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75화 (275/334)

EP.276 칠장 - 절연, 인연 (3)

* * *

제갈벽은 이어 말했다.

“달리 자네의 약점을 잡을 이유도, 그럴 힘도 내게 없지 않나. 긴장을 풀란 말을 하고 싶었네.”

그리 이르며 목리원의 표정을 살피니 십년감수 했다는 듯 길게 숨을 내빼는 게 보였다.

참으로 순박한 면이 있는 청년이었다.

‘하기야, 검성께서 키운 아이니.’

저 아이가 천살성의 그 아이라면 다시 이르길 목선오가 남긴 유산이란 뜻이었다.

제갈벽은 그 사실에 집중했다.

정확히는, 그의 뜻을 이어받은 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정말 검성께서 바르게 키운 아이라면.’

그리하여 제게 내려진 천형도 이겨내 살아오는 너라면.

산이를 구해줄 수 있겠느냐.

구태여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진 않았다.

그저 목리원을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불편한 듯 숨을 흘리다, 이내 표정을 굳힌 채로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무엇이?”

“무엇도 더 묻지 않아 주셔서.”

“내가 아들의 친우를 겁박할 정도로 성격이 못 되먹진 못하네.”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이윽고 고개를 든 목리원은 말했다.

“일렀듯, 저는 제갈형의 변화가 있다면 절연성에 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왕님께 이 말이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해보시게.”

“…정말 그런 이유라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꼭 비밀을 지켜달라는 협박처럼 들리는군.”

“그런 의도가 아님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목리원의 기색은 진중했다.

제갈벽은 그 진중함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목선오라는 거인에게 진 은혜를 갚을 몇 안 되는 길임을 알기에.

“믿겠네.”

하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형님, 산이가 묵룡 대협을 만나보겠다 하십니다.”

제갈무연이 나타나 일렀다.

제갈벽은 목리원에게 턱짓했다.

“가보게.”

직후 목리원이 포권을 취하곤 몸을 돌렸다.

허리와 등, 두 자루의 검.

제갈벽은 그 뒷모습을 고요하게 눈에 담았다.

*

안채를 나가 가주전으로 향하는 동안 목리원은 긴장을 털어내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십년감수했구나.’

너무 놀라서 그만 뒤로 넘어질 뻔했다 하면 놀란 정도가 설명이 될까.

하기야 역성대법에 대해 마일석이 의논을 했다고 한 시점부터 눈치챘어야 할 일을 뒤늦게 안 우둔함이 문제긴 했다.

여하튼 평소에는 잘만 돌아가던 머리가 이럴 때만 바보가 되는 건지.

목리원이 헛웃음을 흘리는 중이었다.

“태상가주와님과의 대화가 꽤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제갈무연이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표정이 꽤 좋아보이시는데.”

“음? 그렇소?”

목리원은 입매를 매만졌다.

헛웃음을 웃음으로 착각한 것일까.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 그래서였구나.’

천살성을 이고 있음을 알고도 자신을 똑바로 봐주는 사람이 늘었다는 생각에 기꺼운 것이겠지.

작은 희망일 것이다.

언젠가 얼마나 높게 공들여 탑을 쌓던 천살성이 밝혀지는 순간 모두 허물어질 것이라 생각한 일이 있었다.

그런 불안감이 당문의 진법에선 유형화된 음성으로 표출된 적도 있었다.

하나 괜한 걱정일지도 모른다.

‘스승님….’

강호엔 겉보다 속을, 그리고 의협심을 봐주려는 사람이 아직 이만큼이나 더 있습니다.

괜히 하늘에 말을 건네던 중이었다.

“자, 저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거대한 전각이 목리원의 눈앞에 드리워졌다.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이건…?”

“아, 진법으로 만든 환영이니 너무 개의치 마시지요.”

쿡쿡 웃으며 건넨 제갈무연의 말에도 목리원은 좀처럼 안정할 수 없었다.

그만큼이나 전각의 형상이 기괴했던 까닭이다.

‘이게 대체 몇 층인 게냐.’

지붕의 수를 세어도 잘 모르겠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10층은 족히 넘어가는데 인지를 흐린 것인지 그 구분이 모호한 것인지 적색의 탑이 꼭 흐물거리며 형상을 바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들어가려니 자연히 거부감부터 드는 형태.

실제로 들어가기도 꽤 어려운 구조였다.

“저기 눈앞에 용암이 보이오만.”

“환각입니다.”

“그러니까, 환각이라 생각하고 용암 속을 헤엄쳐가라?”

“헤엄도 아닙니다. 그냥 밟고 지나가면 되지요. 음, 수상비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상비(水上飛).

물 위를 걷는 고도의 내력 응용 기술이었으나 목리원으로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이란 게 있지 않나.

“…제갈 형에게 거둬달라 할 순 없는 것이오?”

“저조차도 안으로 출입은 못하게 하는지라 말을 전할 수가 없군요.”

