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넥스트 레벨(1)
연예인의 스케줄과 컨디션을 관리하는 로드매니저.
헤메코, 화보 촬영, 무대 리허설, 방송 출연과 숙식에 운전까지.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온갖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는 현장직.
사실상 셔틀, 노예, 머슴이라고 불러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족쇄를 벗어던지고 프리덤을 얻은 셈이다.
'.... 이제 나도 꿀 좀 빨자.'
앞으로 새 매니저도 충원해서 정시 퇴근 좀 해야지.
그동안 부산에서 행사라도 잡히면 생고생이었는데.
"수호 오빠아, 뭔가 갑자기 멋있어."
"지유야, 너두 할 수 있어."
"정말? 나두 팀장 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너는 아버지 빽이라도 있잖아.
대형 투자사 대표님이시니까.
"너도 이제 나를 정 팀장이라고 불러."
"응. 정 팀장."
"???"
뭐냐, 원래 말을 놓던 사이라 뭔가 호칭이 꼬였는데.
"너 은근히 족보 브레이커구나?"
"뭐가."
"아니, 됐다."
호칭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치프'급이 됐다는 게 중요하지.
로드매니저가 연예인의 가족이자 수행 비서, 경호원이라고 한다면.
치프는 직접 방송국에 가서 계약을 따고, 섭외와 홍보까지 맡는다.
"오빠, 근데 어차피 지금까지도 오빠 마음대로 했잖아."
"내가 뭘?"
"불쌍한 박 팀-, 아니 박 실장님은 솔라 스케줄에 손도 못 댔지."
"아, 그건."
그래서 솔라를 여기까지 키운 거지.
언제나 나를 완전히 믿어준 덕분에.
"덕분에 실장 직함 달았잖아."
"바빠지시겠네."
"아마도."
이제 솔라 멤버들을 직접 관리할 일은 없으시겠지.
사실상, 대외업무는 실장님이 혼자 다 맡았으니까.
"안녕하세요, 팀장님!"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아구나."
"네!"
지상모가 맡은 루나의 리더, 류시아.
이제는 말도 편하게 하는 사이였다.
"이제 팀장님이 저희도 맡아주시는 거예요?"
"아, 그럼."
루나 멤버들도 하나씩 확인해 봐야겠네.
이제는 내가 맡는 아티스트에 속하니까.
"그럼 저희 앨범 작업이랑 스케줄도....?"
"당연하지."
이내, 류시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해."
나는 꾸벅 인사하고 사라지는 소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재능에 비해 너무 못 떴어.'
아니, 그냥 못 뜰만 했구나.
너무 내 취향으로만 잘해서.
'멜로디는 좀....'
그래도 작곡할 때는 또 불안하니까.
그쪽 재능을 조금 더 살려봐야겠어.
"지유야, 혹시 여왕님 타이틀곡 들어봤어?"
"응. 진짜 장난 아니던데."
"그거 주선율 누가 쓴 건지 알지?"
"류시아."
"맞아."
"오빠가 추천했다며."
"...."
나는 별로라서 추천해 드렸더니.
여왕님께서 엄청 좋아하시더라고.
류시아가 짠 멜로디에 다이애나가 비트를 찍었다.
직원들은 큐앤지 최고의 콜라보라며 극찬하던데.
"원래 서 대표님 타이틀곡 정도면 편곡자 다섯 명은 달라붙을걸."
"그러기엔 다이애나 언니가 혼자 다 잘해서."
"뭐, 못 다루는 악기가 없긴 하더라."
"얼마 전에는 건반으로 색소폰 연주도 하더라고."
"그 정도야?"
"응. 그냥 너튜브 영상 하나 보자마자 바로 따라 해."
"...."
이제는 나도 다이애나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강한 비트 위주의 프로듀싱은 내 취향이 아닐 뿐.
"근데 오빠."
"응."
지유는 나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감석태 본부장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니, 이제 본부장도 아니지만."
"고소장 접수 중이라던데."
그러고 보면 여왕님 앨범 작업을 하면서 감 전 본부장이랑 악연도 시작됐었지.
"오, 나도 태양빛 악플러 고소할까?"
".... 됐고, 아직 끝난 거 아냐."
일단, 감석태 전 본부장은 권 상무 라인이니까.
아마 드림 에이전시에서 한직으로 밀려나겠지.
"고소 문제만 해결하면 본사로 가긴 할걸."
"잘린 게 아니었어?"
"거의 연예계 생명은 끝났지. 지금쯤 이를 바득바득 갈 거야."
