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7화 (7/200)

[7] 걸그룹 데뷔(3)

루나 멤버들은 현재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언제나 최고였으니까.

누구나 인정했으니까.

회사에서 그 누구도 자신들의 성공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아니, 어떤 매니저 한 명쯤은 솔라가 더 뜰 거라고 했었지.

"세상에, 여기 기자님은 아예 관짝을 닫았네."

"으으 너무해."

"그러니까."

신인 걸그룹치고 출발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적당히 차트인에 들었고, 적당히 반응도 끌었다.

그저 보름이라는 기간 동안에 천천히 대중들에게 잊혔을 뿐.

아이돌 그룹이 망하는 데 그리 거창한 이유는 필요치 않았다.

"시아 언니, 단톡방에 올린 기사 봤어? 진짜 너무하지 않아?"

"글쎄. 읽어봐도 별거 없던데?"

"오, 쿨해. 역시 스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에이, 무슨."

멤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연한 류시아를 보고 감탄했다.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아? 벌써 음원차트 광탈했는데."

"우리 아직 망한 거 아니야. 이제 고작 싱글 1집인걸."

"와, 역시 언니는 대단해. 어떻게 이렇게 침착해?"

"그냥, 뭐."

루나 멤버들에게 리더의 존재는 정신적 지주, 그 이상이었다.

도발적인 제스처와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

연습생 시절부터 류시아는 이미 아이돌이었다.

심지어 예상치 못한 성적표를 받아도 여전히 당당함을 유지했으니.

"언니, 오늘 점심 뭐 먹을까?"

"나는 샐러드 싸왔어."

"대박, 이 와중에도 자기관리 하는 거야?"

"그냥 습관이지."

"언니는 진짜 인정."

멤버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리더를 보고 안정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아예 망했다고 하기엔 모호하고.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류시아가 없었다면, 아마 다음 기회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었겠지.

"우리 그럼 밥 먹고 올게."

"응!"

멤버들은 식사하러 가는 길에도 리더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진짜 우리 언니 멘탈은 알아줘야 해."

"너무 멋있어."

"나는 질투도 안 느껴져."

"근데 오늘 뭐 먹지."

"나는 초밥."

덜덜덜─

시아는 멤버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덜덜 떨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어떡하지....?"

패닉에 빠진 상태로 관리 받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최장수 연습생이라는 타이틀.

걸그룹 막차 탔는데 쪽박 찼다.

회사에서 절대 망할 일 없다고 해서 철석같이 믿었건만.

"으으, 다음 기회가 있을까?"

그럼 그때 또 망하면 진짜 어떡하지?

학창시절을 갈아 넣은 연습생 생활은?

엄마 가게 대출금이 얼마라고 했더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나쁜 망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연습실에 들어섰다.

"어라, 시아가 아직 식사하러 안 갔구나?"

"네에. 선생님! 헤헷."

시아는 싱긋 웃으며 보컬 트레이너와 대화를 이어갔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 오늘은 스케줄 없니?"

"으음, 있었는데 취소됐어요."

"시아야, 네가 멤버들 좀 잘 챙겨줘. 너는 괜찮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루나에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에이, 다행은요."

보컬 트레이너는 활짝 웃으면서 류시아에게 칭찬을 건넸다.

물론, 덜덜 떨리는 그녀의 두 다리는 확인하지 못한 채로.

"너는 어떻게 그리 멘탈이 강하니? 역시 실력이 좋아서 그런가."

"제가요?"

"응. 멤버들은 그런 당당함을 좀 배워야 해."

"에이, 아니에요."

오히려 류시아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노래를 부르면 뜰지.

어떤 안무를 배우면 되는지.

오늘 SNS에 무슨 사진 올릴지.

하나부터 열까지 정답을 알려주는 프로듀서를 만날 수 있다면.

그럼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무작정 믿어줄 의향이 있었다.

드르륵─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엥, 여기서 보기로 했는데."

".... 정수호 매니저님?"

"솔라 멤버들이요, 시간 맞춰 내려온다고 했거든요."

"아직 안 왔어요."

"하아, 빨리 핸드폰을 풀어주든가 해야지."

"...."

류시아의 투명한 동공에 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선생님, 방금 그분이요."

"응?"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망할 거라고 제일 먼저 예상했었죠?"

"에이, 망한다고 한 적은 없지."

"루나 말고 솔라가 무조건 뜬다고 했었다면서요, 실장님 앞에서."

".... 그 정도까진 아니고."

회사에서 유일하게 루나보다 솔라를 높게 평가했던 사람.

얼마 전부터 솔라의 로드로 근무하는 정수호 매니저님.

