 소미가 있는 휴게실로 달려갔다.
그녀에게 밀착해서 수능 공부하는 모습을 찍었는데.
"피디님."
"네. 소미 씨."
"카메라에 얼굴이 닿겠어요."
"...."
아, 너무 붙었구나.
"가까울수록 팬 분들이 더 좋아하셔서."
"제 모공도 좀 지켜주세요."
"오키."
그나저나, 요즘 수능 수준이 이렇게 높았나.
외국어 영역도 아닌데 왜 영어로 쓰여있지.
"수능 공부 맞아요?"
"아, 이거 더 사이언스 논문이에요."
"???"
고3 아닌가, 수능이 얼마나 남았더라.
"지엽적으로 나오면 여기서 나올 수도 있어서."
"에이, 말도 안 돼요."
"재작년 수능 물리 2에 3점짜리 17번 문제가 열역학 개념이 섞여 있었어요. 여기 논문에 보시면...."
"문송합니다."
아니, 보통 이과도 물리 2는 안 고르지 않나.
"에어컨이랑 냉장고는 안 쓰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건 맞죠."
"그럼 이 정도는 알아야죠!"
"...."
요즘에는 연예인들도 학벌을 본다고 하던데.
소미는 솔라를 대표해서 수능을 잘 보려고 노력하는구나.
열아홉 소녀가 얼마나 기특한지
공부하는데 방해하면 안 되겠다.
주 피디는 스케줄표를 확인하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주희 씨 촬영인데 제가 깜빡하고 여기로 왔네요."
"엥, 그래요?"
"아이고, 아쉬워라. 수능 화이팅!"
"화이팅!"
책에 집중하는 소미를 보며 휴게실을 나섰다.
어차피 소미 씨 다음에 주희 씨 차례였으니까.
조금 일찍 간다고 생각하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드르륵─
스카이 엔터 내 직원용 헬스장.
이 시간에 운동하는 사람은 당연히 한 명뿐이었다.
온종일 근손실과 식단만 생각하는 솔라의 메인댄서.
"흐읍."
양주희는 20kg 원판을 양쪽에 몇 개씩 달고 중량 스쿼트를 조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으음?"
철그락─
이내, 봉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
주 피디는 어색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들었다.
"더 솔라, 일상 찍으러 왔습니다."
"흐음."
양주희는 자신의 몸을 천천히 관찰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카메라는 거기 두시고."
"네?"
"거기요, 거기 두면 여기 잘 찍혀요."
"???"
주 피디는 어리둥절하며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가볍게 120부터 시작할게요."
"네?"
"오락실 안 보셨어요? 대표님 운동하는 모습 화제 됐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
"얼른 와서 들어요."
"...."
요즘 헬스 시장이 커져서 일부러 찍으시는 건가.
팬들이 주희에게 바라는 것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
"자자, 어서 들어봐요."
"그럼 짧게 살짝만...."
"아니, 160이 적당하겠네."
"롸?"
선생님 잠깐만요.
진도가 너무 빨라요.
"끄아아악."
주 피디는 무게를 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었다.
"오케이, 잘하네."
"하아, 하아."
"한 칸 올릴게요."
"녜?"
한계까지 몰아치는 양 트레이너.
도망칠 기회는 이미 물 건너갔다.
"저 죽을 것 같아요."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안 죽어요."
"진짜로 죽을 것 같아요."
"말할 힘으로 하나만 더."
"으아니."
선생님, 말하는 힘이랑 다른 힘이에요.
"으아아 잡아줘. 근육 찢어져요!"
"찢어져야 커져요."
"진짜 찢어진다고!!!"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
아 욕할 뻔했네.
"흠, 뭔가 아쉬운데."
"아, 평생 운동 못 할뻔했는데 뭐가 아쉬워요."
"회원님, 내일도 오실 거죠?"
"않이요."
솔라 멤버들은 각자 성장한 만큼.
개별 시간에도 스스로 발전했다.
* * *
솔라 단독 콘서트는 늦여름이었는데.
어느새 연말 비욘세이 콘서트 컨셉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미 날씨는 쌀쌀한 공기를 품고 옷깃을 여미게 했으니.
나는 구 팀장과 전화하며 어딘가로 향했다.
'저긴가 보네.'
행복 부동산.
약속 장소 앞에서 전화를 마무리했다.
"구 팀장님. 공연 준비는 에일리, 도하나 프로듀서와 상의하고 보고해주세요."
-넵! 그럼 내년엔 미국에서 컴백하는 건가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저도 대표님 따라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시려고.
"구 팀장님은 한국에 남아주셔야죠."
