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돌풍(5)
고작 하루 만에.
솔라의 곡은 단숨에 수십 개국에서 최상위권에 올라섰다.
오늘따라 스카이 엔터 분위기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표님, 일부러 올리신 거겠지?"
"그럼 실수겠냐."
"너무 신기해서 그렇죠."
"대표님이잖아."
갓 인턴 딱지를 뗀 에일리 프로듀서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수많은 엔터는 컴백 날짜를 필히 계산한다.
지금 유행하는 장르, 현재 1위는 누구인지.
그런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고 발매해도 망하는 게 일상이니까.
"에일리 프로듀서님."
그때, 다이애나가 옆에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이거, 그거랑 상황이 비슷하네요."
"무슨 상황이요?"
"키아라의 Royal이요."
"아."
에일리는 자신의 이야기에 얼굴을 붉혔다.
"그때 폼 미쳤었죠. 최단 기간 최다 국가 1위 기록을...."
"네. 빌보드 핫 100도 최종 3위 찍었어요."
"그쵸. 이런 게 프로들의 전략인가 봐요."
"...."
그런 거 아닌데.
그땐 그냥 회사가 작아서 프로모션을 못 한 거야.
지금 스카이 엔터처럼 자원이 빵빵하지 않았다고.
정 대표님이 대단하신 거지.
"느낌이 너무 비슷해서 쎄한데."
"...."
설마 Royal의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을까.
각국 차트 등반 속도를 보면 가능성 있었다.
'만약에 그 기록을 깬다면....'
자신이 세운 기록을 다른 가수와 함께 다시 깨는 셈인가.
에일리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정 대표님을 기다렸다.
드르륵─
그때, 구 팀장과 함께 정수호 대표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대표님 오셨습니다!!!"
무척 자랑스러운 목소리의 구 팀장님.
반면에, 민망한 듯한 표정의 정 대표님.
"역시, 우리 대표님."
"...."
다이애나의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매번 저렇게 겸손하시다니까."
".... 인정."
그때, 정 대표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바로 대표 회의 있습니다. 프로듀서분들도 회의에 참여해 주세요."
"네에, 대표님!"
잠시 후,
구현식 팀장은 밤새워 만든 PPT로 현 상황을 간추렸다.
현 유통사가 음원을 돌린 국가별 상황.
미국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이번 노 프로모션 전략이 신의 한 수인 이유.
-김예지 작사가에 대한 해외 평론가들의 극찬.
-힐링 감성 보컬에 팬들이 아닌 대중들도 환호.
하나씩 주제를 정리하며 발표를 이어갔다.
"현재 빌보드 핫 100 차트 10위권 진입했습니다."
"...."
현재 순위권 밖에 있던 「Losing Star」도 역주행했다.
신곡을 싱글곡으로 낸 덕분에 덩달아 같이 떡상했다.
"다들 이렇게 성공할 줄 알고 계셨겠지만."
"아뇨, 몰랐습니다."
정수호의 썰렁한 농담에 회의실 분위기가 풀어졌다.
"진짜 몰랐어요."
"하하하하."
개그감까지 완벽한 너란 남자.
다이애나는 믿음직한 대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대표님, 우리한테도 일부러 말씀 안 하신 거죠?"
"아니, 그건...."
"괜찮아요. 모기업도 반대했을걸요."
"...."
글로벌 기업, 프렌즈.
현 모기업에서도 간섭할 만큼 중대한 결정이었다.
거의 도박에 가까운 선택을 오직 혼자서 감내했다.
'근데 결과가 좋으니까....!'
오히려 방 의장님께서 축하한다고 화환을 보냈잖아.
야수의 심장을 가진 상남자.
정 대표는 그런 사람이었다.
현재 한국 컨텐츠 산업은 스카이 엔터 강점기라고 봐도 무방했다.
영화는 악마가 되었다.
예능은 솔라빔 시즌3.
음원은 Save The Earth.
정 대표님은 뭘 더 독점해야 속이 시원하실까.
이쯤되면 분리된 큐앤지 직원들은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기업이 분리될 때 따라오지 못해서 영광을 누리지 못했으니.
처음부터 천재를 품을 그릇이 안 됐던 거지.
"자, 이제 누가 본진이지?'"
"...."
다이애나는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대표님 그거 알아요?"
"뭐를."
"Anna with D, 시그니쳐 사운드요."
"응?"
그녀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제가 아니라 Defender, 정수호였어요."
"내가 D의 의지였냐."
"그런 셈이죠."
"...."
* * *
세상에, 이게 되네.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달라진 기분이랄까.
실수로 너튜브에 원곡을 올려버렸는데 개떡상했다.
이미 한국과 일본 차트는 정상에 올랐네.
