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61화 (161/200)

[161] 돌풍(4)

솔라빔의 흥행으로 스케줄이 밀려들었다.

멤버들은 물론이고, 나 역시 종종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짧은 휴식기를 깨고, 솔라 완전체와 MBS 주차장에 들어섰다.

끼이익─

밴을 세우고, 멤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솔라빔 제작팀이 8층이었나."

"네. 맞아요!"

"아하, 오늘은 그냥 가벼운 인터뷰야."

"네에."

소미는 오랜만에 방송국 나들이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여기 뭔가 엄청 바뀌었네요."

"그래?"

"네! MBS 샌드위치가 제일 맛있는뎅."

"이따 하나 사올게."

"오오."

그래도 아직 고딩은 고딩이구나.

너무 똑똑해서 가끔 헷갈리지만.

"너 요즘 학교 성적은 신경 쓰니?"

"그냥 적당히 10등 정도는 유지하고 있어요."

"크으, 역시 소미."

"헤헤."

해외 활동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너희 반에 몇 명 중에 10등이야?"

"당연히 전교 10등이죠."

"...."

무시해서 미안해.

"대표님, 남민지 꼴등인 거 아시죠?"

"민지가?"

"네."

우리 회사에 인재가 또 있네.

전교 꼴찌도 쉬운 게 아니거든.

"보통 한 번호로 찍으면 20점은 받지 않냐."

"그러니까요."

그러고 보니, 예능 하나 들어왔는데.

"갱생 프로젝트라고, 예능 할래?"

"갱생이요?"

"우등생이 열등생 가르치는 예능."

"오, 합법적으로 혼내도 돼요?"

".... 너무 갈구진 말고."

걸그룹 멤버가 꼴찌면 좀 그렇잖아.

요즘 연예인은 공부도 다 잘하거든.

-띠링, 지하 1층입니다.

곧장 지하 주차장에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첫 방송 이후 처음 들른 사무실.

국장님은 냉큼 달려와 인사했다.

"정 대표님, 오셨습니까! 하하하."

"네. 국장님."

솔라빔 촬영 전과 후가 180도 달라졌다.

사실, 인지도 자체는 달리진 게 없지만.

"MBS 사장님께서 금일봉 쏘셨다고 들었는데."

"아이고, 소문도 빠르네. 전부 정 대표님 덕분입니다! 하핫."

"윈윈이죠."

현재 넥플렉스에서도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차트를 쭉쭉 치고 올라가서 정상을 찍었으니.

"어우, 다음 주 방송 나가면 1위도 노려볼 수 있겠습니다!"

"좋네요. 그럼 인터뷰는 어디서 진행하나요?"

"아, 네. 이쪽으로...."

이내, 멤버들은 한 명씩 카메라 앞에서 소감을 발표했다.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각자의 진솔한 속마음을 뱉었다.

"Ah.... 소미가 소미했구나.... 이거 방송 나가요? 사랑해 소미야."

방송의 어마어마한 인기 덕분일까.

인터뷰 촬영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대표님."

곧이어, 내게 다가와 인사하는 김선호 피디님.

오늘 내 인터뷰도 따자고 미리 말씀하셨으니.

"인터뷰 진행하실까요?"

"아, 네."

특히, 양주희 기마 궁술 장면이 핫해서 관련 질문이 이어졌다.

"양주희를 동물로 비유하면?"

"하마."

"대표넴....?"

근처에서 듣고 있던 주희가 나를 불렀다.

"음, 왜 하마인가요?"

"영역 침범을 안 하면 온순해요. 근데 아무도 못 건드리죠."

"아하."

이제야 풀어지는 주희의 표정.

대표도 이렇게 눈치 보고 산다.

이어지는 질문은 평범한 수준으로 진행됐다.

"그럼 내일은 루나, 이클립스 멤버들 데려와 주세요."

"아마 지유가 데려올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른 멤버들의 인터뷰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띠링─

이내, 지유가 톡으로 보낸 3분 영상을 확인했다.

