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95화 (95/200)

[95] 개별 활동(2)

처음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도하나를 발견한 래퍼.

칼리 잭슨은 도하나의 음악을 듣자마자 확신했다.

자신의 랩을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줄 프로듀서를 찾았다.

미국 할렘가에서 볼 수 있는 본고장의 맛.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처음에는 도하나가 작곡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뇨. 한 명입니다."

요즘 시장은 세분화가 기본에, 팀 단위 작곡이 트렌드였다.

너덧 명이 달라붙어서 한 곡을 완성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지금 이 너머에 있는 건가."

"네. 먼저 오셨다네요."

도하나의 음악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소스였다.

똑, 똑─

함께 따라온 비서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네. 들어오세요."

마침내, 문이 열리고 누군가 자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오셨군요."

훤칠한 키에 깔끔한 수트가 어울리는 남자.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안녕하세요. 정수호 실장입니다."

"도하나 프로듀서님? 사클에서 목소리는 여자였던...."

"네. 저쪽에."

칼리 잭슨은 시선을 돌려 소파에 앉아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 그럼 이분이!?"

"네. 맞습니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쯤일까.

'이렇게 어린 소녀일 줄은....'

그동안 왜 그렇게 얼굴을 꼭꼭 숨겼는지 알 것도 같다.

그녀의 음악에 꽂힌 자신조차 선입견이 생길 지경인데.

'.... 존나 예쁘잖아!?'

혹시 다른 사람이 사칭하는 건 아닐까.

"당신이 진짜 도하나 프로듀서?"

"네. 맞아요."

파란 눈동자의 금발 소녀.

다이애나는 방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도하나입니다."

저 오밀조밀하고 조그마한 입술로 랩을 그렇게 잘 뱉어?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내, 옆에서 듣고 있던 비서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솔라의 멤버로군요."

".... 걸그룹!?"

이 회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그룹이라고 들었다.

얼마 전에 「로이랜드」 캐스팅 소식도 있었으니.

"케이팝 걸그룹 스케줄은 살인적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네. 연습 끝나고 남는 시간에 곡 작업해요."

"...."

취미로 묠니르 삽입곡을 썼다는 건가.

무슨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도 아니고.

아무리 음악 시장이 천재들의 놀이터라고는 하지만.

거의 모든 악기를 통달한 듯한 깊은 식견.

트렌드를 뛰어넘는 독보적인 비트 메이킹.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도하나라는 뮤지션과 거리가 멀었다.

"이렇게 어릴 줄은...."

순간, 다이애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음악에 나이가 중요한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내, 정수호 실장은 예상했다는 듯이 자리를 이동했다.

다이애나가 주로 이용하는 작업실.

매주 한 곡씩 찍어내는 음악 공장이었다.

"사실, 칼리 잭슨과 어울리는 비트를 하나 찍어봤어요."

"벌써?"

"네. 일주일이면 한 곡은 뽑죠."

"...."

둥, 둥, 둥─

심장을 울리는 진동 소리와 함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Are you ready for it?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BPM 120의 트랩 비트.

잘게 쪼갠 하이햇과 깊은 울림이 있는 킥 드럼.

'.... 아티스트.'

도입에서 전개 파트로 이어지는 사운드는 가히 장인의 솜씨였다.

눈을 감고, 쿵쿵 울리는 드럼과 감성적인 건반의 조화를 감상했다.

처음 도하나의 곡을 들었을 때 느낀 환희.

자신의 음악적 색감을 정확히 파악했으니.

'잠깐만 이거....'

트랩과 댄스곡의 경계를 무너트리려는 흔적을 발견했다.

힙합계에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게임 체인저'의 자질.

극소수의 천재들은 힙합계의 전반적인 수명을 늘린다.

타격감의 붐뱁.

리듬감의 트랩.

고작 두 가지 뿌리가 전부인 힙합이 살아남은 원동력이었다.

'.... 소울이 있어.'

칼리 잭슨은 슬쩍 시선을 돌려 그녀의 프로듀서를 바라봤다.

이런 천부적인 재능이 얼마나 익숙하길래.

저런 무덤덤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을까.

아마 핀 브라운이 자신을 키운 것처럼 저 사람 역시 도하나를 키웠겠지.

"미스터 정."

"네."

그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오늘의 자신을 반성했다.

"당신도 도하나의 소울을 느꼈군요."

".... 예? 쏠?"

"역시!"

칼리 잭슨은 정수호의 손을 붙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잘 부탁합니다, 브로."

* * *

음악도 모르는데 내가 힙합을 어떻게 알아.

존나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정답이지.

칼리 잭슨과 다이애나가 공동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뭔 욕이 이렇게 많냐.'

엄마가 두 명이 됐다가 세 명이 됐다가 난리도 아니네.

소울이고 나발이고, 슬랭이 너무 많아서 못 알아듣겠어.

찌릿─

다만, 음악을 듣는 동안 계속 신호가 찾아왔다.

이 정도로 따끔한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을 텐데.