"바퀴벌레 같네."
사실, 권 상무 라인은 끊어졌다고 봐야겠지만.
큐앤지 레이블 쪽에 심은 세력이 날아갔으니.
'이쪽에 불만이 많겠지.'
특히, 권 상무는 공세원 본부장에게 눈을 돌릴 터였다.
감 전 본부장 대신 회유할 수도 있고, 쳐낼 수도 있고.
'어쩌면....'
내 쪽에 관심을 둘 수도 있겠는데.
이전의 팀을 해체시킨 사람이니까.
앞으로 어떤 입장으로 다가올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그전에 내 사람들을 열심히 만들고 힘을 키워야 했다.
'솔라만 잘 키워도....'
전혀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
* * *
서울의 한 아파트.
솔라 멤버들은 오랜만에 숙소에서 휴식 시간을 즐겼다.
"우왕, 휴식 시간 달달하네."
"소미야."
예지는 차분한 어조로 게임에 집중하는 막내를 불렀다.
"너는 평소에도 자주 쉬잖아."
"에이, 할 건 다 하는데."
"안 돼. 지금 당장 방탈출 메이즈 데스매치 연습해."
".... 이 판만 끝나구."
"그래. 내가 지켜볼 거야."
"피융."
최근에 드라마 OST 작업을 끝낸 이후 찾아온 휴식기.
다른 멤버도 나름대로 각자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주희는 운동, 다이애나는 편곡.
은서는 드라마 첫 촬영 준비.
특히, 은서는 혼자 하루종일 대본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얘들아, 우리 신곡 준비할 때 된 것 같지 않아?"
"???"
다이애나는 가장 먼저 예지의 말에 반응했다.
"언니, 얼마 전부터 열심히 안무 만들었잖아. 준비하고 있었어?"
"응. 수업 때 조금씩."
"내가 안무에 맞는 비트 한번 만들어볼게."
"고마워."
옆에서 소미는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한마디를 던졌다.
"창작은 나랑 안 맞아. 그냥 있는 거 배우는 게 편해."
".... 게임 해."
"응!"
이내, 양주희는 안무 창작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하던 운동을 멈추고 다가와서 대화에 참여했다.
"나도 언니가 짠 안무 괜찮더라. 박자감 있더라고."
"오, 진짜?"
"응. 중독성도 있고."
"고양이 춤이야!"
".... 고양이였어?"
주희는 묘한 표정으로 예지를 바라봤다.
"언니, 갑자기 왤케 열심히 해?"
"그냥."
"매니저 형님 신경 쓰이는구나?"
"그런 거 아니거든!"
"에이, 맞는 거 같은데."
"가수로서 매니저님 신경 쓸 수 있는 거야."
"오구오구."
"...."
이제 팀장급 매니저로 승진한 정수호 매니저님.
호칭은 여전히 '매니저님'이지만 느낌이 달랐다.
'이제 솔라 매니저가 아니라....'
가장 큰 변화는 루나를 동시에 맡는다는 것.
정수호 매니저님은 항상 프로페셔널하니까.
아마도 루나와 똑같이 대할 확률이 높겠지.
'우리를 이전처럼 대해주실까?'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이 공허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인사발령.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는 없었으니.
주희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언니, 우리가 더 성공하면 되지."
"응?"
"월드스타가 되면 팀장이 아니라 실장이 돼도 우리만 케어할걸?"
".... 그건."
한국의 K팝 아이돌 중에는 월드스타도 존재했다.
당장 보이그룹 중에는 빌보드 1위를 찍는 그룹도 있고.
3세대 걸그룹 중에 '블루숄츠'는 이미 월드 클래스니까.
노래와 춤, 연기.
어떤 분야든 하나만 정점을 찍어도 월클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일단 춤부터 잡고 가자."
"응? 언니는 노래가 편하지 않아?"
"노래도 더 열심히 해야지."
애초에 K팝은 퍼포먼스로 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연기와 노래로 월클이 되기엔 한계가 있었다.
노력만으로 할리우드 배우나 빌보드 가수가 될 수는 없으니까.
보여주는 음악.
퍼포먼스의 힘.
단순히 실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사실상, K팝의 저력은 안무에서 나왔다.
뚜루루루─
양주희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래서 언니를 좋아해."
"누구한테 전화해?"
"있어 봐."
이내, 전화를 받은 상대방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아, 주희구나. 너는 잘 지냈니?
"그럼요!"
<탑아이돌> 하면서 친해진 최정상급 안무가, 레드와인.