-「Save The Earth」 선공개 음원!

'뭐냐, 왜 영상 길이가 3분이나....'

선공개 영상이 아니라 원곡을 보냈네.

근데 왜 파일 이름은 저렇게 편집했나.

띠링─

이내, 같은 파일명의 다른 음원을 보내는 지유.

'이번에도 3분짜리 영상이긴 한데....'

근데 이제 나머지 시간은 솔라빔 촬영 비하인드로 채워진.

이래서 파일명이 같았나 봐.

바로 두 번째 파일을 눌렀다.

-둥, 둥, 둥, 둥.

웅장한 초반부 비트와 강렬한 예지의 도입부.

멤버들의 킬링 파트를 한 마디씩 넣은 음원.

"크으, 좋네."

역배각을 떠나, 솔라의 완성도는 이미 아티스트의 경지였다.

이거 너튜브에 올리면 반응 좀 오겠어.

지금 솔라빔 인기는 하늘을 찌르니까.

슬슬 인터뷰도 끝나가고, 멤버들을 챙겨 돌아가려던 찰나.

띠리리링─

「왕의 품격」 제작사 측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주말에 미팅도 잡았고, 그때 보기로 했었는데.

"여보세요. 정수호 대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피플 프로덕션 지영호 실장입니다.

"네. 주말에 뵙기로 했었죠."

-맞습니다. 그런데....

이내, 상대는 뜻밖의 이름을 꺼냈다.

-혹시 양주희 씨도 같이 계약할 수 있을까요?

"주희요?"

-네. 감독님께서 찾던 인재라고 하셨습니다.

"...."

주희는 연기할 마음이 없을 텐데.

그래도 내가 하라고 하면 하려나.

'역배각 떳냐.'

오케이, 떴다.

* * *

며칠 뒤.

양주희의 연기자 데뷔설이 연예계에 널리 퍼졌다.

이미 복수소녀 때부터 스턴트 액션을 선보였으니.

"주희 언니, 부럽다."

소미는 학교 벤치에 앉아 쭈쭈바를 먹으며 말했다.

"솔라에 배우만 셋이네."

"소미야, 너도 하면 돼."

"쉽지 않음."

서광예고, 점심시간.

소미는 한지아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학교에서 두 사람은 절친으로 유명했다.

"남민지는 오고 있남?"

"응. 오고 있대."

요즘 미국 해병대 군기가 말이 아니었다.

"에잉, 빠져가지고."

".... 꼰."

근데 진짜 빠지긴 했음.

"우리 가요계에는 선후배라는 게 있어요."

"나도 네 후밴데....?"

"너는 우리 앨범 작곡가니까 예외지."

"오, 다행쓰."

한지아는 민지를 기다리며 입을 열었다.

"너 그거 알아?"

"뭐를?"

"이름에 이응이 들어가면 마음이 따뜻하대."

"흠?"

김예지, 장은서, 양주희, 다이애나.

"신소미, 너는 없네. 까비."

"아."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함.

"과학적인 근거를 가져오세요."

"저기 봐."

그때,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걸어오는 남민지.

주변 아이들 시선을 의식하는 듯 걸음걸이는 우아했다.

"쟤 뭐함."

"민지도 이름에 이응이 없어서 그래."

".... 인정."

과학적인 근거가 있었다.

연예인병은 불치병이거든.

"지아야, 혹시 나도 중학교 때 저랬어?"

"그 정돈 아니고."

"다행이다."

거울치료 성능 좋네.

"여러분, 저 이클립스 남민지 맞아요! 네네. 사인해 드릴까요?"

"쟤는 원래 저래?"

"오늘은 특히 심하네."

"...."

학교에서 뭐하는 거야.

참교육 쿨타임 돌았다.

이내, 벤치 앞에 도착한 민지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솔라의 신.소.미 선배님!!"

"오오오....!"

