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사전 준비(6)
싸늘하다.
팀원들의 시선이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이들 중 누가 어제 리허설 영상을 봤을까.
"팀장님."
"뭐가요."
"네?"
그냥 가볍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웃음기를 머금었다.
"여기 결재 좀...."
"지영 씨, 무슨 좋은 일 있나 봐요."
"네? 아, 조카 생겼거든요."
"오, 축하해요."
그냥 기분 탓이었구나.
리허실 때문이 아니었....
"팀장님, 근데 루나 안무는 언제 그렇게 다 외우셨어요?"
"아."
변화구 보소.
"지금 너튜브에 영상 돌아다녀요."
".... 이런."
"그 정도면 집에서 몰래 춰본 것 같은데."
"연습실에서 췄는데요."
옆에서 지켜보던 팀원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다.
"크으, 쑥스러운 듯하면서 무심한 춤선!"
"멤버들 동선을 전부 외운 거 맞죠?"
"혼자 다른 옷 입고, 센터 욕심이 개쩌시네요."
"지연이 오지 말라고 미리 전화한 거죠?"
"이참에 루나 막내로 들어가셔도...."
"크흠, 그만."
헛기침을 두어 번 하니 팀원들은 눈치껏 업무를 시작했다.
구현식 인사팀장이 올렸나.
그 인간,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걸까.
띠링─
그때, 스마트폰에 박철민 실장님의 톡이 날라왔다.
[담배]
같이 담배 피울 사람이 나밖에 없나.
옛날부터 생각한 건데 진짜 불쌍해.
"너튜브는 그만 보고 일들 하시죠."
"아아.... '그'만 보고 싶다!"
"...."
막타를 치는 눈새 후배를 빤히 바라봤다.
"상모야, 엎드려뻗쳐."
"???"
나는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실장님께 다가섰는데.
"어제 루나 영상 반응이 좋더라. 지금 떡상한 거 알지?"
"네. 알아요."
"수호야, 네가 몇 년 차야?"
"드림 에이전시까지 3년 넘었죠."
"서당개 삼 년이면 댄싱머신이 된다더니."
"...."
이거 노리고 물어봤네.
아마 구현식 팀장이 아니었어도 영상은 올라왔겠지.
방송국 측도 부랴부랴 쇼츠 영상으로 버스 탔으니까.
"그 말씀만 하시려면 저는 내려갈게요. 일이 좀 많아서...."
"그건 아니고."
이내, 담뱃재를 털고 대화를 이어가는 박 실장님.
"홍보팀에서 입수한 정보가 있거든."
"무슨 정보요?"
"오늘 저녁쯤 학폭 터질 거야. 플립나인."
"드디어 터지네."
"역시, 미리 알고 있었구나."
"대충은요."
"내일까지는 플립나인 기사로 도배되겠지."
"...."
프렌즈 엔터에 타격이 있을까.
곧 엔터 꼬리표를 떼고 플랫폼 회사 '프렌즈'로 이름을 바꾼다던데.
이미 한국 음반 시장을 삼분하는 거대한 유통사 중에 하나였으니.
"플립나인은 몰라도, 회사가 휘청거리진 않겠네요."
"그건 당연하지."
보통 걸그룹은 고래 팬들이 먹여 살리는 보이그룹과 달랐다.
정해진 파이를 두고 끊임없이 경쟁하며 팬덤을 키워야 했다.
"루나는 이번이 기회예요."
"너는 이슈 몰이하려고 리허설도 올라갔잖아."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지금처럼 2티어로 남아있을지.
아니면, 1티어급으로 올라설지.
"이제부터 제대로 활동해서...."
"솔라 너튜브에 어제 리허설 영상 올릴까."
"네?"
나도 사회적인 위치가 있는 사람이에요.
"그거 엄지유 개인 너튜브 아닙니까."
"벌써 우리 회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어."
"...."
걔는 집에 돈도 많으면서 소중한 채널을 홀라당 팔아버리냐.
"아무튼, 네가 결정해."
".... 그래요."
내 볼품없는 몸뚱어리보다는 아티스트가 훨씬 더 중요하지.
