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3화. >
세상이 시끄러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3차 대전으로 발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북아연맹군은 전방위에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었고, 미군 역시 NATO연합군과 함께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SKY항공우주국의 핵무장 로켓과 미군의 첨단 무기들이 모두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스닥 연일 하락! 세계 경제위기 이제 곧 앞이다.
-코스피 연일 하락, SKY가 흔들리고 있다.
-SKY 그룹의 오너 천우진, 동북아연맹군 사령관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다?
-아직도 연락두절, 방송헬기 우크라이나 상공 촬영 불가. 심화되는 러-우 전쟁.
꼴도 보기 싫은 기사들을 읽고 있던 루시가 신경질적으로 신문을 집어 던져 버리고는 말했다.
"미스 송."
"네, 사모님."
"오늘부터 신문 들이지 마세요."
"네, 사모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루시가 케이스가 튜닝된 한정판 구름폰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진..."
고개를 휙휙 털며 눈을 수차례 감았다 뜬다.
"정신차려 루시! 넌 엄마야!"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다짐하듯 외친 루시는 방을 빠져나가며 언제 우울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도도도.
태양이와 별이가 루시를 발견하고는 마룻바닥이 부서져라 달려온다.
"엄마! 엄마!"
"엄마~"
두 아이를 안아주고는 허리를 일으켜 세우는데 제법 무게가 느껴진다.
"어이구 내새끼들, 언제 이렇게 컸데? 이제 엄마가 안아주기 벅차네?"
"헤헤, 태양이 무거워?"
"잘 먹고, 무럭무럭 커서 무거워졌네?"
"별이는?"
"별이도 무거워 졌지~"
"히히."
세상에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 밝게 웃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걱정은 저 멀리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자, 아침밥 먹으러 가야지?"
"웅!"
두 아이를 힘겹게 안고 걸음을 옮기는데 아장아장, 루나가 걸어와 다리춤에 매달린다.
"나 내려줘 엄마!"
태양이의 말에 루시가 물었다.
"왜?"
"루나 안아줘, 나는 이제 혼자서도 잘 걸어."
"우와, 우리 태양이 오빠네?"
"히힛."
"나도, 나도 내릴래 엄마! 엄마 힘드니까!"
세상 사랑스럽다는 눈이 된 루시가 태양이와 별이의 볼에 입맞춤을 해주고는 루나를 안아 들었다.
"귀여운 우리딸, 어디서부터 걸어온거야?"
"어마어마!"
태양이와 별이보다는 아직은 어린 루나.
자연스럽게 옹알이를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단어들을 뱉지는 못하는 상태.
루나가 푹, 루시의 품에 안겨 있다가 잘 가누지도 못하는 목을 쭉 빼고는 루시의 뒤쪽을 바라본다.
"아바? 아바?"
고개를 갸웃거리며 루시를 바라보는 루나.
"아빠는... 금방 오실거야."
금세 우울한 표정이 된 루나, 루시는 루나가 보도록 더욱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 오시기 전에 밥도 잘 먹고, 그러고 있어야 아빠가 좋아하시지? 그렇지 태양아, 별아?"
"응! 아빠는 우리 살 빠지면 싫어해!"
"맞아! 토실토실한 게 좋다고 그랬어!"
"자! 그러면 오늘도 맛있게 아침 먹자?"
"웅!"
단란하게 식탁에 모이는 루시네 가족을 보고는 아산댁이 흐뭇하게 웃는다.
"오늘 메뉴는 뭐에요?"
루시의 물음에 아산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최대한 자극적인 음식은 빼고, 유기농 식단으로 꾸렸어요."
"어머 진짜네, 역시 아주머니 최고."
루시는 평소보다 더 밝게 아산댁 아주머니를 칭찬했다. 오묘한 표정의 아산댁 아주머니는 개의치 않고 반찬 접시 하나를 스윽, 루시에게 내밀며 말했다.
"마삼채에요, 우리 축복이 많이 먹어야죠?"
루시가 어느새 봉긋 솟아오른 복부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좋은 벌꿀로 버무려서 삼의 쓴 맛이 덜 느껴지실 거에요. 우리 태양이 별이는 특별히 씁쓸한 삼은 빼고 마만 넣어지~"
아이들은 어서 먹어보고 싶다는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루시는 얼른 젓가락을 들어 마삼채를 입 안에 가져간다.