이유는 모르겠지만.

뒤에 있던 학우들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민지야."

"네. 선배님!"

"성적표는 가져왔겠지?"

"...."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눈웃음을 치는 민지.

"여러분, 제가 사적인 대화를 하려고 해요."

"아아....!"

"자자, 사라져주세요!"

"...."

이거, 병 맞았네.

치료가 필요해요.

민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섬주섬 성적표를 꺼냈다.

"여기욥."

반응을 보니까 이번에도 꼴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선배님, 저 등수 올랐어요!"

"와, 2등이네."

"네! 뒤에서 2등입니다! 하핫."

"...."

전교 꼴찌에서 2등.

이 등수로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너보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이 있다니."

"아, 저 걔랑도 친구예요! 강욱이도 연예인이라."

"강욱이?"

큐앤지 레이블 신인 그룹, 헥토파스칼킥 최강욱.

한솥밥을 먹었던-, 이제 가족은 아니고 친척 정도.

"남돌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넹. 당연하죠."

그래도 민지는 진짜 가족이니까.

"민지야, 너랑 나랑 예능 들어왔어."

"오, 무슨 예능이요?"

"갱생 프로젝트, 우등생이 열등생 가르치는 방송이야."

"아하."

내가 너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려고.

"저기."

그때, 멀리서 주뼛거리며 다가오는 한 여학생.

'저 친구는....'

걸스 오퍼레이션 참가자, 레미.

대표님이 이름을 언급해서 잠깐 유명해졌는데.

결국 프로그램 데뷔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리 학교였어요?"

"아, 네! 선배님!"

"근데 어쩐 일로...."

레미는 자체제작한 명함을 건네며 꾸벅 인사했다.

"제가 서광예고 신문 동아리 기자거든요!"

"???"

레미는 패기를 두르고 대화를 이어갔다.

"정수호 대표님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 아하?"

"근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러시군요."

저도 모르겠어요.

* * *

피플 프로덕션 미팅룸.

구 팀장님과 함께 계약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특히, 개런티 규모는 서로 민감한 문제였으니까.

'돈 많으시네.'

괜히 1티어 제작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김찬호 감독님 같은 거장이랑 같이 일하는 건가.

"잠시만요. 크랭크인 언제라고요?"

"내년 3월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타이트하네요."

"그게, 개봉을 내년 중순으로 잡아서."

"...."

멤버 세 명이 빠지면 앨범 준비에 차질이 생긴다.

외주를 맡기면 앨범 제작을 서두를 수 있긴 한데.

"그럼 주희는 단역인거죠?"

"네. 주희 씨는 촬영 기간이 길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올해 말에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매년 초에는 또 그래미 어워즈가 있으니까.

'그럼 적어도....'

올해 말까진 정규 앨범 준비를 마쳐야겠네.

그래야 두어 달 활동하고 영화도 찍을 테니.

"계약서 수정하고 오겠습니다."

"네. 실장님."

중전 역, 예지를 지키다 사망하는 캐릭터.

맨손으로 칼을 든 사내 셋을 상대하는데.

'현실이면 주희가 개처바를 듯.'

양주희가 운동만 안 그만뒀어도 금메달 땄을걸.

지금도 걸그룹으로 잘 나가서 아쉬움은 없지만.

이내, 실장님이 돌아와 다시 계약을 진행했다.

"저기, OST는 예지 씨가 직접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영화 출연 건은 이 조건으로."

"네. 대표님."

서로 계약서를 주고받으며 악수를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솔라 멤버 중 세 명이나 출연하는 빅 딜.

조건부로 역배각이 확실한 작품이었다.

예지와 은서의 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구 팀장님, 그만 가실까요."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왠만하면 내가 운전하겠다고 말하는데.

솔라빔 이후, 워낙 캐스팅 제의가 많이 들어와서.

"대표님,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네. 조금."

어디서 역배각이 뜰지 모르니까.

