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5화. >
거의 파라솔 만한 크기의 검은색 우산을 들고 나를 따라오는 호석, 그가 만들어준 그늘 덕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해 사막 한 가운데 묶여 있는 빈 라덴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야, 이 뜨거운 날씨에 개미들이 많기도 하네."
모래보다는 조금더 짙은 색감을 지닌 작은 생명체들이 바쁘게 길을 오간다. 그 생명체들의 입에는 빈라덴의 각질이라던지, 솜털이라던지, 빈라덴의 몸뚱이에 발라놓은 '꿀'이 물려 있을 터였다.
나와 호석, 그리고 몇몇 대원들의 발걸음 진동에 개미들이 혼비백산 자신의 작은 숨을 지키기위해 흩어지고. 꿀 덕분에 보습이 훌륭했는지 사막 한가운데에 묶여 있었음에도 충분히 수분기를 머금고 있는 빈라덴에게 물었다.
"꼭두각시. 생각 있나?"
"크윽..."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신의 전사, 신의 사자 따위의 말을 내뱉던 주둥이가 가만히 있었다.
놈을 내려다 보던 시선을 돌려 손목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몰랐는데 아프간에 치명적인 독은 없지만, 고통스러운 독을 가지고 있는 전갈이 있다더라고? 넥스트 타임은 스콜피온으로 가자고."
부들부들 몸을 떨던 빈라덴이 그 간사한 주둥이를 열었다.
"하겠다."
"혓바닥이 짧네."
아직 자존심이 남았는지, 공손하지 않은 말투를 뱉은 빈라덴에게 빈정거렸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공손하게 다시 말할지, 아니면 말하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모습.
"예, 예썰... 당신의 꼭두각시가 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늦었어."
"뭐?"
"이틀 뒤에 보자고, 그 동안은 전갈이랑 어울리고 있는 걸로, 같은 벌레들끼리 합이 잘 맞았으면 좋겠군."
"하, 하겠다니까! 하겠다고!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라고!"
"아니야, 아니야. 아직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신의 전사라는 놈이 가진 불굴의 정신력? 뭐 그런거 말이야."
"진짜 잘 할 자신 있다니까?"
나는 그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호석을 돌아보았다. 내 눈빛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호석이 우산을 들지 않은 왼손을 들어 올리자 마을 어귀에서 네 명의 대원이 각자 플라스틱 박스 하나씩을 가지고 나타났다. 흰색 불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는 모래나 흙과 같은 비주얼의 무엇인가가 가득 담겨 있었다.
툭, 툭, 툭, 툭.
네 개의 상자가 도착하고, 이어서 몇몇 대원들이 각목과 야삽, 그리고 제법 넓적한 목재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슬슬 개미들은 우리가 제 놈들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빈라덴의 몸뚱이에 발라져있는 꿀의 달콤한 유혹에 빠졌는지 빈라덴의 몸뚱이를 물어 뜯고 있었다.
부들부들 온 몸을 떨며 빈라덴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무엇이든 시키신 일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원들은 놈의 투박한 영어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제 할일을 이어나갔다. 나는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각목은 기둥이 되고 넓다란 목재는 어느새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 적당한 '관'처럼 되었다.
관의 바닥까지 두꺼운 목재를 깔아 놓았으니 전갈이 목재를 뚫고 사막의 모래에 몸을 숨길 일은 없을 터.
흰색 불투명했던 플라스틱 상자의 뚜껑을 열어 관 속에 쏟아내는 대원들.
후두둑 떨어지는 모래속에 모래보다 조금 밝은 색깔의 전갈들이 속속 보였다. 그리고 곁눈질로 그것을 확인하고 있던 빈라덴이 이제는 거의 절규를 내뱉고 있었다.
"제발! 제발 시켜만 주십시오! 제발!"
"자, 정신수양 해야지? 신에게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내 말이 신호라도 되는 양, 대원들은 빈라덴의 묶여 있는 팔 다리 포박을 풀어내고는 그대로 관 안에 집어 넣는다.
빈라덴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지 발버둥을 치지만 훈련된 SKY PMC의 정예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놈의 저항이 짜증났는지 대원 하나가 그대로 팔을 휘둘러 놈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렸다.
