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6화 (6/200)

[6] 걸그룹 데뷔(2)

큐앤지 레이블, 매니지먼트 1팀.

루나의 데뷔 준비로 바쁜 직원들을 뒤로한 채 개인 업무를 확인했다.

"일단 안무팀 먼저 들르고...."

걸그룹 프로젝트에서 내 취향이 개입할 여지 따윈 없었다.

불안한 마음과 달리, 솔라의 곡 작업을 순탄하게 진행됐다.

"수호야."

"네. 팀장님."

박철민 팀장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못 잤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이제와서 노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기엔 너무 늦었겠지.

표정을 보아하니 박 팀장님도 곡이 썩 만족스러운 듯했다.

"팀장님, 어제 파트 분배하고 녹음한 거 들어보셨어요?"

"당연하지. 아침부터 실장님께 보고드렸잖아."

"...."

그냥 이대로 쭉 진행할 생각이시구나.

조금 신선한 장르라고 생각하자.

요즘 음악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

솔직히, 그냥 온전하게 내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 예측에 실패한 수많은 작품도 거의 비슷했다.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좀 불안해서, 왠지 거슬려서.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뇨, 아닙니다."

"너 이번 주 토요일이 루나 데뷔일인 건 알지?"

"당연히 알죠."

요즘 2본부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솔라도 분발해야 할 거야. 네가 서포트 잘하고."

"네. 팀장님."

아직 데뷔하기도 전인데 이렇게 대놓고 말할 정도면.

그동안 솔라 멤버들은 얼마나 비교당하면서 살았을까.

"솔라 안무팀은 언제 방문해?"

"오늘이요."

"그래? 바쁘겠네."

간단한 대화를 끝으로, 박 팀장님은 지상모 매니저를 붙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당장 며칠 앞으로 다가온 루나의 데뷔일.

자체 쇼케이스와 동시에 음원 발매까지.

솔라랑 비교하면, 대체 얼마나 많은 지원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하는 건지.

드르륵─

이내, 공세원 실장은 문을 열고 들어와 박 팀장님을 찾았다.

"박 팀장님, 루나 애들 리허설 준비는 끝났어요?"

"네. 팀장님."

"쇼케이스 무대에서 너무 류시아만 돋보이면 안 돼요, 알죠?"

"네. 지시하신 대로 잘 준비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본부장님은 물론, 대표님까지 관심을 기울일 만큼 중요한 프로젝트.

벌써 루나 멤버들의 각종 예능 일정을 순차적으로 조율하고 있었다.

"류시아가 아니라 루나 전체를 띄우는 게 목표예요."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류시아를 중심으로 구성한 루나의 멤버 조합.

애초에, 두 팀으로 나눈 이유도 오직 그녀 때문이었다.

"무조건 팀플. 그룹의 밸런스를 맞춰야 합니다."

"네. 실장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실장님은 나를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정 매니저, 허찬성 프로듀서 건은 수고했어."

"아, 네. 실장님."

"성과급은 기대해도 좋아."

"감사합니다."

공 실장은 드림 에이전시의 성과급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동기부여.

실적에 따른 차등 분배 시스템.

가끔 인센티브에 눈이 멀어 쓸데없이 잔대가리 굴리는 놈도 있지만.

드림 에이전시의 성장세를 보면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으니.

"근데 말이야."

이어서, 공세원 실장님은 팔짱을 낀 채로 말을 이어갔다.

"정수호 매니저의 눈을 보면 항상 배수의 진을 친 사람 같아."

"네?"

"실패하면 뒤가 없다는 듯이."

"...."

그만큼 절박해 보인다는 의미가 아닐까.

드림 에이전시 때보다 오히려 간절했다.

"미래는 모르는 거야. 이 바닥이 워낙에 변수가 많은 시장이라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실패를 거듭하더니 결국 해체 절차를 밟은 우리 팀.

그렇게 계속 망하니까 이제는 오기가 생길 지경이다.