사실, 뒤통수가 간질간질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무대에 올라야 루나를 띄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조만간 면접 볼 거야."
"신입사원이죠?"
"맞아. 나랑 본부장님이 알아서 뽑기로 했어."
"알겠습니다."
홍보팀장님은 지금쯤 울고 있겠네.
안 그래도 바쁜데 TO도 뺏길 테니.
* * *
얼마 후, 학폭 사건이 터지고.
플립나인에 대한 여론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도라희의 추가 폭로를 터트렸으니.
결국, 일주일 만에 휴식기에 들어갔다.
'나중에 도라희만 빼고 다시 활동하려나.'
누군가의 몰락은 누군가에게 찬스.
현재 루나는 1위 후보 중 하나였다.
"얘들아, 이번 주가 마지막인 거 알지?"
"네에!"
현실적으로 루나가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루나는 오래 인기몰이를 할 만큼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
당장 다음 주에 솔라의 컴백 무대가 있을 예정이었으니.
솔라와 루나의 숙소 앞,
류시아는 밴에 오르기 전에 내게 말했다.
"매니저님, 감사해요."
"응?"
"리허설 영상이요. 지금 엄청 핫하잖아요."
"음. 그치."
내 초상권을 희생했으니까.
솔라 너튜브 채널에도 올렸지.
"오늘 무대만 잘하고 내려와."
"네!"
덕분에, 루나의 화제성을 이번 주까지 끌고 올 수 있었다.
워터멜론이나 너튜브 뮤직 차트도 20위권을 유지했기에.
부르르릉─
곧이어, 상모가 모는 밴은 상암동 방송국으로 향했다.
"후우...."
뒤이어, 나는 솔라 숙소의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매니저님, 오셨어요?"
"응. 뭐 하고 있었어."
"요리요."
앞치마를 두르고 나를 반겨주는 예지.
몇몇 멤버들은 SNS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소미랑 주희랑 요즘 매일 저거만 해요."
"물 만났네."
이내, 예지는 내 손목을 잡고 주방으로 이끌었다.
"이거 한입만 먹어봐요."
"뭔데?"
"김치전이요."
"와. 김치전이 하얘."
"백김치전이에요!"
"...."
메밀배추전 같은 건가.
평범한 느낌은 아닌데.
"예지야, 요리 프로 하나 잡아줄까?"
"진짜요?"
"응. 내가 한번 먹어보고...."
뭐야, 맛이 왜 이래.
요리 프로는 없던 걸로 하자.
"어때요? 어때요?"
"거의 신세계야."
"그렇게 맛있어요!?"
"이걸 나만 먹을 순 없지."
빨리 다른 아이들한테도 신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와아! 저 그런 말 처음 들어봐요!"
"너도 먹어보고 말하는 거지?"
"네! 저는 괜찮았어요."
".... 장금이니?"
예지가 미각을 잃었구나.
평소에 뭘 먹고 사는 걸까.
"다른 멤버들한테도 나눠주자. 좋아할 거야."
"네! 얘들아!!!"
예지는 음식물 쓰-, 요리를 들고 방송 중인 아이들에게 뛰어갔다.
"이거 한 번만 먹어봐."
"에이, 나보고 전을 먹으라고? 튀긴 거 안 먹어."
"그래도 정성인데."
애처로운 눈으로 양주희를 바라보는 예지.
소미는 그 모습을 보고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주희 언니, 진짜 야박하네. 같은 멤버끼리.... 와, 환상."
"어? 왜?"
한 입을 맛보고 나서 신음성을 삼키는 막내.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매니저 오빠."
"삼켜."
"...."
곧이어, 예지는 마지막 희생자의 입안에 백김치전을 집어넣었다.
"뭐야 이거."
"왜?"
주희는 표정을 찌푸리며 솔직하게 말했다.
"프로틴보다 맛없는데? 이럴 수가 있나?"
".... 맛있다던데."
"누가 그래? 그건 찐사랑이야."
"찌, 찐사랑?"
스윽─
이내, 슬쩍 나를 쳐다보는 예지와 눈을 마주쳤다.
"뭔데."
"아니에요."
"그만 놀고 개인 방송 꺼. 이제 연습실 갈 거야."
