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일본(2)
리포터가 되물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도 네스트요?”
“네, 다시 태어나도 네스트입니다.”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네스트는 내게 딱 맞았다.
“저도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1을 봤거든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 시즌 1을요?”
“네, 그래서인지 이 질문의 답변을 듣고 조금 기쁘네요.”
뒤늦은 통역사의 말에 정요셉과 주이든이 환호했다.
“와!”
“우와!”
짧은 환호에 리포터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때 화목현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돌연프를 보면서 어떤 그룹을 응원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통역된 화목현의 말이 리포터의 귀에 들어갔다. 리포터는 입에 살짝 웃음을 머금더니 이내 말해주었다.
“네스트입니다.”
우리라고? 나는 리포터에게 양해를 구하고 냉큼 가방을 가져왔다. 내 가방을 보면서 리포터가 한마디를 했다.
“이 가방, 돌연프에서 봤습니다.”
이 가방을 알면 진짜인데.
“진짜 잘 아시네요?”
마침 혹시 일본에서 네온을 만나면 주려고 가져온 도둑 GAME 앨범이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앨범을 꺼내서 리포터에게 건네주었다.
“선물입니다.”
“선물! 감사합니다.”
“그 앨범엔 싸인이 있습니다.”
“…오, 정말 감동이에요.”
“우리 팬이라고 하셨으니까.”
잘됐네. 리포터의 표정을 보니 진짜 우리 팬인 것처럼 보였다. 몇 개의 질문이 끝나고 마지막 질문만 남은 듯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의 응원 멘트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응원 멘트는 화목현에게 맡겼다.
“한국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일본 돌연프 연습생 여러분, 파이팅!”
* * *
그렇게 간단한 인터뷰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은 지쳤는지 침대에 누웠다.
주이든이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왜요?”
왜 보냐고 물어보자 주이든이 가늘게 눈을 떴다.
“아까 범나비한테 진짜로 궁금한 게 있었는데.”
“궁금한 거?”
“진짜로 다시 돌아가도 우리를 선택할 거야?”
한번 실패했던 그룹에 몸을 또 담기는 싫어서. 어차피 나에게는 네스트라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당연하죠.”
“…진짜로?”
“그럼요.”
“와…….”
주이든이 나를 보면서 손뼉을 쳤다.
“나라면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은데.”
“왜요?”
“일단 네스트 멤버로는 살아봤으니까. 다른 그룹도 궁금하잖아?”
주이든다운 대답이다. 나는 포도맛 생수를 마시면서 곰곰이 주이든의 대답을 곱씹었다.
‘다른 그룹…….’
…나는 생각이 안 나는데.
“이든 형은 만약 다른 그룹으로 가면 어디로 가고 싶은데요?”
“크래프트?”
“왜요?”
“크래프트가 제일 재밌을 것 같아. 또라이들 많아서.”
하긴 이남주부터 또라이니까. 맞는 말이네. 그렇지만 주이든이 네스트를 선택하지 않아서 섭섭하긴 했다.
“하지만 섭섭한데요.”
“뭐? 섭섭하다고?”
“예, 섭섭해요.”
주이든이 미간을 찌푸리며 삼각김밥을 입에 물었다.
“뭐가 섭섭한데?”
“네스트가 아니라 다른 그룹을 선택했잖아요. 우리랑 쭉 간다고 해놓고.”
“야!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 되지.”
“싫은데요.”
나는 진짜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저런 말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삐진 것 같으니까, 형이 용돈 좀 줄게.”
주이든이 냉큼 작은 동전 지갑에서 천엔을 꺼냈다. 그리고 내 손에 천엔을 쥐여주더니 씩 웃는다.
“이런 형 어디 없다?”
주이든은 괜히 돈을 주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맛있는 거 사 오라는 뜻 같은데.”
“어? 어떻게 알았어!”
이렇게 순순히 줄 리가 없잖아요.
“이참에 맛난 거 사 와.”
나는 나갈 준비를 하면서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다른 형들은요?”