"근데 루나는 무조건 성공할 거야. 아니, 성공해야만 해."

"네?"

"이번에 걸그룹 프로젝트 망하면 나도 망하거든."

"...."

어떻게든 루나를 성공시키겠다는 굳은 의지.

내가 아는 어떤 금수저랑은 마인드가 달랐다.

'주말이 되면 그때 알겠지.'

이번에도 역배가 터질지.

루나가 개 같이 멸망할지.

* * *

며칠 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맡으며 숙소까지 밴을 몰았다.

이내,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주변을 휙 둘러봤는데.

'진짜로 편의점이 하나도 없냐.'

솔라에 대한 회사의 차별 대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했다.

앞으로도 솔라를 차별하려는 건 아니겠지.

루나만 이사시키는 게 은근히 기분 나쁘네.

뚜루루루─

대충 밴을 주차해놓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은 없지만, 유선전화는 있었으니까.

-여보쎄용?

"어, 막내구나."

-누구쎄용?

".... 매니저 오빠야."

-아항.

아항, 이 지랄 하지 말고.

"소미야, 언니들 다 일어났지?"

-두 명은요.

"아직 두 명이나 잔다고?"

-오, 그럼 세 명이요.

"...."

그럼 너 빼고 한 명만 일어난 거잖아.

-그냥 들어와요. 비번 알잖아용.

"그건 좀 그렇지 않나."

-방에만 안 들어가면 괜찮아요. 박 팀장님은 그냥 들어옴.

"그래?"

걸그룹 매니저는 원래이런가.

한 명만 붙어서 케어하는 배우 매니저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심지어, 스마트폰조차 없는 연습생들을 5명이나 맡다 보니까.

삐, 삐삐삐─

머지 않아, 숙소 현관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갔다.

연예인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을 단계는 지났지만.

그래도 여자 아이돌 숙소면 연상되는 게 있지 않나.

"걸그룹 숙소에 이런 게 왜 있어?"

"넹?"

커다란 곰 인형이나 예쁜 화분은 바라지도 않아.

대체 덤벨이나 아령을 왜 무게별로 나열했냐고.

"여기가 무슨 헬스장이야? 벤치가 왜 있어?"

"아, 그거 주희 언니 운동기구예요."

"이건 좀 심하네."

"에이, 다른 멤버들도 가끔 운동해요."

".... 근데 너는 지금 뭐 해?"

"저요?"

타닥, 타닥─

거실에서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지는 타자 소리.

우리의 미운 중3 잼민이는 아침부터 바빠 보였다.

"게임해용."

"숙소에서? 팀장님이 허락하신 거야?"

".... 거의?"

거의는 무슨.

어이가 없네.

"스마트폰도 못 쓰는데 노트북을 한다고?"

"에이, 아침이니까 기분전환 하는 거죠."

"...."

아침부터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다고 전환이 필요해.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언니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정글 트롤인데?"

"에이, 이건 팀을 잘못 만난 거죠."

"0킬 7뎃이 말대꾸?"

"힝."

우리 멤버들, 데뷔조 뽑히고 나서 긴장감이 풀린 거야.

이러니까 내가 이렇게 불안하지.

드림 에이전시면 바로 잘렸을걸.

끼이익─

그때, 경첩 소리가 들리며 화장실 문이 열렸다.

"어....? 아. 예지야."

"매니저님, 오셨어요?"

"...."

예지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여배우 매니저도 해봐서 웬만하면 이런 적 없었는데.

잡티 하나 없는 피부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이목구비.

오히려 화장기 없는 얼굴이 훨씬 더 청순하고 예뻤다.

"예지, 너는 언제 일어났어?"

"제일 먼저 일어났죠."

"잘했네."

방금 세수한 맨얼굴에도 빛이 나는 청순가련한 외모.

비주얼 만큼은 류시아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지금 시간이 없는데, 멤버들 좀 깨워줄 수 있을까?"

