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녹음(1)
녹음이 싫은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이 대화를 들어보면 알 것이다.
“…이든아.”
“…어?”
“이건 통통 튀는 노래지, 신나는 노래가 아니야.”
“어? 내가 신난 걸 어떻게 알았어?”
“얼굴만 보면 알 수 있거든.”
이정진이 마른세수를 하면서 한숨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든아, 잠시 쉬자.”
첫 번째로 녹음실만 들어가면 이정진은 예민해진다. 자신이 의도한 방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정진의 말투는 새로 만든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이든아, 이따 다시 노래 부를 땐 그러면 안 돼.”
“응!”
“알겠지? 무슨 말인지?”
“응……!”
주이든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녹음 부스에서 나왔다.
“…힘들어.”
녹음 부스에서 나온 주이든은 곧바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이든아, 힘들었어?”
“응…….”
“그래도 다시 해야지.”
“토해도 돼?”
“마음껏.”
두 번째로 이정진은 만족할 때까지 ‘다시’를 외친다. 제일 먼저 녹음을 시작한 주이든은 2시간째 녹음 부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정진 형, 점심이라도 먹고 할까?”
“…그래.”
그러자 주이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든아, 오늘 힘들면 내일 할까?”
“아니! 오늘 할 거야!”
“그러면 점심 먹고 한 시간 더 해보자.”
“…어! 날 뭘로 보고!”
나는 미리 시켜놓은 파스타와 불고기 필라프를 펼쳐놓았다.
주이든은 밥을 먹다가 말고 우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정진 형, 그 소문 들었어?”
“그 소문이라니, 이든아?”
주이든이 주변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이 녹음실에서 귀신을 본 사람이 있대.”
“귀신?”
귀신이라고?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나.
“정진 형은 녹음실에서 귀신 본 적 없어?”
“…어?”
이상하리만큼 이정진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
“내가 말이야. 귀신은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었어.”
“정진 형, 이상한 일이요?”
이정진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무슨 일인 건지 궁금했다.
“가끔 혼자서 가이드 녹음을 할 때가 있거든. 그런데 그때마다 녹음실 전등이 번쩍였어.”
“번쩍였다고요?”
주이든은 먹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주이든은 되물었다.
“왜 번쩍여?”
이정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모르지. 그래서 직원한테 녹음실 전등이 망가졌다고, 갑자기 번쩍인다고 하니까 직원이 전등을 고쳐주긴 했거든? 근데 그분이…….”
“그분이?”
“전등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어.”
“헉.”
…소름이 돋긴 하네.
“왜 그랬대?”
“나도 모르지.”
주이든은 소름이 끼치는지 팔을 빡빡 문질렀다. 저러다가 피부 벗겨지겠다.
“…정진 형, 또 다른 건? 없어?”
“다른 것도 있지.”
다른 것도 있다고? 이정진이 안경을 위로 올리면서 팔짱을 꼈다.
“내가 녹음 부스에 있었고, 같이 작곡하는 형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했거든?”
“그러면 혼자였겠네?”
“그래, 혼자였는데 말이지.”
이정진이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뭐길래? 나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이정진의 말을 기다렸다.
“…갑자기.”
갑자기? 이정진이 나랑 주이든을 보더니 소리쳤다.
“노래가 막!”
“악!”
주이든이 소리를 질렀다.
“틀어졌어.”
대화를 마무리하자 주이든이 가슴을 문지르며 이정진을 노려보았다.
“정진 형! 놀랐잖아!”
화들짝 놀라서 파스타를 바닥에 흘린 주이든은 울상을 지었다. 이정진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음을 흘렸다.
“그런 일은 혼자 있으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녹음실에 혼자 있는데 노래가 들릴 일이 있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응, 종종 있지.”
이정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뭔가 이상한데?’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잠깐만요. 뭔가 이상한데요.”
“야, 범나비.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주이든의 만류에도 나는 이정진에게 질문했다.
“녹음실에서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지 않잖아요?”
“…어?”
“저도 녹음실에 혼자 있었던 적은 있었지만… 노래가 들린 적은 없었어요.”
