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심장
정요셉은 입을 다문 채 부모님을 쳐다보았다.
“…그날은 미안하구나.”
“…….”
“엄마도, 아빠도 정신이 없었어. 요셉이가 연기로 상을 받는다고 하니까.”
“상이 그렇게 좋았어요?”
“요셉아!”
그게 아니라는 듯이 어머니가 입을 벙긋거렸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보다 상을 먼저 쳐다보셨잖아요.”
“미안하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사과했다. 처음 듣는 아버지의 사과에 정요셉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던 어머니가 말했다.
“…나비가 그러더구나.”
“…….”
“자식을 보면 우선 축하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비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
“나비가요?”
“응, 그 말을 듣고 네가 왜 그랬는지 알겠더구나. 우리가 너무 욕심만 낸 것 같았어.”
어머니가 울음을 꾹 참은 듯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욕심으로 널 잃지 않으려고…….”
정요셉은 고개를 떨궜다.
“저는, 용서 안 해요.”
“그래… 그래도 돼.”
“제 용서까지 바라면 두 분은 정말 욕심이 많은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요셉에게는 부모님의 욕심으로 인한 상처가 차곡차곡 쌓였다. 정요셉과 부모님 사이의 관계가 빠르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저한테 올 땐 꼭 연락하시고요.”
“응, 그래…….”
모든 상황이 끝나는 시점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나비야!”
긴급한 화목현의 목소리에 정요셉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가자 범나비가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목현 형, 나비 왜 이래?”
“모르겠어.”
“일단, 일단은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러자.”
지금 차를 운전해서 범나비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었다. 정요셉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빠, 병원까지 데려다주세요. 부탁할게요.”
“빨리 데리고 오렴. 시동 켜놓고 있을게.”
그사이에 화목현이 범나비를 등에 업었다. 주이든은 화목현의 뒤를 따라가면서 범나비를 계속 불렀다.
“…야, 범나비!”
하지만 범나비는 눈을 뜨기는커녕 대답 없이 조용했다. 차에 도착하자 화목현이 범나비를 뒷좌석에 눕힌 뒤 멤버들에게 말했다.
“정진이랑 이든이는 여기에 남아. 나 혼자 갔다 올게.”
“으응…….”
“나는 나비를 챙기느라 바빠서 연호 형한테 연락을 못 할 것 같으니까, 너희들이 연호 형한테 말해줘.”
“어, 범나비 일어나면 연락 주고.”
그대로 화목현과 정요셉은 범나비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홀로 남겨진 주이든은 바로 이정진에게 달려갔다.
“형!”
이 사실을 이정진도 알아야 하기에.
* * *
멤버들이 죽는 꿈을 꾸다가 눈을 뜨자 병실이었다.
또 병실?
내가 인상을 쓰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소파에 앉아 있는 화목현이 보였다.
“목현 형…….”
내 부름에 화목현이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나비야, 깼어?”
“예, 그런데… 또 병원이에요?”
“병원이야.”
또 병원.
“…아, 그럼 지금 몇 시인데요?”
“지금 저녁이야.”
저녁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하더라.”
“…정말 심장엔 아무런 이상이 없대요?”
“그건 확인을 해봐야겠지.”
나는 손바닥으로 심장 쪽을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이상이 있다면 의사가 모를 리 없다. 내가 계속 심장을 문지르자 화목현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나비야? 또 심장이 아파?”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왜 안색이 안 좋아.”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꿈에 대해서 말했다.
“아마 나쁜 꿈을 꿔서 그럴 거예요.”
“나쁜 꿈?”
“…형들이 계속 죽는 꿈이요.”
화목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네가 힘들어서 자꾸 그런 꿈을 꾸는 것 같은데.”
내가 힘들어서?
“최근 들어 일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아. 의사 선생님 말로는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니까…….”
“…….”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도 있대.”
정신적 스트레스라…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다. 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화목현이 이어서 말했다.
“조금 있으면 연호 형 도착할 거야. 원래 내일 숙소 가려고 했는데 저녁에 가야겠다.”
“…어, 저 때문에.”
딸기도 따야 했는데. 그러자 화목현이 내 어깨를 잡더니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핸드폰을 보자 정요셉과 주이든이 딸기를 따고 찍은 사진이 떠 있었다.
“딸기는 요셉이랑 이든이가 다 땄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딸기 걱정은 안 해요.”
“이미 얼굴에 걱정하고 있다고 적혀 있거든요?”
화목현이 침대 테이블을 올리고는 자신이 사 온 죽을 올려두었다.
“자, 죽 사 왔어.”
“어… 감사해요. 다음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나비야, 그게 아니잖아.”
죽을 꺼내던 화목현이 행동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또 아프면 말해. 사람 놀라게 하지 말고.”
그런 말이었구나.
“알겠어요.”
내 대답과 동시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특별히 나비가 좋아하는 소고기죽으로 사 왔어.”
내가 소고기죽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목현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아플 때마다 소고기죽만 먹었잖아. 다 알거든?”
…이건 조금 감동이다.
그동안 화목현이 나를 살펴보고 있었구나. 소고기죽을 먹고 있자 병실 문이 열리더니 김연호가 등장했다.
“나비야, 아팠다며?”
“이제 괜찮아요.”
“괜찮다고 하니까 다행이네. 한동안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자.”
나는 소고기죽을 먹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 일본에 갈 건데… 괜찮겠지?”
웬 일본? 김연호의 대답 대신 화목현이 말해주었다.
“어, 일본에서 출연 제안이 들어왔대.”