주희는 예지에게 들으라는 듯이 스피커폰으로 전화했다.
"예지 언니가 안무를 짰는데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나 비싼데?
"아, 으음.... 아잉."
-뭐야, 양주희 지금 애교 부린 거야?
".... 뎨동합니다"
주희는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추고 대화를 이어갔다.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귀여우니까 봐준다. 충분히 연습해서 내 앞에 가져와.
"오오, 정말요?"
-응. 대신에 형편없으면 많이 혼낼 거야.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 말고 잘해.
"잘할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예지는 주희의 화끈한 성격에 입을 떡 벌렸다.
멤버들에겐 리더지만, 타인에겐 항상 소심했는데.
어쩌면 주희처럼 사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겠네.
"언니, 잘할 수 있겠어?"
".... 당연히 잘해야지."
지금보다 더 많이 성공해야 해.
그래야 뭐든 지킬 수 있으니까.
* * *
얼마 후.
JTBS 「재벌가 시집가기」 첫 촬영일.
촬영지, 목장 근처에 밴을 파킹했다.
조 코디님께 은서의 메이크업을 맡기고 밴에서 휴식을 취했다.
"와 스탭들분 시선이 달라지네."
과연, 이게 치프 매니저의 위엄인가.
멀리 있어도 굳이 달려와 인사했다.
물론, 유명한 감독님께는 내가 냉큼 달려가서 인사를 드렸지만.
"후우, 감독님이 OST 잘 봐주셔야 할 텐데."
드라마와 OST는 동반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열심히 준비했으니 결과가 좋기를 바라야겠지.
이미 음악감독님께 전달했으니,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드르륵─
그때, 완벽하게 재벌로 분장한 은서가 밴에 탑승했다.
고급스러운 실크 원피스.
자연스러운 웨이브 머리.
분위기 있는 액세서리들.
당장 목걸이 하나만 팔아도 내 연봉과 비슷했다.
이렇게 보니 재벌집 딸래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매니저님, 저는 오늘 지유가 올 줄 알았어요."
"그래?"
"네. 이제 팀장님이니까요."
"...."
로드 한 명을 더 뽑기 전까지는 사실상 똑같지.
기존 팀원들도 각자 담당하는 일이 있으니까.
"박 팀-, 실장님이 새 로드매니저 뽑기 전엔 똑같지."
"아, 그러겠네."
"그치. 어쩌면 뽑아도 똑같을 수도 있어."
"그래요?"
"응. 상모가 계속 루나 담당하고."
"으음."
은서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표정 뭐냐."
"뭐가요."
"... 대본 봐."
"네."
당분간은 은서랑 계속 붙어 다녀야 할 것 같다.
소미의 방탈출 예능은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그럼 우리 신곡은 언제 내요?"
"너 드라마 촬영 끝나면."
"...."
JTBS 방송국 주연급 여배우를 맡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이수연도 같은 방송국에 들어가서 대차게 망했었는데.
"어? 수연 언니네."
은서는 밴의 문을 열고 수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언니! 안녕하세요!"
"어, 은서야! 벌써 왔니?"
"네에!"
소목장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녀 역할의 이수연.
낙농업 재벌남과 그 여동생, 은서와 엮이는 전개였다.
"정수호 매니저님, 팀장 승진 축하드려요."
"아, 감사합니다!"
"선물은 톡으로 보낼게요."
씨익 웃으며 사라지는 이수연.
곧이어 톡 하나가 도착했는데.
[Congratulation! 다같이 모여 샤샤샤 소고기구이 5종세트!]
"소목장에서 소고기 선물은 처음 받아봐."
"저도 처음 봐요."
"...."
이수연의 인터뷰 덕분인지, 대중은 온통 은서의 연기 실력에 관심을 집중했다.
공개 오디션 특혜 논란.
아이돌의 연기력 논란.
감석태 전 본부장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만큼 솔라의 인기가 크다는 방증이겠지만.
이번에 은서가 실력으로 증명하지 않는다면.
"아, 갑자기 빡친다."
"왜 또."
나는 니가 빡칠 때마다 불안해서 못 살겠어.
"저기 배영선 씨, 이쪽으로 걸어오네요."
".... 용케 앞에서는 선배라고 하네."
"저 소시오패스 아니거든요."
남주인공 재벌남의 지적인 비서 역할.
그녀의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은서 씨, 보통 선배보다 늦게 와요?"
"그게, 저는 아직 촬영 전이라서...."
어느새 다가온 배영선은 문이 활짝 열린 밴 앞에서 소리쳤다.