그제야 이정진도 이상함을 깨닫고 몸을 떨었다.
“…아, 설마.”
무섭다고 중얼거리던 주이든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정진 형!”
“어?”
“저번에 작곡가 형이 그랬잖아! 귀신을 본 것 같다고. 그땐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지나갔지만…….”
귀신을 본 것 같다고?
“언제?”
“우리 도둑 GAME 녹음할 때였어. 작곡가 형이 그러더라. 녹음실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 노래가 들렸다고.”
“우리 노래?”
“응, 녹음실에 갑자기 플라워가 틀어졌대.”
…갑자기 팔에 닭살이 돋았다. 나는 입맛이 뚝 떨어져 생수만 계속 들이켰다.
“그래서 작곡가 형이 자기가 노래를 틀었나 싶어서 확인해 봤는데.”
“그랬는데?”
주이든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랫입술을 발발 떨었다.
“…자기가 튼 게 아니었대.”
“진, 진짜로요?”
“그래서 작곡가 형이 설마 하고 핸드폰도 확인했는데…….”
그때였다. 녹음실 문이 열려서 주이든과 이정진이 소리를 꽥 질렀다.
“으아아악!”
나는 소파에 있던 담요로 몸을 감싸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녹음실 문 앞에서는 화목현과 정요셉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얘들아?”
깜짝 놀랐네. 주이든이 주먹으로 화목현의 팔뚝을 때렸다.
“아! 놀랐잖아! 우리 귀신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주이든의 솜사탕 펀치를 맞은 화목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어.”
“세상에 귀신은 없지만! 무섭긴 하잖아! 형도 무서워하면서!”
…귀신을 안 무서워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나? 화목현은 자리에 앉더니 포크로 파스타를 집어서 돌돌 돌렸다.
“그래서 녹음실에 귀신이 있어?”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귀신이 있는 것 같다는 거지.”
정요셉도 별 관심은 없는지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품을 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어. 정진 형, 나는 언제 해?”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면서 이정진을 쳐다보았다.
“아직 이든이 안 끝났어.”
“와… 아직도 안 끝났다고~? 이든아, 이거 실화야?”
정요셉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게 더 무서워.”
나도 주이든의 녹음이 안 끝났다는 게 더 무섭긴 하다. 우리는 이정진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괜찮아.”
이정진은 심심찮은 위로를 우리에게 건네고는 웃었다.
“오늘 죽어보자.”
저렇게 이정진이 씩 웃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인다.
* * *
녹음실에서 나온 주이든은 물기를 쫙 뺀 수건처럼 수척해졌다.
“…힘, 힘들어.”
“고생했어요, 형.”
나는 바로 비타민 음료를 주이든에게 건네주었다.
“역시 범나비밖에 없어.”
주이든이 소파에 앉자마자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정요셉은 벌써 이정진에게 탈탈 털리고 있었다.
“요셉아, 청춘의 느낌을 줘볼까?”
“그게 무슨 느낌이야?”
“싱그러운 느낌?”
“내가 어디에선가 싱그러운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이정진과 정요셉은 항상 이런 식으로 주고받는 말이 많아서 녹음하는 시간이 길었다.
“예전에 계곡에 갔었던 걸 생각해 봐.”
“아~ 그건 생각이 나지.”
그제야 대화가 끝나고 녹음이 시작됐다.
“그래서 아까 무슨 대화를 나눈 거야? 귀신?”
화목현이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형은 녹음실 귀신을 본 적 있어?”
“본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들은 적은 있지.”
어? 화목현도 들은 적이 있다고? 나랑 주이든이 화목현을 주목했다.
“나는 옛날부터 이 회사에 몸을 담고 있었으니까 잘 알고 있지.”
“…그럼 알려줘! 이 녹음실에 왜 귀신이 많은지.”
“잘 모르겠지만.”
화목현은 심심한데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이건 나도 들은 건데, 이 회사 건물을 짓기 전에 집 한 채가 있었대.”
“어, 집이요?”