“…아직 일본 데뷔도 안 했잖아요?”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가 일본에 수출됐다나 봐. 다음 달쯤 나온다고 그러던데.”
…아, 돌연프 때문이구나. 이렇게 일본에 갈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렇게 우리를 알리면 좋긴 하지. 일본 팬들도 계속 유입되고 있던데.
“아마 돌아온 연습생 프로젝트에 관련된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
“좋네요.”
김연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다행이야.”
나는 그릇을 잡고 소고기죽을 입에 넣었다.
“제가 없으면 큰일이긴 하죠.”
“그래, 이 녀석아. 아프지 말자, 응?”
김연호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가 몸 관리 잘할게요. 봐요. 소고기죽도 많이 먹었잖아요.”
요새 건강 관리를 잘 안 해서 밥도 제대로 먹은 적이 없긴 했다. 그런데 화목현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입을 열었다.
“어떻게 몸 관리를 할 건데?”
“잠도 잘 자고, 밥도 열심히 먹고 그럴게요.”
그때였다.
“…나비야, 지금까지 그걸 안 했다는 거지.”
“예?”
왜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 화목현은 뭔가를 눈치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안 하긴요…….”
내가 말을 흐리자 화목현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맞네… 왜 갑자기 이렇게 아프겠어.”
“아닌데… 정말로.”
“어제는 몇 시에 잤어?”
“어제요?”
어제는… 몇 시에 잤더라. 기억이 안 났다.
“새벽에 잤지?”
“…잠이 안 와서 밤에 산책하긴 했어요.”
“이상하게 숙소에 한 명이 없더라.”
“확인했어요?”
“새벽에 밖으로 나가서 운동하고 오는 멤버들이 있길래 확인하는 거지. 그런데…….”
화목현이 이러면 안 된다는 듯이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나비야, 잠이 안 온다고 해서 안 자고 그러면 안 돼.”
“예… 이제부터 안 그럴게요.”
“그러다가 패턴이 망가지면 몸이 원래대로 안 돌아와.”
“네…….”
점차 심해지는 화목현의 잔소리에 나는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어?”
“그럴게요.”
그때 김연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나비는 앞으로 잘 자는 모습 보여주면 일본 같이 가자.”
왜 갑자기 말이 그렇게 되는 거죠?
“저 잘 자요.”
“무슨 잠을 잘 자. 몸도 아팠으면서.”
“…그게.”
“나비는 내가 강경하게 나와야 말을 듣잖아.”
화목현의 말이 맞는 말이라서 딱히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여기에 김연호까지 거들었다.
“그럼. 아티스트는 몸 관리가 제일 중요해. 일본은 나중에 다시 가면 되는 거지만, 네 몸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잖아.”
“…제가 제대로 자는 모습을 보여주면 일본에 데려갈 거예요?”
김연호의 설득에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자고, 잘 먹어서 컨디션 최상으로 만들게요.”
“그래. 자, 약속.”
“…약속까지 해야 해요?”
“어, 해야지.”
화목현이 새끼손가락을 나에게 들이댔다. 나도 새끼손가락을 화목현의 새끼손가락에 걸고 약속했다.
“약속.”
그리고 화목현의 말을 따라 대답했다.
“약속.”
…잘되겠지.
* * *
병원에서 돌아온 후로는 숙소에서 멤버들의 감시를 받았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 덕분에 다행히 일본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가기 전날 화목현이 우리를 거실로 모았다. 멤버들은 방에서 나오자마자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나를 보는 화목현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나비야, 컨디션은?”
“컨디션은 좋아요.”
“그래……?”
내 말은 믿지도 않는지 화목현이 바로 정요셉한테 물었다.
“요셉아, 나비 요즘 잘 자고 있어?”
“어, 잘 자던데.”
“그럼 다행이네.”
이제 내 말도 의심하네…….
‘진짜 잘 잤는데.’
억울하지만 내 상태가 좋지 않긴 했으니까 일단은 넘어가자.
“목현 형! 무슨 일인데!”
주이든이 무슨 일로 불렀냐고 말하자 화목현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일본으로 가게 되었으니 제안할 게 있어서.”
“우리 해외는 처음이잖아! 나 떨려!”
2년 내내 국내만 돌아다녔으니 해외는 처음이었다. 주이든이 떨린다면서 소파 쿠션을 마구 때렸다.
“나도 떨리긴 해.”
이정진도 노트북을 하다가 말고 중얼거렸다.
“그날 기자들도 많을 거래.”
하긴 처음으로 가는 해외니까 기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때 화목현이 말했다.
“우리 이번에 공항 패션 컨셉 정해서 갈까?”
공항 패션 컨셉이라…….
이정진이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을 툭 뱉었다.
“그러면 옷을 똑같이 입을까?”
옷을 똑같이 입는다고? 괜찮은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 똑같은 옷이 뭐가 있더라.”
“…똑같은 옷은.”
우리는 곧장 옷장으로 가서 똑같은 옷을 찾아보았다.
똑같은 옷이 있긴 했다.
“벌써 설렌다!”
주이든이 옷을 고른다면서 바닥에 옷을 널브러트렸다.
후보 1, 청청
후보 2, 회색 후드티+검은색 바지+회색 코트
후보 3, 검은색 쫄티+청바지
공항 패션과 제일 어울리는 복장은 후보 2밖에 없는데. 날씨도 쌀쌀하니 괜찮을 것 같고.
“아… 뭔가 싱거운데.”
주이든이 턱을 문지르며 창고에 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어때?”
하트 머리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