“나는 괜찮아. 룸서비스 시키려고.”
다른 멤버들처럼 룸서비스나 시키지. 주이든은 고맙다면서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런 모습이 안 미워서 큰일이다.
“다른 곳으로 사라져도 몰라요.”
“네가 사라지면 울어줄게.”
“진짜 같이 안 가요?”
“응!”
끝까지 같이 안 가네. 나는 호텔에서 나와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일본 편의점은 이렇게 되어 있구나. 동영상으로 찍어서 엄마한테 보낼까.
‘…편의점에 욕심을 부리고 있던데.’
요즘 들어 엄마가 편의점을 확장시키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건물로 이사한다는 말도 있었고. 점점 엄마가 편의점에 진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러다가 아들보다 편의점이 더 좋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일단 삼각김밥, 샌드위치, 생수 정도만 사면 되겠지.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바구니에 몇 가지를 담고서 편의점 카운터에 갔다. 계산을 마치고 편의점 밖으로 나오다가 잠깐 SNS를 살펴보는데…….
‘언제 내가 찍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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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범나비 ㄹㅈㄷ짤
(일본_사진_jpg)
범나비 일본에서까지 레전드면 어떡해
얼굴 물올라서 미치겠다
요즘 얼굴 폼 미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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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ㄲ 한국에서 잘생겨야지 왜 일본 가서!!!!!!!
└ 원래 얼굴 레전드였는데 얼굴 폼 미쳤음
-타워레코드에서 만난 팬이 사진 올렸는데 존잘;
-얼굴 리즈 갱신
└ 22
└ 33 완전 리즈
└ 심장 아파 44
-간단하게 입었는데도 저렇게 피지컬 오지면…
└ 팬들은 돌아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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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이거 나비 맞지?
편의점에서 나오는데 나비 맞는 것 같음
어떤 일본인이 영상 올림
(실시간영상_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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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ㅋㅋㅋㅋㅋㅋㅋ 얼굴 ㅋㅋㅋㅋㅋㅋㅋㅋ
-마스크 썼는데 미모가 마스크를 뚫고 나옴
└ 22 나도 놀라서 댓글 달러 옴
-저게 인간 피지컬임?
└ ㄴㄴ 인간 아님
└ 키 봐라
└ ㄹㅇ 키 보고 개놀람
-이런 말 실례인데 흉부가…
└ 맛집이라고?
└ 어 이런 말 해도 됨?
└ 이미 리더부터 흉부 맛집임ㅎ
-ㅋㅋㅋㅋㅋㅋㅋㅅㅂ 나이 어려도 할 말은 하겠다는 네온들
└ 맞잖아 흉부 맛집
└ 목현이가 먼저 보여줬어 ㅎ
이런… 옆에서 중얼거리던 소리가 방송하는 소리였군…….
키오 시절엔 잘생겼다는 팬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냥 나라는 존재를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화목현에게 물들었나…….’
이제 잘생겼다는 말이 부끄럽기는커녕 당연하게 느껴졌다. 겸손을 좀 떨어야 하는데. 살짝 붉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기분이 좋긴 좋은 거구나.’
잘생겼다는 말이.
SNS를 확인하면서 천천히 숙소로 돌아가 멤버들에게 내가 사 온 음식을 건네주었다. 주이든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것들을 확인했다.
“맛있는 거 사 왔네. 최고.”
쌍엄지를 보여주면서 주이든이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음식을 꺼내서 야금야금 먹었다. 나는 화목현에게 다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저 목현 형에게 물들었나 봐요.”
“어?”
내 말의 파급력이 컸는지 화목현이 상체를 일으켰다.
“뭐가 물들어?”
“팬들이 잘생겼다고 했는데…….”
“그래서?”
“예전에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소파에 발라당 누우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인정했어요.”
“인정했어?”
“이거, 목현 형에게 물든 거 맞죠.”
내 말에 주이든이 물을 먹다가 바닥에 뱉었다.
“아!”
“미안, 미안!”
