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75화 (75/200)

[75] 복수 소녀(8)

MBS 방송국 「복면가수」 대기실.

한 참가자는 출연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나만큼 임팩트 있는 무대는 없네."

"응. 네가 최고야."

무려 3주 연속 우승을 이어가는 패황.

폭발적인 성량으로 출연자들을 찍어 누르는 출연자.

물먹은 코끼리가 보여준 보컬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내가 걸그룹인 줄 아무도 모르더라. 호호."

"그야...."

현재 18살 서광예고 성악과 2학년.

서주미의 실력은 탈아이돌급이었다.

「탑아이돌」 출신 아이솔레이션의 비인기 멤버.

그동안 '나수린과 친구들'이라고 불리지 않았나.

"저번 주에는 내가 하연주 선배님도 꺾었다고."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고."

"절대 안 하지."

이제는 얼굴이 공개되고, 슈퍼스타가 될 날만 기다렸다.

"언니, 나도 이제 솔라처럼 되는 거야?"

"아니, 그건 좀."

"그럼 루나의 류시아 정도?"

"음, 그것도 좀."

"그, 그럼.... 우리 그룹 세컨드?"

"오케, 그 정돈 가능."

"...."

후우, 걸그룹 시장이 원래 이렇게 빡빡했던가.

해외 인지도는 아이솔레이션이 더 나을 텐데.

"탑아이돌 하기 전에는 솔라랑 우리랑 비슷했는데."

"그땐 오히려 급이 높았지."

"그게 고작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응. 이제 어디 가서 솔라보다 선배라고 하지 마."

"...."

인기 많은 쪽이 선배인 시장.

작년에 SAS 음반 발매 이후로 엄청나게 격차가 벌어졌다.

이후로도 AI 걸그룹이나, 각종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어서.

"솔직히 나는 좀 억울해."

"응? 뭐가?"

"솔라에서 예지 말고 나보다 노래 잘하는 멤버가 있어?"

".... 없지."

솔라에서 보컬 실력자는 김예지와 신소미.

그중에, 소미는 잘 쳐줘도 고음 셔틀이니까.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가수지!"

"주미야, 목소리 좀만 낮추자."

"아, 몰라. 나는 3주 연속 우승자라고."

".... 어깨 뽕 좀만 빼자."

"시로시로."

오늘은 누가 4연승을 하고 물먹은 코끼리와 붙게 될까.

지난 회차 우승자, 자신이 서는 무대는 단 한 번.

반면에, 도전자는 우승까지 5연승이 필요했으니.

'.... 어라?'

대기실 모니터로 경쟁자를 지켜보던 중.

왠지 모르게 한 참가자에게 눈길이 갔다.

"갓썬더 다람쥐, 걸그룹 같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얼굴은 가렸지만, 걸그룹 특유의 체형은 숨기기 어려웠다.

"아니면 솔로 아이돌일 수도 있고."

"그럼 노래 좀 하겠는데?"

"으음."

곧이어, MC의 소개와 함께 그녀가 노래를 시작했다.

발라드의 황제, 김강욱 선생님의 「너를 위해」.

대체 뭔 자신감으로 이 높은 노래를 골랐는지.

팔짱을 끼고,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감상했는데.

"행복했어. 널 위해 아껴둔 마음...."

쿵─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가수가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필요한 시간은 5초.

대부분 첫 소절만 듣고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으니.

애절한 감정의 폭발.

기본적인 발성, 음정, 박자는 기계처럼 완벽했으며.

슬픈 발라드곡의 애틋한 감정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그저 갓썬더 다람쥐가 만든 공간에 머물렀다.

노래를 듣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또르르─

감수성 많은 서주미가 눈물을 흘릴 때쯤.

어느새 1절을 끝마치고 마이크를 내렸다.

"가, 갓썬더 다람쥐는 좀 치네?"

".... 주미야."

주미는 눈물을 훔치고 씩씩하게 말했다.

"에이, 괜찮아."

마치 자연재해를 만난 상황과도 같았다.

넥스트 레벨.

상대가 나빴다.