"아아, 좀만 더요."
역시 우리 막내는 타고난 관종이었다.
아직도 팬들의 사랑이 고픈 모양이다.
"그럼 좀 이따 지유가 올 거라 나는 먼저 회사에...."
"아뇨! 지금 같이 갈 거예요!"
예지는 방에서 뒹구는 나머지 멤버들을 데려왔다.
요리도 해주고, 멤버들도 챙기는 엄마 같은 리더.
'.... 리더는 진짜 잘 뽑았어.'
일단, 이번 앨범 단체 활동만 끝나면.
예지 개인 스케줄도 슬슬 다시 잡아야겠다.
노래, 연기, 안무 창착.
다방면에 재능이 있으니 스케줄 잡기도 편했다.
뒤통수가 간질간질한 스케줄 하나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날 저녁.
루나가 음악방송에서 사고를 쳤다.
* * *
음방 점수는 다양한 지표를 고려한다.
음원, 음반, 동영상, 스트리밍, 방송점수 등.
최근 들어서 인기 SNS도 도입하는 추세였다.
"피디님, 루나 사전투표 점수 보셨어요?"
"그거 장난 아니던데."
엔넷 뮤직스타, 구 피디는 뒤에서 두 번째로 오른 루나 멤버들을 확인했다.
"자, 스탠바이하시고...."
"카메라 줌 인."
"너무 클로즈업하지 말고."
"네. 피디님."
<탑아이돌> 이후 2티어 수준까지 올라간 걸그룹.
자매 그룹, 솔라에 비해서 뒤처지는 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1위 후보에 오르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 작가, 문자 투표 점수부터 계산해."
"네. 피디님."
진짜 오늘 일을 치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띠링─
그때, 구 피디는 동생의 톡을 받았다.
[형, 나 로드매니저 지원함]
이 새끼 병신인가.
서른 중반에 무슨.
일단, 하던 일만 마치고 다시 이야기해 봐야겠다.
언제나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깔끔한 무대.
요즘 걸그룹을 실력으로 평가할 수가 있던가.
춤, 노래, 음원.
삼박자를 전부 갖추지 못하면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다.
"집계 어떻게 됐어?"
"지금 황태준이랑 비교하면...."
이거 루나가 이겼구나.
솔라도 아니고, 루나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언더독이 반란을 일으켰다.
"와, 미쳤네."
일반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음방 1위에 불과했지만.
가수들에겐 실로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대중은 1위 가수와 그 외의 가수로 나누니까.
가요계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
오늘 루나는 처음으로 그 선을 넘어버렸다.
"그럼 이제 큐앤지 레이블은...."
"인기 가수만 넷이네요."
"그렇지."
제트킥, 솔라, 루나, 여왕님까지.
이 정도면 중소 엔터 중에선 최상위권이었다.
"진짜 어떻게 루나가 황태준을 이겼지?"
"황태준 솔로는 좀 약하잖아요."
"야, 그래도 엑스레이야."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정수호가 팀장 직함을 달고 고작 몇 달이나 지났을까.
'정수호 매니저라....'
한때, <탑아이돌> 섭외를 두고 그와 좋은 거래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그저 신입 로드매니저에 불과했는데.
이제 인기 걸그룹을 둘이나 키운 치프 매니저로 성장했다.
'정수호 팀장, 이거 실장도 금방 달겠는데?'
벌써 가요계에 큐앤지 레이블이라는 회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드림 에이전시와 합병한 좋소기업.
작은 회사에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뚜루루루─
잠시 후, 구현석 피디는 자신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식아, 아까 뭐라고 한 거야?"
-다른 회사 지원한다고.
"미친놈아, 프렌즈 엔터에 붙어있으라고 내가...."
-큐앤지 레이블 가려고.
"뭐?"
동생은 왜 하필이면 그 회사를 가려는 걸까.
-꿈을 찾아보려고.
"원피스?"
-아니. 큐앤지 레이블 매니지먼트 1팀.
"...."
프렌즈 엔터와 비교하면 어른과 아이의 차이, 그 이상이었다.
'근데 왜....'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까.
