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9 이부 팔장 - 감숙, 해후 (7)
* * *
별의 작용에 관해서는 당사자들조차 아직 제대로 밝히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하나 그런 와중에도 단 하나 확실하게 알려진 사실이 있으니, 바로 ‘별은 스스로의 성질이 발현될 순간을 알고 있다’였다.
쉽게 말해 별에겐 특정 조건 하에서 날뛰는 성질이 있단 말이다.
천살성이 피에 반응하고 파마성이 삿된 것에 반응하는, 또한 절연성이 인연에 반응하는 것이 이와 같은 성질 탓이었다.
별의 주인들의 지상과제가 바로 그 성질의 통제였다.
누군가는 별과 같은 길을 걸으며, 누군가는 별을 끝끝내 억제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다.
셋 중 백경오는 첫 번째에 해당했다.
투천성은 투쟁을 바란다.
싸움이 필요한 순간이면 그 어느 때보다 날뛰며 주인을 보챈다.
백경오는 싸움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싸워야 할 순간이라면 기꺼이 별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쿵!
이 순간의 백경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건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낮고 포악한 목소리가 울렸다.
백경오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검게 내려앉는 눈동자는 투천성의 포악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금선우는 험악하게 웃었다.
“그래, 그 꼴같잖은 별을 보고 싶었다.”
화악!
퍼져나간 마기가 형상을 이룬다.
기파의 유형화.
그것은 명백히 초절정의 코앞에선 기예였다.
“뭐든 해봐! 네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지 가르쳐 줄 테니까!”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백경오는 정련되지 않은 날 것의 움직임을 선보이며 금선우에게 달려들었다.
금선우가 마주 검을 휘두르자 검붉은 불꽃이 허공을 수놓았다.
백경오에겐 하등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 수였다.
‘보인다.’
투천성은 길을 알려준다.
그것은 절대 완벽한 회피를 위한 길이 아니었다.
꽈득!
“크학!”
“끕…!”
피해를 불사하고서라도 상대를 물어뜯는 길이었다.
뻗어나간 백경오의 손이 금선우의 쇄골을 움켜쥐어 부쉈다.
와중 흑염에 피부 위가 상했으나 백경오의 돌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쾅!
쇄골을 쥔 채로 백경오는 금선우의 명치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끄억…!”
금선우의 숨이 끊겨 나왔다.
오로지 상대를 찢어발기기 위해 형과 식을 내다 버린, 그리하여 효율의 극치에 선 주먹이다.
제아무리 고통을 반감해주는 마공을 쓴다 하더라도 완전한 방어는 불가능한 것이다.
백경오는 연신 주먹을 내질렀다.
“네놈 따위에게 쓰이고자 만들어진 무공이 아니다.”
쾅!
허벅지를 찍는다.
“네까짓 놈이 함부로 말할 무공이 아니다.”
쩌억!
인중을 갈긴다.
“칠상권은 스승님의 의지가 담긴 무공이었다.”
파앙!
금선우의 배에 손을 얹은 채로 우악스럽게 내공을 쑤셔 박았다.
칠상권의 내가중수법을 본능적으로 흉내 낸 것이었다.
“쿨럭!”
금선우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이미 한번 단전이 깨진 몸이다. 같은 자리에 두 번 침투경을 갈긴 셈이니 반동은 여타 무인들보다 훨씬 심각할 터였다.
한데,
“크흐흑!”
금선우는 웃었다.
그 순간, 백경오는 등골이 섬찟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뒤!’
투천성의 경고에 곧장 고개를 돌리자 웬 비수가 백경오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내가 이곳에 혼자 왔을 거라 생각했나? 병신 같은 놈.”
스스스―
마인들이 대나무 숲 사이에서 하나둘 튀어나왔다.
어느덧 그들에게 포위된 형상이 되었다.
백경오는 낮게 혀를 찼다.
‘썩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움직일 걸 그랬나.
늦은 후회가 떠올랐다.
“자, 그 별이 이 상황에서도 네 목숨을 구해준다더냐?”
금선우가 조소했다.
*
“아무래도 안 되겠어.”
공동파의 한 전각 아래, 남궁소아가 말했다.
“우리도 가자.”
“뭐?”
“백경오 그놈 찾으러 가자고!”
단원들을 모아놓고 내뱉는 말엔 어딘가 분노라고 할 것까지 서려 있었다.
실로 틀리지 않았다.
남궁소아는 부단주로서 단원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분노를 느꼈다.
또한 매번 대기 명령만 받는 이 상황에 분노를 느꼈다.
“너희는 답답하지도 않아? 이때까지 우리가 임무 나와서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있어? 전부 단주님 혼자서만 했잖아!”