'이러다....'

예지가 한국 돌아올 때쯤엔 대머리 될 듯.

"좋은 계약이었습니다."

"네. 저도요."

칼리 잭슨, 온몸에 문신이 몇 개야.

외형은 거의 흉악범처럼 생겼는데.

"브라더, 수고했습니다!"

나이 대접 깍듯하게 하는 걸 보면 완전 서양 유교보이가 따로 없다.

"실장님, 그럼 미국에서 뵙죠."

정중하게 인사하는 비서분께 미소로 답했다.

"제가 지하 주차장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에이,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일행이 있어서요."

"아, 네. 그럼."

꾸벅 인사하고 사라지는 두 사람.

잭슨과 비서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도하나, 수고했어."

"실장님도요."

추가 작업은 메일로 주고받고, 녹음은 미국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한 달 뒤쯤 비행기 예약할게."

"알겠어요."

"LA에 도착하면 예지랑 같이 맛있는 거 먹자."

"오, 좋아요!"

해맑게 웃는 다이애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작업실을 벗어났다.

'RSB 음반이랑 계약도 끝났고....'

당장 큰 건은 전부 해결한 것 같다.

잠시 후,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섭외 요청이 들어온 방송을 확인했다.

각 멤버마다 수많은 캐스팅 제안이 쏟아졌다.

심지어, 주희나 소미한테 드라마까지 들어왔으니.

"뭐냐, 무당 관련 예능도 있네."

내 생각에 우리 할머니보단 못 할 것 같아.

나도 그런 거 안 믿다가 이제는 믿으니까.

루나는 지금 새로운 싱글 앨범 컴백 준비를 잘하고 있었고.

솔라 멤버 중에 예지랑 다이애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

'일단 은서부터 볼까.'

800만 여배우님께 들어온 드라마 제목을 쭈윽 훑어봤다.

딱히 역배각 잡히는 느낌은 없었다.

1화 대본을 자세히 읽어봐야 하나.

".... 하긴."

지금 상황에서 '대박' 나려면 얼마나 크게 성공해야 할까.

급이 올라서 무난한 시청률 정도로는 촉이 올 리가 없지.

'너무 조급할 거 없어.'

은서는 일단 카메오 들어온 것부터 찍고 생각하자.

소미도 너튜브 채널에서 모해모해 찍고 있으니까.

"음, 양주희는...."

특히, 운동 관련 예능이 많이 들어왔다.

사실상, 솔라가 고정 출연할 이유는 전혀 없는 방송들.

너무 운동 이미지만 굳어져서 이제 피하고 싶긴 한데.

".... 역배각 떴다."

공 차는 여자들, 일명 공차녀.

부상 많기로 유명한 축구 예능.

뭐, 이제는 똥촉 한 번쯤 걸러도 딱히 리스크는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지."

뒤통수 가려우면 간다.

솔라 데뷔했을 때 스스로 한 다짐을 떠올렸다.

족 같다고 생각한 방송은 다 잡겠다고 했었지.

띠리리링─

그때, 엄재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뭔 일이래."

-형님! 나 팀장 달았어!!!

"...."

혹시 너희 아버지 회사 망했냐.

-나 4팀장이라니까!?

"아휴, 나 드림 에이전시에서 해체된 그 넘버네."

-됐고, 이제 4팀장이라고 불러줘.

"진짜 낙하산은 낙하산이구나."

-아닌데? 실적을 올랐는데?

".... 그래."

-이게 다 행님 덕분이야. 고마워!

"고맙긴."

어차피 방송국은 개인 투자를 잘 받지 않는다.

그게 됐으면 내가 직접 투자해서 돈 벌었겠지.

-내가 이제 팬클럽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 결론 무엇?"

너 진짜 태양빛에 진심이구나.

-그래서 제안 하나만 할까 하는데.

"무슨 제안."

생각보다 장난스러운 제안은 아니었다.

".... 팬카페 통합?"

-응. 어때?

뚜루루루─

재하와 통화를 마치고, 곧장 지유에게 전화했다.

"지유야, 멤버들 지금 연습실에 있지?"

-아니, 셋이서 휴게실에 있어. TV 봐.

".... 너는?"

-넷이서 같이 봐.

"아쒸."

나는 곧장 휴게실로 달려갔다.

예지가 미국에 있는 동안은 4인조 체제.

바뀐 동선부터 연습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군대 쿨타임 돌았냐."

이내, 휴게실 문을 열고 내부를 확인했다.

세 명의 멤버랑 사이좋게 TV를 보고 있는 엄 팀장님.

멤버들 인사를 대충 받고 지유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엄 팀장, 안 바쁘나?"

"아, 이거만 보고 일하려고 했지."

"뭔데."

ETV 방송국 「미래를 보는 변호사」 3화.

넥플렉스 순위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요즘 이거 안 보면 대화도 안 통해."

"오케, 모니티링 인정."

"굿굿."

어차피 은서는 카메오로 출연해야 하니까.