"오!"
눈이 번뜩이는 고소함과 삼의 산뜻함, 그리고 벌꿀의 달콤함의 조합. 한 입 씹었을 뿐이지만, 절로 건강해지는 그런 음식이었다.
오늘도 아산댁에게 엄지를 척 들어올린 루시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먹자."
"네~"
아산댁 아주머니는 자연스럽게 루나의 옆자리에 앉아 특제 이유식을 떠 먹여주고, 가족끼리의 단란한 식사는 그렇게 이어졌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즘.
"오늘은 외출을 삼가시는 게 어떨까요?"
아산댁 아주머니의 권유에 루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요?"
"바깥에 언론사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아."
루시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둡게 변했다.
태양이와 별이가 엄마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는 수저질을 천천히 하며 눈치를 살핀다.
"태양이, 별이. 오늘 동물원 가고 싶지?"
태양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니야! 다음에 아빠랑 같이 가도 돼!"
"맞아, 아빠랑 엄마랑 같이가면 더 재밌을 것 같아!"
무조건 가겠다고 떼를 써도 모자랄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루시는 오히려 씁쓸해졌다.
우진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러시아의 암살 공격이 감행된지 겨우 3일째에 이 정도라니, 앞으로는 어떨지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루시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뭐야? 아빠랑 가면 더 재미있고, 엄마랑 가면 덜 재미있어? 이 엄마는 너무너무 서운한데?"
"아, 아니 그, 그게 아니고!"
"엄마랑 가도 재미있어!"
"맞아! 엄마랑 가도 재미있어!"
"그럼 원래대로 동물원 가는거다?"
"정말? 그래도 돼?"
별이의 물음에 루시가 보란듯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럼! 엄마 아빠보다 더 재미있게 놀아줄거야, 그러니까 태양이 별이는 나중에 아빠 오시면 엄마랑 노는게 더 재미있었다고 막 자랑해야 해?"
"웅! 그럴게!"
"히힛, 재미있겠다. 오늘 유나 아주머니가 사자 만질 수 있게 해준다고 그랬어!"
"어머? 정말?"
"응! 이번에 레온이 새끼를 낳았데!"
"새끼 사자를 만지는 거구나?"
"응응!"
녀석들.
저렇게 잔뜩 기대를 하고 있으면서 엄마를 생각해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한 것이었다.
SKY에서 운영하는 SKY랜드.
그곳의 사육사와 모종의 약속이 있었던 듯 보이는 태양이와 별이.
루시는 더욱 표 나도록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엄마가 먼저 레온이의 아가 사자를 만져야지!"
"아니야! 태양이가 먼저 만질거야!"
"아니거든! 별이가 먼저 만질거거든!"
"나나! 나나!"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
아산댁은 그런 아이들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한껏 차려입은 루시네 가족이 바깥으로 나오자 차량 앞을 막는 취재진들.
루시네 가족 차량 앞에 있던 검은색 벤 차량에서 내린 SKY PMC대원들이 그들을 뒤로 물러나게 만드려고 노력하지만, 몸으로 마구 부딪혀 오는 그들을 쉽사리 물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결심한 듯, 문 손잡이로 손을 가져가는 루시.
"사모님."
아산댁이 그녀를 만류한다.
루시는 싱긋 웃어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아산댁에게 말했다.
"다녀올게요, 아가 사자들이 자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너무 실망할 것 같으니까."
"괜찮으시겠어요?"
"저도 엄마에요."
아산댁이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차량에 타 있던 다른 여인들을에게 눈짓한다.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차량에서 내리고는 루시가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철컥.
촤라라락, 촤라라락.
루시가 차량에서 내리자 번개보다 반짝이는 플래시 세례를 퍼붓는 취재진.
루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는 그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천우진 사령관님에게 연락이 닿으셨습니까?"