주이든이 미안하다면서 휴지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
“나비야, 뭐라고?”
“인정했다고요.”
“네 외모를?”
“예.”
그동안 노래 실력만 인정했지, 외모는 인정하지 않았다. 내 얼굴은 그냥 아이돌 중에서도 평균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때 화목현이 진지하게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붙잡았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어?”
“네, 제 얼굴은 평균 정도라고 여겼죠.”
화목현은 자기 이마를 때리더니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왜지?
“나비가 객관성이 없는 편이지?”
“객관성이 넘치고 흐르는데요?”
정요셉이 양손으로 눈을 비비며 나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우리 막내, 돌연프 외모 순위 투표에서 TOP 10에 들었거든?”
…그랬어? 그런 투표가 있는 줄은 몰랐다.
‘어차피 화목현과 이남주가 있었으니까.’
돌연프 내내 이런저런 사건이 많아서 그런 걸 찾을 기력이 없었다. 오로지 네스트 위주로만 살펴보았으니까. 세세한 내부 사정을 알 리가 만무했다.
“우리 막내, 정말로 모르는 눈치네?”
“정말로 몰랐으니까요.”
순간 주변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타닥타닥거리며 노트북 키보드를 누르던 이정진의 손가락까지 멈췄다.
“막내야, 진짜로 몰랐어?”
“예… 정말로 몰랐어요.”
“이런.”
멤버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니까 나까지 심각해지네.
“…그럼 나비야, 네 생각에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은 누구야?”
“목현 형이요.”
“흠! 내가 잘생기긴 했는데.”
화목현은 기쁜 듯이 헛기침을 하면서 이가 보이도록 미소를 지었다.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고 있는데요.
화목현을 옆으로 밀어낸 정요셉이 나에게 물었다.
“다음은?”
“어떤?”
“다음으로 잘생긴 순위.”
정요셉의 눈빛을 보니 마치 자기를 말하라는 것 같았다.
나는 정요셉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요셉 형이 목현 형보다 더 멋있어요.”
“…우리 막내.”
정요셉이 나를 끌어안으며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정요셉을 밀어냈다.
“우리 막내가 최고다.”
그렇게 대충 화제가 넘어간 줄 알았는데. 삼각김밥을 먹던 주이든이 입을 열었다.
“범나비, 스스로 자존감 깎아먹지 마라.”
주이든이 나에게 충고했다.
“나는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
“예?”
“알았어?”
“…예.”
주이든이 이런 조언을 해주다니. 나를 정말 걱정했는지 주이든은 나에게 잘생겼다고 여러 번 말해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조금 감동해서?”
“내가 겉은 차가워도 속은 뜨거워.”
옆에서 정요셉이 ‘후끈후끈하네’ 같은 말을 뱉었다.
“목현 형은 잘생겼다는 말이 좋아?”
“당연하지, 이든아. 지나가는 개가 잘생겼다고 말해줘도 기분 좋아.”
화목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왜? 잘생겼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잖아?”
“아니, 그냥 웃은 거예요.”
그렇게 대화가 어느 정도 끝나자, 이정진이 노트북을 닫으며 양팔을 위로 들었다.
“끝났다!”
이정진의 외침에 멤버들이 이정진을 바라보았다.
“정진 형, 끝났어요?”
내가 질문하자 이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은요?”
“HOPE.”
주이든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이정진에게 질문했다.
“그게 뭔데, 형?”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이정진은 주이든을 끌어안으며 훌쩍였다.
“우리 다음 미니 타이틀곡.”
빨리도 끝냈다.
“벌써 다 만든 거예요?”
“응, 이번에는 통통 튀는 노래로 만들었어.”
통통 튀는 노래? 이정진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일이 끝난 자의 여유가 엿보였다.
“이번 주에 녹음하자.”
“…어?”
“얼른 시작해야지.”
…아, 이제 녹음 지옥이 시작되겠군. 주이든이 바닥에 드러누우면서 말했다.
“녹음 싫어!”
나도 동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