아마 다람쥐는 윗세대 걸그룹 메인보컬 선배님이거나.

음원 차트에서 줄 세우는 솔로 여가수 중 한 명이겠지.

"이런 실력이면 얼마나 연습했을까?"

"글쎄. 10년 정도."

"...."

아마도 연습생 기간은 최소 10년 이상.

매일 쉬지 않고 반나절씩은 연습했을걸.

"나도 목에서 피 날 만큼 노력했는데."

"저분은 더 열심히 했겠지."

"그치."

이게 바로 공평한 인생이지.

연습한 만큼 보상받는 시장.

'에이, 아깝다.'

4주 연속 우승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선배님이라도 손 놓고 져줄 수는 없으니까.

물먹은 코끼리, 서주미는 오늘의 무대를 준비했다.

* * *

첫 번째 무대에서 기립박수를 받고 파죽지세로 기세를 이어갔다.

감정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소미의 보컬.

이미 4승을 내리 이기고 왕좌에 도전했으니.

"지유야, 오늘 우승각이냐."

"그러게."

대기실 TV 속, 패널들은 열심히 소미의 정체를 추측했다.

-다람쥐 씨, 정체가 뭘까요.

-저는 지온 선배님 예상합니다.

-에이, 목소리가 달라요.

-아, 누구지.

아무도 4세대 걸그룹 멤버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탄탄한 기본기와 능숙한 무대 매너.

그 두 가지는 내가 봐도 상당했으니.

"그나저나, 목표 달성했네."

"그러게."

애초에 4승 찍고 솔라 멤버들이랑 헬파티 가기로 했으니.

"Tvm 김지훈 피디 전화번호 알지?"

"응. 호러 데이즈 피디님."

"솔라 다섯 명 완전체 게스트 출연 미팅 잡자."

"저기."

지유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직 한 명 남았잖아. 물먹은 코끼리."

"응? 근데?"

"5승 하면 어쩌려고?"

"어쩌긴."

솔라 멤버는 5명이니까 완전체 모였지.

갑자기 멤버를 늘릴 수는 없는 거 아냐.

"뭐가."

엄지유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알아서 전화할게. 김지훈 피디님한테."

"응. 그렇게 해."

지유 눈빛을 보니까 왜 이렇게 불길하지.

뒤통수가 간질간질한 게 기분이 이상해.

"오빠, 힘내."

"???"

뭐라는 거야.

"결승전 시작한다!"

그때, 마지막 오늘의 하이라이트 경연이 펼쳐졌다.

3주 연속 왕관을 차지한 물먹은 코끼리가 등장했다.

성악을 배웠으리라 예상하는 여가수.

정확하게 누군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오빠, 걸그룹일까?"

"아마도."

거의 모든 걸그룹 멤버들은 체형이 딱 정해져 있었다.

와이드 TV에 맞춰 예뻐 보이는 마른 체형.

그래야 화면 속에서 살쪄 보이지 않으니까.

'오늘 소미가 이기면....'

누군지 밝혀지겠지.

이어서, 오늘 우승자들은 각자 연습한 곡으로 경연을 시작했다.

-If I can fly.

소미가 미리 전달받은 곡은 레이의 「비상」.

부드러운 감성을 보다 완숙하게 다듬었다.

'.... 이제 나도 익숙해졌나 봐.'

빌보드에 오른 곡을 듣고 감동하는 것처럼.

점점 소미의 감성 보컬에 빠져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쉬는 시간 없이 릴레이로 연달아 노래를 불렀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

갓썬더 다람쥐와 물먹은 코끼리의 진검승부.

두 여인은 서로의 가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잘했네. 둘 다."

이제 소미의 보컬을 들어도 뒤통수가 간지럽지 않았다.

솔라의 서브보컬은 모두에게 극찬을 듣고 인정받았다.

나를 포함해서.

이어서, MC는 패널과 관객들의 투표 점수를 공개했다.

-과연 갓썬더 다람쥐는 오늘의 1등이 될 수 있을지!

두근, 두근─

-광고 보고 30초 후에 공개하겠습니다!

"아오."

패널들의 탄식과 함께 다시 말을 잇는 MC.