"후배가 말대꾸? 이래서 아이돌 출신은 안 되는 거야."
"...."
나도 있는 자리에서.
매너가 너무 없는데.
은서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옆에 있는 악력기를 쥐었다.
'저걸로 찍어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화를 참는 용도로 주먹을 쥐었다가 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다음부턴 제일 먼저 와서 스탭분들께 인사드려요, 아시겠어요?"
"네."
"아휴, 기본도 안 됐네."
은서는 사라지는 배영선의 뒤통수를 보면서 화를 삭였다.
"이야, 우리 은서 잘 참네. 장 폭스."
"매니저님, 싸움 잘해요?"
"아니."
잘 참는 건 알겠는데, 오히려 마음은 더 불안했다.
뭔가 터져야 하는데 억지로 질질 끄는 느낌인가.
"은서야, 악력기는 주희가 준 거야?"
"네. 팔 근육 좀 키우라고."
"...."
왜 이렇게 뒤통수가 간지럽지.
* * *
유명한 감독은 배우들의 열연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처음부터 눈독 들인 이수연 배우님.
최근 미모 리즈를 갱신했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도 많이 늘었어.'
아직 전성기를 찍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컷! 다음 은서 씨 촬영 들어가지."
"넵!"
조연출은 은서를 부르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번 작품 최고의 조커 카드이자 미지의 존재였다.
'연기 자체가 독특해.'
그녀의 연기에선 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꼭 재벌과 서민의 삶을 둘 다 살아본 사람처럼.
아이돌답게 사랑스러우면서도, 어두운 내면을 숨긴 듯한 신비로움까지.
"하여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은서요?"
옆에 앉아있던 정희애 작가가 슬쩍 끼어들었다.
"보통 연기 레슨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네.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이내, 장은서가 실내 목장에 들어섰다.
소똥 냄새가 제법 고약할 법도 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기를 준비했다.
낙농업 재벌가 여식으로서 소목장에 방문한 장은서.
그리고, 그녀를 억지로 데려온 친오빠 재벌남의 케미.
"바로 씬 들어갈게요. 레디!"
이내, 은서는 감정을 잡고 친오빠가 된 남주인공을 바라봤다.
"액션!"
단 1초 만에 집중해서 배역에 몰입하는 그녀.
확실히 평범한 아이돌 배우와 느낌이 달랐다.
"오빠, 미쳤어? 어떻게 나를 여기에 데려와?"
"너도 배워야지. 언제까지 밥만 축낼래?"
"하, 어이가...."
순간, 장은서는 소의 낼름 공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 혓바닥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경험을 누가 해볼까.
"으아아악─!!!"
유명한 감독은 눈빛을 반짝이며 은서의 연기를 지켜봤다.
"이런, 미친소! 오빠 나랑 지금 장난하냐고!"
"우리 소중한 소한테 미친소라니!"
"그렇게 소중하면 니네 집에서 키워!"
"그게 말이 돼!?"
엄청나게 리얼한 분노 연기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거 NG 아니에요? 대사가 조금 바뀌었는데."
"그냥 이대로 가죠."
감독과 작가는 은서의 연기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연기력이 탈아이돌이군요."
"그러게요.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싶을 만큼."
"누가 보면 진짜 화내는 줄 알았네요."
"태양 여신이 화를 내겠습니까?"
"그렇죠. 하하."
소가 머리 핥는 건 대본에 없었는데.
아니, 넣고 싶어도 넣을 수가 없겠지.
소한테 연기를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지금 너무 좋은데?'
컷을 외쳐야 하는데 좋은 장면이 계속 나와서 끊을 수가 없었다.
스태프들은 그저 멍하니 배우들의 현실 남매 케미를 지켜봤다.
"오, 이거야! 이게 진짜 살아있는 연기지!"
문득, 오늘 아침에 음악감독이 들려준 OST를 떠올렸다.
톡톡 튀는 은서의 연기와 노래가 너무 잘 어울리는데.
스윽─
슬쩍 시선을 돌려 솔라 매니저의 표정을 살폈는데.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 봐요, 진짜 화내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네요."
정희애 작가는 즉석에서 소 혓바닥 연기를 대본에 추가했다.
"다음 촬영이 그 장면이죠?"
"아, 은서가 뺨 따귀 때리는 장면이요."
"바로 갈까요."
"배영선 씨, 올라가실게요!"
"네, 감독님!"
순간,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촬영을 기다리는 은서.
정수호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면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 아멘."
주님, 한 명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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