"은서 대본 나왔어. 비중 크더라."

"그래?"

"응. 의뢰인이야."

은서는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하고 TV에 집중했다.

'그렇게 재밌냐.'

나는 아직 안 봤는데.

매화 의뢰를 받고 문제를 해결하는 변호사 이야기.

한 편이긴 하지만, 은서 비중은 거의 주연급이었다.

"지유야, 너만 잠깐 나 좀 보자."

"응?"

얼마 전, 콘서트 이후 태양빛 카페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회사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꼭 나쁜 의미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요즘 엄재하는 잘 지내?"

"우리 오빠? 잘 지내지."

"그래?"

"미래변 투자 성공했다고 기고만장하더라. 추천받은 거 주워 먹었으면서."

"음."

그것도 제 복이지.

걷어찼으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지유야, 조만간 태양빛에서 2기 뽑는다더라."

"2기는 무슨, 어차피 거기 짭인데."

"이제는 찐이야. 2기부터는 태양빛을 공식 팬카페랑 통합하려고."

"통합? 그게 가능해?"

"응. 태양빛 운영진이 도와주면."

"흐음."

태양빛에 정회원, 준회원 제도를 도입하면 간단했다.

기존의 유료 회원은 당연히 정회원으로 편입할 테고.

"정회원은 팬미팅, 굿즈, 티켓팅 혜택을 줄 생각이야."

"괜찮은데?"

"그치."

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내가 미팅 잡을 테니까, 네가 백업하면 돼."

"내가 팬 매니저잖아. 나 혼자 가능."

"음, 아니야. 같이 가자."

조만간 엄재하랑 눈물의 상봉을 하겠네.

한쪽은 피눈물이 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쪽 운영진이랑 사이좋게 지내. 이제 통합하면 고마운 분들이야."

"알겠웅."

".... 제발."

"알겠다니까."

솔라의 팬덤은 이미 대중 그 자체였다.

규모에 비해 극성 팬은 적은 편이지만.

"협의가 필요한 부분은 카페지기랑 상의해 봐."

"카페지기 두 명이던데."

"응. 맞아."

그 중에 한 명이 니 가족이야.

* * *

강남 대치동, 도레미팰리스 아파트.

지유는 멤버들을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밴을 직접 몰고 와 주차장에 세웠다.

"하암, 피곤해."

그때, 값비싼 SUV 차량이 옆자리에 주차했다.

".... 오빠?"

"어후, 우히 아우님 오셨어?"

"차 바꿨냐."

"당연하지. 나는 팀장이니까."

"...."

재하는 씨익 웃으며 팀장 명함을 건넸다.

"이제 4팀장입니다. 하하하. 아하하핫."

"...."

최근에 일반인도 텀블 인베라는 이름을 종종 듣곤 했다.

「댄싱 스트릿」과 「미래를 보는 변호사」.

두 번 연속 홈런을 치며 뉴스에도 실렸으니.

"지유야, 오빠 멋있냐?"

"지랄 노."

재하는 같이 엘베를 타며 귀찮게 질문을 건넸다.

"엄쥬, 내가 태양빛 가입한 거 말했나?"

"응. 아빠가 말하더라."

"주희님 다음 스케줄 말해줘."

"아, 꺼져."

"소미님도 말해줘."

"아, 쫌."

오빠란 인간이 동생한테 정보나 캐고 다니고.

"아하, 그거 때문에 그러는구나?"

"응?"

정회원과 준회원 간의 격차가 생겼으니까.

"뭐, 정보 캐오면 등업 시켜준대?"

"아, 음."

"이제 태양빛에 준회원이 십만 명 넘잖아."

"그건...."

지유는 손바닥으로 키 높이를 재면서 계속 말했다.

"오빠는 요정도. 완전 신입 회원이겠지."

"아니, 팬들은 똑같아."

"그에 비해 나는 요오오정도. 임원진 아니면 말도 못 섞어요. 오키?"

".... 오키."

지유는 팔짱을 끼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니까 나한테 잘해. 그럼 카페지기한테 말해서 등업 시켜줌."

".... 예예."

"그럼 물 좀 떠와."

"????"

등업이랑 물 떠오는 거랑 뭔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엄재하는 수돗물 한 잔을 떠와서 지유에게 건넸다.

"여기, 맛있게 쳐드세요."

"오빠도 권력에 약하구나?"

"응. 내가 잘할겡."

"헤헤."

그날 저녁.

태양빛 오픈 톡방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엄지유 매니저.

[엘리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팬 매니저님 오셨구만."

곧장 운영진에게 인사하는 엄씨 가문 딸래미.

[카페지기님! 뵙고 싶었어요 ^^]

[엘리스 님이 마스터 님에게 홍삼 세트를 선물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재하는 혼자 키득거리며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홍삼 하나를 누구 코에 붙여요 ㅠㅠ]

"까아아아악─!!!"

옆방에서 까마귀가 울부짖었다.

원래 그냥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 너무 재밌자너."

자꾸 놀리고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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