방송에선 30초 후였지만, 현실에선 바로 발표했다.

-오늘의 우승자는 갓썬더 다람쥐! 축하드립니다!

소미는 「복면가수」 3주 연속 우승자를 꺾고 새로 왕위에 등극했다.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물먹은 코끼리.

그녀는 MC의 거창한 소개와 함께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

-물먹은 코끼리의 정체는.... 아이솔레이션의 메인보컬 서주미 씨였습니다!

정말 예상도 못 했다.

저렇게 노래를 잘했나.

-주미 씨, 소감 한마디 부탁하겠습니다.

-아.... 행복한 시간이었고.

서주미는 소미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다람쥐님을 보면서 분발하겠습니다.

저분도 실력은 뛰어난데.

-선배님,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응?"

뭐지, 아이솔레이션이 선배 아닌가.

그리고 소미는 서광예고 후배잖아.

* * *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RSB 음반제작사 사옥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할리우드의 거장, 로빈슨 감독이 직접 방문했다.

"역시, 핀 브라운 자네는 천재야."

"과찬입니다."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건가? 어떻게 내가 찾던 곡을 정확히 찾아왔어?"

"하하. 다행입니다."

사실, 레퍼런스를 보내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음악을 문자로 나타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역시, 도하나 프로듀서는....'

할리우드 거장을 만족시킬 만큼 대단한 인재.

오히려 그녀의 머릿속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사운드가 정말 직관적이라 귀에 꽂혀."

"동감입니다."

10대부터 40대까지 전 연령을 아우르는 영화.

매니악한 소리보다는 대중성이 중요했으니.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만 했다.

즉, 복잡한 기교를 넣지 않고 전체적으로 담백하게 표현했다.

"악기랑 음계 하나까지 신경을 많이 썼어."

"네.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자네는 어디서 이런 인재를 찾았나?"

"아하하."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도하나를 발견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아마 밤을 새워가면서 비트를 찍어내고 이런 명작을 남겼겠지.

한국의 작은 회사와 계약한 프로듀서.

그녀에 대한 정보는 이름과 나이뿐이었다.

'고작 스무 살이라....'

한국식 나이로 치면 21살인가.

그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문득, 그녀를 키웠을 것으로 추측한 인물이 떠올랐다.

'정수호 팀장.'

그는 도하나의 실력을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어마어마한 조건을 제시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 겨우 이 정도 금액을 제시했다는 건가?"

"네. 감독님."

"제작비 굳었네."

"...."

할리우드의 스케일을 모르는 건 아닐 테지.

그런 사람이 도하나라는 천재를 키웠으려고.

"하하. 그 친구는 밀당의 귀재로군."

"그렇겠죠."

계속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터였다.

'마침 로이랜드에서 배역을 찾고 있었으니....'

음악을 소재로 하는 힐링영화 「로이랜드」.

연기력만큼 가창력이 중요한 영화였으니.

확정은 못 해줘도, 자리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다.

'가상 걸그룹 LOKA의....'

문득, 「리그」 무대에 올랐던 김예지를 떠올렸다.

정수호 팀장이 키운 걸그룹 리더라고 하던데.

설마 그런 보컬에 연기까지 잘할 수는 없겠지.

"오오, 로이랜드면...."

"앤드류 감독님 작품이죠."

"괜찮겠나?"

"기회는 줄 수 있지만, 잡는 건 본인 몫입니다."

"그렇지. 하하."

일단, 묠니르 후속작 작업에 집중해야지.

좋은 곡만 있다고 다 끝나는 건 아니니까.

* * *

"핀 브라운, 이분 뭐지."

도하나 곡비로 계약금도 엄청 퍼주셨으면서.

할리우드에 좋은 자리도 알아보신다고 하네.

".... 황금 고블린이야?"

일단, 기회를 주면 안 받을 수는 없겠지.

그분을 만난 것 자체가 똥촉 덕이었으니.

"오빠!"

그때, 지유가 나를 부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너튜브에 메인 예고편 올라온 거 봤지?"

"아, 당연히 봤지."