그녀의 말에 곧장 반박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용봉단 전원은 중원 무림의 미래라 일컬어진 후기지수였다.
그들의 자존심이 좀 높겠는가.
그리 떠받들어지고 살아와 막상 강호에서 보호받기만 하니 속이 좀 긁히겠는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의견은 달랐다.
“단주의 명령에는 복종해. 그게 집단에서 보여야 할 옳은 태도야.”
언혁이 말했다.
“여기가 동네 무관은 아니잖아?”
턱을 괸 채로 내뱉는 말은 분명 핵심이었다.
강서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에 모용진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난 찾으러갈란다.”
단순한 모용진다운 답이었다.
이로써 의견이 2대 2로 갈렸다.
다수결로도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궁소아는 길게 숨을 내쉬다 강서휘와 언혁에게 말했다.
“그럼 너희는 여기 있어. 난 실적 챙기러 갈 테니까.”
조금은 표독스러운 목소리였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거 알지? 백경오를 찾는데 성공하면 너희들 몫은 없어. 실적은 온전히 나와 모용진이 가지는 거야.”
강서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것이 도발임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기에, 실적이라는 말까지 나오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기에 반응한 것이다.
용봉단은 결국 후기지수를 임시로 한데 묶어놓은 단체일 뿐이다.
1기가 그랬듯 언젠가는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며, 그때가 되면 이제껏 쌓아온 실적은 집단이 아닌 개개인의 실적으로 분할이 된다.
무림에서 실적이란 무명, 무명이란 곧 그 무인의 입지와도 같다.
“너 되게 간사하게 굴 줄도 안다?”
하며 강서휘가 어이없다는 듯 말을 던지자 남궁소아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꼬우면 어쩔건데?”
“어쩔 수는 없지.”
강서휘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언혁의 뒷덜미를 잡았다.
“으엑?”
“이번 한 번만 속아주는 거야. 확실히 실적이 없기도 했으니까.”
웃기고 있네.
사실 처음부터 나갈 생각이었으면서.
남궁소아는 강서휘를 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애초에 거절의 말을 내뱉은 것조차 이성적인 척을 하려는 나름의 겉치례다.
구태여 이 순간에 그런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다들 따라와.”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대충 단주님이 간 반대로 가면 되겠지.”
“왜 단주님 반대 방향인데?”
뭘 당연한 걸 물을까.
“단주님 길치잖아.”
“아.”
목리원은 길치였다.
옆에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금방 다른 길로 새어버릴 정도의 심각한 길치.
*
남궁소아의 예측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다.
그 말을 설명하기 위해선 우선 목리원이 백경오를 추적한 방식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목리원은 우선 성련이 울부짖는 것으로 백경오에게 변고가 생긴 것임을 예측했다.
성련은 그 깊이가 더해질수록 천기에 가까워지는 만큼, 이 울림이 백경오의 위험과 직결되어 있다 말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감숙, 하필 마교의 침입 경로로 점쳐지는 곳이다.
위기가 있다면 마인들에 의한 것이리라는 판단이 나온단 말이다.
거기까지 사고가 이어지니 결국 해내는 것은 기파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숨어있는 마인들의 마기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곳에 백경오도 있으리라는 판단.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렴, 목리원은 초월의 무인이 아니던가.
그냥 초월도 아닌 상승의 초월이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라 자연의 기와 스스로의 공력을 공명시켜 주변의 기운을 모두 식별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조금은 무리를 해야겠지만 괜찮았다.
백경오의 위험에 비하면 이정도 무리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 목리원이었으니 당연했다.
여하튼 그리하여 목리원이 찾은 마기 덩어리가 있었다.
곧장 그곳을 향해 달렸고, 그것이 실책이었다.
“왔구나 천살성!”
마인들은 양동작전을 펼쳤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백경오에게 목리원이 다다르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마교의 진법 안에 목리원을 가두는 것.
그것을 위해 마인들은 일부러 마기를 드러냈다.
목리원이 다가오자 진법을 펼쳤다.
물론 통할 리가 없었다.
“이런 얕은 수에 당하는 걸 보니 나도 아직 멀었나보군.”
서걱―
단 일 검이었다.
목리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뽑아낸 검이 진법과 마인들의 목을 한 번에 베어버렸다.
천살성이 옅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목리원으로선 떨떠름한 기분을 자아내는 일이었다. 한숨이 푹푹 튀어나오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면 대체….’
또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 건지 원.
마냥 기파만 쫓아오다 보니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달리 말해 길을 잃어버렸다.
남궁소아의 말은 결론적으로 절반은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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