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예능 살아남아라!(3)
뒤늦게 서고운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서고운 배우입니다. 카드는 스페이드예요.”
나랑 이남주도 인사를 하자 스피커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번째 바닷가의 찢어진 보물 지도가 사라집니다.]
동시에.
[첫 번째 바닷가의 찢어진 보물 지도가 사라집니다.]
저 멀리서 이서혁과 디아 선배님이 찢어진 보물 지도를 찾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찾았어!”
“이 행동 대장이 보물 지도를 찾았다!”
첫 번째 바닷가의 찢어진 보물 지도를 우리가 찾았다면, 세 번째 바닷가의 찢어진 보물 지도는 아마 박정후가 가져갔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서혁과 디아 선배님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나타난 서고운을 보고 놀랐다.
“서혁 후배?”
“고운 선배?”
그러자 디아 선배님이 물었다.
“서혁이 나이가 더 많지 않나?”
“고운 선배가 나보다 선배라서 선배라고 불러.”
서고운이 이어서 말했다.
“저는 서혁 오빠가 후배라서 후배라고 불러요.”
“애칭 같은 거지.”
그런 사이였구나.
서고운은 10년 차 배우로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자리를 잡고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혼자 있지?’
모두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낼 때 이서혁이 물었다.
“왜 혼자 있어?”
이서혁의 물음에 서고운이 웃었다.
“탈락자 소리 못 들으셨어요?”
“그거야 들었지…….”
혼자서 참가자들을 탈락시켰다는 말인가?
“네가 혼자서 다 탈락시켰다고?”
“네, 제가요.”
“이야, 성격 한번 화끈하네. 많이도 죽였네.”
“죽이다니~”
오해하기 딱 좋은 이서혁의 말에 서고운이 퉁명스럽게 정정했다.
“그냥 탈락시킨 거죠.”
“그래서 지금 나타난 이유는?”
“찢어진 보물 지도를 가진 참가자랑 있고 싶어서요.”
‘보통 머리가 아니네.’
서고운은 텐트에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우리가 다가오는 걸 확인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모두가 서고운을 데리고 갈지 말지 결정하고 있을 때였다.
“저한테 고기가 있어요.”
…고기? 고기가 있다는 서고운의 말에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고기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고운 선배, 고기는 어디에 있어?”
“텐트에 있어요.”
“텐트?”
텐트에 있다는 말에 이서혁은 곧장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로 있네?”
그렇다, 고기가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이런 생존 예능에서 에너지가 떨어지면 사람들의 예민함도 높아지고 싸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고운을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겠네.
그러자 디아 선배님이 박수를 두 번 쳤다.
“오늘은 여기서 잘게. 이 밤중에 움직이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우선 나는 고기 구울 불을 피울게.”
“저도 돕겠습니다.”
디아 선배님이 서고운과 불을 피웠고, 나는 젓가락 대용으로 나뭇가지를 찾을 생각이었다.
“남주 형, 저랑 같이 나뭇가지 찾으러 가죠?”
“어, 그래.”
나뭇가지를 찾을 동안 분량을 채울 대화나 나눌까.
“남주 형, 요새 뭐 하고 지냈어요?”
“…컴백 준비로 바빴죠.”
“미니 앨범?”
“음, 정규 앨범일 수도 있고.”
정규 앨범이라…….
“앨범 내는 주기가 빠르네요.”
“…뭐, 네스트는요?”
“우리도 앨범 준비로 바빠요.”
“그렇구나.”
이남주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주 보고 지내요.”
“…근데.”
그런데 하나 궁금한 점이 있었다. 이남주가 왜 살아남아라에 나왔을까. 엔터에서 일을 준 건가.
“그런데 남주 형, 앨범 준비로 바쁠 텐데 살아남아라는 왜 나왔어요?”
“간단해요.”
간단하다고?
“나비가 나온다고 해서 나왔어요.”
“누가 그랬어요?”
그러자 이남주가 입모양으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아… 시스템이?
“그렇군요. 제가 나와서…….”
“보고 싶기도 했고. 이런 예능 아니면 친한 동생 자주 볼 수 없잖아요?”
…그렇긴 하겠네. 나는 마지막 나뭇가지를 줍고서 말했다.
“고마워요.”
시스템이 하라는 대로 안 해도 될 텐데 나 때문에 온 거니까. 이남주도 나뭇가지를 더 줍더니 나에게 흔들었다.