“어, 그런데 그 집이 잘 안 팔렸나 봐. 알고 보니 집 밑에 무덤이 있었대. 그런데 땅 주인이 무덤을 싹 밀어버리고 건물을 세우니까 귀신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더라…….”
“무슨 무덤이었는데요?”
화목현이 턱을 문질렀다.
“거기까진 모르겠는데?”
그러자 녹음실이 조용해졌다. 마치 탄산 없는 탄산음료를 마신 듯한 맹맹한 기분.
“별거 아니겠지.”
주이든은 손을 휘저으면서도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근데 회사에 혼자 있으면 귀신이 보인다는 말이 있던데…….”
“형도 봤어요?”
“나? 나도 연습실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연습실에서 귀신을 봤다고요? 잠깐만, 연예계에는 미신 하나가 있었다. 녹음할 때 귀신을 보면 그 앨범은 대박이 난다고.
“…우리, 귀신을 만나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내 말에 주이든이 무슨 소리냐며 소리를 빽 질렀다.
“무슨 귀신을 만나!”
“앨범 대박을 위해서요.”
“얘가 미쳤나 봐.”
앨범 대박을 위해서라면 귀신을 만나야 할 것 같은데. 화목현도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나비야, 눈에 광기가 돌고 있어.”
“…혹시 모르잖아요. 귀신을 만나면 앨범이 대박이 날지?”
“그건 맞지만.”
“귀신을 만나야 할 텐데…….”
사실 나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상을 받으면 아이돌 노트와 영영 작별할 수 있으니까. 이번 앨범에 이어 다음 앨범까지 대박이 난다면 대상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지금 귀신을 무서워할 때가 아니었잖아? 일단 귀신을 만나면 무조건 성공이다.
더군다나.
‘이번 타이틀곡인 HOPE이 꽤 좋단 말이지.’
듣는 사람의 귀가 편안해지는 노래였다.
“잠깐만, 범나비. 진짜로 귀신을 만나려고?”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내가 무당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차라리 아이돌 노트한테 부탁하는 편이 빠른가?’
그건 아니지.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고민에 빠졌다.
“네온들한테 물어볼까요?”
“응?”
“귀신을 만날 수 있는 방법 말이에요.”
주이든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범나비, 진짜 물어보려고?”
“네, 우리 다음 앨범 떡밥도 줄 겸?”
“떡밥은 좋은데…….”
나는 멤버들에게 부탁했다.
“우리 진짜 귀신 좀 만나면 안 돼요?”
어떻게 보면 또라이 같은 말이지만 말이다. 의외로 화목현이 흔쾌히 허락했다.
“해봐. 네온들은 알지 않을까.”
화목현의 말에 빠르게 Q 라이브 앱을 켰다.
* * *
금요일 새벽 2시. 이백수는 갑작스러운 네스트의 Q 라이브 앱 알림에 놀랐다.
‘이런 시간에?’
이백수가 인상을 쓰면서 Q 라이브에 들어가자 나비가 손을 흔들었다.
[범나비 : 안녕하세요, 네온들?]
예고도 없이 Q 라이브를 켜서 그런지 채팅창에는 물음표만 올라왔다. 이백수도 궁금했다. Q 라이브 제목에도 달랑 ‘귀신’만 적혀 있어서.
-나비야? 거기 어디야?
[범나비 : 여기는 녹음실입니다.]
뭐? 이백수는 잠이 확 깼다.
-녹음실이라면 녹음할 일이 있다는 거잖아?
-네스트 컴백하는 거야?
-새벽 2시에 떡밥을 주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비는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핸드폰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는 입을 열었다.
[범나비 : …네온들, 귀신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
-뭐
-귀신?
-갑자기?
이백수도 나비의 뜬금없는 소리에 눈을 껌뻑였다.
[범나비 : 귀신을 만나고 싶어서요.]
나비가 원래 엉뚱하긴 하지만 본론도 말하지 않고 이렇게 귀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채팅창에도 어리둥절하다는 듯한 반응만 올라왔다.
[범나비 : 우리 같이 귀신을 만나볼까요?]
드디어 나비가 미쳤구나. 이백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