전 세계 각국의 차트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으니.
새삼 핀 브라운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깨달았다.
"저기."
엄지유는 쭈뼛쭈뼛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내가 실수한 건가 걱정했거든."
"어."
네가 실수한 거 맞아.
"내가 어제 최종 파일 실수로 보냈잖아."
"그랬지."
"설마 나 때문에 잘못 올린 건가 해서...."
"...."
그거 실수 맞아.
"엄지유."
그때, 박 본부장님이 다가와 상황을 정리했다.
"너는 우리 정 대표가 그런 실수를 할 사람으로 보이나?"
"아뇨! 그런 뜻은 아니에요."
"...."
그거 맞다니까.
"아무튼."
본부장님은 결재 서류를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소미 예능 출연 건."
"아."
KBC 예능 「갱생 프로젝트」.
남민지 사람 만들려고 잡은 스케줄.
그렇다고 이게 역배각은 아니지만.
"사실, KBC랑 안 친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서요."
"역시, 정 대표는 다 계획이 있었구만."
"근데 아직 컨셉을 못 들었네요."
"그냥 별건 없고."
나는 서류에 적힌 첫 번째 문구를 확인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열등생의 공부 실력을 올리세요.
이거 소미가 잘할 수 있으려나.
그냥 본인 머리가 좋은 거니까.
"음, 일단 알겠습니다."
"이게, 학교에서 촬영하는 거라 학교 측 동의도 필요할 거야."
"그래요? 그건 제작진이 준비 마치면 계약하시죠."
"그래야지."
아마 빠르면 12월쯤.
방송국 측에서는 무조건 잡으려고 노력하겠지.
소미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시청률 잘 나올걸.
'.... 걔가 가만히 있을 성격도 아니지만.'
솔라빔에 신곡까지, 솔라의 주가는 최정상급.
현재 시점에 블루숄츠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솔직히, 해외 인기는 몰라도 국내 브랜드 파워는 벌써 넘어선 듯했다.
"다시 미국 활동 시작하는 거냐."
"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정규 2집 앨범 작업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활동해야지.
예지랑 은서, 영화 촬영 들어가기 전에 뽕을 뽑을 거야.
"내년 2월까지는 음원 활동할 겁니다."
"그럼."
앞으로 넉 달 정도.
"미국에 뮤비 촬영장 예약해야겠네."
"개인적으로...."
이미 음반이 발매되면서 컨셉은 잡혔다.
소외된 이웃을 위로하는 곡.
힐링과 감성의 따뜻한 노래.
"내년에 해외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어볼까 합니다."
"벌써?"
"네."
사실,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미국 활동하면서 인지도 쌓고 가야죠."
"...."
오늘 회의 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실패하면, 회사가 휘청일 수도 있겠지만.
걱정하는 마음만큼, 뒤통수에서 강렬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지."
"네. 본부장님."
당장 미국에서 활동할 준비를 하면 되지.
이미 정규 앨범 타이틀곡은 발매했으니.
'어서 2집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시 역배각 나오는 방송을 찾을 생각이었다.
앨범 표지랑 뮤비는 한국에서 촬영하면 되니까.
띠리리링─
그때, 미국에서 전화를 거는 핀 브라운.
가볍게 인사하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올해 11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정식으로 초청받았습니다.
".... 그래요?"
작년 AMA, 영광의 주인공은 하이엔드였다.
당연히 올해 대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고.
'그럼, 솔라는....?'
지금 막 발매한 곡은 당연히 수상 후보에서 제외였으나.
-Losing Star로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
하이엔드조차 받지 못한 AMA의 신인상.
데뷔한 해에만 받을 수 있는 상이었으니.
"그럼...."
전화 너머로 핀 브라운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솔라가 제너럴 급 무대에 오른다는 의미죠.
"아."
전 세계 음악 팬들이 열망하고 사랑하는 공연.
코첼라 페스티벌과는 다른 의미로 꿈의 무대.
-주최 측에서 Save The Earth 영광의 첫 무대를 AMA에서 올라주기를 바랐습니다.
"...."
아직 무대를 준비한 적도 없어요.
뭐 어때. 늘 그래 왔잖아.
우린 김 리다가 있으니까.
* * *
갑작스러운 흥행 돌풍의 주인공.
솔라 멤버들은 전부 연습실에 모여들었다.
신곡 활동 준비를 시작하라는 지시를 듣고.
예지와 은서도 대본을 내려놓고 신곡 활동 준비에 집중했다.
"가끔 대표님 머릿속이 궁금해."
"그건 나도."
원래 연예계는 누가 성공할지 모르는 바닥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뜨니까 얼떨떨하네."
"그러니까."