영화 「복수 소녀」의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게다가, 씨네마고에서 확보한 극장 수를 보니.

"우리 진짜 대박 나면 어떡하지?"

".... 어떡하긴."

"오빠, 이러다 큐앤지에 천만 배우 탄생하는 거 아냐?"

"설레발 좀 치지 말자."

영화는 드라마처럼 몇 부작이 아니니까.

관람한 관객들을 통한 화제성이 중요했다.

"예고편 반응 엄청 좋더라고."

"응. 나도 봤어."

솔라 팬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도 한껏 기대했으니까.

"개봉일도 확정 났고...."

더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기껏해야 멤버들이 SNS나 예능에서 홍보하는 정도.

앞으로 잡히는 예능에서는 홍보 위주로 돌려야겠다.

"일단 솔라 너튜브에 영화 예고편 링크 올려=."

"알겠어."

"솔라 SNS가 뭐 있지?"

"인별그램이랑 너튜브 채널이 끝이야."

"음."

미리 만들어 놨으면 좋았을걸.

"양주희 댄싱 스트릿 첫 촬영에 홍보라도 하자."

"응. 근데 그거 말고 호러 데이즈 촬영이 먼저야."

"아, 그러네."

솔라 멤버들이 전부 출연하는 방송.

이미 너튜브에도 홍보하지 않았나.

"그거 실장님께서 위에 보고했어. 6명 전부 출연한다고."

"응. 잘했.... 6명?"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솔라 멤버가 6명이 됐나.

한 명 늘어나는 거 공포 영화 단골 소재 아닌가.

"수호야."

그때, 사무실 입구에서 박철민 실장님이 나를 불렀다.

"호러 데이즈 출연 본부장님 결재 났다."

"아, 네."

"어쩌다 출연을 결심한 거야? 방송 맛 들렸나 봐."

"????"

이내, 옆에서 지유는 깜짝 놀라며 입을 막았다.

"아, 수호 오빠는 출연하는 거 몰랐나 봐요."

"내가 왜."

"소미가 우승하면 출연한다고 했으니까."

"???"

그게 무슨 개소리에요.

"1승 당 한 명씩 추가에서 5승 했잖아."

".... 아."

"벌써 김지훈 피디님이 준비하고 있으시대."

"촬영을?"

"응, 솔라 완전체 출연! 근데 이제 정수호 팀장을 곁들인."

"거기 나를 왜 곁들여."

박 실장님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식, 부끄러워하기는."

이미 댄싱머신 박제됐는데.

공포 예능까지 나가라니요.

"실장님, 저도 결혼은 해야죠."

"인마, 나도 젊을 때 방송 출연하고 그랬어."

".... 아니."

저는 이미 많이 출연했잖아요.

* * *

Tvm 「호러 데이즈」 촬영일.

밤 늦은 시각.

엄지유는 샵 근처에 밴을 세우고 미소를 지었다.

마침, 샵에서 내려오는 솔라 멤버들과 정 팀장님.

"수호 오빠."

아는동네형님에서 댄스를 시키고.

원치 않는 전챙시에도 내보냈었지.

그동안 엄재하가 자신의 방송을 보며 얼마나 킥킥댔었나.

드르륵─

이내, 연예인 메이크업을 한 정수호가 들어왔다.

오늘만큼은 솔라 멤버들과 함께 뒷자리에 앉았다.

"우리 아티스트 분들, 그럼 가실까요?"

"지유야, 처음부터 네가 짠 거야?"

"뭐를?"

"아니다, 네가 나한테 그럴 리가 없지."

"헤헤."

후배로서 따뜻한 마음 아닐까.

"그럼 출발할게."

엄지유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는, 백미러를 통해 수호의 표정을 살폈다.

잠시 후,

멤버들을 태운 밴은 귀곡산장에 도착했다.

스산한 분위기의 산 속에다 차를 세웠는데.

"뭐냐, 갑자기 비오네."

"우산 있어?"

"응. 준비했지."

쏴아아아─

어두운 산 속에서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졌다.

"팀장님, 먼저 들어가요."

".... 내가 왜."

멤버들은 수호의 뒤에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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