그를 제외하면 누구도 루나의 실패를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마약 사건도 미리 파악하고 위기를 모면했다던데.

'만약에....'

혹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솔라가 성공하면.

그땐 정말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지 않을까.

* * *

큐앤지 레이블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다.

자본금 때문에 드림 에이전시에 강제로 팔린 중소기업 제작사.

그나마 보이그룹을 하나 잘 키워서 먹고 사는 정도는 됐지만.

걸그룹을 키우는 건 이번이 아예 처음이었다.

그것도 연습생 9명을 굳이 두 팀으로 찢어서.

'.... 그래서 망했나?'

솔직히, 나는 아직도 왜 루나가 망했는지 잘 모르겠다.

보름 만에 음원 차트에서 광탈할 만큼 실력이 없었나.

"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너도 수고했다."

수많은 걸그룹 홍수 속에서 조용히 묻히는 조연.

내 눈에 완벽해 보였던 루나는 딱 거기까지였다.

"하아, 담배 마렵네."

"...."

지금까지 본 박 팀장님 표정 중에 가장 어두웠다.

너무 기대감이 컸기에 실망감도 컸던 게 아닐까.

'진짜 왜 망했지?'

그만큼 요즘 아이돌 시장에서 경쟁이 빡세다는 뜻이지.

도저히 망할 이유가 없는 1티어급 기성 그룹 같았는데.

회사 내부에서는 류시아를 원톱으로 내세웠으면 반응이 괜찮았을 거라는 분석을 내놨지만.

그렇게 진행했으면 떴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망한 다음에 원인을 분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루나가 망할 정도면....'

우리 솔라 애들은 어떡하냐.

지금부터 공부 좀 시켜볼까.

"수호야, 담배 한 대 피우자."

"아, 네."

곧장 팀장님과 함께 옥상에 올라가 라이터에 불을 지폈다.

"후우, 솔라라도 잘 케어해. 오늘 하루종일 안무 연습실에 있다며."

"네. 그래서 스케줄 하나씩 밀렸어요."

"원래 배우는데 조금 오래 걸리는 친구들이야."

"...."

그래서 망할 것 같다고요.

"너 오늘 류시아 만났어?"

"네. 우연히."

그 친구는 여전히 당당하고 멋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굳은 확신.

'전혀 불안하지도 않나 봐.'

쿨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매력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으니까.

실력이든 매력이든, 믿는 구석이 있으면 불안할 이유가 없겠지.

"류시아는 언젠간 뜰 것 같네요."

"그야 당연히."

내가 뜰 것 같다고 하면 싹 다 망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녀의 자신감은 신인 중에 최고였다.

"류시아는 솔로로 내놔도 언젠간 뜨는 애야."

"그럴 것 같더라고요."

"그나저나, 이제 공 실장님은 어떡하시려나."

"네?"

"이번에 망한 게 너무 커."

"...."

회사에서 분석한 결과로는 공세원 실장님의 명백한 실책이었다.

대중들은 팀워크가 아닌 매력적인 멤버를 원했는데.

류시아라는 인재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망했기에.

걸그룹 한 팀 키우는데 억 소리 나는 시장에서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금수저라서."

"드림 에이전시에 팔렸잖아. 금수저고 뭐고,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거야."

"대표님 아들 맞죠?"

"맞아."

".... 부럽다."

Q&G 엔터는 퀸이랑 공 씨가 세운 회사였으니.

당연히 가족 중의 한 명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래도 잘릴 일은 없겠네요."

"루나랑 솔라. 둘 중 하나는 띄우려고 하셨는데."

"그야, 뭐...."

이제는 솔라를 좀 더 밀어주시려나.

아티스트 2본부의 걸그룹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솔라를 맡은 입장에선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오늘 회의 때 들어봐야 알겠지만, 솔라 컨셉이 좀 바뀔 거다."

"네?"

"의상이랑 세계관 같은 거 말이야."

"아 그거."

원래는 달빛이랑 햇빛 그딴 세계관으로 밀고 나갔는데.

사실상, 루나에 초점을 맞춘 컨셉이라서 까먹고 있었다.

"데뷔조 확정이라도 이번 달 월말평가는 진짜 중요해."

"노래는 다들 숙지했어요. 춤도 조만간...."

"아니, 이제 그 정도로는 안 돼."

"네?"

회사에서는 솔라 멤버들에게 없던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애써 무시한 내 징크스가 조금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대표님께서 직접 월말평가 때 참석하실지도 몰라."

"에이, 설마요."

"소문으로는 그래."

그동안 아티스트 2본부장님 선에서 모든 걸그룹 제작을 담당했다.

이미 루나는 거의 실패했지만.

솔라는 긁지 않은 복권이라서.