-가, 같이 안 가고요?
"네. 루나랑 이클립스도 신경 써주셔야 해서."
-아하, 알겠습니다!
지유는 연애하는 거 아니까 당연히 같이 가야지.
"아무튼, 이따 다시 연락하죠."
-네. 알겠습니다.
딸랑, 딸랑─
부동산 문이 열리고,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정 대표 왔는가?"
"네. 할머니."
부동산 아주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은서 할머니.
방 마담께선 추운 날씨에도 하얀 모시옷을 입고 계셨다.
"내가 자주 오는 곳이거든."
"아하."
강남에서도 억 소리 나는 건물이 거래되는 부동산.
당연히 퍼센트로 떼먹으면 어마어마하게 뜯기지만.
"여기는 합리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주거든."
"감사합니다."
이미 건물도 알아보시고 몇 군데를 추천해 주셨다.
"여긴 지하철 들어서면 두 배 이상 오르고, 그냥 안전하게 임대료 받으려면...."
"...."
이래서 돈이 돈을 부르는구나.
내 예상보다 더 큰 인맥이었네.
곧이어, 둘러볼 건물을 몇 군데 체크하고 부동산을 벗어났다.
"할머니, 오늘 감사합니다."
"감사는."
부동산 앞에 세워둔 람보르가니 두 대가 눈에 띄었다.
한 대는 할머니 차.
나머지 하나는 내 차.
"정 대표, 내가 오늘 아침에 은서랑 전화를 했거든."
"아, 네. 할머니."
"손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
"...."
뭔가 아쉬운 듯 여운을 남기는 목소리.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것 같았다.
"은서랑은 잘 안 됐나 봐."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건 없지. 방 의장 말이 맞았네."
"네?"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씀하셨다.
"재벌가나 유력 정치인 여식이랑 만나려고 기다린다며."
"아닌데요.
"아니긴."
진짜 아닌데요.
"윗 공기는 살벌할 거야. 발들이면 빼지도 못해."
"...."
윗공기에 관심도 없어요.
윗공기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나는 언제나 자네를 응원하네."
"감사합니다."
안 되겠다.
한동안 비밀 연애만 해야겠다.
"혹여나 은퇴할 생각을 말어."
"갑자기? 제가요?"
"그래, 자네 말이야. 강남에 건물 있으면 이제부터 인생 시작이지."
"...."
보통 사람들은 그게 최종 목표에요.
"자네가 그만두면 쪽박 차는 거야. 주가도 폭락하겠지."
"에이, 우리 직원들 노후는 제가 알아서...."
"누가 직원들 걱정한댔나?"
"네?"
할머니는 나를 흘겨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재산의 절반은 스카이 엔터 주식이라고!"
"...."
아하, 그러셨군요. 주주님.
"자네도 자사주가 7프로쯤 있지 않은가."
"네. 맞아요."
"그럼 더 열심히 해야지."
"알겠어요."
소처럼 일할게요.
손녀 따님이랑 같이.
* * *
비욘세이 콘서트를 앞두고,
솔라 멤버들의 앞에 다른 이벤트가 남아있었다.
소미를 제외한 멤버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내일이네."
"그렇지."
11월 17일, 대학수학능력시험.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 국내 최대 시험.
듣기 평가 시간엔 비행기도 못 뜬다고 하던데.
다이애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김 리다에게 물었다.
"우리 엿 같은 거라도 사 멕여야하는 거 아닌가?"
"저기, 발음이 너무 센 거 같은데."
"무슨 발음, 엿 같은 거?"
"...."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럼 어떻게...."
은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노란색 봉투를 꺼냈다.
"부적이라도 써볼까?"
"...."
이내,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여는 주희.
"그 종이쪼가리 언제까지 우려먹어? 닳겠네, 닳겠어."
"종이 쪼가리라니! 우리 할머니께서 주신 건데!"
"어쩐지, 때깔부터 영롱하더라."
"그래?"
수능을 앞두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법.
예지는 멤버들을 슬쩍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맛있는 도시락이라도 싸주자."
"언니, 양심 좀."
"???"
결국, 멤버들은 수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기막힌 답을 내놓았다.
-수능 올 1등급 받으면 미국에 새로 사옥 지어줄게.
"진짜로?"
-응. 솔라가 언제까지 임대로 빌붙어 살 순 없지.
"오케이!"
예지는 뿌듯한 표정으로 남친의 플렉스를 지켜봤다.
-수능 끝나면 미국 활동 시작할 거야.
"네에!"
미국에서 얼마나 오래 눌러앉으려고.
어찌 됐든, 그의 선택은 언제나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