구현석 피디는 한동안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내, 펑펑 울고 있는 루나 멤버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루나, 축하드립니다!
텔레비전 속에 음방 MC가 전하는 축하 인사.
그 짧은 한마디에 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아아아!!!"
"미쳤다, 진짜."
함께 시청한 솔라 멤버들은 마치 제 일처럼 기뻐했다.
"우리 회사에서도 1등이 나왔어요!"
"서 대표님도 하셨어."
"아.... 그럼 두 번째!"
"제트킥도."
".... 세 번째!"
너희들이 다음 주에 네 번째가 되려면 연습을 해야지.
그래도 우리 팀에서 1등이 나오니까 감동할 것 같다.
"훌쩍, 엄마아아아."
".... 소미야, 왜 울어."
"같이 연습 생활 했는데에."
"그니까."
왜 이렇게 서럽게 울어.
너희가 1등 한 거 아니야.
소미는 텔레비전 속에서 대성통곡하는 루나 멤버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으아아앙."
"울지 마."
지금 말리면 감동 파괴냐.
본인 1등 하면 어떡하려고.
드르륵─
이내, 연습실에 팀원들이 몰라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려요, 정수호 팀장님."
"축하드립니다!"
"솔라에 루나까지 띄웠잖아요!"
"진짜 천재라니까."
내가 띄웠다고 볼 수 있을까.
솔라도 아직 1등 못해봤잖아.
곧장 박 실장님이 내게 달려와 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인마, 내가 춤 잘 출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 그건 그냥 춘 거예요."
"그 덕분에 네가 띄운 거야!"
"음."
대신 저는 평생 인터넷에 흑역사가 박제됐어요.
"오늘 같은 날 회식 해야지!"
"그럼 솔라 빼고...."
"그런 게 어딨어요!"
"연습은 내일!"
오늘따라 멤버들 텐션이 한껏 올라갔다.
"매니저님! 오늘은 다 같이 회식해요!"
"너희 다음 주에 컴백이야."
"술은 안 먹을게요!"
"고기도 안 먹을게요!"
"어, 음.... 물만....?"
그럼 그게 회식이 아니잖아.
"제발요! 좋은 날이잖아요."
"흐음."
제트킥과 서 대표님 외에 처음으로 찍은 음방 1위.
우리 같은 중소 엔터에서는 정말 대단한 성과였다.
'다음 주에 솔라까지 1등 찍으면....'
진짜 이제 좋소라고 놀릴 수도 없겠네.
드림 에이전시에서는 무슨 반응이려나.
"그럼 오늘만 회식하죠."
"와아아아─!"
내 한마디에 환호하는 팀원들을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전 회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가족 같은 풍경.
물론, 여기도 이직률은 높아서 가족이 자주 바뀌지만.
"수호야. 회식 때 한 명더 불러야겠다."
"네? 누구요?"
"내일부터 출근하는 신입 로드매니저."
"아하."
그럼 벌써 신입사원 면접을 봤나 본데.
본부장님이랑 실장님께서 잘 뽑았겠지.
"너도 아는 사람이야."
"누군데요?"
"구현식 씨."
".... 누구요?"
"프렌즈 엔터 전 인사팀장."
"...."
이 바닥의 경력직 중에서도 이 정도면 거물이 아닌가.
얼마 전에 나를 스카우트하려던 사람이 왜 찾아왔을까.
"그분이 인사팀 말고 매니지먼트 1팀에 지원했거든."
"혹시 제 자리 뺏으러 왔어요?"
"아니."
박 실장님은 민머리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막내야. 신입 로드매니저."
"아...."
우리 팀 막내가 힘을 숨김.
"혹시 솔라 서브 매니저예요?"
"필요하면 솔라도 케어하고, 새로운 연습생도 키워야지."
"회사 엄청 커지겠네."
나처럼 촉으로 대충 찍는 게 아닌, 진짜 안목 천재.
하이엔드 멤버 중에 한 명도 직접 캐스팅했다던데.
"네가 부사수로 잘 키워봐."
"키우긴 뭘 키워요."
내가 그 사람 부사수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쫄지 마. 너도 천재야, 인마."
"...."
저는 천재가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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