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확장(5)
솔라의 미국 활동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물론, 이미 출연한 「브레인」을 제외하고.
아이돌 느낌 없이 예술성과 감성적인 면을 강조한 앨범.
에일리 작곡의 「Losing Star」.
한지아 작곡, 예지 작사의 「Value」.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닌,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곡들이었다.
일단, 두 곡 모두 뒤통수에서 역배각이 제대로 섰다.
노래가 안 좋다기보다는 살짝 거슬린다고 해야 하나.
'멜로디부터 안무까지 전부....'
그야말로, 똥촉의 가호를 받는 앨범.
이 정도면 할머니께서도 인정하실걸.
"오빠, 화보 촬영 끝나고 숙소에 데려다 줬어."
"수고했다."
"쇼케이스 무대까지 나흘 남았네."
"...."
지유는 근처 의자에 앉더니 대화를 이어갔다.
"오빠, 요즘 핀 브라운 씨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어, 그러게."
이전보다 좀 더 부드러운 느낌.
서포트하려는 의지도 강해졌고.
"사업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냐."
"그렇지."
그보다, 미국지사에 있는 직원들이 더 신경 쓰였다.
"미국인 직원분들 표정이 어두워."
"아, 맞아. 아직 확신이 없나 봐."
"그야."
큐앤지 시절부터 매번 '성공'을 가정하고 일을 진행했다.
첫 곡이 뜨기도 전에 두 번째 곡의 뮤비를 제작한다든지.
'.... 처음 보는 사람은 이상하겠지.'
오히려 내 실력을 믿었다면 100% 확신은 없었을 텐데.
솔라를 키우고, 똥촉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으니까.
"성적으로 증명해야지."
"맞아."
인지도가 부족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케팅과 홍보.
미국 시장에서 예능 프로에 목을 매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브레인 방영일이 언젠지 알지?"
"응. 쇼케이스 이틀 전."
"레이첼 씨한테 방송 직후에 보도 자료 뿌려달라고 요청해."
"알겠어."
브레인 덕분에, 빌보드 진입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빌보드 핫100이 어려우면 글로벌 차트라도 들어야지.
'다른 음원 차트도 있지만....'
일단, 솔라는 어디까지나 한국 걸그룹이니까.
한국에서 빌보드의 인지도는 넘사벽이었다.
"네가 숙소에 자주 들르면서 애들 컨디션 관리 좀 해."
"알겠어."
"밤에 뭐 못 먹게 하고."
"그건 주희 언니가 알아서 관리하던데."
"너도 신경 써야지."
"으응."
특히, 요즘 소미는 공부하면서 야식을 먹기 시작했다.
브레인 촬영 전까지는 봐줬지만.
이제 활동도 해야 해서 안 되지.
다른 건 몰라도, 첫 번째 음원 성적은 정말 중요했다.
한국과 미국, 솔라를 주시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으니.
"이번 활동에 목숨 건 직원만 100명이야. 외주까지 치면...."
"그건 나도 알지."
하나의 아티스트, 팝스타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
'걸그룹 딱지 떼고....'
반드시 성공해서, 월드 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할 계획이었다.
"오빠, 예능 세 개 잡겠다면서."
"아, 일단 세 군데 전부 캐스팅 요청 넣었어."
"그래?"
특히, 브레인의 CBC 방송국은 부담이 없었다.
소미가 브레인에서 열심히 활약해준 덕분에.
"아직 아무 데도 답변 없었어?"
"응. 아직 없긴 한데."
최근에 강화 뒤통수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같은 방송에서도, 대본과 연출에 따라 천차만별.
조금만 거슬려도 뒤통수에서 반응을 해주었으니.
"으으, 혹시 연락 안 오는 거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지금도 간질간질하거든.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 * *
세계 최초로 컬러 TV를 송출한 방송국.
CBC 예능국은 연일 솔라에 대한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귀한 손님은 아니었는데.
"고등학생이 우승이라...."
예능 본부장은 「브레인」 영상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1티어 인기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왕중왕전은 달랐다.
".... 재밌네."
소미는 이번 왕중왕전에서 거의 모든 '우승' 타이틀을 갈아치웠다.
최초의 동양인.
아티스트 최초.
그리고 최연소.
게다가, 10만 달러 기부까지.
관례상 방송 끝날 때 기부를 제안하긴 하지만.
셀럽들 중 기부에 동의한 출연자는 처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봤던 방송인데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방송 나가면 무조건 화제 되겠네."
똑, 똑─
이내, 예능국장이 본부장실에 노크하고 들어왔다.
"본부장님, 키아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캐피탈 매니지먼트 측에서...."