“내 소식을 제갈형에게 전했다는 것은?”

“이쪽으로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입니다. 저기 벽에 글씨를 써서.”

목리원은 제갈무연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대자보 같은 것이 보였다.

가만 보고 있으니 그 위로 글자가 슬금슬금 기어다니며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안하네. 목아우. 내 여기 진법을 풀었다간 저 망할 숙부랑 가문 인간들이 들이닥칠 게 뻔하거든. 자네만 와줄 수 있겠나?』

이걸 뭐라 해야 할까.

이쪽을 이미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제갈무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셨지요?”

“제갈 형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게요?”

“그걸 물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목리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나서야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했다.

“일단 들어가 보겠소. 안내해주셔서 고맙소.”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갈무연은 그리 떠났다.

목리원은 호흡을 다잡고 전각을 죽일 듯 노려봤다.

그렇게 한 발 내딛는 순간,

화아아악!

…열기가 뻗쳐 나왔다.

*

가장 먼저 목리원을 반긴 것은 용암의 열기였다.

‘환각이라더니.’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다.

제갈산의 진법에 관한 지식은 알아줘야 한다는 것일까.

이것이 환각이고 저 용암조차 가짜라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있음에도 열기 탓에 들어가기가 꺼려지고 있었다.

예전엔 이 정도로 극악한 진법은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간 더 실력이 오른 것이겠지.

어찌해야 할까.

좀처럼 부수지 않고 이걸 무난히 나아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데, 부수자니 마냥 그러기도 힘들었다.

제갈산이 진법이 부서지는 걸 염려하고 있음을 이미 봤기 때문이다.

목리원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공력을 풀어냈다.

‘천천히 가볼까.’

묵색의 기파가 목리원을 몸을 감쌌다.

비단 감싸는 것뿐만 아니었다.

피부 위로 옅게 덧씌워지며 형성되는 막은 호신강기.

초월에 접어들며 목리원이 익히게 된 새로운 기예였다.

퉁―

목리원의 몸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붉게 끓어오르는 용암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치이이익―!

소리까지 재현된다.

열기가 기파를 파고드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이런 심리적인 부분을 세밀히 재현해낸 능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결국 환각이지.’

퉁!

용암 위로 발을 구르자 그대로 목리원의 몸이 한 번 더 튀어 올랐다.

사뿐히 떠오르는 동작에 이어 쏘아지는 속도는 시위를 떠난 화살과도 같았다.

약 100척의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어 그대로 착지.

화아아악!

그제야 용암의 풍경이 수그러들었다.

그곳은 평범한 흙바닥이었다.

‘일단 하나는 끝.’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니 분명 코앞에 있던 전각의 입구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우우….]

그리고 나타나는 것은 반투명한 귀신들.

“제갈 형, 장난이 너무 심하오.”

목리원은 흑야를 뽑아 한 바퀴 휘둘렀다.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소. 제갈 형은 내가 검을 뽑을 걸 알 테니까.”

흐느적거리는 꼴로 보면 목각인형 내지 수풀 따위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례 좀 하겠소!”

서걱―!

일자로 검기를 뻗어내 시야에 보이는 것을 다 베어내니, 목리원은 그제야 손맛으로 저것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목각인형이군.’

목리원은 또 걸음을 내디뎠다.

*

이후로도 여러 진법을 마주했으나 크게 발걸음을 붙잡을 만한 것은 없었다.

애초에 진법 자체가 초월의 무인을 상정해 만든 것이 아니라 가문의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도다 보니 목리원에게 걸림돌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한참이나 움직여 겨우 도착.

목리원은 이제야 전각의 입구에 다다랐다.

문을 두드렸다.

“제갈 형, 안에 계시오?”

기운은 바로 문 너머에서 느껴졌다.

마중을 나오는 것일까.

-…있네, 미안한데 부수고 들어와 줄 수 있겠나?

목리원의 고개가 기울었다.

하나 딱히 안 될 것도 없는 차, 목리원은 소리치며 발을 들었다.

“알겠소! 바로 부수겠소!”

그렇게 내공을 담아 문을 발길질하니 ‘쾅!’ 소리와 함게 나무 문의 파편이 비산했다.

연기와 먼지가 피어올랐다.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휙휙 털어내던 목리원은 이내 점점 가라앉는 먼지 뒤로 제갈산의 인영을 봤다.

“제갈 혀….”

덜컥,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음, 못난 모습을 보여버렸구먼.”

머쓱하다는 듯한 음성이 제갈산에게서 튀어나왔다.

목리원은 차마 무어라 말을 더할 수가 없었다.

전신에 부적을 붙인 채로 의자에 꽁꽁 묶인 그의 모양새 때문은 아니었다.

성련신공이 보여주는 광경이 있는 까닭이다.

‘별이….’

폭주하고 있다.

그의 몸 주변에서 부적을 뚫고 지독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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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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