퍽.
"끄윽, 싫어! 싫다고!"
놈이 관 속으로 들어가자 전갈들은 황급히 관속 모래 안으로 몸뚱이를 감춘다.
탕,탕,탕.
작은 망치를 휘둘러 관 뚜껑에 못질을 하기 시작하는 대원들,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된 빈라덴의 두 눈에는 어느새 습기가 차 오르기 시작한다.
"공포와 고통의 눈물이 아닌 네 권력욕에 쓰러져간 사람들을 위해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게 어때?"
"제발... 꺼내 줘!"
그래, 쇠 귀에 경 읽기를 할 필요는 없지 싶었다.
"전갈들의 신경독에 의해, 보통의 고통보다 수배 이상 고통스럽다고 하더군, 듣기로는 불타는 것과 비슷하다나? 걱정하지마 죽지는 않아."
호석이 내 말에 손짓하니, 대원 중 하나가 주사기를 꺼내 빈라덴의 목 부분에 찌르더니 주사액을 주입한다.
"혹시모를 독이 불안하더군, 그 해독제가 지켜줄걸?"
탕, 탕, 탕.
다시 망치질이 시작되고 입이가려지고, 코가 가려지고 놈의 공포에 찬 두 눈동자가 날 똑바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놈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잘자요."
***
중국의 주석궁.
장저민의 보좌관 왕지언이 보고를 잇는다.
"현재 SKY그룹에서 나온 직원들이 타클라마칸 사막 내부로 진입했다는 보고입니다."
"몇 시쯤?"
"약 7시간 전 입니다."
시계를 흘낏 바라본 장저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보고가 늦었어?"
"중요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헤 그곳에 계신 각하께 보고를 미뤘습니다."
"으음."
그곳.
그곳은 장저민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었다. 말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곳이지 여인들에게 둘러 싸여 왕처럼 대접이나 받는 짓거리를 하는 곳이었다.
"뭐, 별 일은 없었겠지?"
"예, 사막 내부까지 안내인을 붙일까 했으나, 괜한 일로 그들의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아, 입구까지만 안내하라 지시했습니다."
"오랜만에 일처리가 제법이군."
"감사합니다."
"들고가던 자재는 확인 했나?"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장저민이 인상을 찌푸린다.
"왜?"
"그것 역시, 우선은 그들에게 선의를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을 믿어야 놈들에게서 기술을 가져오는 것이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일견 맞는말 같지만 장저민은 못내 찝찝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직접 화물을 싣고 왔다고?"
"예, 각하."
"쯧, 검사를 했어야 할텐데."
"화물 트럭 2대 분량의 짐이었습니다. 무엇인가 우리에게 위협될만한 것을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왕지언의 말이 제법 설득력 있었을까 장저민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베이스 캠프 건설이 목적이라 했고, 짐을 옮기는 동안 확인한 공안대장 왕자헌의 말로는 시멘트와 건설장비들이 주를 이뤘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래?"
"예, 설령 이상한 물건을 옮겼다 하더라도, 생화학무기만 아니라면, 그 험지에서 이렇다할 피해를 주지 못할 겁니다."
"하기사, SKY그룹이 쓸데없이 우리를 적으로 만들지는 않겠지, 우리 인민들에게 제 놈들의 물건을 공급할 시장 이득을 무시하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들어올린 장저민이 SKY그룹의 대한 보고서를 읽다가 탐욕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읊조렸다.
"SKY전자의 2001년 4분기 매출이 640억 달러라, 3분기 대비 20퍼센트 증가. 참 맛 좋은 먹잇감 아닌가?"
"그렇습니다 각하."
"대범하고 대쪽같은 인물인데 너무 겁이 없어."
"그렇습니까?"
"SKY LINE이란 회사도 분기 실적이 130억 달러나 되는군, 이런 커다란 놈들을 두개나 훌쩍 던져주지 않는가?"
자신의 말이 만족스러운지 홀로 '크하하'하고는 크게 웃는 장저민.