이어지는 국장의 말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조이파이브랑 키아라, 공동으로 출연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시 굿버스킹에 출연하겠다고?"
"네. 대신 솔라 출연은 거절하라는 조건입니다."
"...."
한사코 거절하더니, 이제 와서.
그것도 솔라 소속사와 무슨 악연이 있길래.
"고민해 보겠다고 말해."
"알겠습니다."
최근에 본부장은 넥플렉스로 걸스온탑을 감상했다.
"솔라냐, 키아라냐."
그들은 왜 자꾸 부딪히는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키아라를 선택하는 게 맞지만.
"자네 생각은 어때?"
"솔직히 탑클래스 가수 두 팀이면 수락해야죠."
"...."
예능 본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국장에게 말했다.
"솔라는 얼마 후에 미국에서 데뷔한다지?"
"네. 이제 며칠 안 남았을 겁니다."
굿버스킹은 CBC 방송국의 간판 예능.
브레인보다 한 체급 위의 방송이었다.
"그럼 음원 보고 결정하지."
"알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솔라도 미국에서 데뷔하지 않았으니.
그만큼 브레인에서 보여준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의미일까.
드르륵─
국장은 본부장실을 벗어나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굿버스킹 피디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일단 섭외는 보류하자고."
-네. 국장님.
솔라의 미국 활동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 *
미국 새 앨뱀 쇼케이스 D-2.
스카이 엔터 연습실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있었으니 당연해 보였지만.
"언니들, 딱 한 번만 먹자."
"안 돼."
솔라 멤버들 사이에는 야식파와 단식파가 대립했다.
예지는 주희는 단식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은서는 소미는 배고픔과 효율을 강조했다.
양주희는 나긋나긋한 어조로 소미에게 말했다.
"소미야, 얼굴 부은 상태로 평생 박제되고 싶어?"
"배고파서 스트레스받는 게 더 손해야."
"그냥 이틀만 참자."
"사람이 이틀 동안 어떻게 풀만 먹어?"
"밤에 먹으면 더 살쪄."
"누가 그래?"
"내가."
"...."
소미는 허리에 손을 두르고 주희에게 입을 열었다.
"언니, 지금 한국은 몇 시야."
"아침이겠지."
"그럼 먹어도 됨. 야식 아니고 아침밥임."
"아하."
옆에서 듣고 있던 예지는 주희에게 말했다.
"그걸 왜 납득하고 있니."
".... 넘어갈 뻔."
멤버들의 경쟁을 빤히 지켜보던 다이애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지금 대표님 오고 계신대!"
"아."
"아."
결국, 다시 단식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오늘 브레인 본방송이 있는 날이었으니.
수호는 양손에 샐러드를 들고 연습실 문을 열었다.
"소미야, 표정이 왜 그래."
"몰라요."
그는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당사자들에게 가져왔다.
"얘들아, 지금 이클립스 비행기 탔다."
"아, 정말요?"
솔라의 쇼케이스 무대 전, 예열 무대.
이클립스에게 좋은 기회가 될 터였다.
"너희보다 먼저 무대에 오를 거야."
"오랜만에 보겠네요."
"대표님! 편곡은 했어요?"
역시, 출연보다 음악적인 부분을 먼저 신경 쓰는 다이애나.
"그쪽에도 인턴 프로듀서가 있으니까."
"그럼 제가 확인만 할게요."
"시간 괜찮겠어?"
"에일리 언니랑 같이하면 돼요."
"아, 그래."
두 사람이 같이하면 금방 끝나겠지.
"소미야, 잠깐 일로 와봐."
"넹?"
수호는 군필 여고생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브레인에서 군대 나왔다는 말을 했었잖아....?"
"네. 그랬죠."
"엄청 자랑스럽구나?"
"당연하죠. 인생 업적인데."
"...."
소미는 그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고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자, 잠깐만! 생각해 보니까 별로예요."
"아냐. 군필 여고생은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아."
"군필이라뇨. 무슨 소리에요. 군대 체험 예능이죠."
"미군필 여고생은 어때?"
"아."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갑자기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는데.
'아니, 근데....'
미군필 여고생이 꼭 자신일 필요는 없지 않나.
마침 이클립스 멤버들도 미국에 오고 있으니까.
"아무튼."
대표님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TV 리모콘을 찾았다.
"얘들아, 브레인 본방 시간이다!"
"오, 드디어."
"브뤠인."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스크린 주변에 모여드는 언니들.
소미는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민지도 오고 있겠네.'
민지도 쇼케이스 예열 무대만 하고 가면 아쉽지 않을까.
미군필 여고생이 한 명일 필요는 없잖아.