작은 규모의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웹드라마에 예능까지 전부 훑어야 했다.

"활동 국가가 많아져서 그런가 봅니다."

"네. 미국에도 제작사는 셀 수도 없이 많으니까."

"이제 직원들한테 맡기시죠."

"글쎄요."

「오징어 서바이벌」도 10년 동안 거절당한 아이템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글로벌 드라마.

그런 작품을 놓치면 얼마나 후회할까.

"저는 그냥 지금도 좋아요."

"역시, 대표님은....!"

"왜요."

구 팀장은 눈빛에 열정을 불태우며 말했다.

"원래 제 롤모델은 프렌즈 방 의장님이었거든요."

"기썬을 제압해?"

"예?"

"그분 유행어요."

"...."

농담도 안 받아주시네.

"아무튼, 이제 제 롤모델은 정 대표님입니다."

"굳이....?"

"스카이 엔터에 뼈를 묻을게요!"

"...."

저는 이 회사에 뼈 안 묻어요.

돈 많이 벌면 은퇴할 거예요.

'어쩌면....'

내가 키운 걸그룹 멤버랑 손잡고 은퇴할 수도.

요즘엔 예지보다 은서가 자꾸 시그널을 보냈다.

진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조만간 진지하게 대화를 해봐야겠어.

"하아암, 피곤하네요."

"좀 주무십쇼."

"그럴까요."

하루 종일 수백 작품과 예능을 본 것 같다.

솔라 외에도 루나, 이클립스 배우님들까지.

"그럼 좀만...."

잠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집.

당장 꿀잠을 자려고 생각했는데.

"아 맞다. 오늘 올린댔지."

까먹을 뻔했네.

지유가 보낸 「Save The Earth」 선공개 음악 파일.

어차피 몇 달 뒤면 정식으로 음반을 발매하겠지만.

딸깍, 딸깍─

소미 너튜브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Uploading 1%」

와, 졸라 오래 걸리네.

냅두면 알아서 되겠지.

곧바로 노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면서도 마음은 쓸데없이 걱정했다.

'아, 확인도 안 하고 올렸네.'

아니, 지유가 여러 번 확인했다고 했으니까.

꿈결에 뒤통수가 짜릿짜릿한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나오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피곤한 하루였다.

* * *

미국 로스앤젤레스 RSB 음반제작사.

핀 브라운은 급하게 찾아온 비서와 대화를 나눴다.

평소 냉정한 그녀였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도 전화 안 받아?"

"네. 한국은 퇴근 시간입니다."

"...."

서류상, 스카이 엔터 음악의 미국 유통은 그의 책임이었다.

"정 대표님도 안 받으시네."

"어떡하죠?"

"어떡하긴."

고작 한 시간 만에 너튜브 조회수는 수백만을 돌파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노래가 너무 좋잖아."

"근데 왜 프로모션도 없이 원곡을 공개했을까요?"

"글쎄."

천재의 생각을 범인이 어떻게 따라가겠어.

원곡을 그대로 선공개하는 기습 전략인가.

'그래도 예상해 보자면....'

프로모션 없이 진정성 있는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소수와 약자를 대변하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

김 리더의 작사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네 그거 아나?"

"네?"

키아라를 키운 에일리 프로듀서도 비슷한 전략을 썼다.

"정말 좋은 곡은 프로모션을 타지 않아."

"아."

지금의 키아라를 있게 한 명곡, 「Royal」.

그저 노래가 좋아서 레전드로 남았으니.

프로모션 없이 최단기간 다국가 차트 1위라는 대기록.

아마 이번에 그 기록을 깨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솔라가 쌓은 미국 내 인지도는 상당했다.

넥플렉스에서 솔라빔은 최고의 인기였고.

"정 대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네? 그럼."

"바로 유통해."

"알겠습니다."

너튜브에서 반응이 뜨끈뜨끈한 지금이 골든 타임.

정수호 대표는 천재니까.

그의 뜻을 존중해야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