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4화. >
분노가 철철 넘치는 얼굴, 자신이 만든 단체에서 신처럼 떠받음을 받으며 살았더니 똥인지 된장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러고도 무사 할 것 같아?"
되려 제 놈이 잘났다고 중동 특유의 발음으로 뱉어내는 영어. 오사마 빈 라덴과 미국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
그러니 그가 영어를 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무사 할 것 같은데?"
"우리 신의 전사들이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네 놈뿐 아니라, 네 놈의 기업도, 국가도."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네가 크게 착각하는 게 있는 모양인데."
그게 무엇이냐는 듯 날 빤히 바라보는 그.
"네가 있든 없든 내게 중요하지 않아. 너는 그냥 수단이야 조금더 편한길로 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
내 앞에 있는 이 놈은 누군가의 '정의'로도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그런 놈일테다. 나라고 비위가 좋아서 이 놈을 이렇게 두겠는가.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교육좀 시키죠, 내일 다시 보는걸로."
"예, 빅보스."
다시 놈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꼭두각시, 그게 되고 싶을 때. 그때 간절하게 날 부르라고."
절대 그럴일 없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는 두 눈.
나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방 안을 빠져나갔다.
나를 스쳐 방 안으로 진입하는 대원들, 얼굴까지 검은색 복면을 덮어쓰고 있으나, 그들의 눈은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복면 안쪽에 일견 비틀린 입꼬리가 보이는 착각까지 일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프간에서 지내는 몇달동안, 알카에다와 같은 수니파의 악랄함에 치를 떨었을테다. 파주 양성소에서 거친 혹독한 훈련이 아니었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상자가 발생했을 터.
훈련이 더 잔인했었다는 풍문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 훈련때문에 수니파의 이가 갈리는 공격에도 무탈 할 수 있었다며 나를 존경에 마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 대원들이었다.
"끄으으으으으!"
비명조차 제대로 토해낼 수 없는 신음을 뒤로하고 바깥으로 나가니 대원들이 어느새 도열하고는 내게 소리 없는 경례를 올린다.
그런 대원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정도였기에 미안했다.
"고생했다. 덕분에 두발 뻗고 잘 수 있었어."
자연스러운 하대였지만 대원들은 불쾌해 하지 않았다.
"No. 23, 네 여동생이 이번에 반에서 1등을 했더군, 어학연수를 약속했더니 밝게 웃더라, 그때 23번 너도 같이 가지?"
"감사합니다 빅 보스!"
한명한명, 그들의 가족에 대한 안부를 전하고, 포상을 얘기해줬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대원들은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원들의 코드네임을 일일이 불러주며 그들의 공적을 치사했다.
그러고 이제는 단체로 보상을 받아야 할 때.
슬쩍 고개를 돌리니 호석이 준비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와 함께 이곳 까지 황량한 사막을 달려온 커다란 물류차 2대의 윙바디(적재함)이 열린다.
GOP혹은 GP같은 곳에서 병사들이 열광하는 차량, 일명 황금마차.
적재함 가득 공산품이 그득한 차량에 열광하는 대원들.
"경계는 나와 함께 온 대원들과 경호팀이 진행한다. 고생한 대원들은 즐겨라!"
맥주부터 시작해 각종 주류까지 한국에서 손수, 전용기에 실어서 가져왔더니 여기 저기서 정자세로 얼어 있던 대원들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해! 선착순이다! 다 즐겨!"
""우와아아아악!""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트럭에 올라 한아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먹거리를 고르는 대원들.
나와 호석은 절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
SKY AIR의 화물선이 신장위구르의 새고 공항이라는 작은 공항에 착륙했다. 화물선이지만 특이하게도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제법 많이 내리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공안들.
정장에 서류가방. 마치 비즈니스 맨들처럼 등장한 사내들이 공안들에게 서류하나를 내밀었다.
"허업!"
장저민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서류.
서류가 의미하는 것은 프리패스였다. 어떠한 절차도 깡그리 무시 할 수 있는. 공안들에게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서류였다. 서류가 의미하는 것은 프리패스, 어떠한 절차도 깡그리 무시 할 수 있는 절대의 서와 같은 의미가 공안들에게는 있었다.
"바깥에 우리 화물차들이 대기중인데, 안쪽까지 들어와도 되겠습니까?"
정중한 중국어로 질문하는 SKY그룹의 직원.
공안은 경례를 올렸다 내리며 말했다.
"바로 열어드리겠습니다."
작은 공항이었기에 활주로 안쪽에서도 바깥쪽의 낮은 철책너머 화물차들이 보였다. 약간의 수신호가 지나가 철책이 양쪽으로 열리며 화물차가 활주로를 달려 SKY AIR의 화물선 앞에 멈추어 선다.
"화물 싣는 것을 도와드릴까요?"
'권위적이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중국 공안들이지만 몹시 친절한 모습에 SKY그룹의 직원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평소에는 개 지랄을 떨면서..."
"아, 통역관을 부를까요?"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한국말을 했군요, 우리 직원들이 알아서 옮길겁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서류에 보니 목적지까지 호위, 호송을 도와드리라 나와있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SKY 직원.
"음, 굳이 힘들다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닙니다. 목적지를 보니 치안이 그리 발달한 지역이 아니라 공안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편하실겁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사막 내부에서는 어렵겠지만 그 전까지는 안내를 책임지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화물차를 슬쩍 보며 말을 잇는 공안.
"사막에서는 저런 대형 화물차들이 돌아다니기 어려울겁니다."