"천우진 회장님이 실종되신지 벌써 3일째인데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암살작전이 성공했다는 여론이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우진 사령관님이 작고하셨다면, 사실상 동북아연맹군의 패배라는 의견이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우진 회장님의 자제분들은 아버지를 찾지는 않나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 된 루시가 우진의 죽음을 입에 담았던 기자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자님들은 마치, 제 남편이 죽었으면 싶으신가 봐요?"
"예?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전쟁터로 나간 군인이 '연락'이 되지 않는 게 더 정상적인 일 아닐까요? 연락되지 않는 군인은 '모두' 죽었다 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 그럼 부군께서 살아계신다는 말씀입니까?"
루시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자님, 내기 하실래요?"
"예? 무,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남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내기 하시겠냐고요?"
"예에?"
"나는 내 남편은 절대 죽지 않았다는 것에, 내가 가진 모든것을 걸겠습니다. 기자님은 무엇을 걸 수 있죠?"
"그, 그런..."
루시가 취재진들의 카메라를 하나하나 쳐다보며 토해내듯 말했다.
"앞으로! 우리집에 그런 질문을 들고 찾아오는 기자님들이 없으셨으면 좋겠군요! 여기계신 언론사 이름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 남편은 살아있고! SKY는 러시아 따위에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감히 일개 국가가 SKY를 넘볼 순 없으니까요."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이상한 기세에, 기자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도 까먹어 버렸다.
다행이라면 그녀의 발언은 언론사 카메라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었다.
"그러니 감히 내 앞에서! 내 남편을 욕되게 하지 마세요. 더 할 말은 없는 것 같으니, 길을 비켜주시겠어요? 오늘 우리 동물원의 레온이가 아가 사자를 낳았거든요."
***
모스크바 대통령 관저.
TV를 통해 천우진의 집앞에서 취재진 앞에 선 천우진의 부인을 보고 있던 푸틴이 크리스털 잔을 TV로 던져버렸다.
"뭐? 일개 국가? 푸틴 따위? 저런 미친년이!"
강력하고 오만한 발언.
푸틴의 입장에서 천우진의 부인인 루이애나 록펠러의 발언은 그런 것이었다.
"천우진 어떻게 됐어!"
버럭 소리를 지른 푸틴.
정보총국장이 입술을 핥으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아직도! 생사를 몰라?"
"죄송합니다. 각하!"
"제기랄!"
"전선은 어떻게 되고 있지?"
"북극해를 통해 진입한 NATO연합군과 미군에 의해 상트페테부르크는 이미 함락된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동북아 연맹군에 의해 노보시비르스크, 아르크추크, 야쿠츠쿠의 군사시설 역시, 점령당했습니다."
"제기랄! 사실상 모스크바 빼고는 모든 전선이 밀린다는 얘기잖아!"
"그, 그것이... 아무래도 미사일 사용이 어렵다 보니... 게다가 우리가 전투기등을 동원하면 저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
"핑계! 핑계! 써보지도 못할 무기를 위해 우리의 인민들을 갈아넣었다고 하면 세상이 비웃어!"
정보총국장도 억울했다.
자신 역시 첨단 무기들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지만,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뉜 군부 세력들에게 푸틴은 이미 신뢰를 잃은 상황.
푸틴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군인들이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우리집에 그런 질문을 들고 찾아오는 기자님들이 없으셨으면 좋겠군요! 여기계신 언론사 이름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 남편은 살아있고! SKY는 러시아 따위에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감히 일개 국가가 SKY를 넘볼 순 없으니까요.
TV속, 여리여리한 여인이 입을 움직이자 여장부라해도 믿을 것 같은 살벌하고 자신만만한 발언이 이어지고.
"저런 찢어 죽일년! 저년을 잡아와! 내 밑에서 비명을 지르게 만들겠어!"
이성을 잃은 푸틴이 도 넘는 악다구니를 내뱉었다.
"거 듣는 내가 다 거북하네 시발."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한국어.
"누구냐!"
보좌관과 정보총국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푸틴의 온 몸에 붉은색 레이저 포인트가 가득한 모습을.
천천히,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
그는 러시아의 최정예부대의 암살이란 화마를 뚫고 나온 천우진이었다.
"입에 걸레를 물었나 개새끼가."
그리고 그런 그의 노골적인 살기가 푸틴에게 닿아 있었다.
< 제 44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