"으음, 은서는 잘 때 깨우면 화내는데."

".... 그럼 마지막에 씻게 하자."

"좋아요."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 둘째, 장은서.

나중에 활동 중에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이다.

내 표정에서 생각을 읽었는지, 예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은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응?"

"그래도 제 말은 잘 들어요."

"그래."

고작 스물두 살이지만 굉장히 어른스러웠다.

고음 못 올리는 단점만 빼면 진짜 완벽한데.

아이돌의 노래 실력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진 거지.

고음과 기교뿐만이 아니라 개성이나 감성까지 보니까.

부디 이번만큼은 내 촉이 틀렸으면 좋겠다.

"으음. 졸려어."

이내, 민소매 탱크탑 차림의 셋째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매니저 형님, 하이."

".... 형이라고 부르기로 한 거냐."

"아, 비켜봐요."

양주희는 소파에 다가오더니 냉큼 아령을 주워들었다.

"아침부터 운동한다고?"

"당연하죠. 공복에는 운동, 모르세요?"

"...."

너는 니가 걸그룹 멤버인 걸 모르는 것 같아.

우리 솔라 멤버들을 어디부터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까.

이 불안감을 해결하려면 멤버 교체밖에 답이 없겠는데.

"소미야, 너부터 게임 그만하고 씻고 와라."

"엥, 갑자기 왜 저예요? 저쪽에서 운동하는 사람도 있는데."

"운동이랑 게임이 같.... 지는 않겠지?"

"뭐가 달라용."

잼민이 뻔뻔한 거 보소.

* * *

큐앤지 레이블 사옥 안무 연습실.

나는 멤버들을 안무팀에 무사히 배달하고 인사를 건넸다.

대충 분위기를 보면 안무도 어느 정도 완성 단계인 듯했다.

"그럼, 세 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볼일 보세요."

"넵. 그럼."

활기찬 안무가의 모습을 확인하고 연습실을 나섰다.

구경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분도 계셨지만.

혹시 안무까지 마음에 안 들까 봐 걱정돼서.

"후우...."

어차피 3시간 동안 할 일도 없어서 우리 팀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수호 왔냐."

벌써 매니지먼트 1팀에 완전히 적응한 기분이다.

박 팀장님의 공격적인 말투도 반가운 것을 보니.

"상모는 짐도 안 풀고 갔어요?"

"오늘이 데뷔잖아. 무대 준비 돕고 있겠지."

"바쁘네."

루나는 올해 상반기 큐앤지 레이블 최고의 기대주.

얼마나 바쁜 건지, 최근 지상모 얼굴이 홀쭉해졌다.

요즘 회사에서 푸시해주는 모습을 보면 망하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해 보였다.

아마 다른 회사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을 터였다.

큐앤지가 보이그룹 만큼 걸그룹도 잘 키우는지.

"수호야."

"네?"

"너 오늘 솔라 애들 숙소에 데려다 주고 할 일 없지?"

"토요일이잖아요. 빠른 퇴근해야죠."

"흠, 잘됐네."

에이, 설마 유치하게 환영파티 같은 거 하려고 그러시나.

"너도 루나 쇼케이스 무대 뒷정리 좀 도와."

".... 옆집 할머니가 편찮으세요."

"니가 편찮아지고 싶어?"

"아니요."

아씨 그냥 바쁘다고 할걸.

오늘 좀 아마추어 같았네.

"야근수당은 없는 거 알지?"

"...."

원래 매니저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래도 성과급은 잘 챙겨주잖아.

* * *

대중문화예술 평론가 출신 기자, 조영수.

그는 엔터에서 건네주는 보도자료를 복붙하는 기자를 혐오했다.

기자 생활만 해도 벌써 3년을 훌쩍 넘겼으니.

이쯤 되면 어떻게 기사를 쓸지도 눈에 훤했다.

큐앤지 레이블이 드림 에이전시에 흡수되고, 야심 차게 내놓은 걸그룹.