“이제 고기 먹으러 가죠.”
***
나뭇가지를 가지고 왔을 때쯤, 사람들은 고기를 굽고 있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젓가락만 얹었네.’
바닷가 앞에서 먹는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숙소에서 소금을 가져온 보람을 느꼈다. 숙성된 고기인지 소금으로 간만 했을 뿐인데,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고운이 없었으면 고기도 못 먹었네.”
“그렇죠, 디아 언니!”
디아 선배님과 서고운은 친해졌는지 어느새 말까지 놓고 있었다. 우리가 없을 때 친해졌나.
‘응?’
서고운의 손바닥에는 점도 찍혀 있었다. 내가 손바닥의 점을 빤히 쳐다보자 서고운이 말했다.
“디아 언니가 찍으라고 하셔서.”
“아,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아시죠?”
“네, 알아요.”
그렇게 피웠던 불을 끄고 저녁 시간이 끝났다. 디아 선배님이 배를 문지르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제 고기도 먹었겠다… 설거지를 끝낸 다음에 돌아가면서 텐트 주변을 감시하자.”
설거지는 이서혁과 서고운이 하기로 했다. 주변 정리는 텐트에 남은 우리가 하고.
“설거지하는 곳이 안쪽에 있다고 했지?”
“서혁 형, 몇 번을 묻는 거예요.”
“우리 둘만 가니까 불안해서 그러지.”
이서혁한테 지도를 보여주면서 여기에 주택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이서혁은 알겠다며 서고운과 주택으로 떠났다.
텐트 안에서 구름 침낭을 꺼내서 잘 준비를 했다. 텐트 주변을 평평하게 만든 다음에 내가 가져온 신문지로 잘 공간을 마련했다.
‘모두가 텐트 안에서 잘 수는 없으니까…….’
대충 이부자리를 마련하고 자유를 즐길 겸, 바다 근처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노을이 빨리 지는 바람에 바다에는 별빛이 반짝였다.
잔잔한 파도 소리는 어떤 노래보다 아름답게 귀에 울렸다.
‘조용해서 힐링 되네.’
옆에 앉은 디아 선배님이 나한테 물을 건넸다.
“자, 여기 물.”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니야. 내가 고맙지. 텐트 주변을 감시해 준다고 하니까.”
제일 어린 내가 텐트 주변을 감시하는 역할로 정해졌다. 디아 선배님은 미안했는지 울상을 지었다.
“남주랑 나비는 멤버들 안 보고 싶어?”
…멤버들이 보고 싶냐고? 보고 싶긴 했다. 멤버들이 없는 예능은 어색했으니까.
“음… 보고 싶겠죠.”
“싶겠죠?”
“…뭐.”
디아 선배님이 고개를 돌려 이남주를 쳐다보았다.
“남주는?”
“저도 뭐…….”
“안 보고 싶구나?”
“아니요. 저는 보고 싶은데, 멤버들이 절 보고 싶어 할까 싶어서.”
그러자 디아 선배님이 크게 웃었다.
“남주야, 당연히 보고 싶지. 원래 원수도 떨어지면 보고 싶은 법이야.”
그 말에 이남주가 입꼬리를 올렸다.
“약간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럼 너희들은 멤버 중에 독특한 멤버가 있어?”
“저흰 평범해요.”
크래프트가 평범하다고? 얼굴부터가 심상치 않지 않나… 너튜브 자체 콘텐츠를 보니까 은근히 독특한 멤버들이 많던데.
“나비는?”
“저는…….”
그 순간 감성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는 주이든이 떠올랐다. 심신미약일 때는 시집을 읽거나 기쁠 때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끔씩 뜨개질도 한다.
“재밌는 취미를 가진 형이 있긴 한데… 알려주면 큰일이 날 수도 있어요.”
“알려주면 안 되는 거야?”
“그 형이 왜 알려줬냐고 잔소리할 것 같아서요.”
벌써부터 귀가 따가웠다. 주이든의 잔소리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디아 선배님이 흥미로운 눈길로 나를 훑었다.
“그런데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는데?”
“…아.”
그랬나. 나는 괜히 입꼬리를 만졌다.
“오랜만에 후배들과 소통하니까 재밌다. 내가 은근히 인맥이 좁아서…….”