학교에선 선배지만 군대에선 동기 아닌가.
* * *
이틀 뒤, 쇼케이스 당일.
가벼운 리허설 공연을 마쳤으니, 컴백만이 남은 상황.
나는 지유와 대기실로 이동하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오빠, 지금 한국에서 난리 났어."
"응, 보고 있어."
브레인에서 미친 활약으로 우승을 거머쥔 소미.
예상은 했지만,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각종 쇼츠 영상으로 너튜브에서 짤로 돌아다니는 영상들.
댓글창에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각종 언어로 도배되었다.
'미국 현지 언론에서도....'
지니어스라며 소미를 띄워 주고 있었으니.
미국 진출하기 정말 좋은 타이밍이 아닌가.
"오빠 도착했어."
"밖에서 기다려."
"응!"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멤버들을 찾았다.
"대표님!"
언제나처럼 반겨주는 예지와 시크하게 훑어보는 은서.
그리고.
"주희야, 테이블 들었다 놨다 하지 마."
"아, 저도 모르게."
"...."
헤어랑 메이크업 세팅 끝났는데.
다시 땀 나면 스탭들이 싫어하지.
"얘들아, 다들 긴장하지 말고."
"긴장 안 해요."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스케줄이 많았을 텐데.
잘 버텨준 멤버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아, 대표님."
그때, 소미는 방실방실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오늘 이클립스 공연은 어땠어요?"
"실수 없이 했어."
"헤헤."
소미가 이클립스 멤버들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민지랑 시연이 걱정돼서 그래?"
"그럼요."
"너무 편애하지 말고."
"알겠어용."
드르륵─
그때, 박아영 씨가 대기실에 들어오며 멤버들에게 말했다.
"바로 무대 의상 입을게요!"
대기실에 들어오는 하늘하늘한 무대 의상.
곡이나 안무 컨셉과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그럼 나는 나갈 테니까 준비하고."
"네에!"
이내, 대기실 밖에 기다리고 있는 지유를 발견했다.
"이클립스 멤버들은?"
"응. 지금 무대 내려오고 있어."
"빠르네."
솔라 쇼케이스 예열 무대 정도면.
음원을 알리기에도 좋은 기회겠지.
잠시 후,
미국에서 섭외한 MC의 진행과 함께 솔라의 쇼케이스를 시작했다.
너튜브로 생중계하는 솔라의 컴백 쇼케이스 무대.
나는 무대를 감상하면서 실시간 댓글을 확인했다.
-빨리 ㅠㅠㅠㅠ
-솔라는 언제 나옴?
-큰 거 온다
-소미 Carrrrrrry
-브레인 한글자막 좀 제발 ㅠ
-솔라 컴백 실화냐
-오래 기다렸다
미친듯이 올라오는 댓글창을 보고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지유야, 댓글창 관리하자. 혹시 모르니까."
"알겠어."
오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가.
직원들의 피와 땀, 노력의 결실이었다.
촤아, 파바바밧─
화려한 폭죽이 터지며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커다란 타원에 주변 아지랑이.
햇빛을 표현한 폭죽에 이어서.
예지는 마이크를 들고 무반주로 도입부에 들어갔다.
-Losing star, 별을 따라 저무는 이 밤.
마스터피스, 명작을 감상할 때는 뒤통수가 간지럽지 않았다.
지금 솔라의 무대가 내게는 그랬다.
연습 때 거슬린 습관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완벽한 퍼포먼스 앞에 기자들도 넋을 잃고 감상할 뿐.
물론, 너튜브 시청자들 역시 솔라의 무대에 감탄을 터트렸다.
-감성 미쳤다
-노래 스포 안 한 이유가 있었네
-개쩐다;; 프로듀서 추가했다더니
-이게 K팝 수준? ㄷㄷ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한다 ㅠㅠ
-이게 아티스트지
첫 번째 무대를 마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노래를 감상했다.
'.... 내가 알던 애들이 맞나.'
무대 위에서는 완전 다른 사람이야.
그런 애들을 데리고 예능만 찍었네.
공연을 마치자마자 MC와 미국 활동에 대한 포부를 밝히는 멤버들.
얼마 후, 빌보드 첫 집계 시각이 다가오고.
빌보드 차트에는 익숙한 이름이 올라왔다.
[Rank 95 : 「Losing Star」 ]
차트 진입을 위해 음악 예능을 준비했는데.
벌써 빌보드 차트에 솔라의 이름이 올랐다.
띠링─
이내, CBC 방송국 예능국장님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굿버스킹, 미팅 잡으시죠]
[이클립스도 같이요]
쇼케이스 예열 무대에 이클립스를 올린 건 신의 한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