"예, 타클라마칸 입구 쪽에 따로 차량을 준비해두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막에서 뭘 하시려고?"
SKY 그룹의 직원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지반 조사와 가능하다면 베이스 캠프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거의 다 건설 자재들입니다."
"그렇군요. 원래는 절차상 화물을 확인해야 합니다만, 공문이 있으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안의 말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직원.
"무기라도 잔뜩 실려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싶니까?"
직원의 농담에 피식 웃는 공안이 말한다.
"다 주석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죠."
확고한 믿음.
확신.
과연 신뢰인지 아니면 공포로 인한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도 편의를 봐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공안의 말이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입구.
SKY그룹의 책임자에게 찾아온 공안대장이 안타깝다는 가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도 이곳 너머로는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아 도움이 어렵겠습니다."
공안대장의 말에 SKY그룹의 책임자는 짚차의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씩 빼면서 말했다.
"예, 괜찮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짚차로 이동하죠.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쪽에서도 건설한 경험이 있어 사막은 제법 잘 압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공안대장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다 이내 한개 분대 규모의 무장을 해제시키더니, 짚차 한 대에 실어준다.
"혹시 모를 위기에 대비해 챙겨가시죠, 추후에 출국하실 때 반납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주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주석께서 공문까지 내렸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모쪼록 모든 일이 잘 되시고, 돌아가실때 이 왕자헌이를 잊지 말아 주시기를."
다 제놈이 행여나 주석의 눈에 띄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베푸는 선행이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려 하지만 SKY의 책임자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공안대장과 악수를 나눈다.
왔던 길을 빠르게 달려 사라지는 공안들을 바라보던 SKY그룹의 책임자가 수평선 너머로 그들이 보이지 않자 작은 지도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 이 좌표로 A조가 향하고, 이 좌표로는 B조가 향한다. 나와 C조는 여기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곳에 가 다시한번 심층 지반 조사를 실시한다."
"예!"
마치 훈련된 군인들처럼 대답하는 직원들.
"A조는 소총과 탄약을 충분히 챙기고, B조는 폭약위주로 챙겨."
""예!""
"잘 묻어 놓고, 깃발로 표식하는 것 잊지말고. 흩어져."
***
의자에 묶여 천정을 바라보고 뒤집혀 있는 빈 라덴이 보였다.
막 수건에 물을 적시고 있는 대원에게 호석이 미리 준비해온 작은 유리병을 건넸다.
"향신료다."
짧은 말이었지만 대원은 알아 들었다는 듯,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40L짜리 말통에 내용물을 푼다.
짜르르 코를 울리는 애매한 냄새에 괜스래 콧김을 뿜어내며 빈라덴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했다.
"꼭두각시, 생각있나?"
"흥! 미국놈들에 이어서 이제는 한국 놈들이냐?"
피식 웃음이 터져나온다.
"꼴에 한 단체에 대가리였다고 다구빨은 좀 세우네?"
접혀있던 무릎을 펴고 대원을 바라보니 향신료에 절은 물이 흥건한 수건을 빈라덴의 얼굴에 덮는다.
"스읍, 푸, 스읍, 푸."
제법 고문이란 것에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다. 젖은 수건 위에서 호흡법을 안다고 할까? 침착함을 유지하는 느낌. 하기사, 제 놈도 '신의 뜻'이라는 요상한 허울로 정말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을테니, 어쩌면 '신의 뜻'이라는 허울로 이런 고문에 대하여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어 대원이 말통을 들어 놈의 얼굴에 딱 달라붙어 요동치는 타월 위에 기울인다. 코 끝을 찡하게 울리는 역한 향신료 냄새가 방 내부에 퍼져나가고 '꼴꼴' 혹은 '꾸륵'과 같은 놈의 거친 호흡으로 인한 이상한 소리가 방 내부에 퍼진다.
호석이 슬쩍 손을 들어 올리니 물을 붙던 대원이 멈춘다. 이어서 다른 대원이 놈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젖은 수건을 치웠다.
근처로 다가갈 필요도 없이 멀리서 놈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무엇인가 갈망하고 있는 눈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부디, 오래 버티라고."
고개를 돌려 호석에게 물었다.
"사막 개미라고 했던가요?"
"아, 예 턱심과 민첩한 놈들입니다."
"이 뜨거운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하게 발달해 왔겠죠?"
"그럴겁니다."
"저 놈 몸뚱이에 꿀 좀 발라봅시다. 사막 개미들이 즐기나."
"예, 회장님."
한국말을 알 길이 없는 빈라덴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대원들을 바짝 경계했다.
"어, 어디로 끌고가는 것이냐!"
호석은 망설임 없이 손을 휘둘러 놈의 주둥이를 멈춰 세웠다.
"나이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대원들이 뙤약볕 아래로 빈라덴을 끌고가는 사이, 호석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빅보스."
"예."
"타클라마칸 사막의 적절한 위치에 무기들을 묻는데 성공했다는 직원들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의 음성에는 걱정이 묻어나와있었다.
"저 벌레가 협조하지 않을까 걱정됩니까?"
"...예. 사이비 놈들은 참..."
난 피식 웃어버렸다.
"놈들도 사람입니다. 짐승같은 새끼들이라 그렇지, 더 큰 공포에 굴복하는 그런 짐승 새끼들."
"확신하십니까?"
"아니면 미국놈들한테 넘기고 다른놈들 섭외해야겠죠? 단체 이름만 알 카에다면 될겁니다."
"아..."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저 놈이 죽든지, 꼭두각시가 되든지 둘 중 하나만."
"예, 빅보스."
< 제 20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