하긴 탄탄한 팬덤을 가진 것에 비해 위즈는 예능에 잘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디아 선배님이 예능에 잘 나오는 편이었지만.
“너희들, 나중에 인기 많아졌다고 나 무시하고 그러면 안 돼.”
그럴 리가. 벼가 왜 익으면 숙이겠는가.
“전혀요.”
“절대.”
우리 둘 다 단호하게 말하자 디아 선배님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는데,
“그런데 설거지하러 간 둘은 왜 안 와? 무슨 한 땀 한 땀 씻나.”
…그러게? 길을 못 찾겠다면 다시 여기로 돌아오면 될 텐데.
“설마 다른 참가자한테 붙잡힌 건 아니겠죠?”
이서혁이 이렇게 늦을 리가 없다. 어디 놀러 갈 곳도 없지 않은가. 하물며 이서혁이 배신할 성격인가?
“…하긴 너무 늦다?”
디아 선배님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탈락이라도 했으면 탈락했다는 멘트가 나올 텐데.”
이남주의 말에 우리는 모래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로 붙잡혔다면 우리가 어떤 방법을…….”
방법? 이남주는 지도가 있고 디아 선배님은…….
“디아 선배님은 어떤 능력이 있어요?”
“나는 탈락 면제권이 있어.”
“탈락 면제권이 뭔데요?”
“카드를 빼앗겨도 목숨이 하나 더 있다는 말이야.”
…엄청 좋은 능력인데? 그러자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디아 선배님, 제가 좋은 제안을 해도 될까요? 간단하고 아주 재밌을 거예요.”
그와 더불어 재밌는 분량도 나올 것이다.
“어떤 제안인데?”
“만약에 서혁 형과 고운 선배님이 다른 참가자에게 붙잡혔다면, 디아 선배님과 저는 죽은 척을 하죠.”
“죽은 척을 한다?”
“예, 그러면 재밌는 분량이 나오지 않을까요.”
나는 씩 웃었다.
***
설거지를 하려고 주택에 들른 이서혁은 박정후한테 붙잡히고 말았다.
“젠장…….”
하필 손이 묶여 버려 꼴이 좋지 않았다.
“서혁 형, 왜 나한테 돌을 줬어요?”
“그거 내가 준 거 아닌데?”
“범나비랑 같은 편이잖아요.”
“그건 맞지.”
“나랑 장난해요?”
박정후는 가만히 묶여 있는 이서혁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바라는 게 뭔데? 이 똥 같은 새끼야.”
이서혁은 욕을 내뱉었다.
“바라는 건 없고.”
박정후는 서고운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서고운 선배가 나랑 같은 카드 같던데.”
“…….”
“우리가 같은 편이면 좋지 않을까요?”
같은 카드라고? 이서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박정후가 품에 넣어놨던 카드 목걸이를 빼 들며 말했다.
“제가 스페이드라서 아는데, 스페이드는 총으로 탈락시킬 수 있잖아요.”
“음… 그럴까요?”
“오, 이렇게 빠르게 넘어오면 우리는 좋지.”
그때 서고운이 손바닥을 펼쳤다. 이서혁은 곧장 그 신호를 알아차렸다.
“정후야, 우리 돌연프의 끈끈한 우정은 없는 거니?”
“우린 만난 적도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돌연프 동기라는 사실만으로…….”
“형은 중간에 나갔잖아요.”
이서혁의 애절한 호소도 통하지 않았다.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박정후는 팔짱을 꼈다.
“서혁 형 팀원들은 안 오나요?”
“안 오는 게 아니라 날 무척이나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거야.”
호언장담하는 이서혁을 보면서 박정후는 어이없는 비웃음을 흘렸다.
“걱정했다면 벌써 왔겠죠.”
“왔는데?”
그때 이서혁이 뒤를 보라며 턱짓했다. 박정후가 뒤를 보자 낯익은 세 명이 보였다.
“진짜로 붙잡혔잖아?”
디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외치자 범나비가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진짜로 붙잡혔네요.”
그럴수록 박정후는 범나비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해요.”
“우린 서혁 형을 줄게. 너는 뭐 줄래?”
이서혁이 할 말이 많은 표정을 짓자마자 범나비가 앞으로 나섰다. 이서혁은 쟤가 왜 저러나 싶었다.
“제 목숨을 드릴게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