"적당히 뽑아 먹을 거 뽑아 먹고, 규제를 바꾸자고, 그러면 위명은 내것이 될 거고, 천가는 땅을 치며 후회하겠지. 역시 젊음이 좋지만 무조건 좋은 것은 또 아닌것 같아. 그렇잖은가?"
"예, 각하."
"쯧쯧, 사람 참, 반응 하고는... 거기로 가자."
'거기'
즉, 아까 얘기했던 '그곳'을 뜻했다.
자신을 '신'처럼 대우해줄 여인들이 가득한 곳. 신격화 시킨 주석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이 많은 그곳을 말이다.
"예, 각하."
왕지언은 일언반구의 말 없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장저민이 '그곳'에 가게끔 준비를 시작했다.
***
부쉬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국무회의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짜증난 다는 듯 툭 하니 말을 뱉어냈다.
"도대체 왜 믿질 않는거야?"
"심증 뿐이지 물증이 아니냐는 게 그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여간 EU놈들은 사사 건건, 쯧."
"이라크에 제대로 된 조사단을 파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분명 대량살상무기를 개발중이라는 첩보는 확실합니다."
각부처의 장차관들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의 말에 '그러니까!'하고 팍 짜증을 낸 부시.
이내 심호흡을 하며 묻는다.
"후우, 세계 평화와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명분으로 삼으면?"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그 정도 명분은 부차적이어야지 그것이 메인이 되어서는 안됐다. 확실한 명분, 그러니까 '생화학무기' 혹은 '대량살상무기'와 같은 키워드가 필요했다. 전 인류가 '아하~'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말이다.
"그 놈들이 분명 꿍꿍이가 있을텐데... 으음."
"마이프레지던트, 아직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니 조금 더 지켜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만간 놈들은 분명 어떤 움직임이 있을겁니다. 우리의 압박에 후세인 놈도 살고 싶을테니까요."
"그런가?"
"예! 24시간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있겠습니다."
"제기랄 별 수 없는가..."
장내가 조용해지자 슬그머니 손을 들고 발언을 하는 한 군인. 그는 중부 사령관 컬린 포월이었다.
"우선 아프간부터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현재 이라크와 문제로 철수한 군인들 때문에 문제가 붉어지고 있습니다. 각지에서 산발적인 탈레반과 알카에다 잔존세력의 테러가 심각한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쯧, 북부 동맹군은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입니까?"
"알 카에다와 탈레반 잔존 세력이 아프간 내부의 일반인들을 자꾸 동조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발전이 없는 인간들이군 쯧. 거기에 투자되는 우리 군인들의 국방비가 얼마인줄이나 알고 하는 말씀입니까?"
국가의 재무를 떠드니 말문이 막히는 포월.
결국 다시 화제는 아프간이 아닌 이라크 문제로 넘어갔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 그리고 알 카에다를 별것 아닌것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무너뜨렸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잔존 세력의 뿌리를 뽑지 않고, 그것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 올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초 강대국 미국이고, 상대는 고작 '무장단체'라는 단체 일 뿐이기에 하는 방심이었다.
***
쿵, 쿠궁.
간헐쩍으로 몸을 떠는 관.
-크윽, 하윽, 큽.
관의 작은 틈새로 오사마 빈 라덴의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 나온다. 놈에게 주사했던 약에는 아드라넬린까지 포함되어 있었기에 기절하기도 쉽지 않았을테다.
내가 관짝의 앞에 서자 호석의 수신호에 대원들이 빠루를 가지고 관의 뚜껑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콰직.
"으어헝! 헬프미, 헬프미 플리즈, 플리즈 헬프미."
신의 구원소리라도 들은 양, 간절함이 뚝뚝 흐르는 음성, 뚜껑이 조금 부서졌는데 그 바깥으로 온갖 오물을 햇빛에 바싹 말린 듯한 악취에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콰직, 콰직.
이내 완전히 놈의 얼굴부분 뚜껑을 뜯어내니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따가운 햇살을 맞이한 오사마 빈 라덴.
"라덴이 잘 잤어?"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응, 그래 보인다."
그의 두눈은 PMC대원들보다 더 충직해 보였다.
< 제 20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