"너는 그냥 솔라 애들 케어만 잘해."

"팀장님, 그냥 단순한 질문인데요."

"무슨 질문."

이내, 나는 조심스럽게 마음속의 의문을 털어놓았다.

".... 솔라는 뜰 수 있을까요? 루나도 망했는데."

"니가 제일 열심히 믿어줬잖아."

"아니."

제가 회사에서 제일 안 믿었을걸요.

"이번엔 네 감을 한번 믿어봐."

"???"

* * *

다음 날.

나는 의상과 컨셉 내용을 전달받고 연습실로 향했다.

'존나 파격적인데?'

원래 아이돌 세계관이라는 게 좀 유치했다.

커뮤니티와 트렌드를 선도하는 1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세계관.

딱 한 번만 봐도 절대 까먹을 수 없는 직관적인 컨셉이 대세였다.

"너희들 태양신 됐다."

"???"

태양 사제, 마법사, 궁수, 기사, 야만전사.

게임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컨셉이었으니.

솔라 멤버들은 의상 사진을 확인하면서 입을 떡 벌렸다.

특히, 둘째는 굳은 표정으로 사진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어, 음.... 뭔가 오묘하네요."

"대박! 의상 반짝거리는 거 보소. 진짜 태양신이야?"

"이 컨셉으로 가면 망함. 100퍼."

".... 그치?"

드디어 나랑 같은 의견인 사람을 찾았다.

솔라의 막내는 처음으로 나랑 같은 생각을 뱉었다.

이 컨셉 아니었어도 망할 것 같다고 예감했었지만.

"소미야, 망한다니! 그런 말 하면 못써!"

"언니, 나 학교에서 왕따 당해."

"어허."

그래도 뜨면 다행인데, 망하면 평생 흑역사로 남겠지.

"매니저 오빠, 왜 저만 야만전사예요?"

"그냥 그게 남았나 봐."

"야만전사는 주희 언니 주고 저는 궁수 할래요."

"대표님이 정하셨는데?"

"이게 모야. 나도 멋있는 거 시켜죠요."

"안 돼. 돌아가."

아직 중3이면 사춘기도 못 벗어났을 나이.

태양 여신 의상을 입고 아이돌 활동하려면.

잼민이 화이팅.

컨셉은 잠깐이야.

"매니저님, 죄송해요. 소미 원래 안 그래요."

"아니, 나도 이해하니까."

예지 얼굴에 뭔들 안 어울리겠어.

소미는 조금 더 노력해야겠지만.

"아무튼, 너희들 이제 복근 만들어."

"네?"

"복근."

순간, 멤버들의 표정이 전체적으로 어두워졌다.

컨셉 사진만 보면 거의 바디 프로필 수준이라.

"명색이 여신인데 인간미 있으면 안 되겠지?"

"겨우 한 달만에요?"

"아니, 보름."

"...."

지금도 다들 말랐으니까 거의 물만 먹으면 가능할 듯.

원래 복근은 주로 운동이 아니라 굶어서 만드는 거라.

"이번 월말 평가는 데뷔 전 마지막 평가야. 무슨 뜻인지 알지?"

"저는 이미 복근 있는데요, 형님."

"···. 너는 좀 줄여."

주희는 아까부터 물통에 뭔가를 넣고 흔들었다.

살짝 거슬려도 그냥 신경을 안 쓰려고 했는데.

"양주희, 프로틴 3주간 압수."

"아, 왜요."

"그냥 기분 나빠."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근육질 몸매의 여신이 어딨냐고.

"저기, 매니저님. 이 컨셉 누가 만들었어요?"

"응?"

아까부터 서늘한 표정의 둘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얼핏 봐도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왜 그래, 별로 마음에 안 들어?"

"당연하죠. 루나는 이런 거 없었잖아요."

"있었는데."

"훨씬 약했죠. 비교도 안 될 만큼."

"...."

왜 나한테만 그러세요.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은서야, 그러지 마."

"언니, 있어 봐. 따질 건 따져야지. 이건 차별이잖아."

"...."

또각, 또각─

그 순간, 연습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라?"

"대, 대표님!"

"안녕하세요!"

큐앤지 레이블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인 여왕님, Queen.

아직도 명성에 걸맞은 활동을 이어가는 배우 겸 가수.

"에고, 제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요?"

"아뇨, 전혀 아닙니다!"

"흐음."

이내, 서연정 대표님은 장은서를 빤히 쳐다보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그 컨셉은 내가 짰는데, 많이 별로였나 봐."

"앗,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니면?"

"너어무 마음에 들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래? 그럼 다행이고. 호호."

우리 둘째, 분노조절 개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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