'루나는 뭔가 좀 아쉽네.'

조영수가 이 바닥에서 '천재'라고 불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십수 년 동안의 평가는 언제나 대중성과 상업성을 정확하게 관통했기에.

천편일률적인 식상한 기사에 담백한 의문 한 줄이면 족했다.

[루나는 큐앤지 레이블 걸그룹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곡도 좋고, 춤도 괜찮고, 분위기도 좋다.

전체적으로 무대 밸런스도 좋기는 한데.

'튀는 멤버가 없잖아.'

쉽게 말해서, 덕질할 멤버가 없다.

쇼케이스에 공식으로 초청받은 기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일 터였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긴 한데 흔하디흔한 걸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가능성을 찾아보겠다면.

'류시아, 저 친구는 군계일학이네.'

다른 멤버가 매력을 가리지 않았다면 충분히 뜰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이 무대를 류시아 원툴로 밀어줬으면.

밸런스 맞추겠다고 양보하게 하지 않았다면.

이건 마치 축구에서 공격수들로만 팀을 구성한 느낌이 아닌가.

훌륭한 스트라이커를 두고 왜 미드필드와 수비수를 안 세웠지.

'너무 욕심이 과했어.'

전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의 K팝 아이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

인기 멤버 중심으로 그룹을 짜는 건 그야말로 기본일 텐데.

제작사들이 교과서적인 방식을 괜히 선호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모든 멤버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괴물 신인이 종종 탄생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루나가 대한민국 음악판을 씹어먹을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 혹시 모르지. 내가 틀렸을지도.'

흡사 내기 바둑판 옆에서 훈수 두는 처지와 비슷했다.

그냥 결과물만 놓고 아쉬운 점을 말하는 건 쉬웠으니.

'아직 망했다고 하기엔 시기상조였지만....'

큐앤지 레이블에서 열심히 언플한 내용치고는 조금 아쉬운 결과였다.

"저 사람 맞지? 정수호 매니저."

"어. 루나보다 솔라가 낫다고 했던 사람."

"특이하네."

순간, 조영훈 기자는 스탭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왜 그랬대, 무대 좋기만 한데."

"그냥 신경 쓰지 마. 드림 에이전시 때부터 똥촉으로 유명해."

"아, 그래서 솔라를 맡았구나?"

"그렇지, 뭐."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

그는 심드렁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무대를 감상했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제작 단계에 이미 루나의 단점을 발견한 직원이 있기는 했었구나.

회사 밖이 아니라, 내부에서 틀을 깨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

'저 사람은 좀 깨어있네.'

안목이 괜찮은 매니저는 어떤 그룹을 선택했을지 기대감이 들었다.

걸그룹 두 팀을 석 달 간격으로 런칭한다던데.

루나가 망한 다음엔 솔라를 좀 더 밀어주려나.

한편, 같은 시각. 같은 공간.

누군가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넋을 잃은 채로 루나의 무대를 감상했다.

* * *

와씨, 미쳤어. 개쩌네.

팀 밸런스 진짜 좆됨.

내 생각에 이 정도면 요즘 걸그룹 중에서도 1티어였다.

혹시라도 류시아 원톱으로 내세웠으면 아쉬웠을 텐데.

"공세원 실장님은 진짜 천재였구나?"

통찰력으로는 뭐, 거의 제갈량급 전략가.

금수저라도 그 정도는 해야 실장 달겠지.

"이거, 솔라가 루나를 어떻게 이기냐."

성적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더니, 솔라랑 비교하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우리 애들이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못 이겨.

혹시 루나가 망하면 그냥 내 안목은 쓰레기인 거야.

.

.

.

.

.

내 안목은 쓰레기였다.

아직 끝은 아니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절대 아니었다.

데뷔 후 보름 동안의 성적은 아쉬움의 연속이었으니.

".... 왜 망했지?"

솔라를 생각하면 오히려 좋긴 한데.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진짜 왜 망했지.

내 촉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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