고작 몇 년 전에 평범한 아이돌 연습생이었는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떡상했다.
"얘들아, 모여봐."
심지어, 인기를 실감할 여유도 없었다.
"당장 무대 준비부터 하라는 말씀 들었지?"
"응. 들었지."
"그럼...."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양주희를 바라봤다.
홍주 쌤과 함께 안무 창작에 참여했으니.
"어후, 그럼 일단 나온 부분까지 보여줄게."
"오, 나오긴 했나 봐."
"다행이네."
한동안 연습 삼매경에 빠져 있었는데.
드르륵─
이내, 레드와인 안무 트레이너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얼어붙었다.
"신인상 후보요?"
세계적인 월드 스타들도 타기 어렵다는 신인상.
그래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AMA.에서.
데뷔한 해에만 탈 수 있기에 진짜 천재들만 후보에 올랐다.
"그래서 급하게 무대 준비하는 거야."
"...."
어쩐지, 연습생 때처럼 일정이 타이트해졌더라.
그렇게 큰 무대에 서는데 시간은 촉박했으니까.
"너희도 알지? 대표님이 그린 큰 그림이라는 거."
"당연하죠."
"그럼 열심히 해야겠지?"
"네에!!!"
새싹반 어린이들처럼 열심히 대답하는 월드 스타들.
레드와인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바로 동선부터 정해줄 테니까 잘 따라와."
"넵!"
신인상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이었지만.
'격'에 맞지 않는 무대를 보여주면 팬들이 실망할 터다.
얼마나 오래 연습했을까.
예지는 휴식시간에 물을 건네는 사내를 올려다봤다.
자신 앞에서 뒤통수를 긁는 유일한 남자.
데뷔 전부터 솔라를 믿어준 천재 매니저.
"대표님!"
"많이 힘들지?"
"아뇨, 괜찮아요!"
"...."
어깨를 토닥거리는 그의 손길에 지친 심신이 녹아내렸다.
'아, 맞다.'
예지는 슬쩍 시선을 돌려 누군가의 눈치를 살폈다.
은서의 마음을 알게 된 뒤로는 행동을 조심했다.
그녀도 대표님만큼 소중한 가족이고, 멤버니까.
"은서야, 여기 물."
"고마워, 언니."
서로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습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네."
"응. 그러게."
예지는 은서의 손을 잡고 씨익 웃었다.
"오늘은 가볍게 새벽 2시까지만 연습하자."
"엉?"
너무 오래전이라 멤버들은 잊고 있었다.
데뷔하기 전, 김 리다는 독재자였다는 걸.
"내일부터는 새벽 4시까지! 원래 하던 대로, 알지?"
".... 김틀러."
".... 김솔리니."
정수호 대표는 다른 멤버들의 간절한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뒤통수만 벅벅 긁으며.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행사나 방송 활동을 접고, 오직 연습에 매진한 솔라 멤버들.
정규 2집 앨범 작업을 제외한 모든 활동 올 스톱.
소미는 학교까지 공결 처리하고 연습만 시켰다.
그 결과는.
"하나둘셋넷, 둘둘셋넷, 오케이 반복!"
"...."
실력은 완벽했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거슬리는.
전통의 역배각이 제대로 뜨는 안무를 완성했다.
"얘들아, 수고했어!"
고생한 홍주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고 멤버들을 둘러봤다.
뮤비 촬영, 연습-, 정규 앨범 작업, 다시 연습.
바쁜 일정을 소화해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얘들아, 내일 미국 가는 거 알지?"
"당연하죠!"
아마 다시 한국에 돌아올 때쯤에는.
진정한 월드 스타에 오르지 않을까.
띠리리링─
이내, 프렌즈 방 의장님의 전화가 직통으로 걸려왔다.
-정 대표, 잘 지냈나?"
"네. 의장님."
안부 차 인사도 할 겸 연락하시지 않았을까.
하이엔드 역시 AMA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니.
-가기 전에 차라도 한잔하지.
"네. 알겠습니다."
뚝.
솔라가 AMA 제너럴급 무대에서 준비한 노래는 두 곡이었다.
미국 데뷔곡인 Losing Star와 현재 진행 중인 Save The Earth.
"얘들아, 오늘 기사 봤어?"
"봤어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눈을 의심했는데.
아마 솔라 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
"축하해."
최단 기간 16개국 음원 차트 정상에 올랐다.
즉, 키아라가 세운 Royal의 기록을 깨트렸다.
'곧 AMA에서 마주칠 텐데....'
사실, 원래 친했던 적은 없었지만.
다시 그쪽이랑 악연 스택이 쌓였네.
며칠 후.
드레스를 입은 솔라 멤버들과 함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현존 최고의 가수들이 모인 음악 축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